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사카 부인
A.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위사카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 시의 부유한 가문으로 재탄생했다. 한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녀는, 어떤 여자 재가불자가 부처님에 의해 보시 제일이라고 호칭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런 명성을 열망했다. 엄청난 공양을 올린 후 부처님께 자신의 서원을 말씀드렸고, 부처님은 그 서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끼끼 왕의 막내딸이었던 과거생
미래의 위사카는 5명의 부처님이 출현했던 10만 겁 동안 천상계 혹은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그녀는 끼끼 국의 끼끼 왕의 일곱 딸 중 막내로 재탄생했다. 7명의 딸들은 (1) 사마니 공주, (2) 사망굿따 공주, (3) 빅쿠니 공주, (4) 비카다이이까 공주, (5) 담마 공주, (6) 수담마 공주, (7) 상가다시 공주(Samaṇi, Samaṇguttā, Bhikkhunī, Bhikhadāyika, Dhammā, Sudhammā and Saṃghadāsi)였다. 이 7명의 공주들은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 일곱 명의 저명한 여성들, 즉 (1) 케마 장로니, (2) 우빨라완나 장로니, (3) 빠따짜라 장로니, (4)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 (5) 끼사고따미 장로니, (6) 담마딘나 장로니 그리고 (7) 위대한 뿝빠라마(Pubbārāma) 정사 보시자인 위사카로 다시 태어났다.
B. 위사카로서의 마지막 생
끼끼 왕의 막내딸인 상가다시 공주는 두 부처님(깟사빠와 고따마) 사이의 기간 동안 천상계 또는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 그녀는 다난짜야(Dhanañcaya) 장자의 첫째 부인 수마나에게 잉태되었다. 그녀의 부모와 친척들은 그녀의 이름을 위사카라고 지었다. 위사카가 7살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밧디야에 도착했다. 부처님은 깨달을 정도로 과거의 바라밀이 무르익은 셀라 바라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깨닫도록 법문하기 위해서 밧디야를 방문했다.
1. 위대한 과거의 공덕을 지닌 다섯 명의 인물
당시 위사카의 시아버지인 멘다까(Meṇḍaka)는 위대한 과거의 공덕을 지닌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 중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1) 멘다까 장자, (2) 그의 부인인 짠다빠두마(Candapadumā), (3) 멘다까의 아들 다난짜야, (4) 다난짜야의 아내 수마나(Sumana) 부인, (5) 멘다까의 하인 뿐나(Puṇṇa)였다. (이 다섯 사람의 공덕을 이하에서 설명할 것인데 이는 Commentary on the Dhammapada, Book Two, 18-Mala Vagga, 10-Meṇḍaka the householder에서 요약된 것이다.)
1-1. 멘다까 장자의 놀라운 능력
어느 날, 멘다까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려고 자기 소유인 1250개의 곡물창고를 비웠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은 후 집 문 앞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최고 품질의 붉은 쌀이 소나기처럼 쏟아져서 1250개의 곡물창고를 가득 메웠다. 멘다까는 더 나아가 그의 가족들의 놀라운 능력을 알고 싶어서 그들에게 그들 스스로를 알아보라고 말했다.
1-2. 멘다까의 아내 짠다빠두마의 놀라운 능력
그러자 멘다까의 아내 짠다빠두마는 정장을 하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쌀 한 되로 밥을 지었다. 그녀는 현관에 앉아, 밥을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내게 오라고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 그녀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황금 국자로 밥을 퍼 줬지만, 그녀의 밥솥은 하루 종일 밥을 나눠준 다음에도 한 국자 이상 줄어들지 않았다.
짠다빠두마(Candapadumā)란 이름이 지어진 경위
과거생의 어떤 부처님 시대에, 이 뛰어난 여인은 왼손은 밥솥을 잡고 오른손에는 주걱을 들고, 발우를 가득 채워서 승가에게 탁발 음식을 바쳤다. 그 선행의 결과로 금생에서의 그녀의 왼쪽 손바닥에는 연꽃(adupa) 무늬가 있고, 오른쪽 손바닥에는 보름달(canda) 무늬가 있다. 게다가 그녀는 과거생의 어떤 부처님 시대에, 그녀의 손에 물거르개를 들고 한 비구에서 다음 비구에게로 이동하면서 여과된 물을 제공했다. 그 선행의 결과로, 그녀의 오른쪽 발바닥에는 보름달 모양의 무늬가 있고, 왼쪽 발바닥에는 연꽃무늬가 있다. 그녀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있는 이러한 독특한 무늬 때문에, 그녀의 부모와 친척들은 그녀를 ‘짠다빠두마’라고 불렀다.
1-3. 멘다까의 아들 다난짜야의 놀라운 능력
다난짜야 장로는 머리를 감은 후, 돈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요청하라는 취지의 공개 선언을 한 후, 문 앞에 은 1,000 티칼(tical)을 옆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는 모든 방문객의 그릇에 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한 다음에도 그의 천 티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4. 멘다까의 며느리 사마나의 놀라운 능력
사마나는 종자(씨알)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에게 와서 달라고 하라고 발표한 후, 정장을 하고 종자 바구니를 들고 야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모든 방문객들의 그릇에 가득 차게 종자를 나누어 주었다. 그런 다음에도, 그녀의 바구니에는 처음처럼 종자가 남아 있었다.
1-5. 멘다까의 신뢰받는 하인 뿐나의 놀라운 능력
뿐나는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옷을 입은 후, 황소 두 마리에 멍에를 씌우고, 그의 다섯 손가락에는 향기 나는 연고를 바르고, 황소 뿔을 금으로 장식하고, 황금 사슬에 매고, 쟁기를 걸고, 관중 앞에서 멘다까의 밭을 갈기 시작했다. 그의 쟁기는 단지 그 쟁기 밑의 고랑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양쪽에 세 개씩의 추가 고랑을 만들어 한 번의 작업으로 7배의 일을 해냈다.
그리하여 남섬부주의 모든 사람들은 멘다까의 집에서 쌀, 종자, 돈 등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이것이 과거의 공덕이 큰 다섯 인물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이다.
