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두려움에 얽힌 본생이야기
(Lomahaṁsa jātaka)
[보살 = 사명외도]
출처 : 전재성 역주, 『자타카전서』,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23, 1052~1054쪽.
§A. '말랐을 뿐만 아니라 얼은 채로’라고 하는 이것은 스승께서 베쌀리 시에 있는 빠띠까라마7872) 승원에 계실 때, 쑤낙캇따7873)에 관하여 이야기하신 것이다.
7872) Pāṭikārāma: 베쌀리 시의 승원 이름이다.
7873) Sunakkhatta: 쑤낙캇따(Sunakkhatta)는 승단에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이 그에게 아무런 신통을 보여주지 않고 또한 사실의 시초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단을 떠났다. 그가 승단에 들어오기 전에 부처님이 그에게 설한 경이 쑤낙캇타의 경」(Sunakkhattasutta : MN, 105)이고, 그가 승단을 떠난 것은 「빠띠까의 경』(Pāṭikasutta:DN. 24)에 기록되어 있다.
한때 쑤낙캇따는 스승의 시자로서, 발우와 가사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꼬락캇띠야7874)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어, 부처님의 발우와 가사를 돌려주고, 꼬락캇띠야에게서 지냈다.
7874) Korakkhattiya : 꼬락캇따(Korakkhatta)라고도 하며 웃따락까(Uttarakkhā)에 사는 나형외도로 개처럼 짖고 개처럼 손발로 기어다니고 입으로 음식을 핥아 먹었다.
그는 '깔라깐자까'7875)라는 아수라의 모태에서 태어난, 재가자로서 “수행자 고따마에게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는 원리7876)가 없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지극히 탁월한 삶과 봄이 없다.7877) 수행자 고따마는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자신의 말재주에 따라 추론하여 가르침을 설한다.7878) 그가 그러한 것에 대해 설한 가르침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에 따라서 실천하는 자를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베쌀리 시세 성벽 안쪽에서 스승을 비방하고 다니고 있었다.
7875) Kalakanjakā : 아수라의 신분 가운데서 하층계급으로 흉측하게 생겼다.
7876) uttarimanussadhamma: 상인법(上人法)이라고 한다.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나 선정이나 신통이나 길과 경지 등을 의미한다.
7877) n'atthi samamassa gotamassa uttarim manussadhammā alamariyañānadassanaviseso: 남전9권110의 번역은 단지 '사문구담(沙門罌曇)에게는 인법(人法)을 초월한 특수한 최상의 지견은 없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는(uttarim manussadhammā)'이라는 말은 MN. 9에 따르면, 열 가지 착하고 건전한 행위가 포함된 일반인들의 덕목보다 높은 도덕적인 성취를 말한다. 고귀한 님이 갖추고 있는 앎과 봄에 대한 지극한 탁월함 (alamariyarianadassanaviseso)은 고귀한 개인에게 특징적인 명상적인 지식의 지극한 탁월성을 의미한다. 이 비판의 요지는 부처님이 곧바른 앎으로 깨달은 가르침이 아니라 단지 숙고하여 만들어낸 가르침을 설한다는 것이다. 그는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이라는 목표를 신통을 성취하는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7878) n'atthi samanassa gotamassa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anadassanaviseso. takkapariyāhatam samano gotamo dhammam deseti vimamsanucaritam sayampatibhānam: MN. I 68과 병행한다.
그런데 존자 싸리뿟따가 탁발을 하다가, 그가 이렇게 비방하는 것을 듣고, 탁발에서 돌아와 그 사실을 세존께 알렸다. 세존께서는 “싸리뿟따여, 쑤낙캇따는 분노하고 있다. 분노를 통해서 그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분노를 통해서 '그것이 그에 따라서 실천하는 자를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알지 못하면서 나의 덕성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어리석은 자가 [390] 나의 덕성을 알 수가 없다.
싸리뿟따여, 나에게는 여섯 가지 곧바른 앎7879)과
열 가지 힘에 대한 앎7880)이 있고,
네 가지 두려움 없음에 대한 앎7881)이 있고,
네 가지 생존을 부수는 앎7882)이 있고,
다섯 가지 존재의 길을 부수는 앎7883)이 있다.
7879) cha abhiñña:육신통(六神通)을 뜻한다. Jat I. 12의 주석을 참조하라.
7880) dasabalarianani: 십력지(十力智)를 뜻한다. 십력에 대해서는 Jat I. 11의 주석을 참조하라.
