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잠자는 사람과 과(果)에 든 사람의 다른 점
잠자는 사람과 과(果)에 든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잠자는 사람에게는 바왕가 마음이 계속 생기고 있는 것이다.
잠자는 마음은 업이나 업의 표상이 거취 표상(다음 생에 태어날 곳의 표상)중의 하낙 계속 생긴다.
그 표상들은 분명히 세간의 대상, 갈망의 대상들이다.
그렇지만 깨어나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다.
과에 든 사람은 과(果)의 마음이
열반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과(果)의 마름은 세간을 벗어난 출세간 마음이다.
열반은 몸과 마음이 소멸한 상태로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세간을 벗어난
완전한 행복(산띠수카)이다.
잠에 든 마음과 비교하면
그 한계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심오하며,
매우 부드럽고 미묘하고 미세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
과(果)에 든 사람이 선정에서 나왔을 때
어떠했다고 말해 줄 것이 없다/
말해 줄 적당한 비유나 규모가 없다.
“그 규모를 보여주기 적당하지 않은 대상만을 대상으로 한다.”
고 『청정도론』에 말씀하셨다.
잠든 사람을 깨우는 것은 가능하다.
기절한 사람도 ‘바왕가 마음’이 생기고 있는 중이지만
약을 먹이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시 깨어나도록 할 수 있다.
과(果)에 든 사람은 그가 서원 세운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알게 하지 못하고, 깨어나게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부르면 깨어나 지이다.’라고
서원 세운 사람이 부르면 첫 마디에 깨어나게 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면, 금방 깨어나지 않고
처음에는 멍청한 상태이다.
과(果)에 들어갔다 나온 이의 몸과 마음은 아주 개운하고 깨끗하고 맑지만, 보통 사람은 무거운 마음만 생길 수 있다.
수다원도 보통 때에는 세간 마음이 생길 수 있지만,
과(果) 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출세간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지금 말한 대로 자신이 스스로 ‘수다원이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 서원을 세우고 과(果) 선정에 들어갈 수 있는지 보면 된다.
오래 동안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다시 오래 동안 수행하여 삼매가 좋아지면 들어갈 수 있다.
수행하지 않고 지냈더라도,
자기가 도달했던 도에서 무너져 갈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수행을 멀리 한 지 오래되면,
생활과 말, 앉고 서는 것이 거의 범부의 습관과 똑같고,
취미나 습관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겉모습이나 말하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면
성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