230425 6가지 바라밀을 4가지 결심으로 압축 (2) (법문: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붓다왕사 287강 - 6가지 바라밀을 4가지 결심으로 압축함 (2)
(이전 법문: https://cafe.daum.net/satisamadhi/4vdS/2172)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10가지 바라밀 = 6가지 바라밀 = 4가지 아딧타나
붓다왕사에서 바라밀 10가지를 같은 성품끼리 모으면 6가지 바라밀이 되고 6가지 바라밀을 다시 더 간략하게 축약하면 4가지 결심이 됩니다. 결심 4가지를 하면 10가지 바라밀을 채우게 됩니다. 4가지 결심을 하고 살면 10가지 바라밀을 채우게 된다는 거죠.
10가지 바라밀이나 4가지 아딧타나(결심)나 같은 겁니다. 4가지 결심하는 게 더 쉽죠? 이렇게 10개의 바라밀을 채우는 것보다 4가지 결심하면 더 쉽습니다.
보살의 네 가지 결심
1) 삿짜딧타나(Saccādhiṭṭhāna). 진실하기를, 진리를 찾고 핵심을 찾는 것. 삿짜(sacca)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결심합니다. 그리고
2) 짜가딧타나(Cāgādhiṭṭhāna), 버리는 결심을 합니다. 버린다는 것은 안 좋은 것을 버린다는 뜻이죠. 좋은 거 버리지 않습니다. 안 좋은 것을 버리겠다. 이렇게 결심하는 것 탐진치를 버리겠다는 뜻이죠. 번뇌를 버리겠다는 겁니다.
3) 우빠사마딧타나(Upasamādhiṭṭhāna)입니다. 고요함, 번뇌 없음, 걱정 없음, 뜨거움 없음을 결심합니다.
4) 빤냐딧타나(Paññādhiṭṭhāna), 지혜롭기를 결심합니다.
네 가지 결심. 어제 우빠사마딧타나까지 했습니다. 우빠사마딧타나(= 우빠사마 아딧타나), 고요함에 대한 결심입니다.
번잡하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뜨겁지 않고, 항상 서늘하고 고요함. 이것에 대한 결심입니다. 번뇌가 많지 않고, 간소하고, 단순하고, 고요하기를 이렇게 결심하는 겁니다. 고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가 있겠죠. 일단 5욕락에서 벗어나야 하고, 5욕락을 멀리 해야 하고, 일이 많지 않아야 하고, 시끄럽지 않아야 하고, 주변이 번잡스럽지 않아야 하고, 그래야 됩니다.
우빠사마딧타나. 붓다가 되기 전까지는 순간순간 우빠사마(upasama. 고요함)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시를 한다거나 그리고 수행을 한다거나 수행에도 위빳사나 수행도 있고, 선정을 얻을 정도의 수행이 아닌 수행들이 있죠.
<아비담맛타상가하>의 깜맛타나 장(명상의 장)에서 사마타 40가지에 대해서 하는데 선정을 얻을 정도의 사마타 주제가 있고, 선정을 얻을 수 없는 사마타 주제들이 있습니다. 선정을 얻을 수 없는 사마타를 하더라도 순간적인 우빠사마는 얻을 수 있습니다. 순간의 고요함, 순간의 번뇌 없음, 순간의 걱정 없음, 이런 것은 얻을 수 있습니다. 완전한 고요. 완전한 적멸은 열반을 봐야지 가능한 거죠. 붓다가 됐을 때나 우빠사마딧타나가 끝이 납니다.
네 번째, 빤냐딧타나(= 빤냐 아딧타나)입니다. 지혜롭기를 결심합니다. 지혜에 대한 결심. 지혜 중에서 최고의 지혜는 우리가 아는 지혜 중에서 최상급의 지혜는 아라핫따 팔라(arahatta-phala)입니다. 아라한과입니다. 지혜의 끝, 마지막 단계입니다.
최고점 아라핫따 팔라(아라한과)를 얻어야 지혜가 완성된 겁니다. 그 전까지는 수다원, 사다함, 범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나함까지도 지혜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빤냐딧타나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라핫따 팔라를 얻기 전까지 그러면 보살은 아라핫따 팔라냐나(arahatta-phala-ñāṇa)를 얻음과 동시에 삽반뉴딴냐나(sabbaññutañ-ñāṇa) 이것도 같이 얻죠. 모든 것을 아는 지혜. 그냥 아라한들은 이것을 얻지 않습니다. 삽반뉴딴냐나 없이 그냥 아라핫따 팔라냐나를 얻고 붓다는 아라핫따 팔라와 삽반뉴딴냐나 두 개를 같이 얻습니다.
