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비유 경(M22)
Alagaddūpama Sutta
https://cafe.daum.net/vipassanacenter/MhEB/162
~ https://cafe.daum.net/vipassanacenter/MhEB/166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법문의 배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이런 아주 나쁜 견해[惡見]이 생겼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많은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고깃덩이 비유로… 건초 횃불의 비유로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칼과 쇠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4. 그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 없자 세존을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나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러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저희들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는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가 없어이 사실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불러오라.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을 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제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6. "쓸모없는 자여,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고깃덩이 비유로 …건초횃불의 비유로 … 숯불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쇠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에게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7.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의] 열기가 있다(usmī-kata)고(*1)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세존께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아주 나쁜 견해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비구들에게 물어보겠다."
8.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내가 설한 법에 대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자기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장하게도 그대들은 내가 설한 법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구나.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자신이 스스로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그것은 그 쓸모없는 인간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9.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감각적 욕망없이 감각적 욕망의 인식없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일으킨 생각 없이 감각적 욕망에 탐닉할 것이다.'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2)
(*1) “마치 큰 불무더기가 꺼지더라도 반딧불 정도의 불씨에 남아있어, 그것으로 다시 큰 불무더기를 얻을 수 있듯이, 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지혜의 열기(ñāṇ-usmā)가 있어, 그것을 의지하여 정진할 때도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있는 자에게
어떻게 그와 같은 지혜의 열기가 있겠습니까?”(MA.ⅱ.104)
(*2) “어떠한 비구라도 장애가 되는 법들을 수용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있는 자가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kilesa-kāma)과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인식과 일으킨 생각(saññā-vitakkā)없이, 이 법들을 버리고, 이 법들이 없이, 대상으로서의감각적 욕망(vatthu-kāma)에 탐닉하고, 성행위(methuna-samācara)에 빠진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말씀이다.”(MA.ⅱ.105)
뱀의 비유
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미증유법‧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1)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2)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 “다른 이들의 교리에 결점(dosa)을 제기하는 이점 때문에교 리를 배우고,
다른 이들이 자기의 교설(vāda)에 대해 결점을 제기하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그 결점에서 벗어날 것(pamokkha)이라는 이유 때문에 교설을 배운다는 말이다.(MA.ⅱ.106~107)
(*2) “선남자들이 법을 배우는 것은 도(magga)와 과(phala)를 얻기 위함인데,
법을 잘못 파악한 자들은 그 도와 과를 체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MA.ⅱ.107)
이처럼 주석서는‘궁극의 의미(attha)’를도와 과로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다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을 염소발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르고 그런 다음 그 뱀의 머리를 잘 붙잡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뱀이 비록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몸통으로 휘감겠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그 사람이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이 내 가르침의 뜻을 잘 이해하거든 그대로 잘 호지하라.
그러나 내 가르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나에게 다시 묻거나 현명한 비구들에게 물어보아라.”
뗏목의 비유
1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하리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보았다 하자.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3)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그는 생각한다.
'이 강은 참으로 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참으로 나는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
그리하여 그 사람은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것이다.
강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내가 갈 곳으로 가야겠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다 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땅에 내려놓거나 물에 띄워놓고 내가 갈 곳을 가리라.'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자가 참으로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14. "비구들이여, 뗏목에 비유하여 그대들에게 설한 법을(*4) 이해하는 자들은
법도 버려야 하거늘(*5)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3) “‘위험한(sāsanka)’이란것은도둑들이 머무는 곳이 보이고,
서 있는 곳, 앉아있는 곳, 누워 있는 곳이 보이는 것이고,
‘두려운(sappaṭibhaya)’이란 것은 그곳에서 도둑들에 의해
사람들이 죽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MA.ⅱ.109)
(*4) 또 다른 뗏목의 비유는 「독사 경」(S35:238) §§7~9에 나타나고
이 비유에 대한 설명은 그곳 §§16~21에 나타난다.
이 경 §19에서 부처님께서는 뗏목을 팔정도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dhammāpi pahātabbā)’에서
법들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말한다.
