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처님의 훈계
부처님께서는 말룽꺄뿟따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말룽꺄뿟따야, 어떻게 이제 와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다른 비구가 나에게 이런 요구를 할 때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으냐? 너는 이미 인생의 후반부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법의 요점을 법문해 달라고 하는구나!”
부처님의 말씀은 책망과 칭찬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늙은 비구는 젊었을 때 법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한 발을 무덤에 들여놓고 있는 지금에서야 법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다면 말룽꺄뿟따는 수행을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룽꺄뿟따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은둔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젊은 비구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께서 그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법을 깨닫기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을 본받을 것입니다.
말룽꺄뿟따가 되풀이하여 간청하자, 세존께서는 연달아서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면 위빠사나 수행법의 기초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3. 위빠사나 질문 Ⅰ
“말룽꺄뿟따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음 질문에 대해서 최선의 대답을 해 보아라. 이전에 네가 가까운 과거나 오래 된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지금 현재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도 보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어떤 형상이 있다고 하자. 그러한 형상에 대해 네가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질 수 있겠느냐?”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이 실재(빠라맛타)입니다. 그러나 실재는 아니지만 실재처럼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상상이나 꿈에 나타나는 대상인데, 그런 것은 모두 개념(빤냣띠)입니다.
경전에는 오래 된 과거의 대상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기억하고 있는 전생의 대상을 말합니다. 부처님 시절에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빠띠뿌지까(Patipujika)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전생의 남편은 말라바리(Mala- bari)라는 천신(天神. deva. 데와)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생의 남편을 계속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경전에 언급된 오래 된 과거라는 것은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꿈꾸거나 상상하는 것에 대해 집착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꿈꾸거나 상상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집착이 생길 수 없습니다. 생각한 일도 없고 상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여자를 남자가 사랑하게 될 리 없고,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질문에 말룽꺄뿟따는 대답했습니다.
“부처님, 오래 된 과거나 가까운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지금 현재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도 보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제가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을 가질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