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소나 꼴리위사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빠두뭇따라 부처님 생전에 미래의 소나 꼴리위사(Soṇa Koḷivisa) 대장로인 덕 있는 사람이 상인의 가문에서 재탄생하여 시리왓다나(Sirivaḍḍha)라고 명명되었다. 시리왓다나는 다른 대장로들처럼 성년이 되었을 때, 정사로 가서 청중들 끝에 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이 어떤 비구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āraddha-vīriya) 중에서 으뜸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고, 그는 "나도 장차 저런 비구가 되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가르침이 끝나자, 그는 부처님을 초대하여 일주일 동안 거대한 보시를 했다. 그리고서 그는 부처님께 그의 서원을 말씀드렸다. 시리왓다나의 소원이 성취될 것을 예견한 부처님께서는 전처럼 예언한 다음 정사로 떠났다.
바라나시 귀족으로서의 삶
자신의 공덕행으로 시리왓다나는 천상계나 인간 세상에서만 다시 태어났다. 10만 겁이 흐른 다음에, 깟사빠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시고 고따마 부처님 출현 전인 이 현겁(現劫. Bhadda aeon)에, 시리왓다나는 덕망 있는 집안의 귀족으로 태어났다. 어느 날 그가 친구들과 강가 강에서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있을 때 벽지불이 나타났다.
낡은 가사를 걸친 벽지불은 "강가 강둑에 거처를 만든 후에 바라나시에서 탁발하면서 안거(vassa)를 지내겠다."고 생각하며, 강물에 떠내려 온 막대기와 사탕수수 줄기를 주우러 갔다. 시리왓다나는 친구들과 함께 벽지불로 가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물었다. "존자시여,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젊은이여, 안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비구가 머물 거처가 필요하다네.”
시리왓다나는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오늘 하루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일 우리가 거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벽지불은 속으로 "이 덕 있는 귀족에게 은혜를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그가 방문한 목적이었다. 벽지불이 승낙한 것을 안 시리왓다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그는 온갖 음식을 차려 놓고, 서서 벽지불이 오기를 기다렸다. 벽지불은 어디서 탁발할까 생각하다가 시리왓다나의 생각을 알게 되자, 그의 집 문으로 갔다.
벽지불이 오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한 시리왓다나는 발우를 받아들고 음식을 담았다. 그는 이렇게 청했다. ‘이번 안거 석 달 동안 저의 집으로 와서 탁발하십시오.’ 약속한 다음 벽지불이 떠나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벽지불을 위한 경행로, 낮의 쉴 곳과 밤에 거처를 만들어 벽지불에게 바쳤다.
(시리왓다나의 특이한 점은 다음과 같다. 벽지불이 그 처소에 들어왔을 때, 시리왓다나는 벽지불의 발에 흙이 묻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땅 위에 젖은 소똥을 바른 다음, 그 위에 그가 입었던 동전 10만개의 가치가 있는 빨간 외투를 깔았다. 붉은 외투의 색깔과 벽지불의 피부 색깔이 같은 것을 보고, 그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존자가 외투를 밟은 다음에 내 외투가 더욱 아름다워졌듯이, 내 손발의 빛깔도 히비스커스(하와이 무궁화) 꽃의 빛깔처럼 붉고 아름답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몸의 감촉은 마치 백 번 입은 무명[木綿] 옷과 같기를 바랍니다!”)
하와이 무궁화
시리왓다나는 3개월 안거 동안 벽지불을 시봉했다. 벽지불이 안거 끝에 자자(自恣. pavarana)를 마쳤을 때, 그는 세 가지 가사를 바쳤다. 발우와 가사를 완벽하게 갖춘 벽지불은 간다마다나(Gandhamādāna) 산으로 돌아갔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사악처에는 재탄생하지 않고 천상계와 인간 세상에서만 재탄생하던 시리왓다나는, 마침내 고따마 부처님 생전에 까알아짬빠아(Kāḷacampā) 시에 있는 상인 우사바(Usabha)의 부인에게 임신되었다. 그가 입태된 다음에 사람들은 수천 개의 선물을 상인의 집으로 보냈다. 그가 태어난 날에도 까알아짬빠아 시 전체는 선물로 압도되었다. 그의 이름을 짓는 날,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의 안색은 마치 액체 상태인 붉은 금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를 상인의 아들 소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꼴리위사(Koḷivisa) 가문이므로 소나 꼴리위사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천신처럼 행복하게 자랄 그를 위해 육십 명의 보모가 선발되었다.
