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흐르고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위빠사나 수행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가짐이다.
지나치게 집중해서 알아차리지 말고, 억제해서 알아차리지 말고, 억지로 알아차리지 말고, 구속해서 알아차리지 말며, 일어나도록 하지 말고, 없어지도록 하지 말라. 일어나는 대로, 없어지는 대로, 잊지 말고 알고 있어야 한다.”
명상의 목적은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한 대상에 모으기도 하고,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도 살핀다. 마음이 무엇을 보는가, 듣는가, 느끼는가, 생각하는가 하는 것들을 살핀다. 풍경, 소리, 감촉, 몸의 감각, 느낌…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음의 대상이다. 이 대상들이 마음에 알려지는 바로 그때 마음의 상태를 살핀다.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는 것을 사띠(Sati, 알아차림, 염念)라고 하는데, 바로 이 사띠가 명상의 키워드다. 사띠에 대해 이해해야 비로소 수행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다. 쉐우민의 명상 수행을 그래서 사띠빠따나(satipatthana, 알아차림 확립)라고 부른다.
명상을 하는 방식은 이렇다.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에 들어오는 대상을 알아차려라. 들어오는 대로, 알아지는 대로, 대상에 대해 알고, 또 알고… 아는 마음을 알고… 아는 마음이 아는 마음을 알고… 사띠의 힘을 키워라. 사띠의 힘이 커지면 힘들이지 않아도 사띠가 스스로 일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음에 대해서 알게 되고 지혜가 자라나리라. 지혜가 마음 깊숙이 도사린 어리석음과 탐욕과 분노를 몰아내 주리라. 마치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위빠사나’는 통찰 명상이다. 마음의 작용에 대한 통찰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어원으로 본 의미는 ‘나누어 보다’인데, 마음과 대상을 나눠서 본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일상의 정신작용은 대상에 마음이 들러붙는 양상인데, 마음이 대상에 들러붙지 않고 ‘마음은 마음, 대상은 대상’으로 보는 작용이 바로 사띠의 작용이다. 그래서 ‘위빠사나 한다’는 말은 곧 ‘사띠가 작용한다’는 말이 된다.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지만 사띠가 작용할 때는 대상과 분리돼 스스로를 드러낸다. 위빠사나 수행은 곧 사띠를 정립하는 수행이며, 사띠의 힘을 키워 마음의 정체를 드러내는 수행이다.
앉아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수행이라면, 일상생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좌선과 경행은 일상의 수행을 위한 밑바탕이 돼야 한다.”
쉐우민 명상센터는 미얀마의 센터들 중 가장 자유롭고 지내기 좋은 곳이다. 센터를 세운 꼬살라 사야도는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들 중 가장 연장이다. 현재는 꼬살라 사야도의 법제자 떼자니아 사야도가 이끌고 있다. 좌선도 경행도 비교적 자유롭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좌선 시에도 졸리거나 몸이 견디지 못하면 일어나 경행할 것을 권장한다. 경행도 평소 걸음걸이처럼 자연스럽게 하라고 가르친다.
쉐우민은 되도록 많은 대상에 사띠를 두고,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에도 함께 사띠를 둘 것을 강조한다. 이 점이 쉐우민 가르침의 고유하고 특징적인 부분이다.
수행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아는 일은 마음이 하는 유일한 일이다. 알아차림 수행은 그래서 마음에게 아는 일을 시키는 일이다. 알아차림이 시키는 일을 ‘마음을 챙긴다’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Be Mindful’로 표현한다. 이 ‘알아차림’을 어떻게 유지해 가느냐가 수행의 노하우다. 쉐우민 센터에서는 수행자들에게 늘 강조한다. “마음에게 일을 시키십시오”라고.
마음이 하는 일, 알아차림은 수행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알아차림, 그것을 사띠(Sati)라고 한다. 사띠는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싸띠 두기’와 ‘싸띠 잇기’는 수행에 대한 쉐우민의 기본 가르침이다. 사람의 마음, 특히 범부의 마음에서는 쓸데없는 생각, 나쁜 의도, 탐욕, 분노 등이 쉴 새 없이 일어난다. 그런 것들을 통틀어 ‘번뇌’라고 부른다.
