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2 사띠빳타나 4가지 (3)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아비담맛타상가하> 7장 범주의 모음(사뭇짜야 상가하 samuccaya-saṅgaha) - 보디빡키야 - 사띠빳타나 (3)
사뭇짜야 장의 보디빡키야 상가하에서 네 가지 사띠빳타나입니다.
Bodhipakkhiyasaṅgaho
30. Bodhipakkhiyasaṅgahe cattāro satipaṭṭhānā kāy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vedan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citt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ṃ.
그 중에서 지난 시간에 ‘까야(kāya. 몸), 웨다나(vedanā. 느낌), 찟따(citta. 마음)’ 세 가지를 설명했고, ‘담마누빳사나 사띠빳타나(dhammānupassanā-satipaṭṭhāna)’는 담마(dhamma)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물질(색온)을 까야누빳사나로, 느낌(수온)을 웨다나누빳사나로, 마음(식온. 89가지 마음)을 찟따누빳사나 관찰하기 때문에 담마라는 것은 산냐칸다(상온. 기억력), 상카라칸다(행온. 50가지 마음부수)를 말한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담마를 아낫따(anatta. 무아)라고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거듭해서 관찰할 때 여러 가지 일에서 그 빠라맛타(paramattha)만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빠라맛타만 분명하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없다.’고 분명히 알게 됩니다. 담마누빳사나는 앋따 위빨라사(atta-vipallāsa. 내가 있다고 잘못 아는 것)를 제거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띠빳타나의 4가지 대상 = 빠라맛타 담마 = 5온
까야·웨다나·찟따, 몸과 느낌과 생각(마음)을 사띠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을 사띠하는 게 담마누빳사나입니다. 위빳사나의 대상이 신·수·심·법 4가지인데 또한 정신·물질의 빠라맛타 담마(물질, 마음, 마음부수)이죠. 위빳사나의 대상은 5온이고, 5온은 색·수·상·행·식이죠.
1) 위빳사나의 대상이 신·수·심·법 이렇게 4가지이고, 2) 즉 빠라맛타 담마 4가지 중에서 마음·마음부수·물질이 위빳사나의 대상입니다. 3) 사마타 수행은 관념을 대상으로 하고, 4)위빳사나는 빠라맛타(실재)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위빳사나의 대상이 빠라맛타이기도 입니다. 이름만 바뀌었지, 빠라맛타와 위빳사나의 대상 4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신·수·심은 분명하고, 4념처의 담마라는 대상에 빠라맛타 담마가 다 들어가야 되겠죠.
쩨따시까(cetasika)는 마음부수인데 산냐(기억, 상온), 웨다나(느낌, 수온) 그리고 나머지 50개의 마음부수인 상카라칸다(행온)가 있죠.
<아비담맛타상가하> '빠낀나까 장'에서 법 대상(담마아람마나dhamma-ārammaṇa)이란 빠사다 물질(pasāda-rūpa. 5문. 안이비설신), 수쿠마 루빠(sukhuma-rūpa. 미세물질), 찟따(89가지 마음), 마음부수, 열반, 빤냣띠라고 설명했었습니다. 담마누빳사나 사띠빳타나 수행에서 이 책에서는 상온과 행온을 대상이라고 했는데, 담마아람마나로 볼 때는 그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 빠사다 루빠(5문), 수쿠마 루빠(섬세한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 관념 다 들어갑니다.
담마누빳사나 대상에 '물질과 마음'이 다시 포함되는 이유
까야누빳사나(kāyānupassanā), 웨다나누빳사나(vedanānupassanā), 찟따누빳사나(cittānupassanā)로 앞에서 몸, 느낌, 생각(마음)을 대상으로 관찰하라고 말했는데 네 번째로 왜 다시 담마누빳사나에 앞에 말한 대상들을 언급하는가? 법 대상과 마음, 느낌, 몸과 겹치는데 왜 다시 이야기하는가? 수행이 깊어지면 몸을 관찰하면서도, 내 몸이 아니라 무아로, 담마, 특성으로 보이는 거죠. 나의 통증, 내 기쁨이 아니라, 그냥 법으로, 내 것이 아닌 거로 보인다는 것이죠. 부풂·꺼짐이 나의 부풂 꺼짐이 아니라 단지 무아로 보이는 거죠. 그러므로 담마누빳사나를 따로 관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다 보면 됩니다.
그래서 담마누빳사나를 관찰하면 무아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 사띠빳타나 4가지는 동시에 같이 섞어서 하는 겁니다. 원래 같이 그때그때, 어떤 때는 까야를 사띠하고, 어떤 때는 찟따를 사띠하고, 그때그때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상을 사띠하다 보면 나중에 담마누빳사나가 되는 거죠.
4가지 사띠빳타나와 4가지 바른 견해
이렇게 대상이 4가지 까야, 웨다나, 찟따, 담마 4가지이고, 그 대상을 가지고 관찰하는 이 상황도 4가지다. 여기에서 멀어져서 4가지로 나누었다. 대상이 일단 4가지이고, 4가지를 관찰함으로 인해서 4가지를 알게 된다는 거죠.
1) 까야누빳사나 : 아수바(아름답지 않다)고 알게 되고,
2) 웨다나누빳사나 : 둑카(괴롭다)라고 알게 되고,
3) 찟따누빳사나 : 무상하다고 알게 되고,
4) 담마누빳사나 : 무아라고 알게 된다. 4가지를 알게 된다.
