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마까 경(S22:89) 발췌 *주1
8. 케마까 존자 “도반들이여, 나는 오취온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지만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취온에 대해서 ‘나가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 관찰하지는 않습니다.”
9. 장로 비구들 “사량분별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느낌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인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인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상카라를 두고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상카라를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의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의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 말합니까?”
12. 케마까 존자 “도반들이여, 나는 물질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느낌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인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인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상카라를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상카라를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의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의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오취온에 대해서 ‘나가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어 연꽃에서 향기가 날 때, 향기가 꽃잎에서 난다고 하거나 꽃자루에서 난다고 하거나 암술에서 난다고 하면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꽃에서 향기가 난다고 해야 바르게 말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물질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느낌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인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인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상카라를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상카라를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의식을 두고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의식을 떠나서 ‘나가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오취온에 대해서 ‘나가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1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가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오취온에 대한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오취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오취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살아갈 때 오취온에 대한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14. “도반들이여, 예를 들어 더럽고 때 묻은 천이 있는데 주인이 그것을 세탁소에 맡긴다고 합시다. 그러면 세탁소에서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비벼서 빤 뒤 물에 헹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천은 깨끗하게 되었지만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세탁소에서 이런 천을 받은 주인은 그 천을 냄새를 제거하는 상자에 넣을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 뽑히지 않고 남아 있던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모두 뿌리 뽑히게 될 것입니다. *주2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가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오취온에 대한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오취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오취온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살아갈 때 오취온에 대한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가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
……
16. 케마까 존자의 말을 들은 장로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케마까 존자의 말에 크게 기뻐하였다.
17. 이렇게 상세히 설명했을 때 60명의 장로 비구들과 케마까 존자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주1 : 출처 : 각묵 스님 옮김, 『상윳따 니까야 3』, 초기불전연구원, ‘케마까 경’, 361-370쪽. 일부 용어 변경.*
주2 : 주석서는 이 비유를 이렇게 적용시키고 있다.
“더러운 천은 범부의 마음의 행로와 같다. 세 가지 세제는 무상, 고, 무아의 삼법인을 관찰하는 것이다. 세 가지 세제에 의해서 세탁된 천은 설법으로 문질러진 아나함의 마음의 행로와 같다. 미세한 소금물 등의 냄새는 아라한도로 박멸되어야 할 번뇌들이다. 냄새를 제거하는 상자는 아라한도의 지혜요, 냄새를 제거하는 상자에 들어가서 미세한 소금물 냄새 등이 모두 뿌리 뽑히는 것은 아라한도에 의해서 모든 번뇌들이 멸진되는 것이다.
마치 냄새가 완전히 제거된 옷을 입고 출제가 열리는 날에 좋은 향기를 뿜으면서 다니는 것처럼 번뇌를 모두 제거한 자는 계의 향기 등으로 시방(十方)을 원하는 대로 다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