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고기 경(S12:63) *1
(Puttamamsa-sutta)
3.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가 세 번째요, 의식이 네 번째이다.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네 가지 음식이 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덩어리진 음식은 무엇과 같다고 봐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적은 양식만을 가지고 사막의 길을 떠났다 하자. 그들에게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동아들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사막의 길을 떠나서 그 적은 양식이 다 떨어져버리고 다 소비되었지만, 아직 사막은 남아있고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남편과 아내 두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적은 양식이 이미 다 떨어져버리고 다 소비되었지만, 아직 사막은 남아있고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외동아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이를 잡아서 육포를 만들고 꼬치에 꿰어 구워서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사막을 건너야 하지 않을까? 우리 셋 모두 다 죽어서는 안 되니까.’라고.
비구들이여, 그래서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은 외동아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그 아이를 잡아서 육포를 만들고 꼬치에 꿰어 구워서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사막을 건널 것이다. 그들은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서 ‘외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니! 외아들아, 너는 어디에 있니!’라고 하면서 가슴을 치며 울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오락을 위해서 음식을 먹고, 취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고, 장식을 위해서 음식을 먹고, 꾸미기 위해서 음식을 먹었겠는가?”*2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들은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음식을 먹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덩어리진 음식은 이와 같다고 봐야 한다.’*3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덩어리진 음식을 철저히 알 때*4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에 대한 탐욕이 철저히 알아진다.*5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에 대한 탐욕이 철저히 알아질 때 성스러운 제자가 그 족쇄에 묶여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족쇄가 없어진다.”*6
6. “비구들이여, 그러면 감각접촉이라는 음식은 무엇과 같다고 봐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소가 가죽이 통째로 벗겨져서 벽에 기대어 서 있다 하자. 그러면 그 벽에 붙어사는 생물들이 그것을 뜯어먹을 것이다. 만일 나무 곁에 서 있으면 나무를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생물들이 그것을 뜯어먹을 것이다. 만일 물속에 서 있으면 물을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생물들이 그것을 뜯어먹을 것이다. 만일 노지(露地)에 서 있으면 노지를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생물들이 그것을 뜯어먹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소가 가죽이 통째로 벗겨져서 의지해서 서 있는 곳마다 각기 거기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생물들이 그것을 뜯어먹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라는 음식은 이와 같다고 봐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7
비구들이여, 감각접촉이라는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세 가지 느낌을 철저히 알게 되고, 세 가지 느낌을 철저히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더 이상 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8
7. “비구들이여, 그러면 마음의 의도라는 음식은 무엇과 같다고 봐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한 길이 넘는 숯불 구덩이가 있는데 연기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숯불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살기를 바라고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행복을 바라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사람이 힘센 두 남자에 의해 각각 양 손이 붙잡힌 채로 숯불 구덩이 가까이로 끌려온다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것은 그 사람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고 소망과도 거리가 멀고 염원과도 거리가 멀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에게는 ‘이제 나는 숯불 구덩이에 빠질 것이고 그 때문에 죽게 되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의 의도라는 음식은 이와 같다고 봐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9 비구들이여, 마음의 의도라는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세 가지 갈애를 철저히 알게 되고,*10 세 가지 갈애를 철저히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더 이상 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의식이라는 음식은 무엇과 같다고 봐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죄를 지은 도둑을 붙잡아 ‘폐하, 이 자는 죄를 지은 도둑입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처벌을 내리십시오.’라고 하면서 대령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봐라, 그렇다면 너희들은 가서 아침에 백 개의 창으로 찔러라.’ 그러면 그들은 아침에 그 사람을 백 자루의 창으로 찌를 것이다.
다시 왕은 한낮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봐라,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폐하,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가서 한낮에 백 개의 창으로 찔러라.’ 그러면 그들은 한낮에 그 사람을 백 자루의 창으로 찌를 것이다.