소나를 위한 음식
소나를 위한 음식은 다음과 같이 준비되었다.
우선 60 royal pai(넓이의 단위)의 밭을 갈고 (1) 우유 (2) 향수 (3) 보통 물로 벼를 재배했다.
논에 놓아둔 많은 항아리에서 우유와 향수가 쏟아졌다. 줄기가 우유를 흡수하고, 새나 곤충에게 잡아먹힐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그리고 농작물이 부드럽게 되도록, 밭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서까래를 올린 다음에 돗자리를 덮었다. 논의 모퉁이에서 경비원들이 지키게 했고 그들이 쉴 수 있도록 방충망도 설치했다.
작물이 익은 다음에 4가지 종류의 깔개[샤프란(saffron), 정향(cloves), 로덴드론(rhododendron)과 가루분(鉛粉. kakkū. kamyin powder)]를 깔아서 곡창지대를 개량하였다. 대기는 이전보다 귀한 향을 더하여 향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일꾼들이 농장으로 내려가서 농작물을 정성껏 거두어들여 끈으로 묶고 말렸다. 곡창지대 바닥에 깔개를 한 겹을 깐 다음에, 그 위에 벼 한 묶음을 깔았다. 이런 식으로 곡창지대가 가득 찰 때까지 깔개와 벼 층을 번갈아 깔았다. 그러고 나서 문을 닫았고 벼는 3년 동안 보관되었다.
3년이 지난 다음 곡창지대의 문이 열리자 까알아짬빠아 도시 전체에 향기가 꽉 찼다. 벼를 타작하자 술꾼들은 왕겨와 밀기울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깨진 쌀은 하인과 일꾼들이 가져갔고, 소나용으로는 깨지지 않은 온전한 쌀만 사용되었다.
밥을 짓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금실로 만든 바가지에 쌀을 넣는다. 백 번 걸러낸 쌀로 밥이 되자마자 (오래 동안 담가놓지 않고) 바로 퍼낸다. (밥이 되자마자 솥에서 꺼냈기 때문에) 그렇게 지은 밥은 재스민 꽃과 흡사했다. 그러고 나서 밥을 금 그릇에 담고, 은컵 위에 올려놓았는데, (밥이 식지 않도록) 은컵에는 물을 섞지 않고 끓인 감미로운 우유 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다음에 음식을 소나에게 갖다 주었다.
소나는 밥을 알맞게 먹고 입과 손발을 향수로 씻었다. 그리고는 입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도록 여러 가지 베텔을 씹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촉감 좋고 정교한 카펫이 깔려져 있었다. 그의 손바닥과 발바닥은 히비스커스의 색깔처럼 빨갛다. 그의 손길은 백 번 입은 무명[木綿] 옷처럼 매우 부드러웠다. 발바닥은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으며, 연꽃 실처럼 나선형으로 되어 있고, 루비 귀마개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마다 그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보세요! 안 그러면 나는 발로 땅을 디딜 겁니다." 성년이 되자 부모는 그를 위해 계절 별로 세 개의 궁전을 지었고, 여자 무희들이 춤을 추어서 그를 즐겁게 했다. 그 부유한 아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천신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 고따마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초전법륜경을 가르친 다음에 라자가하에 머물고 계셨다. 한편 훌륭한(righteous) 빔비사라 왕은 소나를 불러서 8만 명의 촌장들과 함께 부처님께 보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깊은 믿음이 생긴 소나는 부처님께 출가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부모의 허락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붓다들은 부모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들에게 비구계를 주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부처님." 소나가 말했고, 그는 부모에게 가서 허락을 받은 다음에 다시 부처님께 왔다. 부처님의 지시로 비구들은 그에게 비구계를 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Vinaya Mahāvagga의 Cammakkhandhaka를 참조하면 된다.)
비구가 된 다음 라자가하에 머무는 동안,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은 그를 존경하여 선물을 많이 가져오곤 했다. 그들은 그의 훌륭한 성품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소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들이 계속해서 찾아온다면, 나는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수행 법문을 듣고 시이따와나(Sītavana. Sīta grove) 공동묘지에 가서 고행해야 겠다 사람들은 묘지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금욕 수행이 아라한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으로부터 수행 법문을 들은 후 시이따와나로 가서 고행을 시작했다.
