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공감
교차로신문 2022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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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발생한지 2년 반이 흘렀다. 근자에 생활과 경제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 여파로 소상공업자들이 힘들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전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물가가 폭등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필자는 재작년 처음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조계종 총무원에 재직을 하고 있었다. 강의는 없지만, 나름대로 생활할 수 있는 보시금[금전]이 있었다. 그런데 총무원에서 퇴직을 하고 나서의 생활이 달라졌다. 물론 총무원 재직하기 이전에도 필자는 일반 스님들과 생활이 달랐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특강도 종종했으며, 원고를 쓰면서 삶에 필요한 것을 조달받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을 필자도 똑같이 겪고 있다. 원고도 20년 가까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원고도 줄었다. 예전에 종종 하던 특강이나 법문이 없었다. 물론 대학 강의도 오래한데다 학문세계도 많은 변화가 있어 강의도 예전에 비해 줄었다[학교 측에서도 경제 문제로 강사 단축도 발생].
우리네 삶에는 인생마다 몇 차례의 고비가 있다. 승려들의 삶도 비슷하다. 이런 과정 과정 속에 요동치는 변화가 있는데, 그 흐름에 맞서 거슬러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필자는 이런 고비에 힘들어 할 만큼 마인드가 약하지 않다. 내가 불러들인 역경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오는 변화를 겪으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경험을 많이 하였다.
학문에 기쁨과 충만함은 가득하건만 막상 강의할 터전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하는, 혹은 강퇴를 당하는 중년 아저씨들이 겪는 상실감! 필자 또한 겪으면서 진심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또한 살고 있는 집[사찰]을 옮기면서 경제력이 부족해 세입자가 있는 집을 마련했는데, 여러 가지로 발생하는 일들이 용이치 않다. 이사 문제로 힘들어 보니, 세상 사람들이 집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음을 이해했다. 주인은 주인대로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그 고통은 똑같다고 본다.
필자는 나름대로 사람들의 의식주 문제로 인한 고통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중생들의 삶 자체가 고통이려니 …’라면서 꽤 아는 척, 자비로운 척 했다. 이는 일반인들의 삶을 이해한 것이지,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당나라 때 선사, 운문 문언(864~949)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한 가지 일을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고는 한 가지 지혜를 체득할 수 없다
[不因一事 不長一智]”
이해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여파와 삶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힘든지 이해가 아니라 공감을 하였다.
삶 자체가 고苦다. 발버둥 친다고 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다. 즉 변화가 있다. 그 변한다는 것, 무상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자. 희망을 갖자. 언젠가는 지금의 고통스런 삶과 조건들이 반드시 행복으로 역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