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소나 꾸띠깐나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빠두뭇따라 부처님 생전에 미래의 소나 꾸띠깐나(Soṇa Kuṭikaṇṇa) 대장로인 덕 있는 사람도 앞서 말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함께 정사에 갔다. 객석 가장자리에 서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던 중 어떤 비구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법문하는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선포되는 것을 보았다. 소나는 ‘나도 미래 부처님의 시대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법문하는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을 초청하여 7일 동안 거대한 보시를 했고, 그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7일 전에 어떤 비구를 감미로운 목소리(kalyāṇavakkaraṇa)로 법문하는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선포하셨는데, 이 공덕의 결과로 저도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그 스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남자의 소원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리라 보신 부처님은 “나중에 고타마 붓다의 시대에 서원이 이루어질 것이다.”고 예언했다. 이렇게 말하고 부처님은 떠나셨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죽을 때까지 덕행을 한 소나는 (사악처에는 태어나지 않고) 천상계와 인간 세상에서만 다시 태어나다가, 드디어 부처님 출현 전에 아완띠(Avanti) 국의 꾸라라가라(Kuraraghara) 마을에 사는 상인의 아내 깔리(Kāḷī)라는 신자에게 입태되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깔리는 라자가하에 있는 그녀의 부모에게로 돌아갔다.
그때 일체지자가 된 부처님은 이시빠따나(Isipatana) 사슴공원에서 초전법륜경을 가르치셨다. (그날은 Mahā Era 103년 아살하(Āsāḷhā) 보름날이었다.) 법문을 들으러 십만 우주의 천신과 범천들이 사슴공원에 일제히 모여들었다. 그 모임에는 28명의 야차 장군이 참석했고, 사아따아기라(Sātāgira)도 그들과 함께 부처님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원주: 여기서 두 악마 장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The Great Chronicle of Buddhas(GCB)』 제10장 (『大佛傳經 V』, 제10장 )을 참조하면 된다.)
(원주: 제10장에 제시된 설명은 숫따니빠따 주석서의 헤마와따 경의 설명을 인용한 것인데, 그 설명에 의하면, 사아따아기라가 초전법륜경 법문을 듣고 있을 때, 그는 그의 친구 헤마와따 생각을 하느라고 법문에 집중하지 못해서 도와 과를 깨닫지 못했다. 그가 헤마와따와 함께 법문을 듣기 위해 다시 돌아왔을 때, 두 사람 모두 결국 거룩한 수다원이 되었다.
(원주: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의 하나의 모음(Ekaka-nipāta)에 의하면, 바탕을 둔 것은 사아따아기라가 초전법륜경 법문을 듣고 수다원이 된 것에서 시작한다. 그 후, 그는 헤마와따를 데리러 갔고, 상인의 딸인 라자가하 근처의 꾸라라가라의 깔리의 집 위 공중에서 헤마와따를 만났다. 헤마와따를 만났을 때, 그는 부처님의 육체적 실천(kāyasamācāra), 생계적 실천(ājīva), 정신적 실천(manosamācāra)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그는 모든 질문에 답했다. 이렇게 해서 헤마와따 경에 담긴 부처님의 공덕과 속성에 대한 문답이 끝나자 헤마와따는 친구의 경건한 말을 차근차근 숙고하여 수다원이 되었다. 두 이야기가 다른 것은 경전의 암송자(bhāṇaka)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아따아기라는 부처님이 초전법륜경을 법문할 때 그의 친구 헤마와따가 참석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를 데리러 갔다가 깔리의 집 위 공중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부처님의 실천행 등에 대한 문답이 이어졌다.
사아따아기라가 부처의 실천행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깔리는 모든 것을 엿듣고 부처님을 직접 보지 않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어 수다원이 되었다.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대신 즐긴 것과 같다. 그녀는 가장 법랍이 많은 비구니를 포함한 모든 여성 신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수다원이 된 것이다.
수다원이 된 깔리는 그날 밤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소나였다. 부모와 함께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문 후, 깔리는 쿠라라가라로 돌아왔다. 아들이 값어치가 1천만(koṭi) 루피인 귀걸이(kaṇṇa)를 했기 때문에, 그는 소나 꾸띠깐나(Soṇa Kuṭikaṇṇa)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경각심과 비구 생활
당시 마하깟짜야나(Mahā Kaccāyana) 장로는 구라라가라에서 탁발하면서 빠빠따(Papata or Pavatta or Upavatta)라는 언덕에 머물고 있었다. 재가신도인 깔리는 계속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장로에게 공양을 올렸으며, 그녀의 아들 소나도 그와 친하게 지냈다. 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로에게 시중들기 위하여 정사에 가곤 했고, 장로는 계속해서 그에게 담마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 소년은 경각심(警覺心. 상웨가)을 많이 느꼈고, 담마를 열심히 실천했다. 한때 그는 대상(隊商. caravan)과 함께 웃제니이(Ujjenī)로 여행을 떠났는데, 밤에 야영을 하는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에 가서 잠을 잤다. 대상 중에 단 한 사람도 그를 깨우지 않고 먼저 떠나 버려서, 그는 대상이 출발해 버린 것도 모르고 계속 잠을 잤다.
