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의 오염과 깨끗함
143 이제 6.무엇이 이것의 오염원인가? 7. 무엇이 이것의 깨끗함인가? 라고 설한 것에 대해 답하리라.
훼손 등의 상태가 계의 오염이다. 훼손되지 않은 상태 등이 이것의 깨끗함이다.
훼손된 상태 등은 (1)이득-명성 등 때문에 파계한 것과 (2)일곱 가지 음행과 관련된 것에 포함된다. 일곱 가지 범계의 무더기들 가운데서 처음이나 끝에 학습계율을 파한 이의 계는 훼손되었다고 한다. 마치 가장자리가 끊어진 천 조각처럼. 그들을 차례대로 둘 혹은 셋을 파한 이의 계는 오점이 있다고 한다. 마치 등이나 혹은 배에 나타난 얼룩덜룩한 검고 붉은 색 등의 어떤 색깔을 가진 소처럼. 그 사이사이에 그들을 파한 이의 계는 얼룩졌다고 한다. 마치 다른 색깔의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소처럼. 이와 같이 우선 이득 등 때문에 파하여 훼손된 상태 등이 있다.
144. 그와 같이 일곱 가지 음행과 관련된 훼손된 상태 등이 있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1)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바르게 청정범행(梵行)을 한다고 주장을 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음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고, 주무르게 하고, 목욕하게 하고, 만지게 한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바라문이여, 이 사람은 청정하지 않은 범행을 한다고 불린다. 음행의 족쇄에 묶여 태어남·늙음·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45.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어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주장을 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음행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 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한다. 그는 그것을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46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어 …주장을 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음행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 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또한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러자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47.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 음행하지 않고 …만지게 하지 않고, … 유희하지도 않고, …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이 웃거나 얘기하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울 때 벽을 넘어 혹은 담장을 넘어 여자의 소리를 엿듣는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48.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음행하지 않고 …만지게 하지 않고 … 유희하지도 않고 … 쳐다보지도 않고, … 엿듣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전에 여자와 함께 웃고, 얘기하고, 놀이하던 것을 회상한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49.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 음행하지도 않고, …만지게 하지도 않고, … 회상하지도 않는다./ 그라나 그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빠지고 사로잡혀 탐닉하는 것을 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50.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 음행하지도 않고 … 탐닉하는 것을 보지도 않는다. 그라나 그는 천상의 지위를 바라면서 청정범행을 한다. ‘나는 이 계나 서계나 고행이나 청정범행으로 신이나 혹은 다른 어떤 작은 신이 되리라.’ 라고./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청정범행의 훼손이고, 뚫어짐이고, 오점이고, 얼룩이다. 라고.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훼손된 상태 등은 이득과 명성 등 때문에 파계한 것과 일곱 가지 음행과 관련된 것에 포함된다고 알아야 한다.
151. 훼손되지 않은 상태 등은 다시 ①모든 학습계율을 파하지 않음, ②참회의 갈마를 해야 하는 계를 파했을 때 참회의 갈마를 행함, ③일곱 가지 음행과 관련되지 않음 ④노여움, 적의, 얕봄, 비교함, 질투, 인색, 속임수, 사기, 완고함, 뻔뻔스러움, 자만, 거만, 허영, 태만 등 다른 해로운 법들을 일으키지 않음, ⑤소욕, 지족, 번뇌의 말살 등의 덕을 생기게 함으로써 성취된다.
152. 이득 등을 위해서 파하지 않은 계, 태만 때문에 파했지만 참회의 갈마를 행한 계, 음행에 관련된 것이나 혹은 노여움, 적의 등의 해로운 법들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계, - 이러한 모든 계를 두고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계는 벗어남을 가져오기 때문에 벗어나게 하는 것이고, 지자들에 의해 찬탄되기 때문에 지자들이 찬탄하는 것이고, 갈애와 사견으로 [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들러붙지 않는 것이고, 근접삼매나 본삼매가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삼매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 등이 깨끗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153. 이 깨끗함은 두 가지 방법으로 성취된다. 여기서 “비구들이여,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이에게 다섯 가지의 위험이 있다.” 라고 설하신 경을 통해서 계를 파함에 대해서 위험을 보아야 한다.
154. 계행이 나쁜 사람은 나쁜 계행 때문에 신들과 인간들이 불쾌하게 여긴다. 동료 수행자들의 훈도를 받을 수 없다. 나쁜 계행을 비난할 때 괴로워한다. 계를 지닌 이를 찬탄할 때 후회한다. 그 나쁜 계행으로 인해 대마로 만든 옷처럼 추하다.
계행이 나쁜 사람의 견해를 따라 행하는 자들은 오랫동안 처참한 곳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그와 접촉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자기에게 시물을 보시한 사람들에게 큰 결과를 생기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여러 해된 오물 구덩이처럼 청정해지기 어렵다. 화장터에서 가져온 나무처럼 [승과 속의] 둘 모두로부터 제외된다. 비구라고 주장하지만 비구가 아닌 것이 마치 소의 무리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다.