이 두 가지 냐나. 아라핫따 팔라냐나와 삽빤뉴딴냐나 두 가지를 같이 동시에 얻기 위해서 그 앞의 과정들 보디삳다의 길을 가죠. 두 가지 냐나. 일반 사와까(sāvaka. 제자)들은 하나만 얻는데 보살은 두 가지 냐나를 얻기 위해서 그 앞의 과정들, 보살의 생을 사는 동안에 우빠야 꼬살라냐나(upāyakosalla-ñāṇa)를 가지고 바라밀을 채웁니다.
우빠야꼬살라냐나 = 바라밀을 효과적으로 채우는 지혜
우빠야꼬살라냐나가 무엇이냐면 10바라밀을 채우는 데 있어서 효율적으로 채우는 겁니다. 지혜롭게 그러니까 어리석지 않게. 보시를 할 때도 지혜롭게 하고, 계를 지킬 때도 지혜롭게 지키고, 위리야 노력을 할 때도 지혜롭게 노력하는 것. 멧따(mettā. 자애)를 쓸 때도 지혜롭게 자애관을 합니다. 지혜롭게 자애의 마음을 씁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바라밀을 채우는 것을 우빠야꼬살라냐나라고 합니다.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라밀이죠. 10가지 바라밀이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10가지 방법입니다. 그걸 하는 데 있어서 지혜롭게 한다는 거죠. 어리석지 않게, 지혜롭게 그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우빠야꼬살라냐나입니다.
이것부터 시작하는 빤냐. 여러 가지 모든 지혜 바라밀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할까?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 지혜부터 시작해서 다른 온갖 지혜들, 이것이 빤냐딧타나입니다. 지혜에 대한 결심. 지혜 결심입니다. 지혜롭기로 결심하는 거죠. 보살의 생에서 보살이 바라밀을 채우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성숙해가죠. 보살의 초창기와 중간 이제 마지막 생으로 갈수록 보살의 지혜가 더욱 더 무르익습니다. 무상·고·무아에 대해서 붓다가 되지 않았지만 더 잘 이해합니다. 아직 열반을 보지 못했지만 보살이기 때문에 이렇게 갈수록 보살의 지혜가 무르익는데, 무르익기 전에 앞부분의 지혜 그러니까 붓다가 되기 전에 보살일 때의 지혜, 이때는 아직 그 빤냐가 성숙하지 못합니다.
아딧타나 = 결심 = 서원 = 기도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빤냐딧타나를 순간순간 하는 거죠.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붓다가 되고 난 뒤에나 아라핫따 팔라냐나(아라한과의 지혜)와 삽반뉴딴냐나(모든 것을 아는 지혜) 두 가지 다 얻고 나서 이 빤냐딧타나(지혜 결심)가 이제 멈춥니다. 완성됩니다. 빤냐딧타나, 지혜에 대한 결심이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전까지는 지혜를 원하는 결심, 이것들을 계속합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기도를 한다는 거죠. 쉽게 말하면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는 서원이죠. 자기 마음이 바로 갈 수 있기를, 지혜롭기를, 그리고 번뇌가 없기를, 번뇌를 계속 버리려고, 탐욕을 버리려고, 이것에 대한 결심. 이 기도를 계속한다는 뜻입니다.
계속 순간순간 자주 자주 기도하고 서원을 세우고 결심하고 같은 말이죠. 그래야지 바로 가죠. 안 그러면 자꾸 잊어버립니다. 5욕락에 자꾸 휩쓸려가죠. 이렇게 계속 기도합니다. 근데 이 기도, 이 아딧타나(결심)가 멈추는 게 붓다가 된 뒤에 아라핫따 팔라(아라한 과)가 얻어진 뒤에 멈춥니다. 그래서 이걸 얻기 전까지 앞에 있는 빤냐, 온갖 여러 가지 지혜들을 결심하는 것이 빤냐딧타나입니다.
그리고 아라한이 아닌 범부들은 맹인입니다. 눈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안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볼 수 없는 존재인 범부들은 계속 방일하게 삽니다. 안 보이니까 계속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방일하게 지내는 범부들은 왓투 까마(vatthu-kāma)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왓투 까마라는 것은 5욕락의 물질들, 물건들. 5욕락을 채우는 물품들. 범부는 여기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이 왓투 까마, 이 5욕락의 물건, 물질들은 앞이 눈이 보이지 않는 범부들이 서는 자리입니다. 범부들은 5욕락의 물질 위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보살이 되어야 이 왓투 까마, 5욕락의 물질들에 대한 문제점 허물들을 잘 보기 때문에 이 왓투 까마들(5욕락을 채워주는 물질들)로부터 벗어나는, 열반의 원인이 되는 삿짜(진실), 짜가(버림), 우빠사마(고요함, 적멸, 열반), 빤냐(지혜) 이 네 가지 위에 머문다 했습니다.