잠에서 깬 소나는 아무도 보이지 않자 서둘러 대상 길을 따라가다가 반얀 나무에 이르렀다. 나무에서, 그는 못생기고 징그럽고 몸이 큰 남성 아귀가, 자신의 뼈에서 떨어진 자신의 살 조각들을 주워 먹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소나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아귀는 자신이 누구인지 말했다. 소나는 다시 왜 그걸 먹느냐고 물었고, 그는 과거의 업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소나가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과거에 Bharukaccha의 악덕 상인이었는데, 다른 사람을 속여 생계를 꾸렸습니다. 또 나는 탁발하러 온 비구들에게 이렇게 악담했습니다. ‘네 자신의 살을 먹어라!’ 이런 악행의 결과로 나는 지금 이와 같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소나는 크게 놀랐다.
그런 다음 그는 여행을 계속했는데 이번에는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는 두 명의 아귀 소년을 만났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그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린 아귀들은 소나에게 과거에 저지른 악행을 이렇게 말했다. 전생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젊었을 때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향수를 팔았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 그들의 어머니는 어떤 아라한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심한 악담을 퍼부었다. “어머님, 어찌하여 우리 것을 비구들에게 주셨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주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은 지옥에서 고통을 겪었고, 그 악행의 과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그들이 소나를 만났을 때 그런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 아귀로 다시 태어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소나는 매우 놀랐는데, 사실 앞의 사건보다 훨씬 더 놀랐다. (이러한 경각심 관련 이야기는 Udāna 주석서와 Sāratthadīpanī Ṭikā 참조.)
소나는 웃제니이에 도착하여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구라라가라로 돌아왔다. 그러고서 그는 마하깟짜야나 장로에게 다가가 자신이 여행 중에 경험한 것을 말했다. 장로는 소나에게 윤회와 그 고통의 순환에서 탄생의 불이익, 그리고 그 고통의 순환에서 다시 탄생하지 않아서 윤회에서 빠져나오는 이익에 대해 법문을 하였다. 소나는 장로에게 경의를 표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그는 잠에서 깨어나서 장로의 법문을 곰곰이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숙고와 그가 만났던 아귀들에 대한 기억은, 그로 하여금 윤회와 그 비참한 굴레에 대해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꼈다. 그래서 그는 비구가 되고자 하는 성향이 아주 강해졌다.
날이 밝자 그는 몸을 닦고 깟짜야나 장로를 찾아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스님, 제가 스님의 법문을 심사숙고해 보니 저는 새로 연마된 소라 껍데기처럼 완벽하고 순수한 이 고귀한 삼학(계정혜)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비구가 되기 위해 머리와 수염을 깎고, 염색한 옷을 입고 출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스님, 저를 비구로 받아주십시오.”
소나의 지혜가 무르익었는지를 조사해 본 깟짜야나 장로는 그의 지혜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나의 지혜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나야, 혼자 자고 혼자 먹는 고귀한 관습을 평생 이어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너는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우선 재가자로서 (포살 날 등에) 혼자 잠자고 혼자 식사하는 식으로 가끔 수행을 하기 바란다.”
그때는 바라밀과 경각심(警覺心)이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나의 출가하고자 하는 열망은 가라앉았다. 비록 그의 열망은 가라앉았지만 그는 방일하지 않고 여전히 장로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법문을 듣기 위해서 스님을 친견했다. 시간이 흘러서 두 번째로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자 그는 다시 요청했다. 이번에도 장로는 그에게 같은 충고를 했다.
소나가 세 번째로 요청했을 때, 그의 지혜가 성숙된 것을 안 마하깟짜야나 장로는 그를 사미로 출가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가시키려면 비구가 10명이 있어야 하는데, 비구가 구라라가라에는 두세 명밖에 없어서 출가시킬 수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중원에는 많은 비구들이 있었으나 그들이 좀처럼 한군데 10명이 모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를 정식 비구로 출가시키는데 3년이나 걸렸다.(출처: Sārattha Ṭikā)
출가한 소나 비구는 수행 주제를 받아서 위빳사나 수행에 몰두하여 그 안거 동안에 아라한이 되었고 장로에게 숫따니빠따(Sutta-nipāta)도 공부했다. 안거 끝에 자자를 행한 후, 그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싶어서 계사(戒師)인 마하깟짜야나 장로에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상세는 율장 Mahāvagga 참조)
그러자 장로는 “소나야, 네가 그곳에 도착하면 부처님이 너를 향실에 머물게 하고 법문을 해 보라고 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렇게 해야 한다. 네 법문을 듣고 기쁘시면 부처님께서 이러저러한 상을 주실 것이다. 고귀한 부처님께 내가 인사드린다고 말씀 드려라!”라고 말하면서, 충심으로 허락했다.
장로의 허락을 받은 소나 비구는 어머니 칼리(상인의 부인)의 집으로 가서 그의 계획을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승낙하고 “잘 됐구나, 얘야! 부처님을 뵈러 갈 때, 이 융단을 가지고 가서 내 보시로 향실 바닥에 깔아 드려라.” 이렇게 말하고 어머니는 그에게 최고급 융단을 건네주었다.