그는 마치 모든 사람들의 적인 것처럼 항상 동요한다. 마치 죽은 시체와 함께 살 수 없는 것처럼 그와 함께 살 수 없다. 비록 배움 등의 덕을 가졌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의 존경하는 바가 되지 않나니 마치 화장터의 불이 바라문들의 존경하는 바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수승한 법을 증득할 수 없나니 마치 장님이 색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정법에 대해 희망이 없나니 마치 천민의 아들이 왕위에 희망이 없는 것과 같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고통스럽다. 불의 무더기의 가르침(火聚經, A.iv.128-34)에서 설한 그런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155. 계행이 나쁜 이들의 마음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즐기고, 인사를 받고, 경의를 받는 등의 행복과 만족에 사로잡혀 있지만, 일단 그들이 그것을 기억하자마자 그 [업]으로 인해 가슴에 열병이 생기고 뜨거운 피를 토해 낼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보이시면서 모든 측면에서 업의 과보를 바로 아시는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큰 불무더기를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이 더 낫겠는가?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큰 불무더기를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과 부드럽고 아름다운 손발을 가진 성스러운 왕족의 딸이나 바라문의 딸이나 장자의 딸을 껴안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낫겠는가? ‘세존이시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 딸을 껴안고 누워있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큰 불무더기를 안고 … 누워있는 것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156.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고하고, 선언하나니, 계를 지니지 않고, 악법을 가지고, 불결한 행위를 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탐욕 등의]쓰레기를 가진 이는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큰 불무더기를 껴안고 … 누워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이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고 단말마의 고통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계를 지니지 않고 … 쓰레기를 가진 이가 왕족의 딸을 안고 … 누워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이 없고 괴로움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57. 이와 같이 불무더기의 비유로 여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탐닉함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보이시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말총으로 만든 밧줄, 예리한 창, 철판, 무쇠덩이, 무쇠의자, 무쇠가마솥의 비유로
경배를 받고 합장을 받고 옷과 음식과 침상과 의자와 승원을 수용함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보이셨다.
… 중략 …
158. 그러므로
쾌락은 불무더기를 안고 있을 때의 고통보다
더 격렬한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건만
파계한 이는 그것을 버리지 않나니
그에게 무슨 행복이 있을까?
계를 파한 이는 말총밧줄로 짓뭉개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받을 것이거늘
남의 경배를 받음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계를 파한 이가 신심 있는 이들의
합장공경을 받는 것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창으로 찌르는 고통보다
더 예리한 고통의 원인일 뿐.
자제함이 없는 이가 옷을 수용함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그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옥에서 불타는
철판에 닿음을 감수할 것을.
비록 탁발한 음식이 달콤하지만
계를 파한 이에게는 독과 같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불타는
무쇠덩이를 삼켜야 하리.
계를 파한 이들이 침상과 의자를 수용할 때
비록 행복이라 여기지만 고통일 뿐
그 때문에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쇠침상과 의자에서 고통스러워하리.
계를 파한 이가 신심으로 보시한
절에 머물 때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그 때문에 불타는
무쇠가마솥에 머물러야 할 것을.
의심하는 습관을 가졌고, [탐욕 등] 쓰레기를 가졌고,
[오염원들이] 흐르고, 악하고
안이 썩었다고 그를 꾸짖으면서
세상의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절제되지 않았고
사문의 옷을 걸쳤을 뿐 사문이 아니요
손상되었고, 자기의 [선근을] 파버리고 사는 자의
목숨을 어찌 부끄러워않으랴!
마치 장엄을 원하는 이가
오물을 버리고 시체를 버리듯이
계를 지닌 고요한 분은 [파계한] 그를 버려버리니
그런 그의 삶이한 과연 무엇이던가?
두려움은 조금도 벗질 못했고
모든 증득의 행복으로부터는 벗어나버렸으니
천상의 문은 그에게 굳게 닫혀있고
파멸처의 길에 올라있구나.
연민을 가진 이에게 계행이 나쁜 이를 제외하고
누가 다시 연민의 대상이 될까?
계행이 나쁜 것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결점이 있구나.
이와 같이 반조를 통해서 계를 파함에서 위험을 보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앞서 설한 것과
반대로 계를 성취함에서 이익을 보는 것을 알아야 한다.
159. 다시
계를 깨끗이 지니는 이가 발우와 가사를 수하는 것은
신심을 자아내게 하고 그의 출가는 결과를 가져온다.
계가 청정한 비구의 마음엔
자책 등의 두려움이 들어오지 않나니
마치 어두움이 해에 들어오지 않듯이.
계를 성취하여 빛나는 비구는
고행의 숲에서 빛난다.
마치 보름달이 허공에서 빛나듯이.
계를 지닌 비구는 그의 몸의 향기조차도
신들을 기쁘게 하거늘
계의 향기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리.
계의 향기는 모든 향기 가운데 가장 수승하나니
그것은 걸림 없이 모든 방향에 퍼진다.
계를 지닌 이를 위해서 한 행위는
비록 적을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계를 지닌 이는
공양과 공경의 그릇이 된다.
금생의 번뇌들이 계를 지닌 자를 괴롭히지 못하고
계를 지닌 자는 미래의 고통의 뿌리를 끊어버린다.
인간의 행복이든 천신들의 행복이든
계를 지닌 이가 원한다면
그것은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열반의 경지는 지극히 고요하나니
계를 지닌 이의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계는 모든 성취의 뿌리라고
현자는 갖가지 계의 이익을 알아야 하리.
160. 이와 같이 분석하는 자의 마음은 계를 파함을 두려워하고 계를 성취함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앞서 설한 계를 파함의 위험과 계를 성취함의 이익을 보고 극진히 공경하면서
계를 깨끗이 해야 한다.
161.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1)” 라는 이 게송으로
계·정·혜의 제목으로 설한 청정도론에서 이제 계를 충분히 해설하였다.
어진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청정도론에서
계의 해설이라 불리는 제1장이 끝났다.
출처: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1』, 제1장 계(戒), 초기불전연구원, 204-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