다시 왕은 해거름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봐라,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폐하,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러면 왕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가서 해거름에 백 개의 창으로 찔러라.’ 그러면 그들은 해거름에 그 사람을 백 자루의 창으로 찌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삼백 자루의 창에 찔려서 그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겠는가?”
“세존이시여, 한 개의 창에 찔려도 그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인데 삼백 자루의 창에 찔린 것은 다시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비구들이여, ‘의식이라는 음식은 이와 같다고 봐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11 비구들이여, 의식이라는 음식을 철저히 알 때 정신물질을 철저히 알게 되고,*12 정신물질을 철저히 알 때 성스러운 제자가 더 이상 해야 할 바가 없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13
주해
*1.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비구 승가가 탁발음식과 다른 필수품들을 너무 풍족하게 보시 받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존께서 이 경을 설하셨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이 이 경을 “법의 거울[法鏡]”로 삼아서 스스로를 제어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의 비구들이 바르게 반조한 뒤에 네 가지 필수품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경을 설하셨다고 한다.
*2. “‘오락을 위해서’ 등은 『청정도론』(I. 89~90)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3 “덩어리진 음식은 아홉 가지 혐오스러움을 통해서 사랑하는 외동아들의 고기와 같다고 봐야 한다. 어떤 것이 아홉인가?
① 탁발 가는 것의 혐오스러움
② 구하는 것의 혐오스러움
③ 먹는 것의 혐오스러움
④ 분비물의 혐오스러움
⑤ 저장되는 곳의 혐오스러움
⑥ 소화되지 않은 것의 혐오스러움
⑦ 소화된 것의 혐오스러움
⑧ 배출 하는 것의 혐오스러움
⑨ 묻은 것의 혐오스러움
이다. 이러한 혐오스러움을 반조하면서 덩어리진 음식을 수용해야 한다.”
한편 『청정도론』(XI.5~26)에서는 열 가지 혐오스러움을 들고 있는데 결과의 혐오스러움이 포함되어 나타난다. 『청정도론』은 제11장에서 음식에 혐오하는 수행을 설명하면서, 이 열 가지 혐오스러움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4. “‘덩어리진 음식을 철저히 알 때’라고 했다. 이것은 세 가지 통달지로 철저히 안다는 말이다. 세 가지 통달지는 ① 안 것의 통달지 ② 조사의 통달지 ③ 버림의 통달지이다.
⑴ 이 덩어리진 음식은 영양소를 여덟 번째로 한 물질(아위닙보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초기불전연구원, 2017, 68~69쪽 참조)과 같은 토대를 가진다. 그리고 이 음식이라는 물질은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혀 감성물질을 통해서 감각접촉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음식과 혀의 감성과 네 가지 근본물질은 모두 물질 무더기(색온)이다. 그리고 나머지 네 무더기에 속하는 감각접촉을 다섯 번째로 한 것(감각접촉,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의식=촉․수․상․행․식)이 이렇게 파악하는 자에게 일어난다.
이것은 모두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이고, 더 간략히 하면 정신물질(명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역할과 특징으로 조사한 뒤에, 그 조건들을 탐구하면서 연기를 순관과 역관으로 관찰한다. 이렇게 조건과 더불어 정신물질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안 것의 통달지를 통해서 덩어리진 음식을 철저히 아는 것이다.
⑵ 그는 조건과 더불어 정신물질에 대해서 무상 고 무아라는 세 가지 특징(삼특상)을 제기하여 일곱 가지 관찰로 명상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삼특상을 꿰뚫는 명상의 지혜라 불리는 조사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히 안다. (복주서에 의하면 일곱 가지 관찰은 무상 관찰, 괴로움 관찰, 무아 관찰, 염오 관찰, 이욕 관찰, 소멸 관찰, 놓아버림 관찰이다.)
⑶ 이러한 정신물질에 대한 욕탐을 제거함은 아나함도에 의해서 철저히 알아지기 때문에 그는 버림의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히 아는 것이다.”
