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동생 난다와 천녀
"언제나 내가 숲에서 수행하는 난다를 볼 수 있겠는가?
언제나 내가 누더기 가사를 입는 난다를 볼 수 있으려나?
언제나 내가 크고 작은 집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걸식하는 난다를 볼 수 있으려나?
언제나 내가 깜마 오욕락에 허덕임이 없는 난다를 볼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다른 동생 난다를 위해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교단의 미래를 생각하여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위력으로 동생을 비구 수행자의 길로 이끄셨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쳐 겉모습은 비구가 되었다. 그러나 속마음이나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와 나이가 비슷한 비구들은 숲 속의 절에서 기꺼이 수행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동생 난다는 마을 근처의 절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누더기 가사는 사람들이 쓸모없어서 버린 천 조각을 모아 기워서 만들었다. 공동묘지에 버린 시체를 쌌던 천 조각, 길가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천 조각들을 모아서 몸을 가릴 수 있도록 기운 것이다. 가사로 인해 자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누더기 가사를 입고 수행하는 비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동생 난다는 볼품없는 이런 가사를 만지지도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보내오는 가장 좋은 비단으로 만든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사만을 입었다.
가사도 좋은 것만 가려서 입는 동생 난다의 먹는 것은 어떤가? 이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가 걸식하러 가는 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왕족의 집, 높은 대신들의 집, 거부 장자의 집 등 좋은 밥과 음식을 보시할 수있는 집만 골라서 걸식하러 갔다. 시금치, 고추 같은 것만을 보시할 수 있는 집에는 발그림자조차 비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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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는 '내 얼굴을 보는 이마다 좋아하게 해 주소서'라는 소원이 구족한 사람이었다. 몸매와 손발 역시 잘 생긴 남자였다. 출가하기 전부터 매우 아름답던 난다는 노란 가사를 입었을 때도 역시 보기가 매우 아름다웠다.
나이가 비슷한 여자들이 그의 얼굴을 한번 보면 다시 돌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 잘생긴 남자,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보게 되는 젊고 아름다운 수행자를 보는 여자들에게 '비구 스님에게 마음을 기울이는가?'하고 탓할 것은 없다.
허물을 말하자면 내 동생 난다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 태어난 몸이 매우 아름답기도 했지만 스스로 치장하는 모습 역시 재미있다.
비구 스님들은 누구나 근심 덩어리며 손질할 일이 많은 머리카락들을 깨끗이 깎아버린다. 길었을 때라도 머리카락의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를 넘기지 않도록 정해져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는다면 두 달 정도는 깎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생 난다는 이 계율만큼은 스스로 잘 따랐다. 이 계율을 따르는 것에는 다른 이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다른 이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머리를 깎지만 난다는 한 달에 대여섯번 삭도가 괜찮을 때마다 다시 삭발했다. 파르스름하니 깨끗하게 깎은 머리와 노란 가사는 너무나 아름답게 잘 어울렸다.
길게 치켜 올라간 속눈썹 사이에 예쁘게 선을 그려 넣은 두 눈, 그 속에는 눈동자가 샛별처럼 빛났다. 그는 가끔씩 얼굴에 가루 지분을 살짝 바르기도 했다.
또 그는 절대로 다른 이들처럼 보통 흙으로 빚은 볼품없는 검은 발우를 사용하지 않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특별히 준비한 쇠로 된 발우만 좋아했다.
"이 깜마 오욕의 대상에서 동생 난다가 언제나 벗어나려나?"
다른 많은 비구들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낮은 목소리로 하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동생을 엄격하게 막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봐주는 덕택에 동생 난다는 그의 생각대로 지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각만 하며 참고 지내더라도, 먹고 입는 것을 자기 뜻대로 하더라도 그는 흡족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왕궁에서 생활할 때의 호사로움에 비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왕궁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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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난다야, 교단생활이 만족스러운가?"
난다가 가는 곳마다 이러한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마음속에 있으면 밖으로도 드러난다'는 말처럼 사까 종족의 보배로운 아들 난다는 교단 안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척 꾸며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꾸미지 않고 사실만을 말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없었다. 만약 사실대로 말하여 부처님의 귀에 들어가면 그분 앞에 불려가서 질문을 받아야 하리라.