빔비사라 왕의 영토인 라자가하 지역에는 아무리 써도 재산이 고갈되지 않는 엄청난 부자가 멘다까 외에도 조띠까(Jotika), 자띨라(Jaṭila), 뿐나(Puṇṇa) 그리고 깔라왈리야(Kāḷavaḷiya) 등 4명의 장자가 있었다. 빔비사라 왕은 영토 안에 이 다섯 장자가 있었는데, 이 다섯 가구 중 뿐나의 이야기는 웃따라의 이야기에서 설명될 것이고, 나머지 4가지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간략하게 설명될 것이다.)
멘다까는 부처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손녀(다난짜야의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녀야, 너와 내가 상서로운 공덕을 쌓자구나. 오백 명의 시종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영접하여라.”
2. 일곱 살에 수다원이 된 위사카
위사카는 즐거이 할아버지 말대로 500대의 마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자존심이 센 손녀가 마차를 타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지혜를 타고난 사람인 위사카는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부처님으로부터 적절한 거리에서 내려, 걸어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부처님은 그녀에게 일곱 살인 어린이의 수준에 맞는 법문을 했다. 법문 끝에 위사카와 그녀의 시종 500명은 수다원의 도와 과를 얻었다.
멘다까도 부처님을 찾아뵙고 절을 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은 멘다까의 수준에 맞는 법문을 했고, 그 끝에 그는 수다원이 되었다. 그는 다음날 부처님을 자신의 집으로 공양청을 했다. 다음날 그는 부처님과 승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바쳤다. 그는 보름 동안 계속해서 호화로운 규모로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밧디야에 머물렀다.
3. 위사카와 가족이 사께따로 이사
사왓티의 왕인 코살라의 빠세나디는 빔비사라 왕에게 편지를 써서, 사왓티에 고갈되지 않는 재산을 가진 장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장자 한 명을 코살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빔비사라 왕이 회의를 개최하자 신하들이 말했다. “왕이시여, 우리는 고갈되지 않는 재산을 가진 장자들을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코살라 왕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섯 장자 중 한 명의 아들을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빔비사라 왕은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서 멘다까의 아들 다난짜야는 코살라로 이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기서 법구경 주석서는 꼬살라 왕과 빔비사라 왕은 이중 매제였음을 말한다. 그래서 빔비사라 왕은 꼬살라 왕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섯 명의 유명한 장자들을 불쾌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난짜야에게 코살라에 가서 정착할 것을 요청했다. 다난짜야는 이에 동의하였고 그는 코살라 왕에게 보내졌다.)
그의 가족이 밧디야에서 코살라 왕국으로 이주한 후, 다난짜야는 사람이 정착할 가능성이 많은 장소를 발견했다. 그는 코살라 왕에게 그 지역이 누구의 영토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것이 코살라 왕국 내에 있다는 말을 듣고, 수도 사왓티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더 물었다. 왕이 대답하였다. “여기서 사왓티까지는 7마일이오.” 다난짜야가 왕에게 말하였다. “폐하, 사왓티는 저의 가족들이 살 만큼 넓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동의하신다면 저의 대가족이 편히 살 수 있도록, 여기에 자리를 잡겠습니다.” 왕은 승낙했다. 그리하여 다난짜야는 그곳에 마을을 세웠다. 이곳은 정착민들이 선택한 장소였기 때문에 “사께따(Sāketa)”라고 명명되었다.
사왓티에서는 미가라(Mīgāra)의 아들 뿐나왓다나(Puṇṇavaḍḍana)가 성년이 되었다.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그의 아버지는 친척들에게 장자 가문 출신 중에서 아들의 신부가 될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면서 지성적이고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파견하였다. 그들은 사왓티 시에서는 신부 후보를 발견하지 못해서 사께따로 갔다.
어느 날 위사카는 동갑인 500명의 시종들과 목욕하면서 즐겁게 놀기 위하여 사께따 밖에 있는 호수에 갔다. 그때, 사왓티로부터 미가라 장자의 며느리 감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성문 근처에 서 있었다. 그러자 소나기가 쏟아졌고, 도시 밖으로 나갔던 위사카의 시종 500명은 비를 피해 공공 휴게소로 뛰어들었다. 그들 중에는 신부 후보로 대리인들의 눈에 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뒤에 어린 위사카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상시의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가 사왓티에서 온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왔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미모로서는 이 세상에 그녀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신선하게 익은 자몽 같은 것이다. 그녀의 말투를 파악해야 하겠다.’ 그들은 말을 걸었다.
“어린 소녀여, 그대는 나이가 지긋한 부인처럼 걷는구나.” 위사카는 대답했다. “아버님들께서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너의 친구들은 비 맞지 않으려고 휴게소에 뛰어 들어왔다. 하지만 너는 나이가 지긋한 부인처럼 보통 걸음으로 왔다. 너는 옷이 몽땅 젖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구나. 코끼리나 말이 너의 뒤를 따라온다고 해도 그렇게 천천히 걷겠느냐?”
“아버님들, 옷은 다시 살 수 있으니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녀는 상품과 같아서 몸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뛰다가 넘어져서 팔이나 다리를 다쳐서 육체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면, 유망한 신부로서의 저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뛰지 않은 것입니다.”
사왓티에서 온 사람들은 주인 아들에게 적합한 신부, 외모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소녀를 찾았다고 자기들끼리 합의했다. 그들은 위사카 머리 위에 신부의 화환을 던졌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그녀는 그 자리에 앉음으로써 침묵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가라가 보낸 사람들은 프러포즈를 받은 신부 주위에 스크린을 쳤다. 그렇게 의식을 마친 다음, 위사카는 시종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미가라 사람들은 그녀의 아버지인 다난짜야 장자의 집으로 따라갔다.
사왓티의 미가라의 대리인들과 위사카의 아버지 다난짜야는 청혼에 대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다난짜야 : 그대들의 고향은 어디인가?