*5.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에 대한 탐욕이 철저히 알아진다.’는 것은 ① 하나에 대한 통달지 ② 일체에 대한 통달지 ③ 근원에 대한 통달지라는 세 가지 통달지를 통해서 철저히 알아진다.”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 세 가지 통달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⑴ 하나에 대한 통달지란, 비구가 혀에서 생긴 맛에 대한 하나의 갈애를 철저히 알면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을 철저히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⑵ 일체에 대한 통달지란,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은 단 한 조각의 음식에서도 일어남을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 음식이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⑶ 근원에 대한 통달지란, 음식이 모든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의 근원이 됨을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 배불리 먹어야 다른 감각욕망들도 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6. “‘그런 족쇄가 없어진다.’고 했다. 이 가르침은 아나함도까지 설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 등을 통해서 오온 전체에 대한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면 아라한과에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
*7. “마치 소가 생물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게 되면, 더 이상 존경과 존중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고, 주물러 주고 문질러 주고 목욕시켜 주는 것 등도 원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비구도 감각접촉이라는 음식을 뿌리로 하는 오염원이라는 생물에게 먹히는 두려움을 바르게 관찰하여 삼계의 감각접촉을 바라지 않게 된다.”
*8. 주석서는 감각접촉을 철저히 앎도 앞의 덩어리진 음식에 대한 세 가지 통달지와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단지 다른 점은 감각접촉을 오온을 관찰하는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각접촉이 철저히 알아지면 세 가지 느낌도 철저히 알아지는데, 세 가지 느낌은 감각접촉에 뿌리하고 있고 이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각접촉이라는 음식을 통해서는 아라한과까지 증득할 수 있다.
*9. 주석서에 의하면 ‘숯불 구덩이’는 삼계 윤회에,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윤회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범부에, ‘힘센 두 남자’는 선업과 불선업에 비유된다. 힘센 두 남자가 그 사람의 양 손을 붙잡고 숯불 구덩이 가까이로 끌고 가는 것은, 범부가 업을 쌓는 것과 같으니 쌓인 업이 재생연결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숯불 구덩이에 떨어져서 받는 고통은 윤회의 괴로움과 같다.
*10. “‘세 가지 갈애를 철저히 알게 된다.’고 했다. 세 가지 갈애는 감각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이다. 그리고 갈애는 마음의 의도들의 뿌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철저히 알게 된다. 이 마음의 의도들이라는 음식을 통해서도 아라한과까지 증득할 수 있다.”
*11. 주석서에 의하면 ‘왕’은 업에, ‘죄를 지은 도둑’은 어리석은 범부에, ‘삼백 자루의 창’은 재생연결식에 비유된다. 왕이 명령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업의 왕에 의해서 재생연결로 내몰리는 것과 같다. 많은 창에 찔리는 고통은 재생연결이 된 후에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과보로 나타난 괴로움과 같다.
*12. “의식을 철저히 알게 되면 정신물질을 철저히 알게 된다. 정신물질은 의식에 뿌리하고 있고, 의식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의식이라는 음식을 통해서도 아라한과까지 증득할 수 있다.”
*13. 이 경은
① 덩어리진 음식 — 다섯 가닥의 감각욕망,
② 감각접촉[觸]이라는 음식 — 세 가지 느낌,
③ 마음의 의도라는 음식 — 세 가지 갈애,
④ 의식이라는 음식 — 정신물질
의 구조로 네 가지 음식을 철저하게 알 것을 설하였다. 합송자들은 네 가지 음식 각각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 각각을 두 가지 연기로 파악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은 “인연 상윳따”에 포함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 경이 연기와 관계된 상윳따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
출처 :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 2권, 298-305쪽
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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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uttamaṃsūpamasuttaṃ
63. Sāvatthiyaṃ …pe…
3. ‘‘cattārome , bhikkhave, āhārā bhūtānaṃ vā sattānaṃ ṭhitiyā sambhavesīnaṃ vā anuggahāya . Katame cattāro? Kabaḷīkāro āhāro oḷāriko vā sukhumo vā, phasso dutiyo, manosañcetanā tatiyā, viññāṇaṃ catutthaṃ. Ime kho, bhikkhave, cattāro āhārā bhūtānaṃ vā sattānaṃ ṭhitiyā sambhavesīnaṃ vā anuggahāya’’.
