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래희망은 ‘현직 할머니 편집자’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188
-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 호수 724
- 시사in 2021.08.06 06:43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연봉을 모은 뒤 도망쳐 새로 시작해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첫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15년을 일하고 있다.[책 만드는 사람들]
ⓒ시사IN 윤무영
〈책이라는 선물〉은 일본 출판계 종사자들이 ‘자신의 일’에 관해 쓴 책이다. 기획, 편집, 디자인, 교정교열, 인쇄, 제본, 유통, 영업, 서점, 비평 등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선물 같은 한 권의 책’이 물성을 갖기까지, 9개 공정의 국내 출판계 종사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전한다. 책 만드는 사람들, 그 첫 번째는 편집자다.
천생 편집자처럼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사실 내 꿈은 편집자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교까지 줄곧 문예반 혹은 문학동아리에 들었던 나의 꿈은 일편단심 소설가였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이 되도록 등단하지 못했고, 작가로서 딱히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형벌’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연봉을 모은 뒤에 도망쳐 새로 시작해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첫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15년을 일하고 있다.
놀랍게도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작가의 꿈이 말끔히 잊혔다. 그토록 소중히 품어온 평생의 꿈이 돌연 하찮게 느껴졌다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출근하면 1층부터 4층까지 부서별로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책의 한 귀퉁이를 붙들고서 저마다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실로 ‘전쟁’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전쟁, 미지의 독자를 사로잡기 위한 한판의 전쟁.
미술부에 가면 디자이너들이 책 한 권당 열 개 이상의 표지 시안을 뽑으며, 책에 다양한 표정을 입히고 있었다. 내가 무심히 넘겨왔던 책장 끄트머리 쪽 번호조차 그들의 철저한 전략과 구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편집부에서는 수많은 기획편집자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교정지탑과 책 더미 사이에서 나지막하게, 또는 격렬하게 뭔가를 논의하고 조율하며 통화하고 있었다. 빈 회의실마다 머리를 모은 저자와 편집자들이 미팅하면서 웃고 대화하고 싸우고, 다시 의기투합했다. 마케팅부는 더 난리통이었다. 온갖 굿즈가 창고처럼 쌓인 가운데, 기발한 이벤트를 적어 넣은 마케팅 기획안이 휙휙 날아다녔고, 조금이라도 판매가 움직이는 책을 발견하면 쉴 새 없이 땔감을 넣느라 다들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쇄소에 갔더니 빠듯한 일정과 뜨거운 열기 속에서 쉼 없이 인쇄기를 돌리는 기장님들이 있었다. 아무리 냉방을 해봐도 책 만드는 사람들의 뜨거운 집념과 열망이 집결된 책을 인쇄하는 이곳은 결코 시원하고 한갓질 수 없는 듯했다. 기장님의 옆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기장님의 두꺼운 손이 익숙하게 그 땀방울을 공중에서 휙 훔쳤다.
아직은 전화를 받아서 선배들에게 연결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나는 책 만드는 사람들의 뒷모습과 진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을 지배했던 책이라는 세계, 그 판권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돌연 툭 튀어나와 ‘너, 이런 건 몰랐지?’ 하고 씩 웃으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표지에 제목과 저자 이름만 쓰여 있길래 당연히 작가와 원고가 전부인 줄 알았던 책, 그 뒤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니. 이 ‘작은 네모’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영혼을 싣고 시간을 바치고 자존심을 걸고 있었다니. 나는 책과 관계된 그 모든 사람을 알고 싶었고, 닮고 싶었고, 그들 곁에 머물고 싶어졌다.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의 반복
사실 출판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서 편집자의 이미지란 옛날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후남이’가 일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편집장과 저자들이 주는 말도 안 되는 스트레스와 고초 속에서 빨간펜을 쥐고 잔기침을 하며 일하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모습. 하지만 오늘날의 편집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편집자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총괄 디렉터이다. 책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직접 만나고 소통하고 결정하고 추진하는 책임자이다. 지금 이 일이 말도 안 되는 오만 가지 사유 가운데서, 기어이 말이 되고 책이 되게 하는 단 하나의 근거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편집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단독자나 유일무이한 창작자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흩뿌려져 있던 그 모든 에너지와 단독자들을 연결하고 소통시켜, 끝내 전에 없었던 새로움을 이루는 사람이다.