융단을 받은 소나 비구는 침구를 챙겨 사와티의 제따와나로 출발했다. 담마왕좌에 앉아 계신 부처님을 뵌 소나 비구는 적절한 자리에 서서 부처님께 예경을 드렸다. 소나 비구의 인사를 받은 부처님은 아난다 장로에게 “아난다여, 이 비구를 위한 숙소를 마련해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원주: 부처님이 방문한 비구와 같이 향실에 머무르시고자 할 때에는 비구에게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한다. 그러나 함께 지낼 이유가 없는 방문객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난다 장로나 당직을 서는 다른 사람이 다른 적절한 장소를 숙소로 잡는다.)
부처님의 뜻을 안 아난다 장로는 향실에 소나 비구의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고서 부처님은 밤 몇 시간 동안 선정에 입정한 다음 향실로 들어갔다. 소나 비구도 선정에 입정해서 오랜 시간을 앉은 다음 향실로 들어갔다. 부처님은 다른 제자들이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선정에 듦으로써 소나 비구와 소통하기를 원해서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한 다음에 부처님은 발을 씻고 향실로 들어갔다. 스승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 소나 비구도 열린 공간에서 선정에 든 다음에 부처님의 뒤를 따른 것이다.
부처님이 허락한 대로 향실에 들어간 그는 가사로 가림 막을 만든 다음 부처님의 발쪽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의 삼경(새벽 2시 - 6시)에, 오른 쪽으로 사자처럼(sīhaseyya) 누워서 주무신 부처님은 날이 밝을 무렵에 사띠와 함께 일어나셨다. 소나의 피로가 지금쯤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부처님은 그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아들 비구여, 네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암송해 보아라!” 비구는 『숫따니빠따』의 제4품 ‘여덟 게송의 품(Aṭṭhaka-Vagga)’ 중의 16개의 게송을 ‘감각 욕망 경’으로* 시작하여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로 암송했다.
*주: ‘감각 욕망 경’ :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584 참조
암송이 끝나자 부처님은 그를 칭찬하며 이렇게 물으셨다. “사랑하는 아들 비구여, ‘여덟 게송의 품’ 중의 게송 16개를 잘 배워서 잘 외웠다! 그 게송들은 (정확한 발음(articulation)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듣기 좋은 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은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게 이해되도록 청정하고, 흠잡을 데 없는 단어로 가득 차 있다. 아들 비구여, 너는 비구가 된지 얼마나 되었느냐?” “안거 단 한 번입니다.”이라고 소나 비구가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사랑하는 아들 비구여, 왜 그렇게 늦게 출가했느냐?” 소나 비구가 대답했다. “부처님, 저는 오랫동안 감각적 쾌락의 단점을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가정생활은 매우 갑갑하고(narrow), 해야 할 일과 신경 써야 할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랫동안 가정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감각적 쾌락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본 사람의 마음은, 연잎에서 물방울이 굴러 떨어지듯, 마침내 번뇌에 물든 생각이 내 마음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Disvā ādīnavaṃ loke, ñatvā dhammaṃ nirūpadhiṃ
Ariyo na ramatī pāpe, pāpe na ramatī suci.
왜냐하면 그는 위빳사나의 눈을 통해 형성의 세계 어디에서나 무상, 고, 무아의 결점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사성제로 네 가지 존재의 기반(Upadhi)인 열반(Nibbana)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자는 악행에서 쾌락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몸의 업, 말의 업, 마음의 업이 청정한 백조(haṃsa) 같은 사람은, 배설물이 가득한 더럽고 낡은 불선한 무더기에서 행복을 찾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소나 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 나에게 희열이 생기게 하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제 내 계사가 부탁하신 것을 전할 때이다.’ 그러고서 그는 위 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면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의 계사인 마하깟짜야나 장로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면서 나의 이름으로 ‘부처님의 발에 절을 올립니다.’라고 전하면서 삼배를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계율을 완화해 주십사고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1) 남쪽 지방인 아완띠에는 비구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여러 곳에서 10명의 비구들을 어렵게 모은 뒤에야 출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3년이 걸렸다. 남쪽 지방에서는 10명이 안 되더라도 비구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2) 아완띠의 남쪽 지방은 토양이 검고 소의 발굽으로 다져지고 거칠어서 얇은 신발로는 다니기가 힘드니 여러 겹의 바닥을 댄 신발을 신게 해 주십시오.(그 당시 비구들은 바닥이 한 겹 이상인 신발을 신어서는 안 된다.)
(3) 아완띠의 남쪽 지방 사람들은 목욕을 중히 여기고 물로써 정화된다고 여기고 있으니 수시로 목욕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그 당시 비구들은 보통 14일에 한 번씩 목욕했다.)
(4) 아완띠의 남쪽 지방 사람들은 양가죽, 염소가죽, 사슴가죽을 깔개(얇은 방석)로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양가죽, 염소가죽, 사슴가죽을 깔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그 당시에 비구들은 짐승 가죽이나 가죽을 사용할 수 없었다.)
