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1 사띠빳타나 4가지 (2)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아비담맛타상가하> 7장 범주의 모음(사뭇짜야 상가하 samuccaya-saṅgaha) - 보디빡키야 - 사띠빳타나 (2)
사뭇짜야 장 '보디빡키야 상가하'에서 네 가지 사띠빳타나입니다. 보디빡키야 상가하는 도의 지혜를 얻는 데 필요한 구성 요소들을 모아놓은 것이죠. 그중에서 첫 번째가 네 가지 사띠빳타나입니다. 네 가지는 까야(kāya. 몸), 웨다나(vedanā. 느낌), 찟따(citta. 마음), 담마(dhamma. 법)입니다.
Bodhipakkhiyasaṅgaho
30. Bodhipakkhiyasaṅgah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그 중에서 첫 번째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에서 '까야'는 몸에 있는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발톱, 치아,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속에 있는 음식물, 대변, 뇌수,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라는 32가지를 거듭해서 관찰하는 것을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라고 합니다.
이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는 머리카락, 몸의 털, 치아, 손톱발톱 이런 몸에 있는 안 좋은 것들, 이런 혐오스러운 몸의 부분(꼿타사koṭṭhāsa)들을 대상으로 해서, 몸의 '부분들에 대한 관념(꼿타사 빤냣띠(koṭṭhāsa-paññatti))'을, 아수바(asubha. 혐오스러움)라고 아름답지 않다고 알 때까지 거듭 거듭해서 관찰하는 것, 이것을 아수바 까야누빳사나(asubha-kāyānupassanā)라고 한다. 이것은 수바(subha. 아름다움) 위빨라사(vipallāsa. 아름답다고 왜곡해서 아는 것)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즉 아름답다고 보는 것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책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서원을 잘 세우십시오. ‘내가 헤매지 않고 바른 법을 알아서 바르게 곧장 수행할 수 있기를!’ 이렇게 서원을 세우십시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일단 하고 있던 일을 다 버려야 수행을 할 수 있죠. 여러분들이 일주일을 버리든 열흘을 버리든 석 달을 버리든 3년을 버리든, 하고 있는 것들을 다 버려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세간의 일, 생계활동부터 선업이든 불선업이든 하면서 위빠사나를 할 수는 없습니다. 3일을 하더라도 완전히 다 버리고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들어와서 하는 일이 똑바로 곧장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 가든 바로 가든 세간의 이익을 버렸다는 것 자체로 참 큰 탐욕없음(알로바(alobha))가 된 거죠. 수행에 진전이 없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고 쥐고 있고 쌓아 올린 것을 3일이든 일주일이든 버렸다는 게 대단한 알로바입니다. 탐욕을 놓음이죠. 그 세간 일에서 오는 이익을 내가 포기를 한 거죠.
그렇지만 이익을 포기한 만큼 다른 쪽으로 발전도 있어야 되는 거죠. 내가 세속 이익을 포기한 것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세간을 포기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고 왔는데, 이쪽 출세간 쪽으로 이로움이 없으면, 알로바는 대단하지만 그래도 안타깝지 않습니까? 가르치는 입장에서 저는 미안합니다. 수행자들이 수행하러 왔는데 진전이 없으면, 왜 내가 미안해하는지? 제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수행이 곧게 진전되기를 여러분이 서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아니지! 나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바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각자의 업이지. 잘못된 방법을 찾아서 자기들이 가는 거지. 어쨌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들어서는 수행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서원을 세우십시오.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 32가지를 관찰해서 이것들이 아수바, 깨끗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알도록, 드러나도록 관찰하는 것이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라는 거죠.
