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사랑
교차로신문 2022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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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숲 속에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낳았다. 이 원숭이는 남편도 없이 홀로 새끼 두 마리를 키웠다. 그런데 이 어미 원숭이는 똑같은 자식인데, 유독 한 마리를 예뻐해 늘 품에 안고 다녔다. 당연히 한 마리는 뒷전에서 찬밥 신세였다. 어미의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새끼 원숭이는 멀찌감치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았다. 홀로 먹이를 찾기 위해 나무 위를 올라 다녔고, 적을 만나면 도망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숲에 사는 원숭이 떼들이 습격해왔다. 어미 원숭이는 평소 사랑하는 새끼만 품에 안고 열심히 도망 다녔다. 시간이 한참 흘러 침입자들이 물러가고, 어미 원숭이도 한숨 돌리며 품에 안고 있던 새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꼭 껴안고 도망 다닌 탓에 새끼가 숨이 막혀 죽어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관심 밖에 있던 다른 새끼 원숭이는 평소 습관대로 나무 위를 올라 다니며 적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앞의 이야기는 이솝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원숭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고대로부터 원숭이가 모성애가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몇 달전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州 지역에서 고의인지, 실수인지 떠돌이 개(dog)가 원숭이 새끼를 죽였다. 이를 기화로 원숭이들이 닥치는 강아지들을 죽였는데, 대략 250마리 정도였다. 그 지역 원숭이들이 체격이 작은 개나 강아지들을 물어다 건물이나 나무 꼭대기 등으로 끌고 가서 땅으로 떨어뜨려 죽였다. 그 지역 관계자들이 원숭이 포획 작전에 나서자, 더욱 포악해져서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공격하였다. 현지 주민들까지 원숭이들에게 해를 당할까 피해 다녔고, 감히 원숭이들을 잡지 못했다. 한편 인도 힌두교에서는 원숭이를 하누만(Hanuman)의 화신으로 여기며 신성시하기 때문에 감히 잡아 죽이지 못했다[인도국민 80%가 힌두교도]. 점점 심각해지자 강아지들을 물어 죽이는 주동자 원숭이 두 마리를 포획해 깊은 숲속에 풀어주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로만 듣던 원숭이들의 모성애!, 이를 어찌 봐야할지? 모성애가 강할 만큼 동물 가운데서도 뛰어난 개체라면, 왜 다른 생명체에 대한 연민의식은 없는가(?) 물론 원숭이가 당연히 축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워서다. 하기야 일부 몰지막한 인간은 원숭이보다 더 심각한 이도 있는데, 무슨 원숭이에게 기대하랴?!
불교에서도 이런 일화가 있다. 아기를 잡아먹는 야차녀(귀신의 일종)가 있었다. 그녀는 가장 어린 아기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아기를 잃은 여인들이 부처님께 하소연하자, 부처님은 야차녀의 아들 가운데 하나를 감춰두었다. 야차녀가 집으로 돌아와 아기 하나가 없는 것을 알고, 울며불며 부처님 앞에 와서 찾아달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이때 부처님이 야차녀의 아기를 돌려주며 이런 말을 하였다.
“너는 자식이 많은데, 하나를 잃었다고 슬퍼하는구나. 네게 자식을 잃은 어미는 어떠하겠는가? 네 자식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식이 소중한 법이다.”
종종 우리 주변에서 왜곡된 자식 사랑을 볼 때가 있다. 내 아들이 소중하면, 며느리도 그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다. 내 딸이 소중하면, 사위도 그 부모에게는 소중한 자식이다. 마음을 조금만 확장하자. 적어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하는 인간은 원숭이를 통해 자신에게 왜곡됨은 없는지(?) 한번쯤 사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