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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도과(道果)를 완성 시키는 사여의족(四如意足)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3.08.26|조회수23 목록 댓글 2

20230822 사무찌 연습 66 도과를 완성시키는 잇디빠다 4가지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230822 사무찌 연습 66 도과(道果)를 완성시키는 잇디빠다 4가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소멸하신 분, 스스로 완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https://cafe.naver.com/dhammadipakorea/546

 

연습 문제 66

66-9 : 아직 일어나지 않는 선업은 무엇을 말합니까?

아직 일어나지 선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수다원의 도와 과, 윤회하는 동안 한 번도 지어 본 적이 없는 선업, 지혜죠. 선업(꾸살라)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업이란 뭐죠? 선업은 뭐가 선업입니까? 선업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일어나지 않은 선업(아눕빤나나 꾸살라)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세 번째 노력이죠. 선업은 뭐가 선업일까요? 고따마 보살이 출가하죠. 궁궐에서 나와서 출가해서 고행하죠. 출가한 이유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게 두려워서도 출가했고, 뭘 믿어서 출가한 것이 아니랍니다. 싯닷타 왕자가 누굴 믿어서 출가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스승을 믿고 산신을 믿고 아트만을 믿어서 출가한 게 아니죠. 늙고 병들고 죽는 게 무서워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출가했고, 출가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이 선(kusala)인지 알고 싶어서 출가했다고 대답합니다. 싯닷타 왕자가 바라밀을 다 쌓고 천상계에서 편히 지내다가 인간계로 내려오셨는데 선업이 뭔지 모르는 거죠. 축복경(망갈라 숫따. 吉祥經. 행복경)의 내용도 선업이 뭐냐? 축복이 뭐냐? 행복이 뭐지? 이거죠. 선업을 지으면 축복이 되는 거죠. 복을 짓는 게 선업을 짓는 거죠.(선업은 행복의 큰 원인이다) 그렇죠. 그 대답이 망갈라 숫따죠. 축복경이라고도 하고 행복경이라고도 하는데, 행복이 뭔지 몰라서 선업의 결과로 천상계에 태어난 천신들이 찾아 헤매죠. 한참을 여기저기 가서 묻고 듣고 이게 축복인가? 축복은 무엇인가? “선업이 뭔가?”축복이 뭔가?”는 같은 말이죠. “행복이 뭔가?”도 같은 말입니다.

망갈라 숫따를 언제 한번 강의해야겠네요. 미얀마에서는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망갈라 숫따를 가르칩니다. 어려서부터 가르칩니다. 미얀마 학교에서는 어리석은 이를 멀리하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라.’ 어려서부터 시작하죠. 나쁜 사람 멀리하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하라. 이게 첫 번째 축복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축복경.

 

일으키지 않은 선업이라고 할 때 선업이 뭔가, 축복이 뭔가? 이거랑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선업이 뭔지 알아야 일으키지 않은 선업을 일으키지. 축복이 되는 게 선업이겠죠. 나한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선업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선업은 나한테 불행을 가져오지 않아야 되죠. 나에게 근심과 걱정과 통곡과 이런 것들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선업 아닙니까?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 나를 울고 근심하고 힘들게 만들지 않는 것, 이게 선업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일으키지 않은 선업을 일으키는 것,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게 선업이겠죠. 그게 행복 아니겠습니까? 고통을 부르지 않는 게 행복이죠.

 

즐겁게 하는 게 행복입니까? 즐거운데 매우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게 과연 행복일까요? 행복은 뭐죠? 선업(꾸살라)은 뭔가? 고통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게 선업 아니겠습니까? 고통에 빠지지 않게, 울고 통곡하고 비탄에 빠지고 걱정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선업이겠죠.

그렇다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행복을 찾는다면 나에게 고통이 함께 오는 것을 피해야 하지 않습니까? 고통이 없으면 행복이 있는 거죠. 지혜가 있으면 고통이 없겠죠. 지혜가 있는 순간에는 탐진치가 없다는 뜻이니까, 지혜가 항상 하면, 지혜를 얻으면 고통이 없겠죠. 지혜가 꾸살라겠죠.

일어나지 않은 선업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 지혜가 없어서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데로 데리고 가지 않습니까? 내가 의 주인입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내는 의도가 입니다. 내 업이라는 게 나의 재산이고 나의 친척이고 나의 친구이고 나의 울타리인데이건 내가 내는 의도입니다. 근데 내 의도는 내가 어리석어서 안 좋은 의도를 내서 나를 고통스러운 곳으로 데리고 가는 거죠. 내가 지혜로우면 나를 고통으로 데리고 가지 않겠죠.