보살은 네 가지 결심 위에 굳건히 머뭅니다.
범부들은 5욕락의 물질 위에 서 있고, 보살들은 물질, 5욕락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 벗어나는 방법, 열반으로 가게 하는 네 가지 아딧타나. 진실에 대한 아딧타나 그리고 버림에 대한 아딧타나, 고요함/적멸/열반에 대한 아딧타나, 지혜에 대한 아딧타나 이 네 가지 위에 굳건히 서 있다. 그래서 이 네 가지가 삿짜(지혜), 짜가(버림), 우빠사마(고요함, 적멸, 열반), 빤냐(지혜)입니다. 진실/진리, 버림, 그리고 고요함/번뇌 없음/열반이죠. 우빠사마는 아직 얻지 못했지만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그리고 지혜.
이 네 가지는 보살들만이 머무르는 자리, 아딧타나 네 가지입니다. 보살들은 이 네 가지 아딧타나에 머무르고, 범부들은 5욕락 물질 위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다음은 아딧타나 네 가지가 생겨나는 모습, 점점 많아지는 모습입니다. 이 네 가지 결심이 어떻게 하면 점점 풍성해지고, 더 많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 진실(삿짜)에 대한 결심, 버림(짜가)에 대한 결심, 고요함(우빠사마)에 대한 결심, 지혜(빤냐)에 대한 결심.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성장하게 되는가?
붓다가 되리라는 니야따 위와라나(niyata-vivaraṇa. [또는 미얀마어로 '니야따 뱌딧따 niyata-byāditta']), 수기입니다. 수기. 확실히 정해지는 거죠. 반드시 붓다가 될 것이다. 이 예언을 받은 뒤에 보디삳다는 바라밀 빠위짜야 냐나(pāramī-pavicaya-ñāṇa)로 바라밀들을 숙고합니다. 바라밀 빠위짜야 냐나는 바라밀에 대해서 숙고하는 지혜입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혼자서 10가지 바라밀 대해서 숙고합니다. 보살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들어야지 알죠? 보살은 10가지 바라밀에 대해서 스스로 숙고합니다. 이 바라밀 빠위짜야 냐나로 숙고를 합니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 붓다가 될 때까지 해야 되는 것이 이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숙고합니다.
보살들의 와찌삿짜(vacī-sacca), 바른 말 하는 것. 바른 말과 거짓말을 피하는 것은 다른 거라고 했죠. 보살들은 항상 바른 말만 합니다. 바른 말을 하고 좋은 것을 드러내서 이야기해주고, 장점을 이야기해주고, 칭찬하고, 좋은 것을 드러내서 소문내고 이러는 것.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모든 바라밀들을 채우게 됩니다. 이 바른 말, 좋은 말을 드러내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거죠.
누군가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바라밀들을 채우게 됩니다. 그래서 보살들의 의식 안에 삿짜딧타나 이것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바라밀을 채울 때 그 바라밀의 반대가 되는 번뇌. 이것을 버려야지 바라밀을 채울 수 있겠죠. 번뇌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라한이 되어야지 버리지만, 일단 수다원이 되면서부터 버리지만 그 전에도 바라밀을 채우기 위해서 순간순간 번뇌가 없어야지 좋은 일을 할 수 있겠죠. 번뇌가 성냄으로 시끄럽고 탐욕으로 시끄러운데 바라밀로 채울 수 없지 않습니까? 일단 잠시라도 번뇌가 없어야지 바라밀,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바라밀을 방해하는 번뇌를 버리는 것과 왓투까마, 5욕락의 물질, 감각적인 행복들을 채워주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 이것을 해야지 짜가딧타나입니다. 그래야지 이게 분명해집니다. 5욕락을 채우는 물질들을 버리고 그리고 번뇌를 버리는 것. 두 가지 버린다는 거죠. 짜가딧타나. 두 가지 버림에 대한 결심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짜가딧타나(버림의 결심). 낄레사 까마(kilesa-kāma. 5욕락의 번뇌), 왓투 까마(vatthu-kāma. 5욕락의 대상) 두 가지 버리는 것. 이 바라밀의 공덕으로 인해 번뇌의 허물들이 고요해지기 때문에 우빠사마딧타나(고요함의 결심)가 분명해진다.
