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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싸나 빠라구

12. 머묾(vihāra)과 해탈(vimokkha)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2.03.24|조회수58 목록 댓글 3

12. 머묾(vihāra)과 해탈(vimokkha)

 

1. 표상 없는[無相. animitta], 머묾(vihāra)과 해탈(vimokkha)

 

몸과 마음을 많이 보게 될 때,

생기고 사라짐 외에 다른 아무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생기고 사라짐만을 깊이 주시하면서 관찰하는 것을

‘표상 없는[無相] 머묾’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기고 사라짐에만 마음을 완전히 밀착해서 관찰하는 동안

도(道) 마음, 과(果) 마음이 되는 것을

‘표상 없는[無相] 해탈’이라고 한다.

 

2. 원함 없는[無願. appaṇihita], 머묾과 해탈

 

몸과 마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만나고 관찰하여 보는 것을 ‘원함 없는[無願] 머묾’이라고 한다.

이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생기고 사라지는 성품들을 관찰하여

열반으로 건너감을 ‘원함 없는[無願] 해탈’이라고 한다.

 

3. 공한(suññata), 머묾(vihāra)과 해탈(vimokkha)

 

몸과 마음의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생기고 사라짐이 매우 커져서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고 생기고 사라짐만이 드러난다.

그때 생기고 사라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의 마음에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면

몸의 어떤 부분도 의지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

더욱 선명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진다.

이렇게 보는 것을 ‘공(空)한 머묾(suññata vihāra)’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가끔 몸을 못 보고 있을 때,

생기고 사라짐도 매우 부드럽고 미세해진다.

새기고 사라짐이 선명하게 알 수 없을 만큼 줄어들어서

몸 전부가 없어진 것만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도 ‘공한 머묾’이다.

 

그러나 이때 생기고 사라짐을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생기고 사라짐의 끝인 생기지 않는 것이 열반이라고,

그런 성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공한 머묾’이 되었을 때,

수행자의 마음이 혐오스러움을 생각해서

‘아낫따 위빠싸나’만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또한 접촉[觸根] 5가지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르면 들리고 말하면 듣는다.

 

그러나 이때는 즉각 대답하려고 해도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자신의 몸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몰라서

무엇부터 움직여야 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일어나서 가지 않으면 안 될 때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볼 수 없지만

몸이 있는 줄은 스스로의 지혜로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움직이지?’라고 생각해서 움직여서 일어나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하면 대개는 먼저 손가락으로 마음이 가게 된다.

그때 손가락 끝이 있는 모습을 알게 되고 그렇게 알았을 때,

손가락 끝에 마음이 갔으면, 손가락 끝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손가락 끝이 조금씩 움직이고,

엄지손가락과 손목이 있는 줄 알게 된다.

이렇게 차츰차츰 전신이 있는 줄 알게 된다.

알게 되더라도 즉시 꿈쩍꿈쩍 움직일 수는 없고,

천천히 시작해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공한 머묾’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들에게 생긴다.

‘공한 머묾’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자세를 바꾸기가 쉽다.

누가 부르면 듣고 알고,

자신의 몸 일부 혹은 전신이 어떤 상태인지 보기도 쉽고 알기도 쉽다

이렇게 ‘공한 머묾’ 상태로 관찰해서

도(道) 마음, 과(果) 마음이 생기는 것을 ‘공한 해탈(suññata vimokkha)’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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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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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2.03.25 고맙습니다
  • 작성자혜문 | 작성시간 22.03.25 사두 사두 사두 ~~^^
  • 작성자장뇌산삼 | 작성시간 22.03.2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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