(5) 비구들이 교구(戒壇. sīmā) 밖에 있을 때 신도들이 ‘이 가사를 어느 비구에게 올립니다.’라고 말하고 맡겼는데 그 비구가 돌아온 다음에 그 사실을 알려주면 ‘니삭기야 삐찟디야’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받지 않습니다. 이 계율을 완화해 주십시오.(니삭기야 삐찟디야 제1조 : 여분의 가사는 10일 이상 보관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마하깟짜야나 장로가 저에게 부처님께 요청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소나 비구의 보고를 들은 부처님은 그에게 법문을 한 다음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아완띠의 남쪽 지방에는 비구가 드무니, 이런 변방 지역에서는, 나는 다섯 명의 비구들이 비구계를 주는 것을 허락하는데, 율장에 정통한 자 한 명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원주: 여기서 변방이란 중심지역 이외의 지역들을 의미하며, 중심지역의 동쪽은 가장갈라(Gajaṅgala) 시까지이며 그 너머는 큰 살라(sāla) 나무가 있는데 거기서부터는 변방이다. 중심지역의 남동쪽은 살랄라와띠(Salalavati) 강까지, 남쪽의 세따깐니까(Setakaṇṇika) 시까지, 서쪽은 바라문 마을인 투나(Thūna)까지, 북쪽으로는 우시랏다자(Usīraddhaja)라고 산까지이고, 그 너머는 변방이다.)
“(1) 비구들이여, 나는 그런 상황에서 율장에 정통한 비구 한 명을 포함한 다섯 명의 비구들이 비구계를 주는 것을 허락한다.”
(2) 비구들이여, 아완띠의 남쪽 지역은 울퉁불퉁하고 소의 발굽으로 다져져서 너무 거칠다. 나는 비구들이 모든 변방에서 여러 겹의 바닥을 댄 신발 신는 것을 허락한다.
(3) 비구들이여, 아완띠의 남쪽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목욕을 중요시하고, 물로써 정화된다고 여긴다. 나는 비구들이 모든 변방에서 매일 목욕하는 것을 허락한다.
(4) 비구들이여, 아완띠의 남쪽 지방에서는 양가죽과 염소가죽과 사슴가죽이 깔개 사용된다. 중심지역의 비구들이 에라구(eragu) 풀, 소라구(soragu) 풀, 맛자루(majjaru) 풀, 잔뚜(jantu) 풀로 만든 깔개를 사용하는 것처럼, 아완띠의 남쪽 지방에서는 동물 가죽을 깔개로 사용한다. 나는 비구들이 양가죽, 염소가죽, 사슴가죽을 모든 변방지역에서 깔개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한다.
(5) 비구들이여, 사람들이 교구 밖에 있는 비구들에게 ‘이 가사는 우리가 아무개 비구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가사를 맡긴다면, 그 가사가 해당 비구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 가사는 받을 사람이 받은 것이 아니다. 나는 비구들이 그 가사를 받아도 된다고 허락한다.”
다시 소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부탁한 대로, 어머니의 이름으로 부처님께 예경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여자신도인 깔리가 이 융단을 향실 바닥의 양탄자로 사용하시라고 보시했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향실에 고급 융단을 깔아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고 아완띠의 쿠라라가라 마을 근처의 빠빠따 언덕에 있는 그의 정사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소나 장로는 부처님께 가서 한 일을 모두 계사에게 보고했다. 다음 날 그는 탁발하러 어머니인 깔리의 집에 가서 대문에 서 있었다. 아들이 문 앞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황급히 나와서, 예경을 하고, 장로의 손에서 발우를 받아 들고, 자리를 마련하여 음식을 제공했다. 그런 다음에 어머니와 장로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어머니: 아들아, 부처님을 뵀니?
장로 : 네, 뵀어요.
어머니: 내 이름으로도 부처님께 예경 올렸니?
장로 : 네. 부처님께 보시하신 고급 융단을 부탁하신 대로 부처님의 향실에 양탄자로 제가 직접 깔아드렸습니다.
어머니: 부처님을 뵈니까 어땠니? 네가 법문했다는 것이 사실이니? 부처님께서 정말로 칭찬하셨니?
장로 :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게 되셨나요?
어머니: 아들아, 이 집의 수호신이 내게 말하기를 그날 부처님이 너를 칭찬하셨고, 1만 세계의 천신과 범천들도 칭찬했단다. 아들아, 네가 부처님께 법문한 것과 같은 말로 나에게 법문해 줬으면 좋겠다.
장로는 어머니의 요청을 침묵으로 받아들였다. 장로가 승낙한 것을 안 어머니는 대문 앞에 큰 정자를 짓고 큰 법회를 열어 장로가 부처님께 한 법문을 그대로 반복하게 했다.
(역주: 1. 법구경 게송 368-376 참조 오원탁 엮음, 『법구경_하루를 살더라도』, 불교시대사, 2021, 405-410쪽
2. https://cafe.daum.net/satisamadhi/8nz1/591 참조)
3. 호칭
후에 고귀한 제자들 가운데 앉아 있던 부처님은 소나 꾸띠깐나 대장로를 칭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이여,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제자들 가운데 소나 꾸띠깐나가 제일이다.”
참고자료: 무념/응진 역, 『법구경이야기 3』, 옛길, 2008, 375-386쪽.