바라밀의 공덕에 대해서 숙고하면 번뇌가 있다는 것은 참 분명해집니다. 번뇌의 허물에 대해서 분명하게 앎과 동시에 우빠사마딧타나, 고요하겠다는 고요에 대한 결심 이게 분명해집니다. 번뇌가 있다는 게 문제가 많다. 이것을 알면 아는 즉시 마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라밀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번영, 발전 이것이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 그러니까 그 바라밀을 채우는 좋은 방법에 능숙하게 된다. 이게 빤냐딧타나이다. 바라밀 10가지. 바라밀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거지 않습니까? 중생들의 번영을 도모하는 것 이게 바라밀이죠. 타인의 발전과 번영에 능숙한 것 이걸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빤냐딧타나라는 겁니다.
빤냐딧타나 = 우빠야꼬살라냐나 =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능숙한 지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 바라밀을 채우는 데도 능숙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걸 잘 아는 게 빤냐딧타나, 지혜 결심입니다. 10가지 바라밀 그리고 또 6가지 바라밀. 10가지를 비슷한 것끼리 묶으면 6가지이고 그걸 또다시 축약하면 4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바라밀들을 채울 때마다 바라밀이라는 선업이 생겨납니다. 바라밀 6가지든 10가지든 채울 때마다 선업이죠. 보살의 의식 안에 선업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면 첫 번째, 내가 하기로 한 그대로 반드시 노력하고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삿짜딧타나(진실 결심) 바라밀을 채우는 것입니다. 바라밀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일을 하는 거지 않습니까? 내가 이거 하겠습니다. 내가 만약에 말을 했거나, 결심을 했거나, 하자고 일을 했으면, 그것을 반드시 어떻게든지 되도록 노력하는 것, 성공시키고자 하는 것. 이게 삿짜딧타나(진실 결심)입니다. 하기로 한 좋은 일, 하기로 한 것, 어떤 노력을 해서든지 성공시키는 것. 진실에 대한 아딧타나입니다. 내가 한 말을 증명하는 거죠. 이루는 거죠. 이게 삿짜 아딧타나입니다.
두 번째, 바라밀의 반대가 되는 적이 되는 불선업들(아꾸살라 akusala)을 버리는 것. 바라밀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거. 불선업은 내가 선업을 짓기로 했는데 이 선업을 짓지 못하게 막 방해합니다. 보시하기로 했는데 보시하지 못하게 내 마음이 또는 뭐 주변에서 할 필요 없어, 꼭 해야 되나, 안 해도 돼 이러는 것. 꼭 거기다 해야 돼? 딴 데 하면 더 좋잖아. 이런 마음. 하지 못하게 그런 것. 이게 번뇌죠. 이런 마음을 버리는 것이 짜가딧타나(버림의 결심)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보시를 잘합니다. 진짜로 보시를 잘합니다. 전 세계에서 1위라던데 수입 대비 기부. 기부하는 비율이 전 세계 1위라 하더라고요. 정말 그렇습니다. 미얀마의 도반에게 배운 것이 보시하기로 했으면 빨리 해야 된다. 안 그러면 못 하게 방해하는 마라(악마)가 꼭 끼어든다고 하고. 그리고 보시하고 나서 빨리 잊어버리라. 이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 바라밀을 채우는 데 방해하는 이것들이 번뇌죠. 바라밀을 채우는데 방해되는 번뇌를 버리는 것. 이게 짜가딧타나입니다.
지금 네 가지 아딧타나(결심)를 얘기합니다. 세 번째, 우빠사마딧타나는 번뇌의 허물. ‘번뇌는 참 문제가 많고 허물이 있다’ 이렇게 알아서 번뇌는 참 위험한 것이구나. 이렇게 아는 거죠. 앎으로 인해서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고요해지는 것, 이게 우빠사마딧타나(고요/번뇌 없음/열반에 대한 결심)입니다. 우리는 번뇌를 번뇌라고 알지 못하죠. 우리는 번뇌를 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번뇌를 뭐라고 합니까? 나라고 알죠. 내가 있으면 번뇌가 있습니다. ‘감히 나를.’ 이렇게 생각하면 그때부터 번뇌의 시작입니다. 괴롭습니다.
네 번째, 중생들의 발전과 번영. 번영의 원인, 방법 중생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살고 행복하고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을까? 이 방법에 능숙한 것, 그 방법들을 잘 아는 것, 이게 빤냐딧타나(지혜 결심)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말한 아딧타나(결심) 4개. 이것은 이것을 다시 펼치면 6가지 바라밀이 됩니다. 바라밀 6개가 되고 거기서 더 펼치면 10가지 바라밀이 됩니다. 6개에서 줄이면 4가지가 되고 4가지에서 늘리면 6개가 되고 이렇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습니다. 바라밀 4개. 전 4개로 하겠습니다. 4개가 쉽네요. 결심 4가지를 계속하시면 됩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필사자: 아꿉빠
편집자: 담마삐야
* 2023-04-25 인터넷
(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393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