세존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해서도
그 열정과 욕망(chanda-rāga)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사마타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 초선을 … 제2선을 … 제3선을 … 제4선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우다이여, 그러나 이것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버려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넘어서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본서 제2권 「메추라기 비유 경」(M66) §§26~33)
그러면 어디에서 위빳사나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본서 제2권 「갈애 멸진의 긴 경」(M38) §14)
그러나 여기서는 둘 모두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하시면서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dhammāpi vo pahatabbā pageva adhammā)’라고하신 것이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와 같이 고요하고 수승한(santa-ppaṇītā)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법들에 대해서도 욕망과탐욕을버릴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물며 천하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성행위에 빠지게 하는 비법(asaddhamma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 미혹하여 결점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niddosa-saññī) 아릿타는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릿타처럼 그대들은 나의 교법(sāsana)에 진흙이나 쓰레기를 던지지 말라고
세존께서 이 교계(ovāda)로 아릿타를 꾸짖으셨다.“(MA.ⅱ.109)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석서는 법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해석하고 있지
법 자체를 버리라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법들도 버려야 한다. 는 부처님 말씀은 도덕적 허무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선과 악을 초월했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번뇌가 멸한 비구, 즉 아라한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쌓아두고 즐기기라는 다섯 가지를 범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본서 「산다까 경」(M786) §51을 참조하기 바란다.
초기불교에 관한 한 무애도인의 막행막식 따위는 그 어디에도 발붙일 틈이 없다.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
15.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diṭṭhi-tthāna)(*1)가 있다. 무엇이 그 여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못하여
①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2)
②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③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④심리현상들[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⑤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⑥'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16.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①물질을 두고'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3)
②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③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④심리현상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⑤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⑥'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17. "그와 같이 관찰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4)
(*1)“‘견해의 토대(diṭṭhi-tthāna)라고 하셨다.
여기서 견해(diṭṭhi)도 견해의 토대이고, 견해의 대상(diṭṭhiyā ārammaṇa)도 견해의 토대이고,
견해의 조건(diṭṭhiyā paccaya)도 견해의 토대이다.”(MA.ⅱ.110)
(*2)“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다(etaṃ mama).’라는 것은 갈애에 의한 움켜쥠(taṇhā-ggāha)이고,
‘이것은 나다(eso’hamasmi).’라는 것은 자만에 의한 움켜쥠(māna-ggāha)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eso me atta).’라는 것은 견해에 의한 움켜쥠(diṭṭhi-ggāha)이다.
이와 같이 물질의 대상들(rūp-ārammaṇa)에 대해 갈애와 자만과 견해를 설하셨다.
느낌 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MA.ⅱ.110)
물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이러한 관념은
허황된 생각[空想, maññanā]과 사량분별(papañca)의 뒤에 엄청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윤회의 동력임이 분명하다.
(*3)“밝은 쪽(sukka-pakkha)에 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n’etaṃ mama)’라는 것은
물질에 대해 갈애와 자만과 견해에 의한 움켜쥠을 버린 것(paṭikkhittā)이다.
‘여긴다(samanupassati)’는 것은본다, 관찰한다는 뜻으로 갈애에 기인한 것, 자만에 기인한 것,
사견에 기인 한 것, 지혜(ñāṇa)에 기인 한 것의 네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 중에 앞의 세 가지는 어두운 쪽(kaṇha-pakkha)에 있고,
지혜에 기인한 것은 밝은 쪽에 있다고 알아야 한다.”(MA.ⅱ.111)
(*4)“‘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asati na paritassati).’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에 의한 번민(bhaya-paritassanā)이나
혹은 갈애에 의한 번민으로 번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MA.ⅱ.111)
번민
18. 이와 같이 설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5)번민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19. "세존이시여, 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는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bahiddh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20. "세존이시여,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들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行]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放棄],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離慾], 소멸하고[滅],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21. "세존이시여,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없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6)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 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인 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에게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ajjhatta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
(*5) 주석서는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bahiddhā asati)’이란
밖의 필수품(parikkhāra)이왕이나 도둑이나 물이나 불에 의해
파괴되는 것(vināsa)을 뜻한다고설명하고 있다.(MA.ⅱ.111)
(*6)“‘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을 가라앉히고(sabba-saṅkhāra-samathāya)’라고 하셨다.
열반을 얻으면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의 흔들림(iñjitāni), 모든 형성된 것들의 동요(calanāni),
모든 형성된 것들의 움직임(vipphanditāni)이 가라앉고(sammanti) 고요해진다(vūpasammanti).
그러므로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들[有爲]이 가라앉은 것 [즉 무위(無爲)]라 한다.