Biography (17): Soṇa Kuṭikaṇṇa Mahāther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1.html
(By the name given to him by his parents the Venerable One was Soṇa. As a lay man, he used to wear the earrings worth a crore, as such the name Kuṭikaṇṇa was added. Hence he was known as Soṇa Kuṭikaṇṇa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e virtuous man, the future Soṇa Kuṭikaṇṇa Mahāthera, during the lifetime of the Buddha Padumuttara, also went along with people to the monastery in the aforesaid manner. While standing at the edge of the audience and listening to the Buddha’s sermon, he saw a monk being declared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taught in a sweet voice. Sona then thought: “I, too, should become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teach in sweet voice in the dispensation of a future Buddha.” So he invited the Buddha and performed a great dāna for seven days and at the end of which, he said: “Exalted Buddha, seven days ago you declared a monk as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teach in sweet voice (kalyāṇavakkaraṇa), I too wish to be like that monk in the dispensation of a future Buddha as a result of this act of merit of mine.” Seeing that the man’s wish would be fulfilled without any hitch, the Buddha predicted: “Later, in the dispensation of Buddha Gotama, your wish will be fulfilled.” After saying thus the Buddha departed.
(b) Monkhood in His Final Existence
Having performed meritorious deeds until his death, Soṇa was reborn only in the worlds of devas and humans (without any rebirth in the four woeful states) and finally took conception in the womb of a devotee, named Kāḷī, the wife of a merchant, in the town of Kuraraghara, in the country of Avanti, before the appearance of our Buddha. When the pregnancy was in advanced stage, Kāḷī went back to her parents in Rājagaha.
At that time, our Buddha had attained Omniscient Buddhahood and taught the Dhammacakka Sutta in the Deer Park at Isipatana. (The date then was the full moon day of Āsāḷhā, 103 Mahā Era.) On the occasion of the teaching of the sermon, devas and Brahmās from the hundred thousand universes gathered in unison in the Deer Park. Present at the gathering were twenty-eight yakkha generals, and one of them was Sātāgira, were listening to the Buddha’s sermon.
(Herein a detailed account of the two demon generals may be looked up in the Chapter 10)
(The account given in Chapter 10 is based on the exposition of the Hemavata Sutta of the Suttanipāta Commentary. According to that exposition, while Sātāgira was listening to the Dhammacakka Sermon, he remembered his friend Hemavata. He, therefore, was inattentive and failed to realize the Path and the Fruition. Only when he returned with Hemavata to listen to the sermon, that both of them became noble sotāpannas, eventually.
(What is based on the Ekaka-nipāta of the Aṅguttara Commentary begins from his attainment of sotāpatti after hearing the Dhammacakka Sermon. Thereafter, he went to fetch Hemavata and met him on the way in the sky above the house of Kāḷī (of Kuraraghara), near Rājagaha, who was the daughter of a merchant. On meeting with Hemavata, he was asked by the latter about the physical practices (kāyasamācāra), livelihood (ājīva) and mental practices (manosamācāra) of the Buddha, and he answered each and every question. In this way, when the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Buddha’s virtues and attributes as contained in the Hemavata Sutta came to an end, Hemavata reflected on his friend’s pious words step by step and became established in sotāpatti-phala. The difference of the two accounts is due to the different reciters bhāṇaka).
Not seeing his friend Hemavata on the occasion of the Buddha’s teaching of the Dhammacakka Sermon, Sātāgira went to look for him and met him on the way, in the sky above Kāḷī’s house. And the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Buddha’s physical conduct, etc. took place.
While Sātāgira was talking about the Dhamma in his explanation of the Buddha’s conduct, Kāḷī overheard all and began to have faith in the Buddha without having personally seen him and became established in sotāpatti-phala, just as somebody who has enjoyed the meal prepared and meant for another person. She was the first noble sotāpanna and female lay devotee among women and the eldest ‘sister’ to them all.
Having become a sotāpanna, Kāḷī gave birth to a son that very night. The son was given the name Soṇa. After living with her parents for as long as she wanted, Kāḷī returned to Kuraraghara. Since the son was one wearing the earrings worth a crore, he was also known as Soṇa Kuṭikaṇṇa.
Saṃvega and His Monkhood
At that time, the Venerable Mahā Kaccāyana was staying in the hill known as Papata (or Pavatta or Upavatta), depending upon Kuraraghara as his alms resort. The lay devotee, Kāḷī, was serving the Venerable who constantly visited her house. Her son, Soṇa, also moved about the Venerable constantly and became friendly with him.
Whenever he had an opportunity, Soṇa would go to the Venerable to wait upon him. The Venerable also continuously taught him the Dhamma in return. The boy, therefore, felt a good deal of saṃvega and became ardent to practise the Dhamma. At one time, he travelled with a caravan to Ujjenī for commercial purpose and while camping at night, he became afraid to stay with the stuffy crowd. So, he went to another place and slept. The caravan moved on in the morning without him, as nobody remembered to wake him up before they proceeded.
When Soṇa awoke and not seeing anybody, he hurried to follow the caravan along the caravan road and reached a banyan tree. At the tree, he saw a male peta, who was disgusting ugly and big-bodied, picking up and eating pieces of his own flesh that were falling off from his bones. So Soṇa asked him what he was and the peta answered his identity. Soṇa asked again why he was doing that and he answered that he was doing so because of his past kamma. Soṇa then asked him to explain and his explanation was as follows: “O Master, in the past, I was a wicked merchant of Bharukaccha, earning my living by deceiving others. Besides, I abused monks who came for alms and said to them: ‘Eat your own flesh!’ As a result of these evil deeds, I am now undergoing the kinds of suffering you are now witnessing.” On hearing the incident, Soṇa was startled a great deal.