 

선업이라는 것은 지혜롭게 되는 것, 지혜를 얻는 것, 이게 선업이죠. 그래야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니까. 이때까지 윤회에서 한 번도 얻어보지 못한 수다원의 도의 지혜이죠. 수다원의 도의 지혜, 과의 지혜도 아니고, 도의 지혜, 이것을 얻는 것이 일어나지 않은 선업을 일으키는 것(아눕빤나낭 꾸살라)입니다. 나를 내가 고통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멈춰 세우는 지혜.

 

우리가 약을 먹을 때도 부작용이 있는 약은 먹으면 안 됩니다. 요즘 서양의학에서는 부작용, 암이 무서운 게 아니라 항암 치료가 무섭다고 하죠. 부작용이 있어도 권하죠. 부작용이 있는 약은 딱 끊어야 합니다.

 

감각의 즐거움은 행복도 있는데 고통도 그 못지 않게 지불해야 합니다. 아비담마에서는 오문으로 들어오는 즐거움을 찾음은 선업이 아니라 탐욕이다.’라고 합니다. 물질적 즐거움을 조심해야 됩니다.

수다원의 도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얻은 수다원의 도는 하나 얻었으면 23개의 더 많은 윗단계의 도를 얻도록 하는 것, 더 많이 더 크게 증장시키는 것이 선업이다. 네 번째 마지막 선업입니다. 선업의 완성, 바른 노력의 완성입니다. 바른 노력의 완성은 아라한의 과를 얻는 것입니다.

 

66-12. 무엇을 잇디빠다(iddhipāda. 如意足. 四如意足)라고 합니까?

잇디빠다(iddhipāda), iddhi완성시키다’, pāda기초. 라는 뜻입니다. (기초)이 튼튼해야지 멀리 갈 수 있죠. iddhipāda완성시키는 기초입니다. 선정과 도과를 완성시키는 기초입니다. 선정을 얻게 하고 도과를 얻게 하는 기초, 이게 있어야 선정과 도과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거죠.

 

잇디빠다 네 가지(사여의족)는 찬다(서원. 열의) 위리야(노력) 찟따(마음) 위망사(지혜)입니다. 미얀마 속담에 서원(찬다)과 위리야(노력)가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서원이 있고 노력이 따라주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그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번 생에 안 되면 다음 생에 이룹니다. 붓다도 한 생에 완성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생을 서원을 가지고, 그 서원에 힘을 추가하여 노력해서 붓다가 되신 거죠. 한 생에 되지 않았습니다. 서원이 있고 그에 걸맞는 노력이 있으면 완성됩니다. 다 됩니다. 무엇을 서원으로 하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무엇을 향해 서원을 세울 건지 아는 게 지혜죠. 일단 서원부터가 지혜로운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한 생만 보는 건 너무 답답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고 세계사를 배우면, ‘한 생만 보고 살아선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한 생만 보고 살아선 안 된다.’ 이런 걸 가르치려고 역사와 세계사 과목이 있는 거 아닌가요? 고전을 읽는 거 아닌가요?

 

암튼 서원을 잘 세워야 합니다. 모든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도 서원을 세우고 바라밀을 채우기 시작하셨죠. 지혜로운 서원을 세우고 그것에 맞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타고나는 것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후손에게 긴 시대를 볼 수 있는 걸 많이 들려줘야 할 것입니다. 타고나는 것도 있습니다. 분명히. 어쨌든 서원과 노력이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이번 생은 아니더라도 다음 생에라도 이루어집니다. 이번 생에 안 된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되겠죠. 무엇이 되느냐와 언제 되느냐의 차이죠.

 

엉뚱한 것에 서원을 세우면 안 됩니다. 그게 누굽니까? 한때의 가난하게 태어난 보살이 용왕이 되고 싶다.’는 서원을 품고 열심히 지계 공덕을 쌓아서 그다음 생에 용왕이 됐죠. 보살도 이렇게 어리석을 때가 있었는데, 일반 범부들이야 말할 필요 없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았을 때 현명한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서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서원이 있고 노력하면, 노력하면 언젠가는 됩니다. 거기에다가 마음과 위망사(지혜)까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선정과 도와 과까지 이루어집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서도 잊어버리지 않게 확실하게 새기십시오. 분명 다음 생이 있으니까요.

 

되풀이하면 잇디빠다는 선정과 도과를 얻는 기초라는 뜻입니다. 그 네 가지인 찬다, 위리야, 찟따, 위망사가 아디빠띠의 네 가지와 똑같습니다. 근데 아디빠띠는 선업만이 아니라 불선업도 이루게 합니다. 잇디빠다는 좋은 거, 그것도 수행에 관한 좋은 것들과 관련된 것만 말합니다. 마음을 닦는 것에 대해서 좋은 것을 성취하게 합니다.