그 열반을 얻으면무더기라는재생의 근거(khandh-ūpadhi),
오염원이라는 재생의 근거(kiles-ūpadhi),
업 형성력이라는재생의 근거(abhisaṅkhār-ūpadhi),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라는재생의 근거(pañca-kāmaguṇ-ūpadhi) 등
이러한 재생의 근거들이 내버려지고, 갈애가 소멸되고, 탐욕이 빛바래고, 소멸한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함
(sabb-ūpadhi-paṭinissagga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이라고 하셨다.”(MA.ⅱ.112)
무상과 무아
2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소유물이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게 된다면 그 소유물을 거머쥘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게 되는 그런 소유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역시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게 되는 그런 소유물을 본 적이 없다."
23. "비구들이여,그대들이 자아에 대한 교리(*1)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에 취착함을 본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에 취착함을 본적이 없다.“
24. "비구들이여, 그대들은그 견해를 의지할 때(*2)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견해를 의지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은 그 견해를 의지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견해를 의지함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그 견해를 의지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견해에 의지함을 본 적이 없다.”
25. "비구들이여, 자아가 있다면 나의 자아에 속하는 것도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자아에 속하는 것이 있다면 나의 자아도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나 자아도 자아에 속하는 것도 진실로 사실로 얻을 수가 없을 때에,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나는 죽은 뒤에도항상할 것이고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견해의 토대는
전적으로 완전히어리석은 법이 아니겠는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것은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입니다.",
26.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27.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야 한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그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야 한다."
2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물질에도염오하고(*3)
느낌에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도 염오한다."
29. "염오하면서탐욕이 빛바랜다. 탐욕이 빛바래므로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지혜가 생긴다.(*4)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5)
(*1) 여기서 ‘자아에 대한 교리’는 atta-vāda를 직역한 것이다.
주석서는 20가지로 구성된 유신견(vīsati-vatthuka sakkāya-diṭṭhi)이
바로 자아에 대한 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MA.ⅱ.112)
(*2) ‘견해에 의지함’은diṭṭhinissay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범망 경」(D1)에 나타나는 62가지 견해가바로 견해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가지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sakkāya-diṭṭhi]를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함(attavād-upādāna)으로 설명하신 뒤에,
이제 유신견에서 생겨나는 62가지 견해(dvasaṭṭhi-diṭṭhi)를
여기서 ‘견해에 의지함’이라고 말씀하신다.”(MA.ⅱ.112)
(*3) ‘염오하다’로옮긴 원어는 nibbindati인데, 이것의 명사형인 nibbidā는 여러 곳에서 ‘염오’로 번역되는 술어이다.
주석서는 “여기서 nibbidā는 [도의] 출현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를 말한다.”(MA.ⅱ.114)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상윳따니까야 주석서』 등 다른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염오를 설명한다.
“‘염오(nibbidā)’란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강한 위빳사나란[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 가운데]
④공포의 지혜(bhayat-ūpaṭṭhāne ñāṇa), ⑤위험을 관찰하는 지혜(ādīnava-anupassane ñāṇa),
⑦해탈을 원하는 지혜(muñcitukamyatā-ñāṇa), ⑨상카라[行]에 대한 평온의 지혜(saṅkhār -upekkhā-ñāṇā)의
네 가지 지혜와 동의어이다.”(SA.ⅱ.53) (「의지처 경」(S12:23) §4에 대한 주석)
(*4)“‘탐욕이 빛바랜다(virāga).’라는 것은 도(magga)를 말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통해서‘해탈한다(vimuccati).’는것은 과(phala)를 말한 것이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는 것은
반조(paccavekkhaṇā)를 말한 것이다.”(MA.ⅱ.115)
(*5) 본경 §§26~29에 나타나는 ①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기 ② 무상 · 고 · 무아
③ 염오 ④ 이욕 ⑤ 해탈 ⑥ 구경해탈의 정형구는 니까야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탈 · 열반을 실현하는 여섯 단계의 과정이다.
아라한
30.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빗장을 밀어제친 자, 도랑을 가득 채운 자,
기둥을 뽑아 버린 자, 걸쇠를 푼 자라고도 하고,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를 벗어난 성자라고도 한다."
31. "비구들이여,어떻게 비구가빗장을밀어제친 자가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무명을 제거하고,(6)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빗장을 밀어제친 자가 된다.“
32. "비구들이여, 어떻게비구가 도량을 가득 채운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다주는태어남의 형성력을 제거하고,(*7)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멸절시켜,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도랑을 가득 채운 자가 된다."