Thenceforth, he continued his journey and came across two peta boys, from whose mouth black blood was trickling. So he asked about them, as he had done before. To Soṇa, the young petas then related their evil deed done in the past: While being human, they traded in perfumes to earn their living as youngsters. And while doing so, their mother invited and offered meals to certain arahats. On coming home, they abused and cursed: “O mother, why did you give our things to the monks? May bubbles of black blood ooze from the mouths of those who consumed the food given by our mother!” On account of their evil deed, they suffered in hell and as a residual result of that very evil deed, they were reborn in the world of petas, suffering in that manner when they were encountered by Soṇa. On hearing their story too, Soṇa was very startled. In fact, the startling effect was even greater than on the previous occasion. (The stories of such saṃvega are told in the Udāna Aṭṭhakathā and the Sāratthadīpanī Ṭikā.)
Soṇa arrived in Ujjenī and returned to Kuraraghara after doing his business. He then approached the Venerable Mahā Kaccāyana and told him of his business. The Venerable gave Sona a religious talk on the disadvantages of birth in woeful cycles of saṃsāra and its round of suffering and as well as on the advantages of unbecoming and discontinuation of birth in these cycles of saṃsāra and its round of suffering. Having paid his respect to the Venerable, Soṇa went home. He had his evening meal, and fell asleep for a while. Later, he woke up and began to reflect on the sermon of the Venerable. This reflection and his recollection of the states of the petas whom he had met, he felt great fear of saṃsāra and its woeful cycles. Thus, he was inclined very much to become a bhikkhu.
At daybreak, he cleansed himself and went to the Venerable Kaccāyana and reported to him what he had thought: “Venerable Sir, when I reflected in various ways on the sermon given by you, I found that it was not easy to undergo this noble (threefold) training, which resembled a newly polished conch shell, perfect and pure.” He went on: “I would like to shave my hair and beard, put on the dyed robe and leave lay life, to enter bhikkhuhood.” Having thus spoken of his wish to become a bhikkhu, he made a request: “Therefore, Sir, I would like you to ordain me.”
Venerable Kaccāyana then investigated mentally whether Soṇa’s wisdom was ripe or not, he came to know that it was not. Wishing to wait for the time when Sona’s wisdom would ripen, the Venerable said: “It is difficult, Sona, to take up for life the noble practice of sleeping alone and eating alone. Therefore, Soṇa, what I would like to ask you is this: practise first occasionally, while still a lay man, the noble practice of solitary sleeping and solitary eating, (as on Uposatha days, etc.) which is taught by the Exalted Buddha.”
Then Soṇa’s eagerness to become a bhikkhu subsided as his faculties were not mature yet and his saṃvega consciousness was not serious enough. Though his eagerness had subsided, he did not stay carelessly but remained in the teaching of the Venerable and constantly approached him to listen to his Dhamma. As time went by, he became inclined for a second time to become a bhikkhu, so he renewed his request. This time too the Venerable gave him the same advice.
When Soṇa requested for a third time, the Venerable Mahā Kaccāyana knew it was time to ordain him because of the maturity of his wisdom and the Venerable could only ordain him as a sāmaṇera. Though he was to ordain Soṇa as a bhikkhu, such ordination could not take place because only two or three bhikkhus lived in Kuraraghara, whereas there were many in the Middle Country. And these bhikkhus were staying very far separately, one in a village or two in a market town. From there, the Venerable brought two or three bhikkhus for Sona, his co-resident pupil. But while he was away to bring other bhikkhus, the previous ones would leave for another place to attend to other matters. After waiting for some time for their return, he went out to bring back those who had left but the others who had remained there, departed on some other matters.
As he had to repeat his attempt to organise in this way, it took him more than three years to group ten monks together. An upasampadā ordination could only be performed at that time when ten monks were present. The Venerable was staying alone then. It was only after three long and troublesome years that the Venerable managed to have the required number of monks to give his pupil, Sāmaṇera Soṇa, higher ordination. (This is reproduced from the Sārattha Ṭikā.)
Having received ordination, Sāmaṇera Soṇa Kuṭikaṇṇa [now a monk] learnt and took a meditation subject, and when he assiduously engaged in Vipassanā meditation, he attained arahatship even during that vassa and studied Sutta-nipāta also under the Venerable. After performing pavāraṇā at the end of vassa, he wanted to pay homage to the Buddha very much and he asked his preceptor, Venerable Mahā Kaccāyana, for permission to do so. (His request in detail may be seen in the Vinaya Mahāvagga translation.)
The preceptor Venerable then said: “Soṇa, when you arrived there, the Buddha will let you stay in His Perfumed Chamber and ask you to give a sermon. Accordingly, you are bound to do that. Being pleased with your sermon, the Buddha will give you a reward. Take such and such a reward. Please pay homage to the the Exalted Buddha in my name!” Saying thus, the Venerable gave his permission whole-heartedly.
Having obtained his preceptor’s permission,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went to the residence of his mother, Kālī, wife of a merchant, and told her of his plan. His mother consented and requested: “Very well, dear son! When you go to meet the Buddha, please take this rug, as my donation, and spread it on the ground in the Perfumed Chamber!” With these words the mother handed him the rug.