7881) catuvesārajjañāna: 사무외지(四無畏智), 사무외에 대한 앎을 말한다. 사무외(四無畏)란 다음과 같다:
①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 '그대는 스스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라고 일컫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그대는 올바로 깨닫지 못했다.'라고 나에 대하여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이유를 들어 비난하려 해도,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공포 없음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②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 : ‘그대는 스스로 번뇌들을 부순 자라고 일컫는데, 그 번뇌들을 그대는 부수지 못했다.'라고 나에 대하여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이유를 들어 비난하려 해도,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공포 없음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③ 설법장무외(說障法無畏) : ’그대가 장애의 원리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탐닉하더라도 전혀 장애가 될 수 없다.‘라고 나에 대하여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이유를 들어 비난하려 해도,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공포 없음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④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그대가 목적을 가지고 설한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더라도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어지지 않는다.'라고 나에 대하여 사문이나 바라문, 신, 악마, 하느님이나 이 세상의 어떤 자라도 이유를 들어 비난하려 해도,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을 근거로 간주하지 않음으로써 안온에 도달하고 공포 없음을 얻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한다.
7882) catuyoniparicchedakatiana : 파사생지(破四生智)로 태란습화(胎卵濕化)의 네 유형의 생존을 부수는 앎이다.
7883) paficagatiparicchedakariāna: 파오취지(破五趣智)로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의 다섯 가지 존재의 길(趣)을 끊는 삶을 말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내가 지닌 인간을 뛰어넘는 원리이다. 이러한 인간을 뛰어넘는 원리를 갖추고 있는 나에 대하여 '수행자 고따마에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는 원리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러한 말을 버리지 않고, 그러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러한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원리가 작동하는 대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있는 인간을 뛰어넘는 원리의 덕성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싸리뿟따여, 쑤낙캇따는 실로 꼬락캇띠야가 지닌 난행도(難行道)의 삿된 고행에 믿음을 내었는데, 그러한 삿된 고행에 믿음을 지닌 자를 나는 결코 믿을 수 없다. 나는 지금부터 91겁 전에 '여기에 진리가 있지 않을까.'하고,7884) 외도의 삿된 고행을 탐구하면서, 네 가지 고리를 갖춘 청정한 삶을 살았다. 나는 고행자로서 실로 극도의 고행자였고, 조식자7885)로서 실로 극도의 조식자였고, 염세자로서 실로 극도의 염세자였고, 은둔자로서 극도의 은둔자였다.”라고7886) 말씀하시고 장로의 요청으로 과거 이야기를 꺼내셨다.
7884) atthi nu kho ettha saro'ti: '여기에 핵심이 있지 않을까'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7885) 1ükha : 원래 '조악자(粗惡者)'라는 의미인데, 남전 29권255에서 조식자(粗食者)라고 번역했다.
7886) tapassi sudarm homi paramatapassi, lukho sudarnhomi paramalūkho, jegucchi sudam homi paramajegucchi, pavivitto sudarin homi paramapavivittoti: MN.I. 68의 「사자후에 대한 큰 경」을 참조하라.
§B. 옛날 91겁의 우주기 전에 보살은 “외도의 고행을 탐구해야겠다.”라고 사명외도의 삶에 출가하여, 발가벗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은둔하여 홀로 살았다. 사람들을 보면, 그는 사슴처럼 달아났다. 그는 여러 잡다한 음식을 먹었는데, 물고기나 쇠똥 등을 먹었다. 방일하게 살지 않기 위해 한적한 숲에 있는 무서운 우거진 숲속에서 살았다.
그곳에 살면서 눈이 내리는 철 여드레 동안 밤에는 우거진 숲속에서 나와서 노천에서 지내고, 해가 뜨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밤에는 노천에서 눈 녹은 물에 젖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낮에는 우거진 숲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젖었다. 이렇게 밤낮으로 추위의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나 여름의 마지막 달에는, 낮에는 노천에서 지내고 밤에는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낮에는 노천에서 뜨거운 열기로 괴로워하고, 마찬가지로 밤에는 바람 없는 우거진 숲속의 열기로 괴로워했고 몸에서 땀방울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그는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러한 시 한 수를 읊었다.
1. “말랐을 뿐만 아니라 얼은 채로
홀로 무서운 숲속에 살면서,
벌거벗고 앉아 불을 쬐지도 않고,
성자는 고행의 탐구에만 열중했다.”
이렇게 [~391~] 보살은 거기서 네 가지 고리를 갖춘 청정한 삶을 닦았다. 그리고 그는 임종 때 지옥의 모습을 보고 '이러한 서원의 실천이 무의미하다.'라는 것을 알아채고 그 순간 잘못된 견해를 부수고 올바른 견해를 취해서 천상세계에 태어났다.
§C. 스승께서 이러한 법문을 마치고 과거 이야기를 현재 이야기와 연결지으셨다.
“당시의 그 사명외도는 바로 나였다."
네 번째 두려움에 얽힌 본생이야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