이것만이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는 아닙니다.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는 움직이는 몸에 명칭하고 집중하고, 움직이는 몸에 느낌이 있으니까 느낌을 알도록 거기에 마음을 갖다 붙이고, 또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생각, 생각’이라고 사띠하는 것입니다. 여기 32개 '꼿타사 빤냣띠'라고 했습니다만. 몸의 각 부분(꼿타사)이라는 혐오스러운 관념(빤냣띠)을 대상으로 해서, 그 관념 대상이 아수바라고 알도록 거듭 거듭 관찰(사띠)할 때, ‘이 32가지가 아름답지 않구나. 이거 참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구나’라고 알아서 아름답다(수바)는 왜곡을 제거하는 일, 이게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의 역할이라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사띠빳타나 = 위빳사나는 신·수·심·법 네 가지를 관찰하는 것이죠.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달리 말하면 5온이죠. 5온은 ‘나’죠.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5온은 실제로 존재하는 빠라맛타(實在)이죠. 아비담마 제일 처음에 배운 빠라맛타 담마 중에 열반을 제외한 마음, 마음부수, 물질. 이게 위빳사나의 대상이고, 이것이 5온이고 이것이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을 관찰할 때, 위빳사나의 대상인 신수심법을 관찰할 때,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관찰하지 않고, 이것을 다 펼쳐놓고, 그 순간순간 강한 것에 명칭하면서 집중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걸 안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것도 계속 견제하면서(곁눈질하면서) 더 강한 다른 대상으로 즉시 즉시 옮겨 다녀야 됩니다.
마음이 아는 대상이 순간순간 바뀔 때마다 더 강한 몸으로 가서 빨리 명칭하는 것, 이것이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입니다. 몸에 명칭하는 것, 신·수·심 세 가지 중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것, 몸에 명칭하는 것, 듦·나아감·내림, 부풂·꺼짐, 굽히고 펴고 씹고 삼키고 고개를 돌리고 이렇게 명칭하는 것, 이게 까야누빳사나 사띠빳타나입니다.
다음에 웨다나누빳사나 사띠빳타나(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를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웨다나(vedanā)가 둑카(dukkha)라고 드러나도록 거듭해서 관찰하는 사띠, 이것이 웨다나누빳사나 사띠빳타나이다. '웨다나'는 느낌입니다. 느낌에는 세 개 또는 다섯 개가 있죠. 세 개는 수카(sukha. 즐거움), 둑카(dukkha. 괴로움) 아둑카마수카(adukkhamasukha. 무덤덤함)이고, 다섯 개는 수카(sukha. 육체적 즐거움), 소마낫사(somanassa. 정신적 즐거움), 둑카(dukkha. 육체적 괴로움), 도마낫사(domanassa. 정신적 괴로움), 우뻭카(upekkhā. 무덤덤함)이죠. "이 웨다나(느낌)를 둑카라고 분명히 알도록 거듭해서 관찰하는 사띠, 이것이 웨다나누빳사나 사띠빳타나이다. 이 웨다나누빳사나 사띠빳타나로 수카, 둑카, 우뻭카를 관찰하면 항상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무상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게 참 두려워해야 마땅한 것이구나. 고통이구나.’ 이렇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웨다나누빳사나는 물질과 정신을 수카(행복)라고 아는 수카 위빨라사(sukha-vipallāsa), 행복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왜곡되게 알고 있는 것을 제거합니다.
웨다나누빳사나는 느낌을 관찰하시면 됩니다. 느낌 중에서 제일 분명한 통증을 ‘통증, 통증, 통증, 통증’이라고 보고 있는데 도마낫사, 성냄이 일어나면 ‘성냄, 성냄’ 이렇게 관찰하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사라져서 기쁘면 ‘기쁨’, 좋아하면 ‘좋아함’, 편안하면 ‘편안함’ 하면 이렇게 명칭하는 거, 이게 다 느낌이죠. 가벼우면 ‘가벼움, 가벼움’ 더우면 ‘더움, 더움’, 추우면 ‘추움, 추움’, 땀나면 ‘땀남, 땀남’, 배고프면 ‘배고픔’ 이렇게 명칭하는 거죠. 이게 웨다나누빳사나입니다.
