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지막 생에서 비구니 생활에 전념
직조공 우두머리는 공덕을 쌓으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 생을 마친 다음 그녀는 천상계와 인간계에 번갈아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의 출현에 임박하여, 그녀는 데와다하(Devadaha)에 있는 석가족(釋迦族)인 마하숩빠붓다(Mahāsuppabuddha) 왕의 작은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고따미였으며, 마하마야 공주의 동생이었다. 베다에 박식하고 관상과 손금에 정통한 왕궁의 점성가들이 두 자매의 외모를 잘 살펴본 다음, 두 자매가 아들을 낳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두 자매가 성장한 다음 숫도다나(Suddhodana) 왕과 정혼하고 까삘라성(Kapilavatthu)으로 가서 마하마야 공주는 제일왕비가 되었다. 후에, 전생의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생을 마치고 마하마야 왕비의 자궁에 임신되었다. 왕비가 아들을 낳고 일주일 후에 돌아가신 다음 도솔천에 산뚜시따(Santusita)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하마야 왕비가 서거하자 숫도다나 왕은 여동생인 고따미 왕비를 제일왕비로 삼았다.
마하마야 왕비가 싯닷타(싯다르타) 왕자를 낳은 지 이삼일 후에, 싯닷타 왕자의 양어머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왕비는 난다 왕자를 낳았다. 그러므로 마하마야 왕비가 돌아가실 때 싯닷타 왕자는 단지 태어난 지 7일이었고, 난다 왕자는 겨우 사오일이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왕비는 양아들인 싯닷타 왕자에게 자신의 젖을 먹이고, 자신의 친아들 난다 왕자에게는 유모의 젖을 먹였다. 그녀는 장차 부처님이 될 자신의 어린 조카를 키우는데 온 정성을 다했다.
후에, 싯닷타 왕자가 출가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 일체지자인 부처님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방랑하다가 처음으로 까삘라성를 방문하였다. 도착한 다음날 탁발하러 시내로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은 탁발 중에 법문을 듣고 수다원의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난다 왕자가 승단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 일곱 번째 날에는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가 사미로 승단에 들어갔다.
부처님께서는 웨살리(Vesālī) 근처의 대림정사 숲 속에 있는 꾸따가라(Kūtagāra) 수도원에서 다섯 번째 안거를 보냈다. 그 동안 왕은 까삘라성의 궁정에서 왕의 하얀 양산 아래에서 아라한의 지위를 얻고 그날 숨을 거뒀다. 그러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왕비는 속세를 떠나서 비구니가 되기를 열망했다. 마하사마야(Mahāsamaya) 경에 상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비구가 된 500명의 석가족 왕자들의 500명의 부인들도 만장일치로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승단에 들어오도록 허락을 받아내는데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왕비를 대표자로 선출했다. 부처님의 계모인 왕비는 처음 시도에서 실패했다. 그러자 그녀와 500명의 석가족의 부인들은 머리를 깎고, 염색한 가사를 입고, 까삘라성에서 웨살리까지 맨발로 걸어갔다. 그들은 승단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아달라고 아난다 존자에게 간청했다.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비구니 즉 여자 비구로서 승단에 들어올 것을 허락했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팔경법을 지킬 것을 서약하고 허락을 받았다. 500명의 석가족 부인들은 여러 명의 비구들에 의해서만 허락을 받았다.
(원주: 이들 최초의 비구니들만이 아니라, 이후에 정식 절차에 의할 경우에도, 여러 명의 비구들이 허락해야만 비구니가 된다.)
부처님의 계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테리는 상킷따(Saṁkhitta) 경에 대한 법문을 듣고 아라한의 지위를 성취했다. 500명의 비구니들은 난다꼬와다(Nandakovā) 경을 듣고 여러 가지 수준의 깨달음을 성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