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승의 가르침』
14. 계 경
상윳따니까야(相應部)의 무더기(蘊)에 대한 장(Khandha Vagga Saṁyutta)에 있는 ‘계 경(戒經. S22:122)’에는 위빠사나 수행방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경은 수행의 절차를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수행하는 여러분들에게 아주 적합합니다. 여기서는 대장로 꼿티까(Koṭṭhika) 존자가 질문하고 대장로 사리뿟따(Sāriputta) 존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전 결집(기록)을 할 때 이 경은 서문부터 시작하여 가장 완벽한 형태로 편집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계 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꼿티까 존자가 베나레스에 있는 이시빠따나 미가다와나 숲의 사원에 같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꼿티까 존자는 과정(果定) 수행을 한 다음 사리뿟따 존자를 찾아갔습니다. 두 대장로 간에 서로 안부를 교환한 다음 꼿티까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명한 두 대장로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가장 박식하고 세존의 상수 제자입니다. 꼿티까 존자는 가장 저명한 분석적인 지식[分析智]의 대가입니다.
분석지는 다음 네 가지[四無碍解]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의미를 통달한 분석지[義無碍解]는 세존의 모든 가르침의 의미, 목적, 결과와 기능적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법에 대한 분석지[法無碍解]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인과법, 연기법), 고귀한 팔정도, 설해진 법, 법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있는 모든 지식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언어에 대한 분석지[詞無碍解]는 실재를 표현하는 언어에 관한 지식으로서 언어로 표현하는 데 걸림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4) 언어 구사력에 대한 분석지[辯無碍解]는 임기응변에 능한 분석지인데, 법의 의미에 대해 미사여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세존을 제외한 모든 아라한들 중에 네 가지 분석지[사무애해]에 관한 한 꼿티까 존자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두 장로는 모두 여덟 가지 성인위(네 가지 출세간의 도와 네 가지 출세간의 과)를 증득한 성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전에 수록된 질문과 대답은 모든 관점에서 수행에 대해 자세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선례와 참고 사항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꼿티까 존자가 물었습니다. “고귀한 계를 완벽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은 무슨 종류의 수행을 해야 합니까?”
여기서 중요한 말은 ‘고귀한 계를 완벽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단순히 “보통 사람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계를 완전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수행하기 전에 법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도 필요하다는 것이 ‘계 경’에 나와 있습니다. 수행하는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법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무엇일까요?
마하시 큰스님에 의하면, 조건에 따라 모든 몸과 마음의 행(상카라)들이 무상하고 고통이며 무아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위빠사나 수행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했습니다. “고귀한 계를 완벽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오취온(五取蘊)을 주시해야 합니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오취온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을 말합니다. 이 오취온 주시는 현재 여러분들이 염처경에 의거하여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왼발, 오른발’을 주시할 때, 발의 움직임은 색온(물질의 무더기)이며, 좋거나 싫어하는 것은 수온(느낌의 무더기)입니다. 발걸음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인식의 무더기)이며, 걸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정신적 형성의 무더기)입니다. 걷는 것을 아는 것은 식온(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래서 오취온(몸과 마음의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입니다.
요약하면, 걷는 것은 몸(물질)이고 발걸음을 주시하는 것은 마음이며, 존재하는 것은 몸과 마음뿐입니다. 그것을 상세하게 나누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취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마음과 물질의 진정한 본성을 주시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내가 가고 있다, 사람이 가고 있다, 여자가 가고 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이런 신념이 자아라는 실체가 있다고 잘못된 견해(유신견)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집착(upādāna)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배의 ‘부풂, 꺼짐’을 주시할 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배가 부풀고 꺼지는 것은 색온입니다. 좋고 싫은 느낌은 수온이며, 부풂과 꺼짐을 인식하는 것은 상온이며, 부풀고 꺼지는 것을 주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온입니다. 부풀고 꺼짐을 아는 것은 식온입니다.
형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과 형상은 색온이며, 형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은 수온입니다. 인식하는 것은 상온이며, 노력하는 것은 행온이며, 아는 것은 식온입니다. 이 모든 주시의 대상이 오취온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오취온은 마음과 물질 두 가지로 구성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취온의 진정한 본성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나, 사람, 여자’ 등을 자아라는 실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집착에는 1)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 2) 견해에 대한 집착, 3) 계율과 의례일 뿐인 것에 대한 집착, 4) 유신견의 집착, 이렇게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의 대답은 ‘오취온을 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취온을 주시하면 무엇을 알 것이라고 기대합니까?” 대답은 광범위하지만, 요약해서 결론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상, 고, 무아를 알 수 있을 때까지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시해서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다음 질문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했습니다.
“나의 벗 꼿티까 존자여, 고귀한 계를 완전히 지키고 오취온을 주시하면 수행자는 마음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는 지혜, 언제나 새로운 현상이 신속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주시해서,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이 소멸하는 것을 증득할 때까지의 위빠사나 지혜를 차례차례 획득하고, 마지막에는 수다원도와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완전히 성숙한 수다원 성자가 됩니다.”
최종적으로 수다원도의 지혜를 얻은 다음에는 ‘서원을 세움’에 의해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지한 서원을 세울 때의 내용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신적 물질적 현상이 소멸된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겠다.” 오랫동안이라는 것은 ‘30분, 45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동안 계속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런 서원이 성공적으로 달성된 다음에는 검증해야 할 두 번째 서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2)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모든 현상이 소멸하는 상태에 이르겠다.” 이 서원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오랫동안 주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빠른 시간 내에 ‘모든 현상의 소멸’은 쉽게 달성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검증해야 할 세 번째 서원으로 넘어갑니다.