사띠빳타나 4가지를 사띠하면 4가지를 알게 됩니다. 4가지를 따로따로 관찰해서 아는 게 아닙니다. 책에 있는 대로, 따로따로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까야를 관찰해서 아수바를 알고, 웨다나를 관찰해서 둑카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동시에 4가지를 한꺼번에, 동시에 보며 강한 것에 더 비중을 두어서 그때그때 관찰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도, 아수바가 분명하면 아수바를 알게 됩니다. 아수바(아름답지 않은 것)는 절대 행복이 될 수 없죠. 아름답지 않으니까 고통이라고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무상하니까 고통이라고 알게 됩니다. 나는 영원하고 싶은데 무상하니까 ‘이게 무아이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 거죠.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 거죠. 아름답지 않으니까 고통이고, 나는 아름답고 싶은데 아름답지 않으니까, ‘무아라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구나.’라고 이 4가지가 동시에 되지 않습니까? 하나씩 되는 게 아니라. 4가지 지혜가 같은 말인 거죠. 아수바(추함)를 누가 수카라고 하겠습니까? 누가 아닛짜(무상)을 늙음을 수카라고 할 것이며, 그리고 아닛짜(무상) 흰머리가 느는 것을 보며 내 뜻대로 된다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무상하고 싶지 않은데, 늙고 싶지 않은데, 죽고 싶지 않은데, 늙어야 되고 죽어야 되죠. 난 성공하고 싶은데, 성공하지 못하고, 키가 크고 싶은데 키가 크지 못하고, 아름답고 싶은데 아름답지 못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상이라는 것 자체가 뜻대로 되지 않는 거죠.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그래서 고통스럽고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아름답지 않다. 이게 같이 다니지 않습니까? 하나를 알면 나머지 세 가지가 같이 오는 거죠. 그러니까 사띠빳타나를 한다는 것은 4가지 대상을 동시에 관찰 하는 겁니다. 동시에 한다는 게 한 번에 하나를 하지만 나머지 3가지 대상도 계속 보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서 앞만 보고 가면 안 되지 않습니까? 운전할 때도 앞만 보면 안 되죠. 옆도 봐야 되고 뒤도 봐야 되고 다 봐야 되는 것처럼, 사띠빳타나를 할 때도 하나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만 강한 것을 비중을 두어 보라고 합니다. 불 요소만 찾아서 보고 바람 요소만 찾아서 보는 것은 사마타입니다. 까시나 수행입니다.
어쨌든 4가지를 동시에 보고 분명한 것을 사띠(명칭)하는 겁니다. 관찰은 4가지 다 보고 있고, 그리고 그중에서 분명한 것은 그때그때, 명칭하는 것도 그때그때. 그러면 4가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를 알면 나머지 3가지를 동시에 꿰뚫어 알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씩 하나씩 아는 게 아니라 한 개를 알면 나머지도 다 알게 되는 거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우 빤디따 큰스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상 4가지이고, 알게 되는 것도 4가지입니다.
삼마빠다나 = 바른 정진 4가지
그다음 삼마빠다나 할 차례입니다. 삼맙빠다나(sammappadhāna)에서 삼마는 바른, 빠다나는 노력인데, 세간의 발전을 얻기 위해서 하는 그런 정도의 노력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을 빠다나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노력을 빠다나라고 하고, 이건 주로 수행과 연관된 노력을 말할 때, 빠다나라는 단어를 씁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위리야(vīriya)도 노력이죠. 그 다음에 와야마(vāyāma)도 노력입니다. 팔정도에서 노력을 삼마위리야라고 하지 않고 삼마와야마(sammā-vāyāma)라고 하죠. 우리도 노력이라는 말도 쓰고, 정진이라는 말도 쓰고, 매진이라는 말도 쓰고 여러 가지 단어를 쓰지 않으니까? 여기 빠알리어에서도 위리야도 노력이고, 빠다나(padhāna)도 노력이고, 와야마도 노력인데, 빠다나는 정신적인 수행을 할 때 쓰는 노력을 말합니다.
‘빠다나가라(padhāna-ghara)’라고 하는데, ‘가라(ghara)’는 집이라는 뜻이고 ‘빠다나가라’라고 하면 ‘수행처, 선원’이라는 뜻입니다. 수행하는 집, 용맹정진하는 집 ‘빠다나가라’, 수행에 관련된 노력을 삼마빠다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삼마빠다나는 무엇인가? 문단 번호 31번 읽어보겠습니다.
31. Cattāro sammappadhānā uppannānaṃ
⑲4가지이다. ①삼맙빠다나들은 ②일어나는
pāpakānaṃ pahānāya vāyāmo,
③불선업 담마들을 ④제거하기 위해 ⑤노력함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nuppādāya
⑥일어나지 않은 ⑦불선업 담마들을 ⑧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vāyāmo,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uppādāya
⑨노력함 ⑩일어나지 않는 ⑪선업담마들을 ⑫일으키기 위하여
vāyāmo, uppannānaṃ kusalānaṃ bhiyyobhāvāya vāyāmo.
⑬노력함 ⑭일어난 ⑮선업담마들을 ⑯증장시키기 위해 ⑰노력함
⑱이띠 – 이렇게
나머지는 내일 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편집: 담마삐야
* 2023-07-12 인터넷
(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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