4. ‘‘Kathañca, bhikkhave, kabaḷīkāro 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bhikkhave, dve jāyampatikā [jayampatikā (sī. pī.) ṭīkā oloketabbā] parittaṃ sambalaṃ ādāya kantāramaggaṃ paṭipajjeyyuṃ. Tesamassa ekaputtako piyo manāpo. Atha kho tesaṃ, bhikkhave, dvinnaṃ jāyampatikānaṃ kantāragatānaṃ yā parittā sambalamattā, sā parikkhayaṃ pariyādānaṃ gaccheyya. Siyā ca nesaṃ kantārāvaseso anatiṇṇo. Atha kho tesaṃ, bhikkhave, dvinnaṃ jāyampatikānaṃ evamassa – ‘amhākaṃ kho yā parittā sambalamattā sā parikkhīṇā pariyādiṇṇā [pariyādinnā (syā. kaṃ.)]. Atthi cāyaṃ kantārāvaseso anittiṇṇo [anitthiṇṇo (syā. kaṃ.), anatiṇṇo (ka.)]. Yaṃnūna mayaṃ imaṃ ekaputtakaṃ piyaṃ manāpaṃ vadhitvā vallūrañca soṇḍikañca karitvā puttamaṃsāni khādantā evaṃ taṃ kantārāvasesaṃ nitthareyyāma, mā sabbeva tayo vinassimhā’ti. Atha kho te, bhikkhave, dve jāyampatikā taṃ ekaputtakaṃ piyaṃ manāpaṃ vadhitvā vallūrañca soṇḍikañca karitvā puttamaṃsāni khādantā evaṃ taṃ kantārāvasesaṃ nitthareyyuṃ. Te puttamaṃsāni ceva khādeyyuṃ, ure ca paṭipiseyyuṃ – ‘kahaṃ, ekaputtaka, kahaṃ, ekaputtakā’ti.
5.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e davāya vā āhāraṃ āhāreyyuṃ, madāya vā āhāraṃ āhāreyyuṃ, maṇḍanāya vā āhāraṃ āhāreyyuṃ, vibhūsanāya vā āhāraṃ āhāreyyu’’nti? ‘‘No hetaṃ, bhante’’. ‘‘Nanu te, bhikkhave, yāvadeva kantārassa nittharaṇatthāya āhāraṃ āhāreyyu’’nti? ‘‘Evaṃ, bhante’’. ‘‘Evameva khvāhaṃ, bhikkhave, kabaḷīkāro 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Kabaḷīkāre,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pañcakāmaguṇiko rāgo pariññāto hoti. Pañcakāmaguṇike rāge pariññāte natthi taṃ saṃyojanaṃ yena saṃyojanena saṃyutto ariyasāvako puna imaṃ lokaṃ āgaccheyya.
