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죽기 전에 경(purābhedasuttaṁ)
아라한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 “어떻게 알고 보아야, 어떻게 실천해야 진실로 고요한 사람(아라한)이라 합니까? 위없는 님께 묻사오니 고따마여,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대답 1] “죽기 전에 갈애가 소멸되어, 앞의 끝에 의지하지 않고, 중간에도 헤아려지지 않고, 나중에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을 고요한 사람이라 한다.
*주: 앞의 끝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고, 나중에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지 않은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중간인 현재에도 헤아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갈애가 있는 사람, 화내는 사람이라고 헤아려지지 않도록, 등록되지 않도록 잘 실천하는 사람을 고요한 사람이라 한다는 의미이다.
[2] 화내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깊이 생각한 다음에 말하고, 산만하지 않은 사람을 나 여래는 고요한 사람이라 한다.
[3]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과거를 슬퍼하지 않고,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동떨어진 것이라고 잘 알고,* 사견에 이끌리지 않는다.
*주: 만난다는 것은 본 것, 들은 것, 닿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이고, 이때 즉시 “봄, 들음, 닿음” 등으로 관찰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관찰하면 대상과 관찰하는 마음이 모두 무상한 것이라고 알게 되고, 나아가서 생겨나서 사라지면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 이런 것들은 자기 성품에 따라서 생겼다가 사라질 뿐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닿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동떨어진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자아도 아니고 더 나아가서 깨끗한 것과도 동떨어진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4] 물러나야 하고,*1 계략을 쓰지 않고,*2 갈망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고, 거칠지 않고,*3 혐오스럽지 않고,*4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1: 물러난다는 것은 선업에 대해서가 아니라 해태와 혼침에서, 즉 게으름, 졸림, 지겨워함 등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꼭 조는 것만이 아니라 망설이는 것, 예를 들어 집중수행 갈까, 말까 하는 것도 포함한다.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탐욕이나 성냄이 생기지 않으면서 물러나는 것이다. 자만이나 질투가 생길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물러나야 한다. 그러려면 관찰해야 한다.
*2: 계략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남이 자신을 높게 생각하도록 꾸미지 않는 것을 말한다.
*3: 거친 것에는 몸, 말, 마음이 거친 것이 있다.
*4: 계를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혐오스런 사람이다.
[5] 좋아할 만한 것에 빠지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부드럽고,*5 지혜로우며,*6 맹신하지 않고,*7 애착을 없애고 있는 상태가 아닌*8 사람이 고요한 사람이다.
*5: 계를 잘 지키면 몸과 말이 부드럽게 되고, 마음이 부드러운 것은 간탐과 증오와 사견이 없는 것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37보리분법이다. 37보리분법을 실천하면 거친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서 마음이 매우 부드럽게 된다.
*6: 지혜는 수행에 관한 지혜만이 아니라 경전에 관한 지혜도 있어야 한다. 위빠사나 수행을 한 사람은 경전을 배우지 않아도 어려운 경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 아무 근거 없이 믿는 것이 맹신이다.
*8: 즉 애착을 다 제거했다는 뜻이다.
[6] 이익을 바라는 마음 없이 배우기에 이익이 없어도 화내지 않는다. 갈애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지도 않는다.
[7] 평온하고, 항상 사띠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자신이 동등하다거나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일체의 파도가*9 없다.
*9: 『숫타니파타』 426쪽에 의하면, 파도(ussadā)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견해, 번뇌, 악행 일곱 가지’를 말한다.
[8]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법을 알아 집착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존재에 대한 갈애도, 비존재에 대한 갈애도 없다.
[9] 감각적 쾌락을 원하지 않는 그를 나는 고요하다고 한다. 그에게는 매듭이 존재하지 않고, 이미 모든 애착을*10 뛰어 넘었다.
*10: 위의 책 426쪽에 의하면, 애착이란 존재의 향수에 대한 갈애를 말한다.
[10]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재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11 찾아볼 수 없다.
*11: 위의 책 427쪽에 의하면, 얻은 것은 자아에 대한 견해[영원주의(상견)]에 속함], 얻지 못한 것은 허무주의(단견)를 말한다.
[11] 보통 사람들과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이 하는 비난을 싫어하거나 좋아함이 그에게 없다. 그는 말 많은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다.
[12] 탐욕이 없어 인색하지 않으며, 우월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열등하다고 성자는 말하지 않는다. 잣대를 걷어내 허구에*12 떨어지지 않는다.
*12: 위의 책 『숫타니파타』 427쪽에 의하면, 허구(kappaṁ)란 ‘갈애의 허구, 견해의 허구’를 말한다.
[13] 그에게는 이 세상에 자신의 것이 없고, 자신의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는 어떤 현상에도 이끌리지 않으니 참으로 고요하다고 한다.”
참고자료 :
① 우 또다나 사야도 법문. 우 담마간다 스님 통역, 강릉 인월사 집중수행법문, 2010/10/24-10/29.
② 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2004, 424-4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