대리인들 : 장자여, 우리는 사왓티의 미가라 장자의 대리인입니다. 우리의 주인께서 장자께 혼기가 된 젊은 딸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녀를 자신의 아들의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장자의 따님께 청혼하려고 왔습니다.
다난짜야 : 아주 좋습니다. 그대들의 주인은 우리와 같은 정도로 재산이 많지는 않지만 신분은 우리와 동일합니다. 신분과 재산 모두가 동일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으니, 그대들의 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의 청혼이 받아들여졌다고 전하시오.
미가라의 대리인들은 사왓티로 돌아가서 보고했다.
“장자여, 우리는 사께따의 다난짜야 장자로부터 그의 딸을 뿐나왓다나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승낙을 받았습니다.”
미가라는 그런 위대한 가문에서 자신의 며느리를 구하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면서, 다난짜야에게 며칠 내로 신부를 데리러 갈 테니 다난짜야 측에서 필요한 준비를 해 달라는 취지의 긴급 편지를 보냈다. 다난짜야는 자기 쪽에서 모든 준비를 다 할 테니 미가라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편지를 보냈다.
4. 약혼식에 꼬살라 왕이 참가하는 영광
미가라 장자는 왕에게, 자기 아들이자 왕의 충직한 하인인 뿐나왓다나가 사께따의 다난짜야 장자의 딸 위사카와의 약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사께따에 가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말했다.
“장자여, 아주 좋습니다. 우리도 그대와 함께 갈 필요가 있습니까?”
미가라가 말했다.
“폐하, 저희들이 어찌 폐하께서 참석하시기를 바라겠습니까?”
왕은 양쪽 가문을 예우하여 약혼식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그렇다면 내가 그대와 함께 가겠소.” 그리하여 왕은 장자와 함께 사께따로 갔다.
미가라와 꼬살라 왕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난짜야는 직접 왕에게로 가서 인사드리고 집으로 호송했다. 그는 왕과 호위병, 미가라와 그의 수행원을 대접하는 데 세심한 배려를 했다. 음식, 숙소, 꽃, 향료 등 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것들을, 각자의 필요와 신분에 맞게 모두 공급했다. 방문자들 각 개인이 모두 다난짜야 장자가 각자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인상을 받도록 장자가 몸소 이러한 상세한 것들의 시중을 들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꼬살라 왕이 사람을 보내서 다난짜야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래 머물면 그대에게 짐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대는 신부를 사왓티로 보낼 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난짜야는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지금은 안거 기간입니다. 폐하의 호위병들이 이동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폐하의 호위병들의 모든 필수품을 제 책임 하에 공급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폐하께서 제가 신부를 보낸 다음에 사왓티로 돌아가실 것을 앙망합니다.”
미가라와 그의 일행이 도착한 날부터 사께따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석 달이 즐겁게 지나가서 하안거가 끝난 10월이 되었다. 호화로운 장식을 한 신부용 드레스는 아직 금세공인이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난짜야 장자의 집사는 장자에게 사왓티에서 오신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 데 다른 문제는 없지만 요리용 연료가 부족하다고 보고했다. 다난짜야는 마구간과 코끼리 우리를 부숴서 연료로 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15일간 사용하니 다시 연료가 동이 나자 다시 다난짜야에게 보고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안거라서 나무 땔감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직물 창고를 모두 열고 옷감으로 밧줄을 만든 다음, 그것을 기름통에 넣어 기름에 적셔서 연료로 사용하라.”
이러한 임시변통으로 다시 15일 간의 요리용 연료를 확보하였으며, 그 동안 호화로운 장식을 한 신부용 드레스도 완성되었다.
신부용 드레스가 완성된 다음 날은 신부가 시집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녀가 떠나는 날 다난짜야는 딸 위사카를 자기 방으로 불러서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 (그때 미가라는 옆방에서 듣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시집가서 남편을 성실하게 섬기는 주부는 다음 규칙을 알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시댁에 사는 며느리는 -
⑴ 집안의 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는 안 된다.
⑵ 집밖의 불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
⑶ 빌린 것을 돌려주는 사람에게만 빌려줘라.
⑷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빌려줘서는 안 된다.
⑸ 너에게 준 사람이거나 주지 않은 사람이거나 주어야 한다.
⑹ 평화롭게 앉아라.
⑺ 평화롭게 먹어라.
⑻ 평화롭게 잠자라.
⑼ 불을 공손히 다루어라.
⑽ 그 집의 천신을 숭배해야 한다.”
다난짜야는 모든 손님들을 모이게 한 다음, 꼬살라 왕의 호위병인 장자 중에서 8명의 박식한 현자들을 지명하여 사왓티에서의 위사카 후원자로 삼고, 자신의 딸과 관련된 논쟁이 생기면 그들이 그룹으로 청문회를 열어서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서 그는 신부에게 9천만 루피 어치의 황금 레이스와 보석으로 만든 신부용 드레스를 입혔다. 그는 딸에게 마차 554대 분의 화장품과, 500명의 하녀와, 혈통 좋은 말이 끄는 500대의 마차와 기타 여러 가지 유용한 물품을 종류별로 500개씩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그런 물품들을 결혼 선물로 준 다음, 그는 꼬살라 왕과 미가라 장자를 먼저 떠나게 했다.
위사카가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소 우리 책임자를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여보게, 내 딸이 새로 살림을 하자면 젖소와 달구지용으로 순종의 수소가 필요할 것일세. 사왓티로 가는 길을 8 우사바(1우사바는 3.2m)의 폭과 4분의 3 요자나의 길이에 소떼를 채우게. 4분의 3 요자나는 저기 저 계곡까지이네. 가장 앞의 소가 저 계곡에 도착했을 때 북을 쳐서 신호를 보내어 소떼가 나가는 문을 닫도록 하게.” 그러자 담당자들은 충실히 그대로 했다. 우리의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토실토실한 젖소들만 나갔다. 우리의 문을 닫자 힘센 달구지용 수소들과 황소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위사카를 따라갔다. 이는 위사카가 쌓은 과거의 공덕의 결과였다. 즉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그녀가 승가에 공양을 올릴 때에는 언제나 스님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도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을 더 드시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5. 위사카의 사왓티 도착
위사카 일행이 사왓티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수레 속에 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일어서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입고 있는 호화로운 장식의 신부용 드레스를 생각해 보니 진기한 신부용 드레스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수레에서 일어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자 그녀를 본 사왓티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끼리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다.