난다의 이러한 어려움을 짐작한 나는 마주쳐도 조그만 소리로 지나가는 인사만 해야 했다. 서너 마디까지는 자기 입을 잘 다스린다. 그보다 지나쳐 물으면 마음속에 있는 대로 모두 인정한다.
"난다여, 교단에 싫증난다고 하는 말이 사실인가?"
일찍이 생각했던 대로 '난다가 싫증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부처님의 귀에 들리게 되자 난다를 불러서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두려웠기 때문에 거듭 조심하고 참았을 것이다.
아무리 조심하고 참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을 받은 지금 같은 처지에서는 두려워하는 것만으로 끝낼 수 없었다. 사실 그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입니다. 부처님, 제가 이 교단 안에서 지내는 것이 지루해졌습니다. 교단에서 계속 수행자의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계를 반납하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처님."
모든 사실을 다 아시더라도 이유가 있어서 물으신 것이다.
"제가 형님의 발우를 안고 왕궁에서 나올 때 자나빠다 깔리야니 공주는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 반쯤 빗은 머리를 한 손으로 거머쥐고, '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 하고 황급히 울먹이는 소리로 당부했습니다. 그 소리가 틈만 있으면 제자의 귀에 들려옵니다. 이제는 환속하여 왕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부처님."
"오!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다."
자기와 모습은 같지만 행동은 다른 동생 난다에게 자애와 연민 가득한 눈길로 그윽이 바라보셨다.
"좋다. 난다야. 교단이 지루해졌으면 우리 둘이 여행을 하며 한 바퀴 둘러보자. 가사와 소지품을 준비해 두어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야릇한 표정으로 동생 난다는 형님 앞에서 물러 나왔다. 동생 난다의 인생에 여행 하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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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잔치, 왕위를 물려받는 행사장에서 형님의 발우를 안고 절에 따라 올 때도 이런 표정이었다. 이런 얼굴로 전혀 바라지 않던 인생의 한 굽이에 도착했다. 지금 다시 한 번 더 부딪히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여쭌다면 틀림없이 그의 바라는 대로 속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반대가 되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린다고 난다를 그의 바램대로 왕궁으로 돌려보낼 것은 아니었다.
형님께서 원하는 대로 교단이라는 큰 건물을 세우는 데 기초가 되고,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그러나 방편으로 준비한 그 여행이라는 불길은 난다를 단련시키기에 참 좋은 것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분주하던 나는 형님의 발우와 소지품을 준비했다.
난다 역시 오래지 않아 발우와 소지품 모두를 준비해서 형님이 계시는 곳으로 왔다. 부처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그 가련한 난다는 조금도 기쁜 표정이 없이 야릇한 얼굴로 조용히 서 있었다.
장소와 처지가 처지이니 만큼 오늘은 향수 가루를 뿌리지 않았으나 가사만은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형님의 말씀을 지극히 존중하여 따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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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한 가지 스스로 풀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기억하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마하 깟사빠 존자의 제자 한 사람이 계를 받는 곳에 법문을 하는 책임을 맡아달라는 전갈이 있었다.
비구계를 받는 의식 절차에는 계를 받는 후보자가 승가 대중 앞에서 깜마와짜(승가 대중 앞에서 읽는 결정된 공고문)를 읽고 허락을 청해야 한다. 계율을 다른 말로 나따라고도 한다. 깜마와짜는 이 나따부터 시작되는데, 그 중에는 전계사 스승님의 본 이름이 여러 번 들어 있다. 나에게 생긴 어려움은 그 전계사 스승님의 본 이름을 드러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그 높으신 분에 대한 지극한 존중심 때문에, 그분의 본명을 부르기에는 송구스러워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실 순간 부처님께 이러한 어려움을 여쭈자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계 받는 이들을 가르칠 때 전계사 스승의 이름을 불려야 하는 경우 그 종족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나 여래가 허락한다."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서 계율 한 가지를 정하신 것이다. 종족의 이름으로 마하 깟사빠이지만 그분의 본명은 삡빨리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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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형님과 아우님 두 분께서는 제따와나 정사에서 떠나 여행길에 오르셨다. 나도 마하깟싸빠 존자가 계신 곳으로 갔다. 비구계 받는 의식을 끝내고 다시 제따와나 정사에 돌아왔을 때 특별한 소식 하나를 들어야 했다.
