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말룽꺄뿟따의 대답
부처님의 질문에 대해서 말룽꺄뿟따는 전에 경험한 적이 없고, 지금 현재 경험하고 있지도 않고, 미래에 꿈에도 경험하리라고 가대할 수 없는 감각대상에 대해서는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생길 수 없다는 취지로 대답했습니다. 여기 이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는 이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1952년에 내가 빠테인에 있는 탓담마 티따구 선원에서 말룽꺄뿟따경에 대한 법문을 했을 때, 탓담마 티따구 사야도의 누이도 참석했었습니다. 그녀는 본 적이 없는 물질이나 마음속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그건 어떤 물질일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녀는 지성적인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전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수행해 본 다음에 그녀는 법의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행하여 지혜가 생기자 너무 기뻐서 법문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 적이 없는 감각대상들이 탐욕을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 대해 애정을 품을 수 있습니까? 그런 경우에 애정만이 아니라 성냄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견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분이 기억하기 쉽게 다음 격언을 만들었습니다.
(1) 형상이 보이지 않을 때 번뇌는 스스로 멈춘다.
(2) 형상이 보이면 번뇌는 생길 준비를 하고 있다.
(3)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지 사띠에 의해 마음을 가라앉혀서 마음속에 잠복하고 있는 번뇌를 쫓아버려라.
(4) 부처님께서 말룽꺄뿟따에게 하신 질문은 위빠사나 수행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전에 만난 적이 없는 대상은 번뇌를 일으키는 욕구나 탐욕이나 애정이 생기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마도 명백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에 보거나 알게 된 적이 있는 대상은 번뇌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룽꺄뿟따가 그 사실에 주목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상을 회상할 때마다 번뇌가 계속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소 짓거나 찌푸린 모습을 봤다면, 그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미소 짓거나 찌푸린 얼굴이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다시 나타날 때마다 그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에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이 반응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본 대상을 회상할 때마다 그 대상은 탐욕을 생기게 하고, 여러분은 탐욕스럽게 될 것입니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비슷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볼 때마다 주시하지 못한다면, 조건 지어진 현상들의 무상하고 주체가 없음을 관찰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번뇌가 여러분의 내부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부지런히 주시하면, 번뇌는 그냥 생기고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상의 본성을 알게 됐을 때, 번뇌는 더 이상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을 볼 때 봄을 주시해서 무상을 알게 되면, 번뇌는 나타날 기회가 없습니다. 번뇌는 언제나 여러분의 몸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복해 있으면서 여러분을 장악할 기회를 엿보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을 주시해서 그 본성을 알게 되면, 여러분은 무상을 체험할 것이고, 그에 따라 번뇌는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마치 대상을 지각하지 않은 것처럼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위빠사나 수행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질문에 대답하면 위빠사나 수행법을 알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리와 귀와 관련된 부처님의 질문에 대한 법문을 하기 전에,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간단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