“절세의 미인 위사카가 왔다! 입고 있는 저 찬란한 신부용 드레스를 보라! 저 아름다운 드레스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그렇게 위사카는 미가라의 저택에 있는 새로운 집으로 성황리에 입주하였다.
사왓티에 그녀가 모습을 나타낸 순간부터, 사왓티 사람들은 하객으로서 사께따에 장기간 머무를 동안 다난짜야가 그들에게 풍족하고도 사려 깊게 대접해 준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분수껏 위사카에게 선물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위사카는 자신이 받은 선물들을 사왓티의 다른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선물이 배부되는지 확인하면서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사왓티 사람들은 사왓티에 도착한 첫날 그녀의 선물을 흠뻑 받았다.
그녀가 시집에 도착한 첫날밤, 초경이 지나자마자 (그때는 잠잘 시간이었다) 미가라 집의 순종인 암 당나귀가 새끼를 낳았다. 그녀는 하녀에게 등불을 비추게 하고 새끼 낳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어미 당나귀를 뜨거운 물에 목욕시키고 전신에 기름을 발라주게 했다. 이 모든 과정들을 지켜본 다음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6. 시댁에서의 결혼 피로연
미가라는 7일간 아들의 결혼 피로연을 열었다. 그 당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미가라는, 자기 아들 결혼식에 부처님을 무시하고 집 안 가득히 나체 고행자들을 초청했다. 그는 위사카를 불러 소위 ‘아라한님’들에게 경배 드리게 했다. 자신이 수다원 성자인 위사카가 ‘아라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라한을 가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정작 그녀는 나체 고행자들을 보고는 몹시 실망했다. “어떻게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아라한’일 수가 있나?” -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판단하고 왜 시아버지께서 그들에게 경배 드리라고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혐오스러워서 “쳇, 쳇!” 하면서 돌아갔다.
나체 고행자들 쪽에서도 위사카의 행동에 화가 났다. 그들은 미가라에게 말했다.
“장자여, 더 훌륭한 며느리를 구할 수는 없습니까? 왜 그대는 고따마 사문을 추종하는 혐오스런 여자를 그대의 가족으로 맞아들였습니까? 저 여자 악마를 내치십시오!”
그러나 미가라는 그녀가 높은 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나체 고행자의 말에 따라서 며느리를 내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스승들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승님들, 젊은이들은 분별없이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좀 참아주시겠습니까?”
7. 미가라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다
착한 며느리인 위사카는 시아버지의 시중을 공손하게 들었다. 높은 자리에 앉으시게 하고, 물을 섞지 않은 우유로 우유밥을 해 드렸다. 그녀는 우유밥을 황금 수저로 그릇에 퍼 담아서 미가라에게 드리면 그는 맛있게 먹었다. 그때 탁발 중인 한 비구가 미가라의 집 대문에 와서 서 있었다. 위사카는 비구를 봤지만 나체 고행자를 추종하는 시아버지에게 비구가 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미가라가 비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어리석은 미가라는 비구를 봤지만 못 본 척하고 얼굴을 밥그릇 쪽으로 숙였다.
위사카는 시아버지가 일부러 비구를 무시하는 것을 알고 비구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빈손으로 스님께 절합니다. 제 시아버님은 오래 된 음식만 드십니다.”
이 소리를 듣자 미가라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위사카가 나체 고행자들을 비웃을 때에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며느리가 자기가 똥(위사카의 ‘오래 된 음식’이란 말을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을 먹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먹고 있던 밥그릇에서 손을 떼고 화난 목소리로 하인들에게 말했다.
“이 우유죽을 치워버리고 위사카를 이 집에서 쫓아내라. 상서로운 집에서 상서로운 우유죽을 먹고 있는데, 위사카는 내가 사람 똥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안의 모든 하인들은 위사카가 시집 올 때 친정에서 데리고 온 하인이었으니, 누가 감히 위사카를 쫓아내겠는가? 그녀에게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만두고 그 집에서는 그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8. 위사카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
시아버지가 홧김에 하는 말을 들은 위사카는 냉정하지만 공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의 정당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은 명령에 의해서 이 집에서 쫓겨날 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물 긷는 하녀로서 이 집에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신 선량한 딸은 이런 비합법적인 명령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양쪽의 행위가 정당한지 살펴보기 위하여, 제가 떠나는 날 제 아버님은 8명의 현명한 장자를 배심원으로 지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나의 딸과 관련해서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여러분들께서 청문회를 열고 해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여덟 분들은 저의 안전에 관한 제 아버님의 수탁자(受託者)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이 건을 지금 그들에게 위탁하시겠습니까?”
9. 문제를 철저히 논의하여 해결하다
미가라는 위사카의 말이 사리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덟 명의 배심원들을 불러서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러분, 이 어린 위사카는 내 집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서로운 집에 사는 나를 똥을 먹는 사람이라고 모욕했습니다.”
현자들 : “자, 딸이여, 그대는 장자가 진술한 대로 말했는가?”
위사카 : “아버님들이시여, 제 시아버님은 아마도 똥을 먹는 것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저는 시아버님을 똥 먹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시아버님이 물을 섞지 않은 우유로 만든 우유밥을 드시고 계실 때 어떤 스님께서 탁발하시려고 대문에 서 계셨습니다. 제 시아버님은 스님을 못 본 척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께 가서 말했습니다. ‘빈손으로 스님께 절합니다. 제 시아버님은 오래 된 음식만 드십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저의 시아버님께서는 이번 생에서는 아무런 공덕을 쌓지 않으시고 과거의 공덕에만 의지해서 사신다는 뜻이었습니다.”
현자들 : “장자여, 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딸이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녀는 타당하게 말했습니다. 왜 화를 내셨습니까?”