나는 책을 만들면서 항상 두 명의 예술가와 일한다고 생각해왔다. 한 명은 당연히 작가이고, 다른 한 예술가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원고 상태의 활자와 도판을 읽고, 그것을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각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해 수십 개의 아이디어와 시안을 떠올리는 집요한 탐미자이다. 나는 그들 곁에 붙어 앉아서 이 책이 얼마나 새롭고 특별한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띄길 바라는지 조르고 설득하고 감탄한다.
마케터는 나의 분신이자 내가 가장 설득해내고 싶은 ‘첫 번째 독자’이다. 그들은 내가 최종적으로 연출해낸 책이라는 상품을 가장 먼저 받아보고, 그 안의 재미와 감동을 연료로 시장과 독자들에게 날아가는 전사다. 하지만 혹독하고 만만찮은 시장과 독자의 생리를 내게 뼈아픈 ‘숫자’와 그래프로 전하는 냉철한 수학자이기도 하다. 나는 마케터에게 무조건 책을 많이 팔아달라고 요구하는 떼쟁이가 아니라, 그들이 신명나고 자랑스럽게 시장에서 놀 수 있도록 단단한 근거를 건축해내는 편집자이고 싶다.
이렇게 맡은 업무도, 책을 대하는 결도 저마다 다른 수많은 스태프와 저자 사이에서 일하다 보니, 내가 일하면서 가장 자주 반복하는 말은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이다. 책에 일어나는 악재와 사고와 변수는 대부분 편집자의 책임으로 돌아오기에 나는 항상 ‘죄송’한 사람이다. 반면 책이 잘되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작가와 여러 스태프의 공이 합쳐진 결과이므로, 나는 오늘도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나는 내 일을 무척 좋아하지만, 한때는 힘이 부쳐 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것은 ‘죄송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업무일지에 ‘오늘 한 일’이 아니라 ‘오늘 죄송한 사람’ ‘내일 죄송할 사람’의 명단을 적어야만 할 것 같던 막막한 날, 핸드폰으로 걸려온 업무전화를 받으면서도 허리가 새우처럼 굽어 곁에 있던 가족들이 나를 안쓰러워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끝내 편집자로 살아낸다면, 새로운 장래희망이 된 ‘현직 할머니 편집자’로 끝까지 버텨낸다면, 그것은 책의 세계에 그 모든 ‘죄송함’과 힘겨움을 잊게 하는 ‘감사’하고 감동적인 분이 훨씬 많아서일 것이다.
편집자는 여전히 책의 세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 혹은 잡일을 맡는 엑스트라로 치부될 때가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는 ‘그래도 작가가 낫지 않아요?’ ‘주인공으로 살아야죠’라는 식의 무례한 조언을 듣는다. 그러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삭여준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이 일이 작가보다, 독자보다 훨씬 재밌거든요. 심지어 꼭 보고픈 책이 생기면, 내가 직접 고생스럽게 쓰지 않아도 저보다 훨씬 잘 쓰는 작가님들이 제 맘 같은 원고를 척척 써서 제게 주시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오직 편집자만이, 책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다 만나요.”
여전히 편집자 이연실은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오늘도 일촉즉발 전쟁통 속에 뛰어다닌다. 이 일은 여전히 익숙해지거나 쉬워지는 법이 없고 매 책마다 새로운 사건사고가 벌어지지만, 적어도 나는 영영 이 일이 질리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편집자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배역을 맡은 조연이자 총감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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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인, 간파당하지 않되 막연하면 곤란해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214
- 정지현 (북디자이너)
- 호수 725
- 시사in 2021.08.14 07:04
책의 내용을 오해하지 않을 만한 외양인 동시에 쉽게 간파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런 마음은 상반된 성격의 것이라 종종 출판인과 디자이너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한다.[책 만드는 사람들]
정지현 북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서체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책 표지.
그림을 그리는 거냐, 글을 쓰는 거냐. 아직도 이 일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곧잘 받는다. 책이라는 물성 뒤에 가려진 많은 종류의 노동 가운데 내가 담당한 것은 ‘책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상대의 옷차림을 통해 그의 취향이나 성격을 가늠해보듯, 책의 디자인도 그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도구다. 그렇기에 적어도 책의 내용을 오해하지 않을 만한 외양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외양만으로 너무 쉽게 간파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런 마음들은 상반된 성격의 것이라 나는 종종 출판인과 디자이너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한다.