번뇌는 마음이 착용하는 다양한 색깔의 안경 같은 것이다. 마음 상태에 따라 대상이 달리보이고 달리 들린다. 있는 그대로 못 보고 못 듣는다. 있는 그대로 못 보는 삶을 보통 ‘꿈속을 헤매는 삶’으로 표현한다. 번뇌 속에 사는 중생은 그래서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세상을 산다. 수행의 목적은 뒤집어진 삶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다. 번뇌는 사띠를 통해 극복된다. 그래서 사띠가 수행의 첫 단추가 되는 건 당연하다.
마음에게 일을 시키는 일 즉 사띠 두는 일은 수행의 시작이다. ‘싸띠 두기’가 수행의 알파라면 ‘싸띠 잇기’는 수행의 오메가다. 사띠는 그래서 수행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사띠가 이어지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 이것을 ‘사띠의 힘이 커진다’, ‘사띠가 자란다’, ‘사띠에 가속도가 붙는다’ 등으로 표현한다. ‘마음속에 힘이 더해진다’ 함은 체험과 이해가 생긴다는 뜻이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마음의 고요함을 사마디라고 하고, 있는 그대로 봄을 지혜라고 부른다. 요약하면 사띠가 이어지면 마음의 힘이 생기는데, 바로 사마디와 지혜가 그것이다. 사띠의 이어짐이 원인이 되어 사마디와 지혜가 결과로 생긴다. 수행은 이 원인과 결과를 꾸준히 이어 가는 것이다.
저자 소개 – 김용관
방황하던 나이 스물한 살, 처음 붓다의 가르침과 참선수행에 대해 들었다. 서른 즈음까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도를 물었으나 정착하지 못했다.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마치고 KBS 기자가 되었으나 군부정권에 의해 해직되었다. 철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들어가 심리철학과 중국선불교를 연구했다. 「臨濟義玄의 ‘人’ 思想 硏究」로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KBS에 복직해 주로 문화와 국제 분야에서 방송기자로 일했고, 베이징 특파원, 편집주간, 제주총국장, 해설위원장을 지냈다.
바쁜 삶을 살면서 수행과 멀어졌으나 수행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40대에 태연당 세웅 큰스님을 만나 유발상좌가 되었다. 퇴직 후 동양대학교 교수로 일하게 된 이후 수행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10년 전쯤 위빠사나 쉐우민 수행법과 만났고, 미얀마 쉐우민 센터에 여섯 차례 다녀왔다.
차 례
들어가며|미얀마 첫날의 기억
제1부 미얀마 쉐우민에서 명상과 만나다
아 유 헝그리?
좌선과 경행의 쳇바퀴
수행의 개괄적 원리
버릴 것 하나, 지닐 것 하나
사야도
불심은 이렇게 자란다
수행자들
탁발
어머니와 아들
주변 치우기와 내면 다지기
단순한 일상의 맛
망상은 즐겁다
비승비속
성스러운 괴로움
그래도 먹는 건 즐겁다
가는 길이 같으면 모두가 도반
소년 비구가 몰고 온 상념
방랑과 출가
캣츠
청소의 중독성
공덕의 시간들
웰컴 떼자니아
사야도 명답 베스트 5
나는 왜 미얀마까지 왔을까
저 너머엔 무엇이 있길래
나의 스승 태연당 큰스님
게으르지 말고 꾸준히 길을 가라
제2부 도대체 마음이란
상식의 늪에서 ‘마음’ 건지기
마음은 불멸인가
유물론의 유혹
렌즈 갈던 철학자
스피노자의 옷을 입은 현대 철학자들
불교는 유물론도, 유심론도 아니다
불교는 마음을 이렇게 본다
제3부 수행의 로드맵
삶은 왜 괴로운가
인생의 비밀, ‘열두 개의 고리’
누가 윤회하는가
어리석음과 탐욕
화는 들불처럼 번진다
삼계, 중생의 세계
사마디禪定
‘신통’에 관심 있으세요
깨달음으로 가는 도움길
사띠, 수행의 키워드
호흡과 수행
수념처와 심념처
거문고 줄 고르듯
깨달음으로 이끄는 마음 1
깨달음으로 이끄는 마음 2
여덟 겹의 길
너희 자신의 섬이 되어라
제4부 쉐우민의 가르침 108
[출처][신간] 김용관, 『쉐우민 위빠사나』, 2020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