미가라 :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이 집에 온 바로 첫날밤 남편을 무시하고 집을 비웠습니다.”
현자들 : “사랑하는 딸이여, 그대는 진술한 대로 집을 비웠는가?”
위사카 : “아버님들, 제가 다른 곳에 간 것이 아니라 그날 밤 마구간에서 순종 당나귀가 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의 하녀들에게 등불을 비추게 해서 새끼를 잘 낳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현자들 : “장자여, 우리의 딸은 의무에 충실했으며, 그대의 하녀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는 그대를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도 그대는 그것을 위반이라고 하겠습니까?”
미가라 :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녀가 집을 떠나는 날 그녀의 아버지인 다난짜야의 훈계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합니다. ⑴ 그녀는 ‘집 안의 불을 집 밖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할 때 어떻게 불을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현자들 : “사랑하는 딸이여, 그대의 아버님으로부터 장자가 말한 대로 들었는가?”
위사카 : “아버님들,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불이 아닙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저의 시부모님과 남편의 허물을 외부의 하인들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집안에 불필요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집 안의 불’이라는 표현을 이런 의미로만 사용하십니다.”
미가라 :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아버지는 ⑵ ‘밖의 불을 집 안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우리 집의 불이 모두 꺼졌을 때 다른 집으로부터 불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현자들 : “사랑하는 딸이여, 그것이 사실인가?”
위사카 : “아버님들,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불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하인들이 가족들을 비난하는 말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집안에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집 밖의 불’이라는 표현을 이런 의미로만 사용하십니다.”
“제 아버님께서
⑶ ‘빌린 것을 돌려주는 사람에게만 빌려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로부터 빌려간 물건을 제때에 돌려주는 사람에게만 빌려 주라는 뜻입니다.
⑷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빌려줘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때에 갚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빌려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⑸ ‘너에게 준 사람이거나 주지 않은 사람이거나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저를 찾아온 가난한 사람이나 친척이나 친구에게는 인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갚거나 갚지 않거나 그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⑹ ‘평화롭게 앉아라.’는 것은 제가 시아버님이나 시어머님께 경의를 표하라는 뜻입니다. 그분들이 오시면 저는 일어나야 합니다.
⑺ ‘평화롭게 먹어라.’는 것은 시부모님과 남편이 식사한 다음에 먹으라는 뜻입니다. 그분들이 충분히 드신 다음에 제가 먹어야 합니다.
⑻ ‘평화롭게 잠자라.’는 것은 시부모님과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분들의 시중을 들어주고 그분들이 침실로 간 다음에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⑼ ‘불을 공손히 다루어라.’는 것은 시부모님이나 남편을 마치 불이나 용처럼 항상 공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미가라 :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그 집의 천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현자들 : “사랑하는 딸이여, 그대의 시아버님께서 아시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사카 : “아버님들,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⑽ ‘그 집의 천신을 숭배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이 말씀으로 저의 아버님께서는 제가 주부가 된 다음에, 대문 앞에서 탁발 중인 스님들께 음식을 드려야 한다고 훈계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분들께 음식을 드린 다음에 먹어야 합니다.”
현자들 : “장자여, 그대는 탁발하러 온 비구를 못 본 척해서 즐거웠겠습니다.”
미가라는 이 비꼬는 말에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10. 위사카의 승리
그러자 여덟 명의 박식한 장자들은 미가라 장자에게 말했다. “장자여, 저희 딸에게 또 다른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자 미가라는 더 이상 없음을 인정했다.
위사카의 배심원들은 말했다.
“장자여, 그녀에게 아무 죄가 없는데 왜 그녀를 집에서 내쫓으십니까?”
위사카는 일어나서 말했다.
“아버님들, 저는 시아버님께서 저를 내쫓으시려는 분별없는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저와 관련된 문제를 조정해 주시고 저를 돌봐달라고 여러분께 위탁하셨습니다. 이제 저의 결백함이 밝혀졌으니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서 위사카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와서 자신의 하인들에게 여행에 필요한 마차 등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미가라는 배심원 여덟 명이 보는 앞에서 위사카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사랑하는 딸이여, 내가 분별이 없었다. 나를 용서하여라.”
위사카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시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버님,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용서합니다. 단지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흔들림 없는 부처님의 신자인 저는, 승가로부터 떨어져서는 살 수 없습니다. 승가에 자유롭게 보시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는 여기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겠습니다.”
그러자 미가라는 즉각 대답했다. “사랑하는 딸이여, 네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하여라.”
11. 미가라 장자가 수다원이 되다
위사카는 다음 날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부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다음 날 수많은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그녀의 집을 방문하셔서 그 집을 가득 채웠다. 부처님께서 미가라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을 안 나체 고행자들은 예의 주시하면서 주변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위사카는 음식을 다 준비하고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물을 땅에 뿌렸다. 그 다음에 하녀를 시아버지에게 보내서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 올릴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전했다. 자신의 스승인 나체 고행자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미가라는 위사카에게 이런 대답을 보냈다. “며느리 자신이 부처님께 시중들라고 전해라.” 그래서 위사카는 부처님께 여러 가지 종류의 맛있는 음식과 음료수를 드렸다. 그 다음에 위사카는 시아버지에게 음식 공양이 끝났음을 알려드리고, 미가라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러 오시라고 초청했다.
미가라의 과거의 공덕이 이제 그에게 작용하기 시작하여,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초청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아주 나쁜 것이 될 것이다.’ 내부에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생긴 미가라는 세존께서 앉아 계신 곳으로 갔다. 그러나 나체 고행자들이 만약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자 한다면 부처님과의 사이에 스크린을 쳐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인들이 그의 자리 주변에 커튼을 쳤다.
숨어 있거나 멀거나, 벽으로 가려져 있거나 이 세상의 끝까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누구든지 듣는 자는 잘 듣게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시위라도 하는 듯이, 부처님께서 법문하셨다. 마치 황금색으로 잘 익은 망고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부처님의 법문은 보시로부터 시작하여, 계율과 천상의 삶을 거쳐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로 이어졌다.