6. ‘‘Kathañca, bhikkhave, phass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bhikkhave, gāvī(소) niccammā(가죽이 벗겨진) kuṭṭaṃ ce [kuḍḍañce(벽. 담장) (sī. syā. kaṃ. pī.)] nissāya(의지해서) tiṭṭheyya. Ye kuṭṭanissitā pāṇā te naṃ khādeyyuṃ. Rukkhaṃ ce nissāya tiṭṭheyya, ye rukkhanissitā pāṇā te naṃ khādeyyuṃ. Udakaṃ ce nissāya tiṭṭheyya, ye udakanissitā pāṇā te naṃ khādeyyuṃ. Ākāsaṃ ce nissāya tiṭṭheyya, ye ākāsanissitā pāṇā te naṃ khādeyyuṃ. Yaṃ yadeva hi sā, bhikkhave, gāvī niccammā nissāya tiṭṭheyya, ye tannissitā [ye tannissitā tannissitā (sī. syā. kaṃ. pī.)] pāṇā te naṃ khādeyyuṃ. Evameva khvāhaṃ, bhikkhave, ‘‘phass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Phasse,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tisso vedanā pariññātā honti. Tīsu vedanāsu pariññātāsu ariyasāvakassa natthi kiñci uttarikaraṇīyanti [uttariṃkaraṇīyanti (sī. pī.)] vadāmi.
7. ‘‘Kathañca , bhikkhave, manosañcetan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 bhikkhave, aṅgārakāsu sādhikaporisā puṇṇā aṅgārānaṃ vītaccikānaṃ vītadhūmānaṃ. Atha puriso āgaccheyya jīvitukāmo amaritukāmo sukhakāmo dukkhappaṭikūlo. Tamenaṃ dve balavanto purisā nānābāhāsu gahetvā taṃ aṅgārakāsuṃ upakaḍḍheyyuṃ. Atha kho, bhikkhave, tassa purisassa ārakāvassa cetanā ārakā patthanā ārakā paṇidhi. Taṃ kissa hetu? Evañhi, bhikkhave, tassa purisassa hoti – ‘imaṃ cāhaṃ aṅgārakāsuṃ papatissāmi, tatonidānaṃ maraṇaṃ vā nigacchām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Evameva khvāhaṃ, bhikkhave, ‘manosañcetan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Manosañcetanāya,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tisso taṇhā pariññātā honti. Tīsu taṇhāsu pariññātāsu ariyasāvakassa natthi kiñci uttarikaraṇīyanti vadāmi.
8. ‘‘Kathañca, bhikkhave, viññāṇ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bhikkhave, coraṃ āgucāriṃ gahetvā rañño dasseyyuṃ – ‘ayaṃ te, deva, coro āgucārī, imassa yaṃ icchasi taṃ daṇḍaṃ paṇehī’ti. Tamenaṃ rājā evaṃ vadeyya – ‘gacchatha, bho, imaṃ purisaṃ pubbaṇhasamayaṃ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ṃ pubbaṇhasamayaṃ sattisatena haneyyuṃ. Atha rājā majjhanhikasamayaṃ evaṃ vadeyya – ‘ambho, kathaṃ so puriso’ti? ‘Tatheva, deva, jīvatī’ti. Tamenaṃ rājā evaṃ vadeyya – ‘gacchatha, bho, taṃ purisaṃ majjhanhikasamayaṃ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ṃ majjhanhikasamayaṃ sattisatena haneyyuṃ. Atha rājā sāyanhasamayaṃ evaṃ vadeyya – ‘ambho, kathaṃ so puriso’ti? ‘Tatheva, deva, jīvatī’ti. Tamenaṃ rājā evaṃ vadeyya – ‘gacchatha, bho, taṃ purisaṃ sāyanhasamayaṃ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ṃ sāyanhasamayaṃ sattisatena haneyyuṃ. Taṃ kiṃ maññatha , bhikkhave, api nu so puriso divasaṃ tīhi sattisatehi haññamāno tatonidān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iyethā’’ti? ‘‘Ekissāpi, bhante, sattiyā haññamāno tatonidān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iyetha; ko pana vādo tīhi sattisatehi haññamāno’’ti! ‘‘Evameva khvāhaṃ, bhikkhave, viññāṇ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Viññāṇe,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nāmarūpaṃ pariññātaṃ hoti, nāmarūpe pariññāte ariyasāvakassa natthi kiñci uttarikaraṇīyanti vadāmī’’ti. Tatiya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