세간선정을 얻기 위해서도, 도과가 아니라 그냥 세간 선정, 윤회를 벗어날 수 없는 범천계에서 태어나는 세간 선정을 얻기 위해서도 전생에 세운 서원이 있어야 이번 생애에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도과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당연히 여러 생을 바라밀을 쌓아서 얻는 겁니다. 이번 생에 한다고 될 일이 아닌 거죠. 세상의 큰 부자들은 재물로 지은 욕계 선업의 결과이지 않습니까? 이번 생에 열심히 노력한다고 모두 큰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공자도 이렇게 얘기했죠. “내가 노력해서 부자가 될 거였으면 마부가 돼서라도 내가 부자가 됐을 것이다.” 세간의 재물 부자가 되는 것도 업에 있어야 되는 거고, 도과를 얻는 것도 여러 생에 걸친 바라밀이 있어야 되는 거죠.

 

어제 얘기했던 이야기, 밥이 되는 시간과 노력은 짧고 힘들지 않지만, 쌀이 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더 길고 무겁죠. 쌀이 밥이 되는 것은 가볍고 잠시입니다. 붓다도 바라밀을 채우는 기간이 훨씬 더 길었습니다. 그다음에 마지막 생에 태어나서 붓다가 되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렸습니다. 6년밖에 안 걸렸죠. 그 앞에 쌀이 되기까지 땀흘린 시간이 훨씬 더 길었죠. 어쨌든 내가 꼭 붓다가 되겠다.” 이렇게 서원이 있었고, 그리고 그 노력을 해서 붓다가 되신 거죠. 확실한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세간 선정을 얻기 위해서도 전생에 세운 서원이 있어야 하고, 도과를 얻기 위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긴 시간을 두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거죠. 안 잊어버리게 노력하십시오.

 

도와 과를 성취하는 조건 4가지, 수행을 완성 시키는 쪽의 네 가지입니다. 찬다, 위리야, 찟따(마음가짐. 계속 그 생각을 하는 것). 여기서 찟따(마음)라고 하는데 마음은 서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상상하고 있는 거죠. 지혜를 얻고 싶은데 그 지혜는 어떤 것일까? 이렇게 자기가 모르는 것을 계속 찾고 있는 거죠. 서원(방향)을 향해서, 그 방향을 향해서, 계속 헤엄쳐가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게 서원인 거죠. 어딘지 모르지만 내가 얻고 싶다. 이 마음으로 상상하고 있는 게 서원이고, 가도록 노력하는 것은 위리야이고, 준비하겠죠,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노를 저어 가는 것, 위리야이고, 찟따는 그것을 이룬 자와나(速行)이죠.

 

우빠사마눗사띠 같은 경우는 열반에 대한 상기입니다. 열반을 내가 얻지 못했지만, 열반에 대한 상기, 열반은 좋은 거라고 이야기를 들었지 않습니까? 상상으로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거죠. 다른 생각하지 않고 열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거, 어디인지도 모르고, 가보지 못했으나 들어 보기는 한 이상향을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는 것, 이게 열반에 대한 상기입니다. 근접삼매까지 얻을 수 있는 수행이 열반에 대해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 상상은 열반을 얻은 상태는 아닌 거죠. 하지만 열반에 대해 상상하고 있는 겁니다.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그걸 갖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서원(찬다)이고, 그걸 얻도록 노력하는 것,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은 위빳사나 수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고, 부수적인 노력은 위빳사나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다른 제반 조건, 도움을 주는 것, 예를 들면, 법문을 듣는 것, 혹은 수행자를 돕는 봉사나 보시를 하는 것이죠. 부수적인 노력을 해야 적극적인 노력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를 도와야 나의 수행도 도움을 받겠죠. 이게 위리야이고, 열반을 얻었으면 찟따가 되는 거죠. 열반이나 도과를 본 사람은 그 마음을 일으키는 게 얻기 전처럼 막연하지 않습니다.

 

열반을 보는 자와나가 생기고 있는 거고 (인식과정이 생기고 있는 거고) 그걸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것,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전략과 전술을 바꾸는 (궁리하는) 게 위망사입니다. 이 길로 안 되면 저 길로도 가보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는 것이 위망사입니다. 도과와 선정을 얻게 해 주는 기초, 잇디빠다 네 가지가 있으면 성공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두 사-두 사-

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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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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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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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위말라 | 작성시간 23.08.2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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