[부처님께서 법문하실 때에는, 부처님 바로 앞에 있거나 등 뒤에 있거나, 수천수만 세계의 거리에 있거나, 가장 높은 범천계인 색구경천(色究竟天. Brahmā realm of Akaniṭṭha)에 있거나, 마치 부처님께서 얼굴을 맞대고 자기 자신 한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느낀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마치 각 개인과 달과의 관계 같아서, 달은 하늘에 떠 있으면서 궤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기 머리 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 견줄 데 없는 능력은 부처님의 완벽한 공덕의 결과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부처님 자신의 머리나 팔다리, 눈이나 심장, 노예가 됨으로써 자신의 자유, 나아가서는 전생에 평민이었을 때 자신의 어린 아들과 딸을 늙은 바라문에게 바쳤으며, 자신의 아내인 맛디(Maddī) 부인도 바친 위없는 희생의 과보이다.]
법문이 끝나자 미가라(‘사슴 鹿’이라는 뜻임)는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그는 스크린을 올리고, 부처님께 오체투지로 절을 하고, 부처님 면전에서 이런 말로 위사카를 격찬하였다. “사랑하는 딸이여, 오늘부터 너는 나의 어머니다!” 그때부터 위사카는 ‘미가라의 어머니(녹모. 鹿母)’라고 불리게 되었다. 후일 그녀의 아들이 태어나자 사람들은 그를 ‘미가라의 아들(鹿子)’이라고 불렀다.
12. 미가라의 부인도 수다원을 성취하다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함으로써 며느리의 공로를 인정한 다음, 미가라는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발을 공손하게 잡고 입 맞추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전에는 제가 어떤 사람에게 보시해야 위대한 이익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제 며느리 덕분에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사악처(四惡處)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며느리인 위사카의 도착은 저에게 복리와 행복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저는 어떤 사람에게 보시해야
커다란 이익이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귀한 특성을 가르치는 저의 며느리는, (저의 과거 공덕에 의하여)
실로 저를 이롭게 하려고 제 집에 온 것입니다.
다음 날도 선량한 위사카는 또 한 번의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부처님을 초청하였다. 그러자 다음 날은 시어머니도 수다원이 되었다. 그날부터 계속해서 미가라의 집은 가르침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서 문호를 개방했다.
고귀한 사람이 집에 오면
그 집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열반으로 들어가도록
팔정도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리네.
13. 위사카가 시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다
미가라는 혼자서 “며느리인 위사카는 나에게 엄청난 이익을 준 사람이다. 그녀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신부복을 입는 것은 너무 성가시다. 위사카에게 밤이나 낮이나, 무엇을 할 때에나 적합한 최고급의 드레스를 선물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사카를 위하여, 튼튼하지만 부드럽고, 입기 쉬운 10만 은화짜리 옷을 만들게 했다. 옷이 다 만들어지자, 그는 부처님과 승가를 공양에 초대했다. 그는 며느리를 16개 항아리의 향수로 목욕하게 하고, 그 특별한 옷을 입고 부처님께 경배를 드리게 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에 대해서 감사하는 말씀을 하시고 정사로 돌아가셨다.
그 이후의 위사카의 삶은 커다란 기쁨을 느끼면서 하는,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의 보시를 하는 공덕행의 연속이었다. 부처님으로부터 여덟 가지 혜택으로서의 특권을* 부여받은 다음에는, 그녀가 위대한 여성 보시자라는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하늘에 떠 있는 달에 비유되었다. 대가족 중에서 으뜸이라는 그녀의 평판도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들 10명과 딸 10명을 두었는데, 그들도 각각 아들 10명과 딸 10명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손자는 400명이었다. 그 400명의 손자들도 마찬가지로 각각 아들 10명과 딸 10명을 두었다. 그래서 증손자는 모두 8천명이었다.
*원주: 여덟 가지 혜택으로서의 특권은 ① 안거에 사용하는 가사를 승가에 보시하는 평생 특권. ② 방문하는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특권. ③ 여행하는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특권. ④ 병든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특권. ⑤ 환자를 간호하는 비구에게 음식을 보시하는 특권. ⑥ 병든 비구에게 약을 보시하는 특권. ⑦ (아침 식사용) 죽을 보시하는 평생 특권. ⑧ 비구니에게 하의용 가사를 보시하는 특권임.
14. 위사카의 특이 사항
위사카는 120살까지 살았다. 흰머리가 없었으며, 언제나 16살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기 아이들, 손자들, 증손자들과 함께 부처님 정사에 가면, 그녀는 그들과 구분이 안 되었다.
위사카가 걷고 있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은 그녀의 걷는 모습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서 있으면 우아하게 보였으며, 앉아 있어도 우아하게 보였고, 누워 있어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척 우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힘은 커다란 수컷 코끼리 다섯 마리의 힘을 합친 것과 같았다. 한때 코살라의 왕이 그녀가 정말로 힘이 그렇게 센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커다란 수컷 코끼리 한 마리를 그녀를 향하여 풀어놓았다. 그 짐승은 코를 높이 들고 그녀를 향해 험악하기 돌진했다. 위사카의 친구인 500명의 소녀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그들은 “아가씨, 왕이 아가씨의 힘을 시험해 보려고 수컷 코끼리를 풀어 놨어요!”라고 말했다.
위사카는 “코끼리로부터 도망쳐서 무얼 하겠나? 그리고 만약 내가 세게 다루면 그 짐승은 뭉개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코끼리의 코를 손가락 두 개로 부드럽게 잡고 쫓아버리자, 그 짐승은 비실거리며 돌아갔다.
15. 녹모 강당 보시
사왓티 장자의 부인이며 미가라의 어머니인 위사카는, 변치 않는 미모만이 아니라 그녀의 자식들과 손자들이 건강하고 강인하였기 때문에 상서로운 부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자기 천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사왓티의 주민들은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있을 때는 언제나 위사카를 최고의 손님으로 초청하곤 하였다. 하루는 위사카가 그러한 모임에 참석한 다음 거기서 바로 정사로 갈 때, 신부용인 호화찬란한 드레스로 성장한 채 부처님 앞에 나간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사 입구에서 그것을, 위사카의 과거의 위대한 공덕에 의해 위사카와 마찬가지로 수컷 코끼리 다섯 마리와 같은 힘을 가진 하녀에게 맡겼다.