아까 까야누빳사나는 수바 위빨라사(subha-vipallāsa), 아름답다고 잘못 아는 것을 제거하고, 웨다나누빳사나는 수카(행복)라고 잘못 아는 것을 제거한다. 까야누빳사나든 웨다나누빳사나든, 그리고 다음에 설명할 찟따누빳사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사띠라는 사띠는 전부 다 고성제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아름답지 않고 행복하지 않고 항상하지 않다. 여러분 수행할 때 힘들죠? 수행할 때 힘들지 않으면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겁니다. 수행할 때 힘든 것, 그 자체로 고성제를 알고 있는 거죠. 수행은 힘든 게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사마타가 아닌 위빳사나 수행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살았든 그 일의 정반대의 일을 하는 것이므로 힘을 반대 방향으로 쓰는 거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계속 앞으로 가는 훈련에만 힘을 쓰다가, 자전거 바퀴를 뒤로 굴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거죠. 뛰어다니던 사람이 날아다니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거죠. 새로운 것이니까 힘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다음에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ā)입니다. 찟따누빳사나는 마음을 대상으로 해서, 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있는가, 또는 탐욕 없는 마음과 함께 있는가? 이렇게 구분해서 무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계속해서 관찰하는 사띠, 이것이 찟따누빳사나 사띠빳타나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대상으로 이게 탐욕과 함께 하는 마음인가, 탐욕과 함께 하지 않는 마음인가, 이것을 구분해서 알고,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이게 무상하구나.’라고 아는 겁니다. 이 책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 수행 경험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생각, 생각’이라고 명칭을 붙입니다. 실제 수행 방법과 책에 나와 있는 것은 아주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큰 차이가 뭐냐면, 실제 수행에서는 ‘생각, 생각’이라고 했죠. 이게 탐욕인가 성냄인가 구분해서 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생각, 그게 무슨 생각이든지, 성냄이든지, 지루함이든지, 탐욕이든지, 쓸데없는 생각이든지 뭐든지 간에 구분할 필요 없고, 생각인 줄 알면 빨리 ‘생각, 생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마음이 탐욕인지 성냄인지 구분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걸 구분하려는 생각 자체가 생각입니다. 그러면 또 한 박자 늦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또 놓친 겁니다. ‘이게 무슨 생각이지? 이거 구분해야지’라는 것도 생각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나눌 필요 없이, 그냥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생각, 생각’이라고 관찰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부풂, 꺼짐이 선명해지면 부풂, 꺼짐으로 돌아와서 ‘부풂, 꺼짐’ 명칭해야 됩니다. 명칭 꼭 해야 됩니다. 뭔가 느낌과 생각을 사띠할 때 그냥 보고 있으면 안 되고, 명칭하면서 관찰해야 됩니다. 명칭도 하고 관찰도 하고 집중도 하고 견제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거죠. 계속 매초마다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찟따누빳사나입니다.
몸에 명칭하면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계속 살피다가, 생각이 강해지면 빨리 생각으로 가서 ‘생각, 생각’ 명칭하고, 또다시 분명한 대상으로 빨리빨리 가서 사띠하는 거 이게 사띠빳타나입니다.
사띠빳타나로 마음을 이렇게 구분해서 보면,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서 무상하다고 압니다. 찟따사띠빳타나이든 웨다나도 나중에 관찰이 좋아지면 통증도 사라집니다. 몸도 사라지고 다 사라지므로 무상이죠. 어디에서나 다 무상을 볼 수 있는 거죠. 마음에서도 무상을 볼 수 있고, 웨다나에서도 무상을 볼 수 있고, 몸에서도 무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다 볼 수 있죠. 무상 고 무아가 사성제의 결론이죠. 바른 견해니까, 어디에서나 다 볼 수 있으니까.
그다음에 담마누빳사나 사띠빳타나(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는 이 책에서 담마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물질(색온)을 까야누빳사나로, 느낌(수온)을 웨다나누빳사나로, 마음(식온. 89가지 마음)을 찟따누빳사나 관찰하기 때문에 담마라는 것은 산냐칸다(상온. 기억력), 상카라칸다(행온. 50가지 마음부수)입니다. 이 담마들만 말한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편집: 담마삐야
* 2023-07-11 인터넷
(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521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