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 '넌 정신없이 죽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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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1932∼2010)의 글에는 승려들의 ‘입적’을 바라보며 고인에 대한 애틋함과 더불어 죽음에 대한 사유가 적지 않다. 법정스님이 말하는 승려의 입적은 ‘자유’라는 정신적 수식어가 함께 한다. 법정스님 글에 세납 90세가 넘도록 장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신 몇 노스님들의 임종을 보면서 장수하는 일이 주변과 주위에 욕이 된다고 역설했다.
“나는 인간으로서 그 기능과 역할이 끝나는 그날로
미련 없이 몸을 바꾸고 싶다.
몇 날을 더 연명시키기 위해
비쩍 마른 팔에 주사바늘을 꽂는다거나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먹인다면,
나는 그런 이웃에 화를 내고 원망할 것이다.
사람은 살 때에 빛이 나야 하듯이 죽을 때에도
그 빛을 잃어서는 안된다.
생사가 따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겉과 속의 관계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 법정(1983), 『산방한담』, (서울: 샘터),
법정스님은 죽음을 바라보며, 현 삶에 충실코자 했다. 곧 생과 사를 여일(如一)하게 여기었던 수도자였다. 생과 사를 물을 것 없이 그때그때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법정의 생사관이었다. 법정이 입적하는 그 순간은 어떠했을까? 상좌 덕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정신없이 죽지 마”
생사가 나눠지는 갈림길, 황황한 속에서도 제자를 일깨웠음은 법정스님이 평생 수행자로서 짊어진 하담(荷擔)의* 무게라고 생각된다. 법정은 입적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떠나는 경우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도 짜지 말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 입은 상태로
다비해 주기 바란다.”
법정스님은 자신이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 평상이 있는데, 그 위에 자신의 몸을 올리고 다비하라고 하였다. 또한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자신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법정스님은 사바세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자유로운 과객(過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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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지 주: 하담(荷擔)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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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持經功德分(지경공덕분) : 경을 지니는 공덕
●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배우고 수행하며
읽고 외우며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 如來 悉知是人 悉見是人(여래 실지시인 실견시인) :
여래는 그 사람을 다 아시고 다 보시기 때문에
● 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개득성취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 :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이루 말할 수 없고
끝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며
● 如是人等 卽爲①荷擔如來阿樓多羅三邈三菩提
(여시인등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이러한 사람은 곧 여래의 위 없는 바르고 완전한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게 될 것이니라
(감당하게 될 것이니라).
①荷擔 : '짊어질 것이다'는 '이룰 것이다', '얻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구마라집 스님이 번역한 ‘하담(荷擔)’에 해당하는 범어는 ‘samāṃśena[육신과 더불어]’이다.
여기에는 이 몸을 가지고 깨달음을 실현하고 성불한다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사상이 들어있다.
구마라집 스님이 하담(荷擔, 짊어짐)으로 옮긴 것은
깨달음을 호지한다는 은유적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조계종 표준본에서는 ‘감당하게’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