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빠수라에 대한 설법의 경
[Pasurasutta] (*1)
『숫따니빠따』, 제4품 ‘여덟 게송’ 중의 8 빠수라에 대한 설법의 경
1. [세존] “그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며,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집착하는 것만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진리를(*2) 고집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여 집회에 뛰어들어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여기며,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을 착하고 건전한 자라고 하면서, 다른 전제 위에 기초해서 논쟁을(*3) 일삼습니다.
3. 집회에서 논쟁에 참가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패배하면 수치스럽게 여기고, 공격할 것을 찾다가, 비난을 받으면 화를 냅니다.
4. 논쟁의 심판자들이 그가 말한 바에 대해서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 당했다’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비탄해하고 슬퍼하며, ‘그가 나를 짓밟았다’고 울부짖습니다.
5.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 득의와 실의가 엇갈립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칭찬을 얻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6. 대중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말하여 그로 인해 칭찬을 받고, 마음속으로 기대한 바대로 이익을 얻으면, 그 때문에 우쭐하여 기뻐합니다.
7. 우쭐 하다면, 파멸의 장에 들어선 것입니다. 자만하고 교만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아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하고 건전한 님은 그것을 청정이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 용사여, 국왕의 녹을 먹고 사는 용사가 적의 용사를 찾아 포효하듯, 그가 어디에 있건 그곳으로 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싸울만한 것은 존재하지(*4) 않습니다.
9.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여 ‘이것이야말로 진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대는 그들에게 ‘논쟁이 일어나면, 그대와 상대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하십시오.
10. 그러나 한 견해로 다른 견해를 부수지 않고, 적의를 없애고(*5), 유행한다면, 빠수라여,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최상의 것이라 집착한 것이 없는데, 그들에게서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11. 그런데 그대가 정신적으로 견해들을 고집하며 논쟁하고 있으니 청정한 님과 어깨를 겨누지만, 그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 빠수라의 경이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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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에 해당하는 한역 경전은 의족경의 용사범지경이다. 부처님이 사왓티에 계실 때였다. 빠수라라는 유행자가 있었다. 그는 ‘나는 전 인도에서 논쟁의 일인자이다. 그러므로 인도의 표지로 장미사과나무가 있는 것처럼, 나의 표지도 장미사과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머무는 곳에 장미사과나무를 꽂아놓았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도전하려면, 그것을 뽑아버리면 되었다. 그가 사왓티에 왔을 때에 사리뿟따가 그 가지를 보고 치울 것을 명했다. 빠수라는 수행자 고따마의 제일 제자와 논쟁을 하게 된 것에 대하여 쾌재를 부르며 많은 무리를 몰고 사리뿟따의 처소를 찾아 논쟁을 걸었다.
‘사람의 욕망은 무엇인가’
‘사유에 의한 탐욕이 욕망이다’
‘여러 가지 대상을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는가?’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청정 행을 하는 자들은 숲에 머무는가?’
‘그렇다. 숲에 머문다.’
‘그들은 욕망에 대한 사념 등을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이 수행자인가?
‘그들이 재가의 욕망을 향수하는 자들이 아니다.’
‘세상의 다양한 것은 욕망이 아니다. 사유에 의한 탐욕이 욕망이라고 말했다. 불선한 사유를 할 때에 비구들도 욕망을 사유하는 자일 것이다.’
‘그대는 사유에 의한 욕망이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지 않고 다양한 대상이 사람의 욕망이라고 말하는가?’
‘그렇다.’
‘빠수라여, 그대는 스승이 있는가?’
‘있다’
‘그는 시각에 의해 인식되는 형상이라는 대상을 보고 또는 소리라는 대상을 접촉하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대의 스승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재가의 욕망을 향수하는 자일 것이다.’
이것에 대해 반론할 수 없었던 빠수라는 논쟁에서 패하고 사리뿟따야말로 대논사라고 인정했다. 그는 사리뿟따 장로 앞에 출가하여 논쟁술을 배우려고 사왓티로 들어가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제따와나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랄루다인이라는 비구의 황금색 신체를 보고는 ‘이 비구가 대논사이다’라고 생각하여 그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그를 논쟁에서 이기고는 기고만장하여 자신의 표지를 가지고 이교도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수행자 고따마와 논쟁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세존은 만나러 제따와나로 들어올 때, 문 위의 하늘사람들이 그를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는 세존을 찾아뵈었으나 그 앞에 앉아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세존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이경을 설했다.
(*2) 영원주의 등의 견해를 말한다.
(*3) ‘서로 다른 스승에 의존하여 싸우는 것’을 말한다.
(*4) ‘싸움이 번뇌에서 생겨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보리수 하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5) ‘번뇌의 적을 제거하고’의 뜻이다.
출처:
https://cafe.daum.net/vipassanacenter/42rb/1082
전재성 역주, 『쿳다까니까야(小部阿含) 숫타니파타』,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2004, 415-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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