신부용 드레스를 하녀에게 맡긴 다음 그 대신에 시아버지가 해 준 옷을 입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법문을 다 들은 다음,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녀는 자기가 앉아서 부처님 법문을 들은 자리에 신부용 드레스를 놓았었는데, 옷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부처님 정사에 왔던 방문객들이 잊어버리고 놓고 간 물건을 챙기는 것은 아난다 존자 담당이었다. 그날 위사카의 신부용 드레스를 발견한 그가 부처님께 보고하자, 부처님께서는 적절한 곳에 보관해 두라고 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그것을 집어서 층계 끝에 걸어놓았다.
그때 위사카는 유명한 여자 신도 숩삐야와 함께 기원정사 안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방문 중인 비구들이나, 병든 비구들이나 여행을 떠날 예정인 비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하여 순회하였다. 그렇게 두 부인이 방문하여 순회할 때, 통상적으로 젊은 비구들이나 사미들은 자신들의 그릇에 버터기름이나 꿀이나 기름을 받았다.
*원주: 숩삐야(Suppiyā): 바라나시의 수삐야(Supiyā) 장자의 부인인 여자 신도. 이 부부는 삼보에 아주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비구의 네 가지 필수품을 정기적으로 보시하였다. 숩삐야는 한때 병든 비구를 위하여 자기 넓적다리 살을 잘라 죽을 끓였다. 부처님에 대한 강력한 헌신으로 인하여, 그 상처는 기적적으로 아무런 흉터를 남기지 않고 나았다.
그녀가 병든 비구들과, 젊은 비구들과 사미들을 찾아가서 필요한 것을 나눠 준 다음에, 기원정사의 다른 쪽 문으로 나와서, 정사를 떠나기 전에 갈아입기 위해서 하녀에게 신부용 드레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제야 옷 생각이 난 하녀는 “주인마님, 옷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빡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위사카는 “그럼 가서 가지고 오너라.”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께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존자께 그 드레스를 보시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려라.”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기원정사를 방문한 네 가지 계급의 모든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간 모든 물품들을 항상 아난다 존자가 보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사카의 하녀를 본 아난다 존자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신부용 드레스를 놓고 갔다고 이야기하자 아난다 존자는 “층계 끝에 걸어놓았으니 가서 가져가거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제 마님께서, 그 드레스에 존자의 손이 닿았다면, 그것은 이미 존자에게 보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되돌려 받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녀는 위사카에게 돌아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위사카는 하녀에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아난다 존자에게 보시한 걸로 생각한다. 존자의 손이 닿은 다음에 그것을 입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존자가 그것을 보관하는 것은 그분께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승가에게 사용하기에 알맞은 무언가를 보시해야 하겠다. 가서 가지고 오너라.”
하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위사카는 신부용 드레스를 금세공인에게 보내서 그 값을 감정하게 했다. 그는 “드레스는 재료비 9천만 루피에 인건비는 10만 루피입니다.” 위사카는 신부용 드레스를 공개적으로 팔기 위해 코끼리 등위에 전시하였다.
그러나 그 엄청 비싼 드레스를 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순수한 보석으로 치장된 위대한 드레스가 주는 중압감을 견뎌낼 여자가 없었다.
위대한 드레스를 살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위사카는 자기 스스로 감정가에 사기로 하였다. 그녀는 그 돈을 수레에 싣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인사드린 다음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저의 신부용 드레스에 손을 대고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그것을 입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승가가 알맞은 곳에 쓸 수 있도록 그것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판매가인 9천만 루피와 인건비는 10만 루피에 제가 샀습니다. 비구의 네 가지 필수품 중 어떤 방법으로 이 돈을 사용하였으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승가를 위해서 사왓티의 동쪽 문 근처에 정사를 짓는 것이 좋겠다.”
위사카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뻤다. 그녀는 9천만 루피로 정사용 부지를 샀고, 건물 짓는데 필요한 9천만 루피를 추가로 확보했다. 공사는 곧 시작되었다.
16 목갈라나 존자의 감독으로 정사를 9개월 만에 건설
어느 날 아침, 부처님께서 일어나셔서 중생들이 사는 세상을 둘러보시고, 전생에 천상계에 있었던, 밧디야 장자의 아들 밧디야가 깨달을 때가 된 것을 아셨다. 그래서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집에서 공양을 마치신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북문을 향해 떠나셨다.
(부처님께서는 통상적으로 위사카의 집에서 공양을 받으셨을 때에는 사왓티의 남문을 통해서 숙소인 기원정사로 가셨으며, 아나타삔디까로부터 공양을 받으셨을 때에는 사왓티의 동문을 통해서 숙소인 녹모 강당으로 가셨다. 북문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여행을 떠나시는 걸로 알았다.)
부처님께서 북문으로 향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위사카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행을 떠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위사카여, 그렇다.”
위사카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정사를 짓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투자하였습니다.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실 수는 없으신지요?”
“위사카여, 내 여행은 미룰 수가 없다.”
그러자 위사카는 과거 공덕이 쌓여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때가 된 제자를 부처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시다면 건설을 감독할 스님을 남겨 놓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사카여, 네가 비구를 선택한 다음, 그 비구의 발우를 잡아라.”
위사카는 원래 아난다 존자를 좋아했지만, 신통력이 있는 목갈라나 존자가 정사를 단기간 내에 짓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목갈라나 존자의 발우를 잡자, 그는 부처님을 쳐다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목갈라나여, 그대와 그대의 제자 500명의 비구들은 남아 있어라.” 그리하여 목갈라나 존자는 위사카 정사의 건설을 감독하는 비구가 되었다.