33. '비구들이여,어떻게 비구가기둥을 뽑아버린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여기 비구가 갈애를 제거하고(*8)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기둥을 뽑아버린 자가 된다."
34. "비구들이여, 어떻게비구가 걸쇠를 푼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고,(*9)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걸쇠를 푼 자가 된다.“
35.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깃발을 거두었고짐을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성자가(*10)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나라는 자만(*11)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줄기만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가 된다."
3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를
인드라나 브라흐마나 쁘라자빠띠를 포함한 신들이 찾으려고 해도
'여래의 알음알이(*12)는 이것에 의지해 있다.'라고 파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여래를 지금‧여기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13)
(*6)“‘빗장을 밀어제친 자(ukkhitta-paligha)’라고 하셨다.무명은 윤회의 뿌리이다.
이것을 밀어제치기가 힘들다는 뜻에서 빗장(ukkhitta)이라고 부르고
그가 이것을 밀어제쳤기 때문에 빗장을 밀어제친 자라고 한다.”(MA.ⅱ115)
(*7) 여기서‘태어남의 형성력’은jati-saṅkhār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것을 업형성력(kamma-abhisaṅkhār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8) “‘기둥을 뽑아버린 자(abbhūḷhesika)’라고 하셨다.
윤회의 뿌리인 갈애는 깊이 들어가 있다는 뜻에서 기둥(esikā)이라 부른다.
그가 그것을 뽑아버리고 끌어내고 끊어버렸기 때문에
기둥을 뽑아버린 자라고 한다.”(MA.ⅱ116)
(*9)“‘걸쇠를 푼 자(niraggaḷa)’라고 하셨다.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은 욕계에 재생하는 조건들이다.
이들은성문의 걸쇠처럼 마음을 닫고 머물기 때문에 걸쇠(aggaḷa)라 부른다.
그가 그들을 던져버리고 부수었기 때문에 걸쇠를 푼 자라고 한다.”(MA.ⅱ116)
(*10)“‘성자(ariya)’란오염원이 없는 청정한 자를 말한다.
‘깃발을 거두었다’는 것은 자만의 깃발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짐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무더기의 짐과 오염원의 짐과 업형성력의 짐과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의 짐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내려앉았기 때문에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속박에서]벗어났다.’는것은 네 가지 속박과 모든 오염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만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벗어났다’는 말이다.(MA.ⅱ116)
네 가지 속박은 감각적 욕망의 속박(kāma-yoga), 존재의 속박(bhava-yoga),
사견의 속박(diṭṭhi-yoga), 무명의 속박(avijjā-yoga)이다.
주석서는 속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윤회에 속박시킨다고 해서 속박이라 한다.
여기서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으로 된 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다.
색계와 무색계존재에 대한 욕탐이‘존재의 속박’이니, 禪을 갈구하는 것이다. 영
원하다는 견해와 함께하는 욕망과 62가지 견해가 ‘견해의 속박’이다.
사성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무명의 속박’이다.“(AA.ⅲ.13)
(*11) “‘나라는 자만(asmi māna)’이란 물질에 대해 ‘나다’라는 자만과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에 대해 ‘나다’라는 자만을 말한다.”(MA.ⅱ116)
(*12) “‘여래의 알음알이(tathāgatassa viññāṇa)’에서
[여래로 옮긴] 따타가따(tathāgata)는 일반적으로 세존을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중생(satta), 여래(tathāgata), 번뇌다한 최상의 인간(uttama-puggala khiṇāsava)을 뜻하기도 한다.”(MA.ⅱ.117)
(*13) “‘알 수가 없다(ananuvijja)’는 것은① 알려지지가 않는다,② 혹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tathāgata를 중생으로 취할 때는 알려지지가 않는다는 뜻이 적합하고,
번뇌 다한 자로 취할 때에는 알 수가 없다는 뜻이 적합하다.
① 이 중에서 첫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지금 현재 살아있는 번뇌 다한 이도 여래, 중생,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생연결식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번뇌 다한 자를 어찌 중생이라고 인간이라고 말하겠는가?
여래는 추적할 수가 없다(ananuvijja). 궁극적인 뜻(paramattha)에서 중생이라고 이름할 자는 없기 때문이다.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의지하여 알음알이가 있다.’라고 찾아보지만 어떻게 찾겠는가?’