용맹정진
소나 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몸은 지나치게 부드러워서 나는 도와 과의 지복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나를 피곤하게 할 정도로 정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오직 (앉고 눕는 두 가지 자세를 배제하고) 서고 걷는 두 가지 자세에만 몰두하는 수행을 했다. 그러자 그의 지나치게 부드러운 발바닥 가장자리에 물집이 생겼고, 물집이 터지면서 피가 흘러서 경행대 전체가 피로 물들었다. 걸을 수 없게 되자 그는 팔꿈치와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수행했는데, 팔꿈치도 상처투성이가 되어 경행대 전체가 더욱 빨갛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행은 향상되는 기미가 없었다. 그러자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나 정도이지 나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도와 과를 얻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진정한 빠르게 깨닫는 자(ugghaṭitaññū)나, 자세한 설명에 의해서 아는 자(vipañcitaññū) 즉 제도가능자(neyya)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단지 빠다빠라마 개인(padaparama individual)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구 생활을 계속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환속해서 세속적인 쾌락을 즐기면서 선행을 하겠다.”
*주: 빠다빠라마 개인(padaparama individual): 배워도 뜻은 모르고 단어만 기억했다가 다음 부처님 시대에 깨닫는 존재.
부처님의 훈계: 하프의 비유
소나 비구의 생각을 아는 부처님께서는 저녁 때 비구들과 함께 소나의 거처로 가서, 붉은 피로 물든 경행대를 보고 물었다. "도살장처럼 붉은 이 경행대는 누가 사용하는 것인가?" (부처님은 알고 계셨지만, 법문하시려고 물으신 것이다.) 비구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부처님, 소나 비구는 경행을 너무 열심히 해서 발바닥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도살장처럼 붉게 물든 경행대는 소나 비구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나 비구의 수행 장소로 가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소나 비구가 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이 그에게 환속하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하프(vīnovāda)를 비유로 들어서 하프의 현을 너무 느슨하게 하거나 너무 꽉 조여서는 안 된다고 법문을 하셨다.
부처님: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지금부터 묻는 질문에 대해 네가 생각하는 대로 편하게 대답하여라. 너는 출가하기 전에 하프를 연주했었지?
소나: 네, 그렇습니다, 부처님.
(소나가 어렸을 때 부모는 "소나가 다른 예술을 배운다면 지루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프는 편안하게 앉아서 배울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하프를 배우게 해서 그는 뛰어난 하프 연주자가 되었다. 부처님은 "다른 법문은 이 소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가 재가자일 때 하프를 연주하는 데 재능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하프 연주에 비유하여 가르친다면, 그에게 지혜가 빠르게 생길 것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질문한 다음에 법문을 시작했다.)
부처님: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하프 줄이 너무 팽팽하다면, 하프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고, 오래 가겠느냐?
소나: 부처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고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현이 너무 느슨하다면, 하프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고. 오래 가겠느냐?
소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부처님. 아름다운은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고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이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균형이 잡혀 있다면, 하프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고, 오래 가겠느냐?
소나: 부처님, 하프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오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만약 너무 많은 정진을 기울인다면, 들뜨게(uddhacca) 된다. (과도한 정진은 들뜸을 초래한다.) 정진을 너무 적게 하면 나태함을(kosajja) 유발한다. (부족한 정진은 나태함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들 소나여, 너는 정진(vīriya)과 집중(samadhi)을 똑같이 하라. (정진과 집중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라.) 믿음(saddhā) 등도 동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과 정진(vīriya)과 사띠(sati)와 집중과 지혜(paññā)이라는 다섯 가지 기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균형이 잘 잡혔을 때는 평온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
소나: 잘 알겠습니다, 부처님.
소나 비구에게 하프 연주를 비유하여 정진과 집중의 완벽한 균형을 포함한 수행 방법을 가르친 다음에 부처님은 깃자꾸따(Gijjhakūṭa) 언덕에 있는 정사로 돌아가셨다.
3. 호칭
소나 꼴리위사 비구의 수행은, 다른 사람들의 정진은 증가되어야 하지만(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정진은 감소되어야 함이 드러난다.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나중에 부처님께서는 그를 열심히 정진하는(āraddha-vīriya) 자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비구들이여, 열심히 정진하는 제자들 중에서 꼴리위사(Koḷivisa) 가문의 소나(Soṇa)가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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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16): Soṇa Koḷivisa Mahāther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0.html
(a) Aspiration made in The Past
The virtuous man, who was to become Soṇa Koḷivisa Mahāthera, during the lifetime of Buddha Padumuttara, was reborn in the family of merchants in a remote past and was named Sirivaḍḍha. When Sirivaḍḍha came of age, as in the manner of former aspirant Mahātheras, he went to the monastery and listened to the Buddha’s Teaching, standing at the end of the audience. Seeing the Buddha declaring a monk, who was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putting strenuous effort (āraddha-vīriya), he was inspired, saying to himself: “I too should become one like this monk in future!” When the teaching was over, he invited the Buddha and performed a mahā-dāna for a week. Thereafter, he made known to the Buddha his aspiration. Foreseeing the fulfilment of Sirivaḍḍha’s wish, the Buddha prophesied as before and then left for the monastery.