목갈라나 존자의 신통력에 의하여, 건축용 자재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오십 내지 육십 요자나의 먼 길도 걸어갔다. 그것들을 운반하는 데 있어서도 그들은 별 어려움 없이 그 일을 해냈다. 수레의 차축이 부러진다든지 하는 등의 재난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고 평평한 8 까리사(karīsa. 면적의 단위) 넓이의 부지 위에 7단으로 된 이층 정사가 완성되었다. 7단 정사의 일층에 500개의 방이 있었고, 이층에도 500개의 방이 있었다. 주 건물 주변에 효용성을 높이고 실제적인 용도에 맞도록 하기 위해, 500개의 명상실과 500개의 작은 숙소, 그리고 500개의 계단을 추가로 건설했다.
17. 4개월간 계속된 기증식
부처님께서는 9개월 만에 여행에서 돌아오셨다. 목갈라나 존자가 감독한 덕택에 녹모 강당의 건설이 그때까지 완료되었다. 위사카는 물병 60개를 담을 수 있는 넓은 황금 접시로 정사의 뾰족탑을 장식하게 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위사카는, 부처님을 승가와 함께 새로 지은 녹모 강당에 머무시도록 초청했다. 정사를 기증하는 기념식을 개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안거 4개월 동안 머무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이시자, 그녀는 부처님과 승가에 장기간 동안 음식 공양을 올렸다. 그때 위사카의 여성 친구가 찾아와서 부탁했다.
“위사카여, 나는 그대의 정사에 10만 티칼에 해당하는 복도 지붕을 보시하고 싶으니 설치할 곳을 알려 주면 좋겠어요.”
위사카가 말했다.
“아주 좋아요. 하지만 마땅한 곳을 스스로 찾아보세요. 왜냐하면 내가 ‘복도 지붕 설치할 곳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나를 오해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친구는 넓은 정사를 돌아다니면서 일층과 이층을 모두 조사해 봤지만, 단 한 군데도 지붕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크게 실망하여 한쪽 구석에서 울었다.
아난다 존자가 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아난다 존자가 말했다.
“지붕 씌울 곳을 내가 알려 주겠으니 걱정 말아라.” 그리고서 층계 끝에 승가가 발을 씻는 곳에 지붕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녀는 모든 비구들이 발을 씻은 다음에 정사에 첫발을 들여놓는 곳이 복도의 그 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지붕을 씌우면 보시자에게 많은 공덕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지점이 위사카가 빠뜨린 단 한 곳이었다.
18. 승가에 네 가지 필수품을 보시
안거 4개월 동안 위사카는 부처님과 승가에 비구의 네 가지 필수품을 보시했다. 11월 보름날 그녀는 최고급의 가사를 보시했다. 이제 막 수계한 비구들이 받은 가장 낮은 품질의 가사의 값이 1천이었다. 모든 비구들은 짜뚜마두도 발우 가득히 받았다. 녹모 강당 기증식을 하는 4개월 동안의 음식 공양에 그녀는 9천만 루피를 지출했다.
그리하여, 위사카가 녹모 강당을 보시하는데, 부지 구입에 9천만 루피, 건물 짓는데 9천만 루피, 기증식 음식 공양에 9천만 루피, 모두 2억7천만 루피가 소요되었는데, 그렇게 많이 보시한 여신도는 거의 없었으며,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가 불교신도가 아닌 집에 시집가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19. 자신의 선행에 대한 위사카의 환희
4개월간 계속된 기증식 마지막 날 저녁, 위사카는 자기가 행한 일련의 보시에 파묻혀서, 평생 동안 꿈꾸던 자신의 서원이 충족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무척 기뻤다. 커다란 정사를 돌아다니면서 순수한 환희에 넘친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조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사구게를 노래했다.
⑴ 아! ‘나는*1 모든 방문객들이*2 기뻐할 멋진 콘크리트 구조의 정사를 언제 지을 수 있을까?’라는 나의 소중한 서원이 이제 이루어졌다!
⑵ 아! ‘나는 승가에게 긴 의자, 등받이가 있는 의자, 방석, 베개 등이 갖춰진 정사를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서원이 이제 이루어졌다!
⑶ 아! ‘나는 승가에 일곱 가지 종류를 포함한 음식 공양을*4 언제 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서원이 이제 이루어졌다!
⑷ 아! ‘나는 승가에 여러 가지 가사를*5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서원이 이제 이루어졌다!
⑸ 아! ‘나는 승가에 보약과 같은 짜두마두를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서원이 이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Dhappa ada의 주석서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1: 원주: 나는 10만 겁 동안 공덕을 쌓으려고 간곡한 서원을 세웠었다.
*2: 원주: 비구와 신도를 모두 포함한 방문객.
*3: 원주: 일곱 가지 종류의 음식 공양의 예를 들면 제비를 뽑아서 공양 올리기 등, 고기와 함께 요리한 밥 등이 있다.
*4: 원주: 음식 공양의 공덕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힘과 지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5: 원주: 가장 비싼 까시(Kāsi) 지방의 천으로 만든 가사, 무명으로 만든 가사 등.
C. 제일가는 여신도로 지명
아침나절의 위사카의 집은, 자유로이 오고 가는 비구들이 입은 가사의 노란색으로 불타는 듯했으며, 염료의 향기를 풍기며 이동하는 비구의 모습으로 생기가 넘쳤다. 아나타삔디까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사카의 집에서도 여러 종류의 비구들, 즉 여행 떠날 비구들, 병든 비구들, 방문한 비구들에 따라서 알맞게 요리를 했다.
위사카는 아침에 그러한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오후에는 버터기름, 버터 우유, 꿀, 당밀 등의 보약 같은 음식, 그리고 유지니어(eugenia. 도금낭 속(屬)의 각종 상록수임), 망고, 두 가지 종류의 바나나, 로터스(lotus. 忘憂樹) 과즙 등의 여덟 가지 종류의 음료수를 하녀들에게 운반하게 해서, 필요로 하는 비구들에게 보시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것이 공덕으로 충만한 위사카의 전형적인 하루 일과였다.
그런고로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공덕을 많이 쌓은 여자 신도 가운데 위사카가 제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