② 두 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번뇌 다한 자가 지금 현재 살아있더라도 그의 알음알이를 인드라 등이 추적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드라나 브라흐마나 쁘라자빠띠를 포함한 신들은 번뇌 다한 이의 위빳사나의 마음이나
도의 마음이나 과의 마음을 찾으려고 해도 ‘이 대상을 의지해서 있다.’라고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재생연결식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자를 알겠는가?”(MA.ⅱ.118)
여래에 대한 잘못된 비난
37. "비구들이여, 이렇게 설하고 이렇게 선언하는 나를 두고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이 헛되이 거짓으로 사실과는 다르게 비난한다.
'사문 고따마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고,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허무를 선언한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를 두고 그 사문 ‧ 바라문들이 근거 없이 헛되이 거짓으로 사실과는 다르게 비난하여
'사문 고따마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고,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허무를 선언한다.'라고 하는데,나는 그렇게 하지도 않고 그렇게 설하지도 않는다."(*1)
38. "비구들이여, 예나 지금이나나는 괴로움을 천명하고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한다.(*2)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다른 이들이(*3)여래를 헐뜯고 비난하고 비방하더라도
여래는 성가셔하거나 낙담하거나 마음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더라도
여래는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마음으로 득의만면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
여래는'단지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을 두고거기에 대해
그들이 이러한 존경을 행하는 것이다.'라고(*4)여길 뿐이다."
39.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헐뜯고 비난하고 비방하더라도
그대들은 성가셔하거나 낙담하거나 마음으로 싫어하지 마라.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더라도
그대들은 기뻐하지 말고 즐거워하지 말고 마음으로 득의만면하지 마라.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
그대들도 '단지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을 두고 거기에 대해
그들이 이러한 존경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여겨라.".
(*1) “‘그렇게 하지도 않고 그렇게 설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문 ‧ 바라문들이 근거 없이 헛되이 '사문 고따마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고,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허무를 선언한다.'라고 하는데,
나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지도 않고,
또 살아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멸을 선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MA.ⅱ.118)
(*2) “‘예나(pubbe ca)’라는것은 아직 법을 설하지 않고 대보리좌에 머물 때에나[라는 말이고]
‘지금이나(etarahi ca)’라는 것은 법을 설하는 지금이나 라는 뜻이다.
이 말은 아직 법륜을 굴리지 않고 보리좌에 머물 때에도,
법륜을 굴리기 시작하여 법을 설할 때에도, 오직 사제(四諦)를 천명한다는 말씀이다.
여기 괴로움(dukkha)을 언급함으로써 그것의 뿌리가 되는 일어남도 알아야 하고,
소멸을 언급함으로써 그것을 성취하게 하는 도(magga)eh 언급되었다고 알아야 한다.”(MA.ⅱ.118)
(*3) “‘이것에 대해(tatra)’란 것은 사성제를 천명한 것에 대해서란 말이고,
‘다른 이들(pare)’이란그 사성제를 알 수도 통찰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MA.ⅱ.118)
(*4)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은pubbe pariññātaṃ을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전에 철저히 안 것(pubbe pariññātaṃ)’은 이전에 보리좌에서
세 가지 통달지로 철저하게 안 다섯 가지 무더기를 말한다.”(MA.ⅱ.118)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비록 다른 이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더라도
여래는 이러한 존경 등이 나를 향해 행해진다거나 내가 이것을 향수한다고 여기지 않으신다.