Life as A Clansman of Bārāṇasī
Due to his meritorious deeds, Sirivaḍḍha was reborn only either in the realm of devas or that of humans. When a hundred thousand aeons had elapsed, i.e. when Buddha Kassapa had attained Parinibbāna in this Bhadda aeon and before our Buddha appeared, Sirivaḍḍha was reborn as a clansman in a virtuous family. One day, while the clansman was enjoying a water-sport with his friends in the river Gaṅgā, a Paccekabuddha appeared.
The Paccekabuddha, wearing old robe, thinking: “I shall spend the vassa with Bārāṇasī as food-resort, after building a dwelling on the bank of the Gaṅgā,” went to collect sticks and cane stalks that were brought by the river-currents. Thereupon, Sirivaḍḍha with his friends went to the Paccekabuddha, paid homage to Him and while standing asked: “What are you doing, Venerable Sir?” “Dear young man,” replied the Paccekabuddha, “as the vassa is drawing near, a dwelling is required for a monk.”
Sirivaḍḍha then said: “Venerable Sir, please wait a day, today, by all means. Tomorrow we shall build a dwelling and offer it to you.” Saying to Himself: “I should grant my favour to this virtuous clansman,” which was the main purpose of His visit, the Paccekabuddha accepted his offer. Knowing the Paccekabuddha’s acceptance, Sirivaḍḍha returned home. The next day, he prepared all kinds of offering and waited, while standing, for the coming of the Paccekabuddha. The latter thinking where He should collect food, came to know of Sirivaḍḍha’s idea and went to the gate of his house.
On seeing the Paccekabuddha’s coming, Sirivaḍḍha was very pleased and took the almsbowl and offered food in it. He supplicated, saying: “Please come to the gate of my house [for food] for the three months of this vassa.” Getting the promise and when the Paccekabuddha had left, he completed, with his friends, the construction of the dwelling with a walk-way, day-and-night resorts for the Paccekabuddha and offered them to Him.
What was peculiar about Sirivaḍḍha was this: When the Paccekabuddha entered the dwelling, Sirivaḍḍha, with the idea not to let the former’s feet touched by the mud on the ground, smeared on the ground wet cow dung and then spread over it his red cloak, which he had put on and which was valued at a hundred thousand coins. On seeing the colour of the red cloak and that of the Paccekabuddha’s body were one and the same, he was very pleased, so he said: “Just as my cloak has become more beautiful since You stepped on it, even so may the colour of my hands and feet be red and beautiful like the colour of Hibiscus flowers! May the touch of my body be like the cotton wool that has been dressed a hundred times!”
Sirivaḍḍha served the Paccekabuddha for the three months of the vassa. When the Paccekabuddha held the pavarana ceremony at the end of the vassa, he offered Him a three-piece robe. Equipped completely with bowl and robe, the Paccekabuddha returned to the Gandhamādāna mountain.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Without being reborn in the four woeful states, Sirivaḍḍha was reborn in the realms of devas or humans, and was finally conceived in the house of the merchant Usabha, in the city of Kāḷacampā, during the lifetime of our Buddha. Since the time of his conception, thousands of gifts had come to the merchant’s house. On the day of his birth too, the whole of Kāḷacampā City was overwhelmed by gifts and offerings too. On his naming day, the two parents said: “Our son has brought his own name. His complexion is like something bathed in the liquid of red gold,” and called him Soṇa Boy or Soṇa, the merchant’s son. (The name given was just Soṇa.) But as he belonged to the clan of Koḷivisa, he was better known as Soṇa Koḷivisa.) Then sixty nurses were appointed for him who was brought up blissfully like a celestial being.
Food prepared for Soṇa
The following was the way the food for Soṇa was prepared:
First, the field, extending to 60 royal pai, was ploughed and sāli paddy was grown by (1) cow-milk, (2) scented water and (3) ordinary water.