Taking the rug with him, Venerable Soṇa packed his bedding and set out for Jetavana, Sāvatthi. The Buddha was then seated on the Dhamma throne, a seat meant for the Buddha. Venerable Soṇa stood at a suitable place and showed his respect to the Buddha. Having exchanged words of greeting with Venerable Soṇa, the Buddha emphatically asked the Venerable Ānanda: “For this bhikkhu, dear son Ānanda, arrange lodging!”
(Herein, if the Buddha wished to stay with a visiting bhikkhu in the same Perfumed Chamber, He would specially ask to provide lodging for him. But for a visitor with whom he has no reason for staying together, he would say nothing. For such a person, the Venerable Ānanda or somebody else on duty would make an accommodation at another suitable place.)
Knowing the wish of the Buddha, Venerable Ānanda provided accommodation for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in the Perfumed Chamber.
Then the Buddha spent the time by being absorbed in jhāna for several hours of the night and then He entered the Perfumed Chamber.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too spent a long time sitting, during the night, in absorption of jhāna and then he too entered the Perfumed Chamber. Wishing to talk with Venerable Soṇa through engagement of jhāna, the Buddha let the time pass by sitting and engaging in all jhānas, that were common to disciples, in the open space. Having done so, He washed His feet and got into the dwelling. Sensing the wish of the Master, Venerable Soṇa followed, after engaging in the jhāna befitting the hours in hand in the open space.
Having entered into the Perfumed Chamber, as permitted by the Buddha, he made a robescreen and passed the time sitting at the feet of the Buddha. In the last watch of the night, having lain down on the right side, which is sīhaseyya (lying style of a lion), with mindfulness, the Buddha rose when it was near daybreak. He then sat down and, thinking that Soṇa’s physical weariness must have subsided by this time, He asked him: “Dear son bhikkhu, remember something to recite!” The Venerable recited the sixteen discourses beginning with the Kāma Sutta, all of which forming the whole section known as the Aṭṭhaka Vagga of the Sutta Nipāta in very sweet voice without making error in even a single letter.
When the recitation ended, the Buddha gave him blessing and asked: “Dear son bhikkhu, all sixteen discourses of the Aṭṭhaka Vagga you have learnt wonderfully, you have got them well by heart! (As they contained correct articulation) they were of pleasant sounds. They are clean, flawless, full of words leading to the understanding of meaning that is free from any impairment. Dear son bhikkhu, how long have you been a bhikkhu?” “Just one vassa, Exalted Buddha,” answered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Again the Buddha asked: “Dear son bhikkhu, why did your bhikkhuhood start so late?” “Exalted Buddha,” replied Venerable Soṇa, “I have long seen the disadvantages of sensual pleasures. But household life is so narrow, full of duties and things to attend to. Knowing that, i.e. the mind of one who has seen the defects of sensual pleasures as they really are, remained unsinkable into household life for long, but like drops of water falling from the lotus leaf, it was this defiled thoughts that finally slip away from my heart.”
So the Buddha uttered a solemn utterance as follows:
Disvā ādīnavaṃ loke, ñatvā dhammaṃ nirūpadhiṃ
Ariyo na ramatī pāpe, pāpe na ramatī suci.
Because he has clearly seen through the eye of Vipassanā the defects of impermanence, suffering and changeability everywhere in the world of formations (saṅkhāra) and also because he has penetrated through the fourfold Path wisdom, Nibbāna, which is the cessation of the fourfold substratum of existence (upadhi), the Noble One, who is away from defilements, does not take pleasure in evil deeds. (Why? Because for one, a haṃsa-like individual whose deeds, physical, etc. are pure, there is no precedent that such a person should find happiness in the aggregate of dirty old unwholesome things that resemble a place full of excrement.)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then thought: “The Exalted One gave a joyous speech to me. Now is the time for me to transmit what my teacher has asked.”
So thinking, he adjusted his upper robe on his left shoulder and bowed his head at the feet of the Master, saying:
“Exalted One, my preceptor, the Venerable Mahā Kaccāyana made obeisance to you with his head. He also sent a message as follows:
(1) ‘Exalted Buddha, the southern region of the country of Avanti has few bhikkhus. I acquired bhikkhuhood only after having ten bhikkhus gathered from various places with great difficulty, which took me three years. I wonder if you, Exalted Buddha, would allow higher ordination performed by less than ten bhikkhus in that region.
(2) ‘Exalted Buddha, in that southern region of Avanti, the uneven ground rising from its surface, and resembling the black hoof-print of a cow, is so rough. I wonder if you, Exalted Buddha, would allow the sandal with layers of sole in that region. (At that time, the sandal with only one layer of sole was allowed. Hence the request.)
(3) ‘Exalted Buddha, the people in the southern region of Avanti are fond of bathing. They regard water as a cleansing factor. I wonder if you, Exalted Buddha, would allow daily bath. (At that time, monks, as a rule, were to bathe once in a fortnight. Hence the request.)