(3) “모든 현상의 소멸에 매우 자주 도달하겠다.” 어떤 수행자들은 정신적 물질적 현상의 소멸에 성공적으로 매우 자주 도달합니다. 다음으로 검증해야 할 네 번째 서원으로 넘어갑니다.
(4) “이번 좌선에 소멸에 도달하겠다.” 또는 “다음 좌선에는 소멸에 도달하지 않겠다.” 이 서원이 이루어지면 검증해야 할 다섯 번째 서원으로 넘어갑니다.
(5) “정신적 물질적 현상의 소멸을 달성한 다음에 의식을 그때의 상황에 따라 오후 8시에 혹은 오전 10시에 되찾겠다, 혹은 30분 만에 의식을 되찾겠다.”
어떤 수행자들은 진지한 서원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시도하여야 합니다. 검증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확실하게 성취되면, 다음 단계는 상위 수준을 향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또다시 묻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수다원도를 획득한 사람은 사다함도[一來者道]를 성취하기 위하여 무엇을 주시해야 합니까?”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했습니다.
“사다함도를 위해서 노력하려는 수다원도를 경험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오취온을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높은 수준의 달성을 위한 절차는 이렇습니다. 수행하는 여러분들은 진지하게 “나는 이전에 성취한 모든 법을 버리고, 내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보다 높은 법을 성취하겠다.”라고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는 같은 방법으로 같은 수행을 되풀이합니다.
그런 수행자는 마음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 등을 구하는 초보 단계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보통 그들은 모든 새로운 현상이 신속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생멸의 지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 소멸의 지혜, 두려움에 대한 지혜, 고난의 지혜, 혐오감에 대한 지혜, 해탈을 원하는 지혜, 다시 살펴보는 지혜, 현상에 대한 평온의 지혜, 적응의 지혜 등을 거쳐서 드디어는 사다함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취한 다음,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소멸되고, 빠른 시간 내에 소멸되고, 아주 자주 소멸되고, 필요한 정해진 시간에 의식을 되찾기를 바라는 진지한 서원, 즉 결심을 세움에 의한 모든 검증 과정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꼿티까 존자는 다시 사리뿟따 존자에게 사다함을 성취한 사람이 아나함도와 과의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아나함도와 과의 지혜를 얻기 바라는 사다함을 성취한 사람은 같은 오취온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다함을 성취한 사람은 대개 생멸의 지혜로부터 시작해서 연속적으로 지혜의 단계들을 거쳐 머지않아 아나함도와 아나함과의 지혜를 획득하게 됩니다.
아나함 도과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더 이상의 감각적 욕망과 악의(惡意)와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나함을 성취한 사람은 가정생활을 즐기지 않게 되어 8계(八戒)를 영원히 지킬 것입니다. 그에게는 적극적인 분노나 소극적인 분노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불안도 없고 비탄도 없습니다.
아나함도의 지혜나 아나함과의 지혜의 성취도 진지한 서원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소멸되고, 빠른 시간 내에 소멸되고, 아주 자주 소멸되고, 필요한 정해진 시간에 의식을 되찾기를 바라는 진지한 서원, 즉 결심이 모든 검증이 성공할 때까지 행해집니다.
꼿티까 존자는 또다시 아나함을 성취한 사람이 보다 높은 상태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아라한도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아나함을 성취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오취온을 주시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나함을 성취한 사람이 마찬가지로 오취온을 주시한다면 위빠사나 지혜가 차례로 발전되어 머지않아 아라한위를 획득할 것입니다. 아나함을 성취한 사람이 오취온을 주시하기 시작할 때, 그도 또한 생멸의 지혜로 돌아가서 위빠사나 지혜의 각 단계를 거쳐 또다시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의 소멸에 이르고 아라한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라한도의 지혜와 과(果)의 지혜를 성취해도 오랫동안 소멸, 빠른 시간 내의 소멸, 대단히 자주 소멸, 정해진 시간에 다시 평상시의 의식으로 되돌아오는 것 등에 대한 서원을 세워서, 모든 검증이 성공될 때까지 검증하는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검증해서 성취가 확인된 다음에 아라한도를 획득한 사람(성자의 도를 증득한 사람)이 계속적으로 수행할 때 아라한과에 도달하여 그것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출세간의 과실[果]에 도달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으려면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같은 원리가 다른 세 가지 출세간도를 성취한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수다원 도를 증득한 사람이 규칙적인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수다원과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고 수다원과를 즐기지도 못합니다.
사다함도를 증득한 사람이 규칙적인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사다함과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고 사다함과를 즐기지 못합니다. 아나함도를 증득한 사람이 규칙적인 수행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아나함과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고 아나함과를 즐기지 못합니다. 개인의 축적된 성향을 극복하고 완전히 없애려면 지속적이고 끈기 있게 수행을 해야 합니다.
꼿티까 존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라한을 성취한 사람은 어떤 법을 주시해야 합니까?”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했습니다.
“꼿티까 존자여, 아라한을 획득한 사람도 오온을 주시해야 합니다.”
아라한을 획득한 사람은 오온을 주시함으로써 더 높은 경지, 즉 벽지불(스승 없이 깨달은 분)이나 정등각자(완벽하게 깨달은 붓다)를 획득할 수는 없지만, 그는 현 생애 동안 지복(최고의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가 지속적이고 끈기 있게 오온을 주시하는 수행을 함으로써 그가 원할 때는 언제나 출세간의 과실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축적된 성향을 완벽하게 뿌리 뽑았으므로 모든 세상사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며,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계를 지키고 법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오취온을 주시하는 수행을 함으로써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며,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수행함으로써 차례로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를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오원탁 번역, “큰 스승의 가르침”, 행복한 숲,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