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 비유의 긴 경(M29)
Maha-sāropama 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다. 그때가 데와닷따가 [교단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세존께서는 데와닷따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여기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925 얻게 된다.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어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 그는 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주925 : "'이득'이란 네 가지 필수품을 말하고, '존경'이란 그것을 쉽게 얻는 것을 말하고, '명성'은 칭송을 얻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가졌다. 그러나 저 다른 비구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신도들도 적다.'
그는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방일하여 방일함에 빠진다. 방일해서는 괴로움 속에 머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심재를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지나치고 겉재목을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잔가지와 잎사귀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간다고 하자. 눈 있는 사람은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이 양반은 심재를 모르고, 겉재목도 모르고, 속껍질도 모르고, 겉껍질도 모르고, 잔가지와 잎사귀도 잘 모른다. 그리하여 이 양반은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고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지만, 심재를 지나치고 속껍질을 지나치고 겉껍질을 지나쳐서 잔가지와 잎사귀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구나.'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다. … [193] … 그는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고 방일하여 방일함에 빠진다. 방일해서는 괴로움 속에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청정범행의 잔가지와 잎사귀를 붙잡고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3. …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더라도 마음으로 흡족해하지 않는다. 아직 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계의 구족을 성취한다.
… 그는 이런 계의 구족에 취하고 방일하여 방일함에 빠진다. 방일해서는 괴로움 속에 머문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청정범행의 겉껍질을 붙잡고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4. … 그는 이런 계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삼매의 구족을 성취한다. …
그는 그 삼매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 그는 이 삼매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
이를 일러 비구가 청정범행의 속껍질을 붙잡고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5. " … 그는 삼매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이 흡족하지만, 그는 삼매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 방일하지 않아서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한다. *927
*주927 : 니까야에서 ‘지와 견[知見. ñāṇa-dassana]’은 다양한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는 “신성한 눈[天眼]의 지혜[天眼通], 위빳사나의 지혜, 도의 지혜, 과의 지혜, 반조의 지혜가 지와 견의 동의어이다.”(AA.i.58)라고 설명하여 지와 견의 의미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MA.ii.21~22에서는 일체지(sabbaññutaññāṇa)도 포함시키고 있다.# 본경의 주석서(MA.ii.231)는 여기에서의 지와 견은 천안통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즉 “데와닷따는 다섯 가지 신통지를 갖추었다. 천안통(dibba-cakkhu)은 다섯 가지 신통 가운데 최고였는데, 그것을 본경에서는 지와 견(ñāṇa-dassana)이라 했다.”
그는 그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으로 흡족해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 그는 이런 지와 견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 방일함에 빠진다. 방일해서는 괴로움 속에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청정범행의 겉재목을 붙잡고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6. "비구들이여, 여기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더라도 마음으로 흡족해하지 않는다.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는 그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계의 구족을 성취한다.
그는 계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이 흡족하지만, 아직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지 않앗다. 그는 계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계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삼매의 구족을 성취한다.
그는 삼매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이 흡족하지만, 아직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지 않았다. 그는 삼매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삼매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한다.
그는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하여 마음이 흡족하지만, 아직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지 않았다. 그는 지와 견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지와 견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을*928 성취한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에서 타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주928 : ‘일시적이지 않은 해탈(asamaya-vimutti)’이라고 하셨다. [무애해도]에서 “무엇이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인가? 네 가지 성스러운 도와 4가지 사문의 결실(cattāri sāmaññaphalāni, 수다원과부터 아라한과까지)과 열반을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이라 한다.”(Ps.ii.40)라고 설하신 아홉 가지 출세간법(nava-lokuttara-dhamma)을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이라 한다.
그러나 세간적인 증득(lokya-samāpatti)은 본삼매에 들어있는 순간(appit-appita-kkhaṇa)에만 반대되는 법들(paccanīka-dhammā)에서 해탈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samaya-vimokkha)’이라 한다. 그래서 『무애해도』는 “무엇이 일시적인 해탈인가? 네 가지 禪과 네 가지 무색계 증득을 일시적인 해탈이라 한다.”(Ps.ii.40)라고 설하고 있다.
그러나 출세간법은 때때로 해탈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해탈한 도와 과는 반드시 해탈한 것이고, 열반은 모든 번뇌에서 전적으로 해탈했기 때문에, 이 아홉 가지 법을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이라고 부른다. (MA.ii.23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심재를 가지고 [197]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간다고 하자. 눈 있는 사람은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이 양반은 심재를 알고, 겉재목도 알고, 속껍질도 알고, 겉껍질도 알고, 잔가지와 잎사귀도 잘 안다. 그리하여 이 양반은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고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심재를 지나치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심재를 잘라 심재라 생각하고 돌아가는구나.'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다. … 그는 이런 지와 견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아서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을 성취한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가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에서 타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7. "비구들이여, 이처럼 청정범행은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계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삼매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지와 견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929 청정범행의 목적이고, 청정범행의 심재이고, 청정범행의 완결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주929 :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akuppā cetovimutti)’은 아라한과의 해탈(arahatta-phala-vimutti)을 말한다. ‘청정범행(brahma-cariya)’은 아라한과를 ‘목적(attha)’으로 한다. 이 아라한과가 청정범행의 ‘심재(sāra)’요, 이 아라한과가 청정범행의 완결(pariyosāna)’이다. 이것이 절정(koṭi)이고 이보다 더 얻어야 할 것은 없다는 말이다.”(MA.ii.232)
본서 「성스러운 구함 경」 (M26) §18에 나타나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akuppā me vimutti).’에 대한 주해도 참고하고, 『상윳따 니까야 제2권』, 「깨닫기 전 경」 (S14:31)의 마지막 주해도 참조할 것.
출처 : 대림 스님, 『맛지마 니까야 제1권』, 687~697쪽.
참고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sshgc&logNo=221269857908
일부용어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