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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싸나 빠라구

14. 희열 5가지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2.03.27|조회수62 목록 댓글 1

14. 희열 5가지

* 게시자 주: 희열(pīti. 喜) 다섯 가지 요약
⑴ 소름이 돋는 ‘작은 희열(khuddikā pīti)’
⑵ 번개 치듯 지나가는 ‘찰나 희열(khaṇikā pīti)’
⑶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반복 희열(okkantikā pīti)’
⑷ 위로 뛰어 오르는 ‘용약 희열(ubbegā pīti)’
⑸ 온 몸에 널리 퍼지는 ‘충만 희열(pharaṇā pīti)’
(『청정도론』 Ⅳ. 94~99.,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제2권』, 287쪽. 참조)

 

⑴ 작은 희열(khuddikā pīti)

작은 희열은 삼매가 지혜보다 힘이 더 좋을 때 생긴다.

어떻게 생기는가 하면 삼매가 아주 좋아졌을 때, 전신에 퍼져서 ‘시시…’하고 생기고 사라지는 성품들이, 가름에 생긴 작은 공기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매우 부드럽고 미세해서 고르게 생긴다.

그때 마치 발이 매우 저릴 때 손으로 발끝을 찌르면, 그 저림의 성품들이 순간 찌릿찌릿해 지는 것처럼, 모래를 뿌리는 것처럼, 소름이 돋는 것처럼 가끔씩 생긴다.

소름이 진짜 돋는 것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을 작은 희열이라고 한다.

 

⑵ 찰나 희열(khaṇikā pīti)

그렇게 계속 관찰해 갈 때, 생기고 사라짐이 많이 드러나는 동안 삼매의 힘으로 번갯불이 번쩍번쩍하듯이 빛이 순간순간, 번쩍번쩍, 자주자주 생긴다.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이다.

이것을 찰나 희열이라고 한다.

 

⑶ 반복 희열(okkantikā pīti)

이렇게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생기고 사라지는 성품들이 부드럽게 생기다가 다시 아주 심하게 생긴다.

전신이 뜨거운 솥처럼 끓어댄다.

그렇게 끓고 있는 성품만 오랫동안 보게 되면,

몸이 드러나지 않고 끓고 있는 성품만 알게 된다.

오래 되면, 끓고 있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을 넘어서 꿈속에서 보는 것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면, 연못의 수면 위에 소나기가 심하게 쏟아질 때 수면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계속 생기고 사라져서 소나기가 심하게 쏟아질 때 바다의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보이는 것을 반복 희열이라고 한다.

파도가 몰려오는 것 같은 희열이라고도 한다.

 

⑷ 용약 희열(ubbegā pīti)

부드러운 솜처럼 하늘로 날아간다고 한다.

스리랑카에 사는 어떤 사람이 산 아래에 있는 자기 집의 마루 위에 앉아서, 산위에 있는 불탑을 향하여, 부처님을 뵙고 예경을 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위에 있는 탑으로 날아갔다고 경전에 있다.

ㅇ즈음도 어떤 수행자들이 밤에 수행을 시작해서 다음 날 깨어났을 때, 깨어 났는 줄도 모르고 수행하게 된다. 그때 자신의 몸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정도로 용약 희열이 생긴다. 이보다 더 올라가는 경우는 못 봤다.

 

⑸ 충만 희열(pharaṇā pīti)

몸 전체가 바라밍 가득한 북처럼, 거세게 흘르는 물살에 떠내려가는 뱃머리처럼, 끊임없이 주변에서 날아오르고 춤춘다고 책에 쓰여 있다. 수행할 때 책에 있는 것처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전신에 생기고 사라지는 성품들이 들끓을 때,

끓고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여 관찰한다.

그때 우유가 끓고 있는 솥 안에서 한참 끓어오르다가 다시 수그러드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끓어서 부풀어 오르다가 다시 줄어드는 것 같다고 드러난다.

가끔은 끓어올랐다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끓어올라서,

그대로 끓고 있다고 생각돼서 눈을 뜨고 확인하듯이 보게 된다.

그때 마음이 고요해서 편안하게 지낸다.

 

이런 것들이 책에 있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그것을 충만 희열이라고 한다.

이 희열보다 더 높고 큰 희열이 있다.

이 희열은 ‘공한 삼매, 공한 해탈’이라고 하는

형성평온의 상태에서

열반을 체험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갔을 때 ,

만나게 되는 희열이다.

 

그것은 빠르게 생기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몸의 부분부분이 지혜에 드러나지 않게 되었을 때,

가끔 수행자의 마음에 생기고 사라지는 것보다

몸이 더 튼튼하다고 관찰하기 때문에다.

이렇게 공한 위빠싸나를 형성평온의 상태로 관찰하여

지혜와 삼매가 고르지 않고,

삼매가 지혜보다 힘이 커졌을 때,

위빠싸나 영역을 넘어 사마타 쪽으로 가버린다.

그때 생기고 사라짐도 알지 못하고, 몸도 알지 못하며,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너무너무 고요한 행복의 맛을 마음으로 좋아하고 즐긴다.

 

컴컴한 허공 어느 한 곳에 몸은 없고,

마음만으로 지내면서,

고요한 행복, 아주 깨끗한 마음을 도와주는 기능(마음부수)만의 행복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생각하고 망상하는 마음들이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즐기는 맛만을 ‘아주 좋은 맛이구나.’라고 하면서

주의 기울이거나 알아차림도 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그런 조건에 맞게 지내다가

다른 대상을 알게 되는 앎이 생겼을 때,

‘지금 내가 즐기는 지극히 고용한 행복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맛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항상 즐기면서 지내더라도

만족하거나 싫증나는 맛이 아니구나.

한 평생 이러한 맛만 즐기면서

살면 좋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선정의 행복과 비슷하며, 매우 높은 수준의 희열이다.

한번 만나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집착하게 된다.

지나치게 노력하는 사람이 그런 현상을 만나게 된다.

이것을 도와 과, 열반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경전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실은 그 생각이 틀렸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행복의 일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음만 있고 몸은 없는 무색계천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힘이 적은 희열도 있는데

공한 머묾 상태에서 관찰해서

생기고 사라짐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때처럼,

해가 질 무렵,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 때처럼

희미한 빛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 그 빛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숲이나 산, 물, 땅조차 볼 수도 만난 수도 없이

휑하니 허공만 보인다.

전후좌우 상하 중간에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텅 비어 있는 것만 보게 된다.

 

이런 것을 만났을 때, 그것을 좋아하고 즐긴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희열은

위빠싸나 10가지 장애에 포함된 무더기들이다.

 

위빠싸나의 장애란 것이

수행을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했을 때 만나게 되는

좋아할만한 것, 아름다운 것,

만족스런 것들을 만나는 것이다.

 

힘들고 싫어서 혐오스러운 것일 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만나서

마음이 싫어하고 혐오해야만 도(道)의 바른 길이 된다.

“삽베 상카라… (모든 형성된 것은 생기고 사라진다.…)”

등의 경전 구절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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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2.03.2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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