책의 외양은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국내 독자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미적 기준이 높다. 독자들의 까다로운 취향과 더불어 한국의 북디자인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출간물의 리커버 디자인이나 서점별로 다른 표지를 입혀 내보내는 기획도 모두 독자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책은 내용이 중요하지 인스타그램용 소품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예뻐서 산 책이 내용까지 좋거나, 필요에 의해 산 책이 예쁘기까지 하면 더 가까이 두고 읽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책이 멋 내기에 좋은 소품까지 된다면 썩 훌륭한 일이 아닌가?
독자의 미감에 부응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보다 독창적인 디자인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작업자의 딜레마가 있다. 상업미술이자 협업의 결과이기도 한 북디자인은 오롯이 디자이너만의 작업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정해진 일정과 요청받은 조건이라는 한계 내에서만 자신의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작업에 임하게 되면 디자이너도 여느 순수미술가 못지않은 태도로 작업을 해낸다. 물감을 뿌린 작품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처럼 즉흥적으로 색을 배합하거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처럼 상징적인 아이콘을 개발하기도 한다. 북디자인이 글의 전달 매체라는 목적을 넘어 그 자체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향유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단순히 작업자의 욕심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도구이지만 때론 목적이 되고 싶어!’라는 마음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결과물을 놓고 관계자들의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에게 결정권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작업자로서는 여전히 아쉽다. ‘디자인 컨펌’은 주로 편집부, 마케팅부, 저자와 저자의 주변인(‘섀도’라고도 부른다), 역자, 해외 에이전시 등을 거치는데, 이때 상반되는 의견들이 부딪친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요.’ ‘본 적 없는 방식이라, 너무 낯설어요.’ 특히 낯설까 염려된다는 의견을 들으면 어떤 일화가 떠오른다. 입시 미술학원의 석고 소묘 시간에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을 구사하는 학생들에게 강사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채점하는 교수의 눈을 놀래키면 안 돼!”
무난한 작품들 속에서 튀는 그림은 극명하게 선호도가 갈린다는 것. 입시 미술은 1등을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커트라인에 드는 것이 목표인 점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노하우이다. 하지만 튀는 그림은 한 번이라도 더 주목받는다. 똑같은 주제를 그려낸 그림 수백 장 중에 시선도 받지 못하는 그림이 훨씬 많음을 생각하면, 적어도 눈을 놀래키는 그림은 보는 사람을 고민하게 한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어디에 방향을 두고 작업해나가야 할까. 독자의 눈은 어디를 향할까. 눈이 놀라고 싶지 않은 독자도 내겐 똑같이 소중한데….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자기가 작업한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작업 과정에서 얻는 확신이며 이 확신은 거듭된 질문 속에서 생겨난다. 북디자인은 저자와 독자를 연결한다는 목적 아래 시각적인 의도를 담아내는 작업이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진행해야 하는 원고와 디자인 의뢰서를 분석해 편집자와 회의를 한다. 이때 편집자가 생각하는 원고의 기획 방향과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결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내 경우 편집자가 힘주어 반복하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무심결에 쓰는 형용사에서 뉘앙스를 캐치해 작업에 필요한 키워드를 쌓아간다. 그런데 이때, 서로 사용하는 단어가 전혀 다른 성질이라면?
예전에 진행했던 디자인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에게 ‘SIMPLE’이라고 쓴 카드를 보여주고 어떤 이미지를 연상했는지 질문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똑같은 답을 내놓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구는 고딕으로 된 글씨, 누구는 크고 검은 동그라미, 누구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은 표현을 쓴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편집자에게 질문을 거듭하고, 그 질문의 답을 통해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낸다. 이 질문은 이제 작업자인 나,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다. 왜 이 폰트를 쓰고 싶은가? 그 컬러가 가장 적합한가? 이미지가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커피 대신 이 책을 살 것 같은가? (그렇다고 책의 경쟁 상대가 커피라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형태의 논리를 찾고, 그 논리를 점검하면서 자기 확신이 생기게 된다.
어쩌면 대세에 별 지장 없고 독자에겐 티도 안 나는 일들, 제목 위치를 사방으로 1㎜씩 옮기거나 글씨 크기를 0.5포인트씩 키웠다 줄이며 책에 가장 적합한 옷을 찾는다. 너무 쉽게 간파당하지 않되 막연한 수수께끼는 아니길 바라며. 물음표를 거쳐 느낌표이길 바라며. 한여름인데 패딩을 입히고 핫팩까지 들려 내보낸 것은 아닌지 확인, 또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