전에 철저하게 안 다섯 가지 무더기에게 이러한 존경이 행해지고,
바로 그 다섯 가지 무더기가 이런 존경을 향수한다고 여기실 뿐이다.”(MA.ⅱ.118)
그대들 것이 아님
40. "비구들이여, 그러므로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심리현상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41.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제따 숲에서 어떤 사람이 풀이나 나무토막이나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가져가거나 태우거나
그것으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그대들은 이 사람이 우리를 가져간다든지 태운다든지
우리를 가지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것은 저 자신도 아니고, 제게 속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6)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그대들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7)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그러면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5) “자기 것이 아닌 것에 대해 욕망과 탐욕(chanda-rāga)을 버리는 것은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MA.ⅱ.119)
(*6) “‘그것은 저 자신도 아니고(na hi no etaṃ attā vā)’라는 것은
‘이런 풀이나 나무토막이나 나뭇가지나 나뭇잎은 저 자신(att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저의 물질도 아니고, … 알음알이도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제게 속한 것(attaniya)’이라는 것은 나의 옷 등의 필수품을 말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MA.ⅱ.119)
(*7)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na tumhākaṃ taṃ pajahatha).’라고 하셨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는 그들의 것이 아님을 보이시면서 버릴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온은 부수어버릴 수도, 끌어낼 수도 없다.다만 그것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제거함으로서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시다.”(MA.ⅱ.119)
잘 설해진 법
4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고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존재의 족쇄를 부수었고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들의 윤회는 알려지지 않는다.[阿羅漢]"(*9)
4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제거한 비구들은모두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는 돌아오는 법이 없다.[不還者]"
4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진 비구들은
모두 한 번만 돌아올 자[一來]들이어서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一來者]"
4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한 비구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預流]들이어서[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預流者]"
4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법을 따르고 믿음을 따르는(*10)비구들은 모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4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내게 믿음이 깊고 나를 좋아하는(*11)그들 모두는 천상으로 향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8) “‘군더더기 없이(chinna-pilotika)’라고 하셨다.
여기서 군더더기(pilotika)란 찢어지고 헐어서 여기저기 꿰매어 붙인 낡은 헝겊조각을 말한다.
이런 헝겊 조각이 없이 여덟 완척이나 아홉 완척의 새 옷을 입고 있는 자를
군더더기가 없는 자(chinna-pilotiko)’라 한다.
이 법도 그와 같이 찢어지고 헐어서 여기저기 꿰매어 붙인 낡은 헝겊조각과 같은
위선과 속임 등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쓰레기를 군더더기라 부른다.이 교법에 쓰레기 사문은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쓰레기 사문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 법은 군더더기가 없다고 하셨다.(MA.ⅱ.119)
(*9) “‘윤회란 알려지지 않는다.’라고하셨다. 그들의 윤회는 알려지지않은 상태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생은 알려지지않는다. 이런 번뇌 다한 위대한 자는 이와 같이 잘 설해진 교법 속에서만 나타난다.
번뇌 다한자처럼 불환자 등도 그와 같다.”(MA.ⅱ.120)
(*10)“‘법을 따르는 자들(dhamma-anusārino)’과 ‘믿음을 따르는 자들(saddha-anusārino)’의 두 부류는
예류도에 머무는 자들이다.
통찰지의 기능[慧根]이 뛰어나고, 통찰지를 앞세워 성스러운 도를 닦는 자를
‘법을 따르는 자(dhamma-anusārī)’라 부른다.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도닦는 인간을 ‘법을 따르는 자’라 하고
예류과에 머무는 자를 견해를 얻은 자(diṭṭhi-ppatta)라 한다.
믿음의 기능(信根)이 뛰어나고 믿음을 앞세워 성스러운 도를 닦는 자를
‘믿음을 따르는 자(saddhānusārī)’라 부른다.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도닦는 인간을 ‘믿음을 따르는 자’라 하고
예류과에 머무는 자를 믿음으로 해탈한 자(saddhā vimutti)라 한다.”(MA.ⅱ.120)
(*11) “‘내게 믿음이 깊고 나를 좋아하는’이라고 하셨다.
성스러운 도는 아직 없지만 여래에 대한 믿음(saddhā)과 사랑(pema)을 가지고
위빳사나를 닦는 자(vipassaka-puggalā)들을 말한다.
위빳사나를 닦는 비구가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앉을 때 십력을 가진 여래에 대해 사랑과 믿음이 생긴다.
그 믿음과 사랑의 힘에 의해 ‘천상(sagga)’에 머무는 것처럼 여겨진다.
옛적의 장로들은 이런 비구를 작은 예류자(cūla-sotāpanna)라고 하였다.”(MA.ⅱ.120)
뱀의 비유 경(M22)이 끝났다.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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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림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10.20 (*4)“‘탐욕이 빛바랜다(virāga).’라는 것은 도(magga)를 말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통해서 ‘해탈한다(vimuccati).’는 것은 과(phala)를 말한 것이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는 것은
반조(paccavekkhaṇā)를 말한 것이다.”(MA.ⅱ.115) -
작성자금강 작성시간 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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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위말라 작성시간 23.10.25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