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악한 생각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Dutthatthakasutta] (*1)
『숫따니빠따』, 제4품 ‘여덟 게송(Aṭṭhaka-Vagga)’ 중의 3. 사악한 생각에 대한 여덟 게송의 경
1. [세존] “사악한 생각으로 남을 비방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진실이라고 믿으며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는 비방이 생겨나더라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자는 어디에도 장애가(*2) 없다.
2. 욕망에 끌리고 좋아하는 것에 붙들린다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 완전한 것이라고(*3) 완결지어 아는 것처럼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사람이 묻지도 않는데, 남에게 자신의 계율과 맹세를 말하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그를 두고 선한 사람들은 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4. 평안하고 완전히 고요해져서 비구가 ‘나는 이러하다’고 계행에 대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파도(貪瞋痴, 자만, 번뇌, 견해, 번뇌, 악행)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를 두고 착하고 건전한 사람들은 고귀한 님이라고 말한다.
5. 청정하지 못한 교리를 도모하고 구성하고 선호하면서, 자기 안에서 그 공덕을 본다면, 그야말로 불안정한 평안에(*4) 의존하는 것이다.
6. 견해에 대한 집착은 참으로 뛰어넘기 어려우니, 생각을 깊이 하더라도 독단을(*5) 고집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러한 집착 안에서 독단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6) 한다.
7. 청정한 님은(*7) 이 세상 어디서든 다양한 존재에 대해 허구로 구성된 견해가 없다. 청정한 님이 거짓과 교만(*8)을 버렸다면, 무엇을 가지고 윤회해야 하는가? 그에게 집착이 없다.(*9)
8. 집착이 있는 사람은, 교리에 따라 비난을 받는다(*10) 집착이 없다면, 어떻게 그를 비난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아무 것도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어서(*11) 이 세상에서 그야말로 모든 견해를 떨쳐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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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1) 이것에 해당하는 한역경전은 의족경(義足經)의 수다리경이다. 이교도의 유행녀 순다리(Sundarī)는 동료 수행자의 꼬임에 빠져 저녁에 제따와나로 화환과 향료와 과일을 들고 가곤 했다. 누가 물으면, 부처님의 향실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간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근처의 유행자의 승원에서 잠을 자고는 아침에 제따와나에서 나오는 것처럼 꾸몄다. 며칠 후에 이교도들은 악당을 고용하고 순다리를 살해해서 제따와나 근처의 수풀더미에 버렸다. 그리고는 소동을 일으켜 왕에게 순다리가 행방불명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조사가 이루어져 그녀의 시체가 부처님의 향실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교도들은 시체를 들것에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싸끼야의 비구들이 한 짓을 보라!’고 외치고 돌아다녔다. 그 결과 비구들은 커다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7일 동안 부처님은 탁발을 나가지 않고 향실에 머물렀고, 아난다는 다른 도시로 갈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잘못된 조사 때문에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어리석음을 꾸짖고, 7일 후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며 비구들에게 이 경을 설했다고 한다. 그 후 왕이 첩자를 파견하여 조사하였다. 그리고 술에 취한 이교도 살해자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자 진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주해(*2) ‘탐욕 등의 장애가 없는 것’을 말한다.
주해(*3) ‘스스로 완결지은 사견’을 말한다.
주해(*4) 현세에서의 존경이나 미래의 천상계 등과 같은 존재의 경계에서 얻는 이익을 자기 안에서 보는 것으로 그러한 공덕은 불안정한 평안이다. 그러한 것은 세속적인 평안이다.
주해(*5) ‘62가지 사변적인 견해의 가르침’을 말한다.
주해(*6) 62가지의 사견 속에서 산양의 흉내나, 소의 흉내나, 개의 흉내나, 열기에 몸을 노출시키는 고행이나, 바늘침대에 눕는 고행이나, 사막이나 절벽에서의 고행을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붙잡았다가 버리는 것처럼 취하거나 버리는 것을 말한다.
주해(*7) ‘청정한 법을 갖춘 일체의 악을 제거한 아라한’을 말한다.
주해(*8) ‘자신이 지은 악업을 속이는 기만과 교만에 의해 사도를 행하는 것’ 말한다.
주해(*9) ‘갈애와 견해에 대한 집착이 없으므로 윤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해(*10) 갈애와 견해가 있어서 집착하는 자는 법에 따라서 ‘그는 욕망에 물들었다’ 또는 ‘의지가 약하다’라고 비난 받는다.
주해(*11) ‘버려져야 하는 것이나 놓아버려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주의(常見)도 없고 허무주의(短見)도 없다는 뜻이다. 영원주의에 의해서 취해야할 영원한 실체나 자아도 없고, 허무주의에 의해서 버려져야하는 즉, 죽은 다음에 단멸되는 실체나 자아도 없다는 것이다.
출처:
https://cafe.daum.net/vipassanacenter/42rb/1077
전재성역주 숫타니파타 398-401쪽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