(4) ‘Exalted Buddha, in that region of Avanti, sheep-skin, goat-skin and deer-skin are used as spreads. Just as, Exalted One, in the Middle Country (Majjhima-desa), mats made of eragu grass, soragu grass, majjaru grass and jantu grass, are used, so are sheep-skin, goat-skin and deer-skin used in South-Avanti. I wonder if you, Exalted Buddha, would allow these skins for spreads. (At that time no animal skin or hide was allowed for such use in that region. Hence the request.)
(5) ‘Exalted Buddha, people nowadays entrust bhikkhus outside the sīmā with robes, saying: “This robe is given to such and such a bhikkhu.” The entrusted co-resident bhikkhus went to the bhikkhu concerned and said: ‘Such and such a man, friend, gives a robe to you.’ But the bhikkhu does not accept the robe as he thinks that his acceptance would require him to perform an act of forfeiting and is therefore against the Vinaya. Because of such doubt, there is no such acceptance. Perhaps the Buddha might tell as the correct way of accepting the robe.” So does the Venerable Mahā Kaccāyana ask you through me”
Because of what had been reported by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the Buddha then gave a Dhamma-talk to him and addressed the monks as follows:
“Monks, rare are bhikkhus in the southern region of Avanti. In such bordering areas, I allow performance of ordination by a group of five monks, the fifth being an expert in the Vinaya.”
The phrase ‘bordering areas’ in that injunction means the areas outside the Middle Country, to the east of which being the market town of Gajaṅgala, beyond which being a great sāla tree; beyond that sāla tree exist bordering areas.
It means the area lying outside the Middle Country and beyond the river Salalavati in the south-east.
It means the area lying outside the Middle Country and beyond the market town of Setakaṇṇika in the south.
It means the area outside the Middle Country and beyond the brahmin village of Thūna in the west.
It means the area outside the Middle Country and beyond the mountain called Usīraddhaja in the north.
(1) “Monks, in those bordering areas, in such situation, I allow performance of ordination by a group of five bhikkhus, the fifth one being an expert in the Vinaya.
(2) “Monks, in that southern region of Avanti, the uneven ground, swollen and full of black hoof-prints of cattle, is so rough. I allow you monks (to wear) sandals with layers of sole in all those bordering areas.
(3) “Monks, in that southern region of Avanti, people attach importance to bathing. They regard water as a cleansing factor. I allow monks daily bath in all those bordering areas.
(4) “Monks, in that southern region of Avanti, sheep-skins, goat-skins and deer-skins are used as spreads. As, monks, in the Middle Country, mats made of eragu grass, soragu grass, majjaru grass and jantu grass, are used, so are those animal skins used as spreads in that region of Avanti. I allow monks to use sheep-skin, goat-skin and deer-skin for spreads in all those bordering areas.
(5) “Monks, if people entrust bhikkhus, who happen to be outside the sīmā, with a robe, saying: ‘This robe we give to such and such a bhikkhu.’ As long as the robe does not go into the hand of the monk concerned, the robe cannot be reckoned as something recognized by the would-be recipient for use. I allow you monks to accept that robe.”
Again, as had been asked by his mother, Soṇa Kuṭikaṇṇa paid obeisance, in her name, to the Buddha and said: “Exalted Buddha, your donor, Kāḷī, the female lay devotee, has offered this rug for use as a mat on the floor in your Fragrant Chamber.” With these words, he handed the rug to the Buddha, and then he rose from his seat, made obeisance and returned to his monastery on Papata Hill, near Kuraraghara town, in Avanti.
On returning to his preceptor, Soṇa Kuṭikaṇṇa reported all about the mission. Next day, he went to the house of his mother, Kāḷī, and stood at the entrance for alms-food. Hearing that her son was at the door, she came out quickly, showed her respect, took the alms-bowl from the Venerable’s hand, prepared a seat and offered food.
Then followed a conversation between the mother and the Venerable:
Mother: Son, have you seen the Exalted One?
Venerable: Yes, I have, donor.
Mother: Have you also paid obeisance to the Exalted One in my name?
Venerable: Yes, I have. The rug given by you to the Exalted One, I personally spread it as a mat, as you had asked, in the Fragrant Chamber which He occupies.
Mother: How about your visit to the Exalted One? Was it true that you spoke something about the Dhamma? Was it true that the Exalted One also gave you blessings?
Venerable: How did you come to know about these things?
Mother: The guardian spirit of this house, son, told me that the day the Exalted One gave blessings to you, devas and Brahmas of the ten thousand worldspheres did the same. I want you to relate to me, son, the Dhamma in the same words as you have addressed to the Exalted One.
The Venerable accepted the mother’s request by being silent. Knowing of the Venerable’s acceptance, the mother had a great pavilion built at the house-gate and let the Venerable repeat exactly as he had said to the Buddha; the mother thereby held a grand Dhammameeting.
(c) Etadagga Title achieved
At a later time, sitting in the midst of His noble disciples, the Buddha spoke in praise of Venerable Soṇa Kuṭikaṇṇa as follows: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aṃ kalyāṇa-vakkaraṇaṃ yadidaṃ Soṇo Kuṭikaṇṇo.”
“Monks, among my disciples who give pious talks in a sweet and pleasant voice, Kuṭikaṇṇa Soṇa is the best.”
Thus the Buddha named the Mahāthera the foremost in kalyānavakkarana, ‘giving pious talks in a sweet and pleasant voice’.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