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캉카아 레와따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10만 겁 전 빠두뭇따라 부처님 생전에, 미래의 캉카아 레와따(Kaṅkhā Revata) 대장로는 미래의 대장로들처럼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사에 갔다. 그리고 청중들 가장자리에 서서 법문을 듣는 동안, 그는 부처님이 어떤 비구를 선정 수행자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이 비구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7일 동안 큰 규모로 부처님을 공양에 초대했다. 마지막 날 법문 끝에 그는 "부처님, 저는 이 선한 공덕행으로 다른 축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7일 전에 부처님께서 선포한 비구처럼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선정 수행자들 가운데 제일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빠두뭇따라 부처님이 미래를 내다보고 그의 서원이 성취될 것을 보시고 떠나기 전에 예언하셨다. "십만 겁이 지나면 고따마 부처가 출현할 것이다. 그 부처 시대에 그대는 선정 수행을 하는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 될 것이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평생에 걸친 선업으로 인해, 그는 천상계와 인간 세상에서 다시 태어났고, 고따마 부처님 생전에, 그는 사와티의 부유한 가정에서 다시 태어나서 레와따라고 명명되었다. 어느 날 오후 레와따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따와나 정사로 갔다. 가장자리에 서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동안, 믿음이 생긴 그는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받고 수행을 해서 그는 세간 선정에 들었고, 선정을 기반으로 위빳사나 선정에 몰두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3. 호칭
레와따는 부처님이 밤낮으로 행했던 여러 가지 형태의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비구들의 모임에서, 부처님은 캉카아 레와따 비구를 선정에서 제일이라고 선언하고 그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비구들이여, 습관적으로 선정에 드는 나의 제자들 중에 캉카아 레와따 비구가 제일이다."
캉카아 레와따라는 이름의 유래
한번은 부처님께서 사왓티에서 라자가하로 여행하시고 계셨는데, 레와따 장로가 당밀을 만드는 오두막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당밀을 응고시키기 위해서) 당밀이 밀가루 반죽과 밀기울과 섞이는 것을 보고, 그 두 가지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 응고된 당밀을 오후에 먹어도 되는지 여부를 의심하게 되었다. “원료(āmisa)를 넣은 당밀은 밀가루 반죽과 밀기울이 들어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니, 오후에 그런 당밀을 먹는 것은 율장 위반이며 부적절하다.” 그와 그의 신도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응고된 당밀을 먹지 않았다.
장로의 말을 믿는 비구들도 그대로 실천했다. 다른 비구들이 부처님께 이 일을 보고하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왜 밀가루 반죽과 밀기울을 당밀에 넣는가?"라고 물었다. "당밀을 응고시키기 위해서 넣습니다, 부처님." 비구들이 대답했다. “비구들이여, 밀가루 반죽과 밀기울을 응고시키기 위해 당밀에 넣는다면, 밀가루 반죽과 밀기울도 당밀이라고 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그대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당밀을 먹어도 좋다."라고 부처님은 율을 공포했다(anuññātasikkhāpada).
여행 중에 레와따 장로는 사람의 대변에서 나온 녹두에 싹이 튼 것을 보고 "요리된 녹두는 싹이 트기 때문에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의심한 그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녹두를 먹지 않았다. 그를 신뢰한 비구들도 녹두를 먹지 않았다. 이 일은 보고 받은 부처님은 원할 때는 녹두를 먹어도 된다는 규칙을 정하였다. (이것은 율장 마하왁가 중에 ‘Bhesajjakkhandhaka’에 나와 있다.)
이런 식으로 레와따 장로는 허용된 것조차 의심했다. 율장에 관한 한 큰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캉카아(의심하는) 레와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캉카아 레와따 관련 사항은 비유(Apādāna) 경과 주석서, Theragāthā 주석서 등을 참고하면 된다.
.............