"아난다 테라님! 동생 난다가 천녀를 얻으려고 비구 생활을 한다고 했으며 부처님께서는 비둘기 다리처럼 아름다운 천녀 오백 명을 얻게 해준다고 보증하셨답니다."
이러한 소문은 그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너무나 특이한 것이었다. 이 교단에 들어온 모든 비구들의 목표는 길고 긴 윤회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지금 현재의 생에서 얻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동생 난다는 왕의 딸을 버리고 다시 천녀의 모습에 집착하며 매달리는 것이다. 끓는 솥 속이 뜨겁다고 숯불 위에 뛰어내린 고기처럼 된 것이다.
난다 같은 젊은 비구가 깜마 오욕락의 대상을 바꾼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특이하게 생각한 것은 부처님께서 보증을 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비록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다. 튼튼한 성문 기둥처럼 흔들림이 없으며 오래 되어도 한 가지로 곧은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다.
사실 이 교단에서 계속 생활하는 값으로 난다가 청했다면 틀림없이 주셔야 했을 것이다.
“오! 동생 난다와 천녀 오백 명…
제따와나 정사와 오백 명의 천녀.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오백 명의 천녀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끼칠 일 아닌가?”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놀라웠던 마음들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 큰 교단의 튼튼한 머릿돌 하나를 얻기 위해 적당한 방편을 쓰시고 더욱 단단해지게 하기 위해 불 아궁이에 넣어 구우시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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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난다는 보수 받고 비구 생활을 한다.
동생 난다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도매상인이다."
동생 난다가 가는 곳마다 이러한 말들이 떠나지 않고 따라 다녔다. 같이 지내는 대중들이 틈만 있으면 이렇게 들먹이자 동생 난다는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게 되었다.
가끔 방패가 되어줄 것을 바라는 눈빛으로 나에게도 가까이왔다. 그러나 나 역시 그에게 편안함을 줄 수 없었다. 일부러 이러한 상황을 만드신 부처님의 목적을 짐작했기 때문에 그가 가까이 올 때마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말했다. 동생 난다는 비구 대중들과 어울려 떳떳하고 편히 지낼 수 없었다.
난다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피해갔다. 보수 받고 스님 노릇을 하는 도매상인이라는 빈축을 들을 때마다 그의 가슴속은 뜨거운 모래를 끼얹는 것처럼 화끈거리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일깨워 주었다. 이 큰 세상을 살아가도록 보호해 주는 법이 바로 이 부끄러움과 두려움 두 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살아가는 법 두 가지가 이 세상에 사는 한 사람인 동생 난다도 역시 충분히 보호해 주었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심한 충격을 받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숲 속으로 혼자 떠났던 동생 난다가 아침 먼동이 떠오를 때 당당하고 용감하고 떳떳한 얼굴로 비구 대중들 곁으로 돌아왔다.
보수 받고 스님 노릇을 하는 도매상인 등 비난하는 말을 웃는 얼굴로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처님 앞으로 당당히 걸어왔다.
*
"거룩하신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제자에게 비둘기 다리처럼 아름다운 천녀 오백 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가 부처님을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완전한 행복을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에 오백 명의 천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버렸습니다. 이 동생에 관한 형님의 걱정은 끝났습니다."
"난다여! 너의 마음이 어느 한 가지 대상에 집착하지 않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으니 그 순간부터 나는 책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형님과 동생 두 분께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준 사람과 벗어난 사람으로 만났을 때에 기쁨의 게송을 듣고 되었다.
이 비구가 벗어나기 어려운
깜마 오욕락의 구렁텅이에서 잘 벗어났다.
이 비구는 가슴을 뜨겁게 하고 기쁘지 않게 찔러대는
깜마 오욕락의 가시들을 모두 꺾어버렸다.
어리석은 무지가 다한 열반에
높은 지혜로 도달한 그 비구는 고통과 행복
갖가지 세간 법에 따라 동요함이 전혀 없다네.
Udāna nanda sut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