Into the drain in the field, cow milk and scented water were poured from a large number of jars. When the stalks had absorbed the milk, in order to protect them against the danger of being eaten by birds and insects, and in order to make the crops tender, posts were erected in the field, leaving space between one pole and another. On the poles, on the paly, were rafters, which were covered by mats. Screens were then erected for shelter and guards were places at the corners.
When the crops ripened, granaries were renovated by smearing them with four kinds of unguent (namely, saffron, cloves, rhododendron and kakkū or kamyin powder). The air was made laden with fragrance by applying precious unguent above the previous kind. Then only did farm workers went down to the farms and collected the crops carefully, tying with strings and drying them. A layer of unguent was spread on the floor of the granaries; the dried bundles of stems were spread on the layer of unguents. In this way, the layers of unguent and the layers of crops were made alternately until the granaries became full. The doors were then closed and the crops kept for three years.
On completion of three years, the doors of the granaries were opened. The whole city of Campā was then diffused by the fragrance.
When the sāli paddy was pounded, drunkards rushed to buy the paddy husks and bran. The broken rice was, however, taken by the servants and workers. Only whole grains were collected for Sona.
The way of cooking rice was as follows: whole grains were put in the washing-basket made of gold threads. After filtering a hundred times, the rice was immersed in the boiling water and (without letting it remains long) it was taken out. (As the rice was cooked as soon as it was taken out from the water) the cooked rice resembled jasmine flowers.
The rice was then put in a gold bowl which was then put on the silver cup which was full of boiled sweet rice-milk, free of water and boiled thoroughly (so that the cooked rice remained hot). The food was then placed before Sona.
Soṇa Koḷivisa had the sāli food moderately. He washed his mouth and hands and feet with scented water. He was then given quids of betel of all kinds and other things to make his mouth smell sweet.
Wherever he went, fine and exquisite carpets were spread out. The palms of his hands and the soles of his feet were red like the colour of Hibiscus. His touch was very soft like that of the cotton wool that has been dressed a hundred times. The soles were covered with soft hair having the colour of the lotus threads in a spiral shape and existing in a ruby earplug. Whenever he was angry with somebody, he would threaten, saying: “You think about it carefully! Or I shall put down my feet on the ground.” On coming of age, three palaces were built for him (as in the case of Yasa the merchant’s son), each for a particular season. He was also caused (by the parents) to enjoy the entertainment of female dancers. Taking pleasure in great luxury, the wealthy son was living a deva-like life blissfully.
At that time, our Buddha had attained Enlightenment and taught the Dhammacakka Sutta and was staying with Rājagaha as His resort for alms-food. Meanwhile, the righteous King Bimbisāra summoned Soṇa and sent him, in the company of eighty thousand villageheadmen, to the Buddha. Having listened to the Buddha’s sermon, and developing immense faith, Sona asked the Buddha for ordination.
The Buddha then asked him as to whether he had obtained his parent’s permission. When the answer was negative, the Buddha advised him saying: “Dear son Soṇa, Buddhas do not ordain those who are not permitted by their parents.” “Very well, Exalted Buddha,” said Soṇa and in obedience he went back to his parents and obtained their permission before he approached the Buddha again. Under the instruction of the Buddha, he was ordained by a bhikkhu. (This is a brief account. A detailed account may be read in the translation of the Cammakkhandhaka of the Vinaya Mahāvagga.)
While living in Rājagaha, after gaining monkhood, his relatives and friends adoringly made offerings in his honour. They spoke a lot in praise of his handsome personality. So it occurred to Soṇa: “Many people came to me. If they keep on coming to me, how could I engage in tranquillity and insight meditation? I would not be able to do so any longer. What if I, after hearing the meditation sermon from the Buddha, go to the cemetery at Sītavana (Sīta grove) and put effort to practise asceticism! People would not go there for they abhor the cemetery. Then will my ascetic performance reach its apex, which is arahatship.” Accordingly, after hearing the meditation discourse from the Buddha, he went to Sitavana where he was inspired to begin his ascetic engagement.
Strenuous Engagement
“My body is so tender,” thought Venerable Sona, “As a matter of fact, I am not in a position to attain the bliss of the Path and the Fruition easily. Therefore, I should apply energy by tiring myself.” So thinking, he did his meditation by indulging only in the two postures of standing and walking (and rejecting entirely the other two postures of lying down and sitting). Then boils appeared at the edges of his very soft foot-soles and the whole terraced walk became deep red as the boils burst. When he was unable to walk, he practised by crawling on his elbows and knees which also were cut and the entire walk became doubly red. In spite of his such strenuous effort, he could not see any sign of positive result of his meditation.