Biography (15): Kaṅkhā Revata Mahāther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69.html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A hundred thousand aeons ago, during the lifetime of Buddha Padumuttara, the future Kaṅkhā Revata Mahāthera went to the monastery along with many other people, like those virtuous future Mahātheras of old times. And while standing at the edge of the audience and listening to a sermon, he saw the Buddha declaring a certain monk the foremost (etadagga) among meditators. Thinking: “I too should become one like this monk,” he invited the Buddha for dāna on a grand scale for seven days. At the end of the sermon on the last day, in the wake of former aspirants, he wished: “Exalted Buddha, I do not wish for any other forms of bliss as a result of this wholesome adhikāra act but to be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engaged in meditation in the dispensation of a Buddha in future, like the bhikkhu whom You declared seven days ago.”
When the Buddha Padumattara surveyed the future, He saw that the clansman’s wish would be fulfilled and so He predicted before His departure: “At the end of a hundred thousand aeons, there will appear Buddha Gotama. In the dispensation of that Buddha, you will become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e monks engaged in meditation!”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Due to his acts of merit throughout his life, the clansman was reborn either in the worlds of devas or humans and, in the lifetime of our Buddha, he was reborn in the family of a wealthy household in Savatthi and was named Revata. One afternoon the rich man’s son, Revata, went along with other people to Jetavana. While standing at the edge of the gathering and listening to the Buddha’s sermon, there arose confidence in Him and he was ordained as a bhikkhu fulfilling monastic duties. After taking a meditation subject from the Buddha, while preparing himself for mental concentration, he became a man of mundane jhāna. Using those jhānas as a base, he engaged in Vipassanā meditation and attained arahatship.
(c) Etadagga Title achieved
The Venerable Revata was able to absorb most forms of meditation which the Buddha engaged in during day and night. Thereafter, in the meeting of monks, the Buddha declared Venerable Kaṅkhā Revata the foremost (etadagga) in meditation, praising him: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ūnaṃ jhāyīnaṃ yadidaṃ Kaṅkhā Revato.”
“Monks, among my disciples who habitually engage in meditation, the monk Kaṅkhā Revata is the best.”
Account for The Name Kaṅkhā Revata
Once, the Buddha was travelling from Sāvatthi to Rājagaha and on the way Revata entered a hut in which molasses were made. Seeing that the molasses were mixed with dough and bran (as part of the process which was necessary to solidify the molasses), he became doubtful as to the permissibility of the solidified molasses which had the two other ingredients, for the latter two were raw (āmisa). Saying: “The molasses with the raw (ingredients) is improper as it contains dough and bran, which are raw. It is indisciplinary, it is unlawful to enjoy such molasses in the afternoon.” As such, he and his followers did not take the molasses that had been made thus into lumps.
Neither did the bhikkhus, who believed the Venerable’s word and practised according to it. Other bhikkhus reported the matter to the Buddha who asked: “Monks, why did people put dough and bran into the molasses?” “To harden it, Exalted Buddha,” answered the monks. “Monks, if dough and bran are put into the molasses in order to harden it, then the dough and the bran thus put into the molasses are only to be held as molasses. Monks, I allow you to take molasses, whenever you like,” the Buddha promulgated a rule (anuññātasikkhāpada).
On the journey, Revata saw mung (mugga) beans with sprouts in some human faeces and said: “Mung beans are unsuitable (for consumption), for cooked beans can sprout too.” Thus, he doubted and, along with his followers, he did not have mung beans. The bhikkhus, who trusted him, avoid eating those beans too. The matter was reported to the Buddha who laid down another rule allowing the eating of such beans whenever one desired. (These accounts are given in the Bhesajjakkhandhaka of the Vinaya Mahā-Vagga.)
In this way, Revata doubted even things that were permitted. Because he had great doubts as far as the Vinaya was concerned, he was known as Kaṅkhā Revata, ‘Revata the Doubter.’
The doctrines with reference to Kaṅkhā Revata may be taken from the Apādāna Text and Commentary, the Theragāthā Commentary, etc.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