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큰 전열의 경-사유하는 자
Mahāviyūha sutta
1. [질문자]
“누구든지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이다’라고 주장한다면,(*1)
그들은 모두 비난을 받습니까?
또는 그 때문에 칭찬도 받습니까?
2. [세존]
“그것은 보잘 것 없어 평안의 가치가 없으니,
그 논쟁의 결과는 단지 두 가지라고(*2) 나는 말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논쟁이 없는 경지를(*3) 안온으로 알아서
논쟁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3. 일반 모든 사람들이 갖는 세속적인 것이 어떠한 것이든,
현명한 사람은 그 모든 것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보이고 들린 것에 환호하지 않아 집착하는 일이 없는데,
무엇을 집착할 것입니까?
4. 계행을 최상으로 삼아 자제하는 것으로 청정해진다고 말하며,
스스로 맹세를 세워 거기에 집착하는, 소위 현명하다고 하는 자들은
‘이것만을 공부하자. 그러면 아마도 청정해질 것이다’라고
존재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5. 그러나 계행이나 맹세를 어겨서 일에 실패하면, 동요합니다.
카라반을 잃고 집을 떠난 자처럼,
거기에 청정이 있으리라 열망하고 갈망합니다.
6. 계행이나 맹세도 버리고,
죄과가 있든 없든(*4) 이 모든 업을 버리고,
청정이나 부정도(*5) 구하는 바도 없이,
적멸을 수호하며(*6) 탐착 없이 유행하십시오.
7. 혐오스러운 고행에 의존하거나
혹은 보고 듣고 인식한 것에 의존하여,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은 날아오름에 의해(*7) 청정을 부르짖습니다.
8. 참으로 구하는 바가 있다면 욕망하고(*8),
도모하는 바가 있을 때는 두려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사람,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느 곳을 바랄 것입니까?
9. [질문자]
“어떤 사람들은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천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 모두가 현명한 사람들이라 불리는데,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 참다운 주장입니까?
10. [세존]
“자기의 가르침을 완전하다 말하고,
그러나 남의 가르침은 천박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다투며 논쟁합니다.
저마다 자기 의견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11. 남에게 비난 받고 있기 때문에 천박하다면,
가르침 가운데 어떠한 것도 탁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고,
남의 가르침은 저열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자기가 걸어가는 길을 스스로 칭찬하듯,
그들은 자기의 가르침을 기립니다.
그들에게 각자의 이론이 청정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이 진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 거룩한 님들에게는 남들에 의해 이끌려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가르침들에 독단하여 집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가르침을 특별하다고 보지도 않기 때문에,
그들은 논쟁을 초월해 있습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안다. 나는 본다. 이것은 이렇다’라고
견해를 통한 청정에 빠집니다.
비록 그가 보았으나 그것이 그에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들은 한계를 넘어(*9) 다른 수단을 통해 청정을 주장합니다.
15. 보는 사람은 명색만을 보는 것인데,
보고 나서는 바로 그것들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많든 적든 원하는 대로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통한 청정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16. 참으로 고집하여 말하는 사람은 이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지어낸 견해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존하는 것만이 청정하다고 말하는 자는
거기에서 진리를 보았다고 청정에 대해 말합니다.
17. 거룩한 님은 성찰하여 허구에 이르지 않습니다.(*10)
견해에 흐르지 않고 지식에도 묶이지 않습니다.
범속한 모든 세속적인 진리를(*11) 알고,
남들은 거기에 집착하지만, 그는 평정을 누립니다.
18.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 결박을 풀고,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한쪽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하고 있지만, 집착하지 않으면서,
불안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고요하게 평정을 누립니다.
19. 지나간 번뇌는 버리고 새로운 것은 만들지 않으며,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독단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현명한 님은 모든 견해를 벗어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자신을 꾸짖는 일도 없습니다.
20. 그는 보고 듣고 인식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성자는 짐을 내려놓아 완전히 해탈했습니다.
그는 분별이 없고, 싫어함이 없고,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
주해(*1) MN.Ⅱ.164의 「짱끼의 경(Cankīsutta)」을 보라
부처님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믿음이라는 종교적인 지식이나, 전승이라는 역사적 지식, 만족이라는 주관적인 지식, 형상의 분별이라는 자연과학적인 지식, 견해의 이해라는 인문과학적인 지식도 우리의 경험 속에서 조건에 따라 그렇게 확인 되는 것이지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주해(*2) ‘비난과 칭찬, 승리와 패배’를 말한다.
주해(*3) 열반을 말한다.
주해(*4) ‘모든 악하고 불건전한 것과 세속적인 착하고 건전한 것’을 말한다.
주해(*5)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종류 등을 부수는 것이 청정이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부수는 것이 부정이다.
주해(*6) ‘견해를 붙잡지 않고’의 뜻이다.
주해(*7) ‘무작론(無作論)에 의한 비상(飛翔)’을 말한다. 무작론은 도덕 부정론자인 깟싸빠의 주장으로, 불교적인 연기사상을 부정하고, 절대적인 우연론으로 무인론(無因論)을 주장하였다. 애초부터 인과 관계라는 것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에 있어서도 도덕적 책임감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깟싸빠가 윤리적인 삶을 부정하는 무작설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주해(*8) 갈애를 떠나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자도 여러 가지 존재에 대한 갈애를 떠난 것은 아니다.
주해(*9) ‘고귀한 길을 벗어나서’라는 뜻이다.
주해(*10) ‘헤아림으로 알고 갈애의 범주나 견해의 허구에 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해(*11) ‘견해들’을 말한다.
참고:
https://cafe.daum.net/vipassanacenter/42rb/1087
전재성 역주, 쿳다까니까야 (小部阿含) 『숫타니파타』” (제4품 여덟 게송의 품),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2004, 438-444쪽.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