As a result, he conceived the following idea:
“If somebody else were to put strenuous effort, he too would do like me but not more than what I have done. Despite my effort, I was unable to make to the Path and the Fruition. Perhaps I am not a true ugghaṭitaññū, vipañcitaññū or neyya. Perhaps, I am only a padaparama individual. As such, what is the use of monkhood. There’s probably none. I shall revert to laymen’s society. I shall enjoy worldly pleasures and (while doing so) shall do good works.”
Buddha’s Admonition: The Parable of A Harp
Knowing of the Venerable’s thought, the Buddha went in the evening in the company of bhikkhus to Sona’s dwelling, and on seeing the walkway in red asked: “Monks whose walkway is this that is red like a slaughter house?” (though He knew about it but He did so with an intention to deliver a sermon). The bhikkhus replied: “Exalted Buddha, the soles of the Venerable Soṇa, who had put so much effort by walking in his practice of meditation, have been injured. The walkway now deep red like a slaughter house belongs to that bhikkhu, Soṇa.” The Buddha proceeded to Venerable Soṇa’s meditation place and sat down on the seat readily prepared.
Venerable Soṇa came and made obeisance to the Buddha and took his seat at a suitable place. When the Buddha asked him whether it was true that he had conceived the idea of returning to lay-life, Venerable Soṇa admitted that it was true. Thereafter, the Buddha gave a sermon, the parable of a harp (vīnovāda), the harp’s strings should be set neither too loose nor too tight.
Buddha: Dear son, how do you think of the question that I am now going to ask? You may answer as you like. You are clever, are you not, in playing a harp formerly while a lay man.
Soṇa: Yes, Exalted Buddha.
(Herein, when the Venerable Soṇa was young, his parents thought: “If Sona, would learn any other form of art, he would be weary. But harping is something that can be learnt while sitting comfortably at a place.” So they made him learn the art of harping and he became an accomplished harpist.
(The Buddha knew that “other forms of meditation cannot benefit this monk Soṇa. While a layman, he was accomplished in harping. He will quickly gain spiritual knowledge, if I teach him with reference to that art.” Accordingly, after asking Venerable Soṇa, as has been stated above, the Buddha began His sermon.)
Buddha: Dear son Soṇa, how do you think of the question I am now going to ask? Suppose your harp-strings are too tight, will your harp make a pleasant sound? Will it last long?
Soṇa: Exalted Buddha, that is impossible. It will neither make a pleasant sound nor will it last long.
Buddha: Dear son Soṇa, how do you think of the question I am now going to ask? Suppose the strings are too loose, will your harp make a pleasant sound? Will it last long?
Soṇa: It is impossible, Exalted Buddha. It will neither make a pleasant sound nor will it last long.
Buddha: Dear son Soṇa, how do you think of the question I am now going to ask. Suppose the strings are neither too tight nor too loose but set in perfect balance, will your harp make a pleasant sound? Will it last long?
Soṇa: It is possible, Exalted Buddha, that the harp will make a pleasant sound and it will last long.
Buddha: In the same way, dear son Soṇa, if the effort put forth is too much, it causes restlessness (uddhacca). (Excess energy brings about restlessness.) If the effort put forth is too little, it causes indolence (kosajja). (Inadequate energy brings about indolence.) Therefore, dear son Soṇa, set up energy (vīriya) and concentration (samādhi) in equal amount. (Try to keep the balance of your energy and concentration.) Know that your faculties such as faith (saddhā) must also be in equal degree. (Make the five faculties, such as, faith (saddhā), energy (vīriya), mindfulness (sati), concentration (samādhi) and wisdom (paññā), are of equal proportion.) When they are well balanced, try to have signs of tranquillity, etc.)
Soṇa: Very well, Exalted Buddha.
Having admonished the Venerable Soṇa by setting the art of harp-playing as an example and having taught him the meditation practice involving the perfect balance of energy and concentration, the Buddha returned to the monastery on the Gijjhakūṭa hill.
(c) Etadagga Title achieved
Considering in retrospect, the way of the Venerable Soṇa Koḷivisa’s meditation practice, the fact manifests itself that while others' energy had to be increased (as it was so deficient), his was to be decreased (as it was too much).
Therefore, at a later time, the Buddha praised him and declared him the foremost (etadagga) in having strenuous energy (āraddha-vīriya):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āraddha-vīriyānam yadidaṃ Soṇa Koḷivso.”
“Monks, among my disciples who possessed of strenuous energy, Soṇa of Koḷivisa clan is the best.”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