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시왈리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시왈리(Sīvali) 대장로가 될 이 귀족도 다른 많은 대장로 후보들처럼 빠두뭇따라 부처님의 생전에 정사에 가서 청중의 가장자리에 서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는 부처님이 어떤 비구를 공양을 많이 받는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도 저 비구처럼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부처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미래의 대장로들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7일 동안 큰 보시를 했다. 그 후 그는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이 큰 공덕의 결과로 저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7일 전에 선언하신 비구처럼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많은 공양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서원을 말씀드렸다. 그의 서원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리라 예견한 부처님은 “나중에 고따마 붓다 시대에 서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예언하시고는 정사로 돌아가셨다.
시골 사람으로서의 삶
그가 죽을 때까지 공덕을 쌓은 후, 미래의 시왈리는 천신과 인간의 세상에서만 재탄생했다. 91겁 전에 출현한 위빳시(Vipassī) 부처님의 생전에, 그는 반두마띠(Bandhumati)에서 멀지 않은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반두마띠 성읍의 시민들은 서로 협조해서 왕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부처님께 큰 공양을 올렸다. 어느 날 시민들이 보시할 차례가 됐을 때, 그들은 무엇이 빠졌는지 그들의 공양물을 조사해 보니 꿀과 커드(凝乳)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들을 포함시키기로 하고, 사람을 선발하여 시골에서 성읍으로 통하는 길을 지키게 하였다. 그 때 시골 사람인 미래의 시왈리가 자신이 필요한 것과 바꾸려고, 우유 커드가 담긴 항아리를 들고 왔다. 그러나 그가 그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얼굴과 손을 씻으려고 물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물은 못 찾았고, 쟁기 머리만 한 벌집이 눈에 뜨였는데 벌은 없었다. 그는 과거의 선업 공덕으로 벌집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들고 시내로 들어갔다.
길을 지키고 있던 성읍 사람이 그 시골 사람을 보고 물었다. “친구여, 이 꿀과 커드는 누구를 위해 가지고 다니시오?” “선생님, 그것들은 어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팔려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시골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친구여, 내가 동전 한 닢을 줄 테니 그 꿀과 커드를 내게 파시오.”라고 성읍 사람이 말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온 이 물건들은 별로 비싼 것이 아닌데 이 사람은 나에게서, 첫 번째 흥정인데도 비싼 값에 사려고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그 가격으로는 팔 수 없습니다, 선생님.” 성읍 사람이 “동전 한 개에 팔 수 없다면 동전 두 개를 주겠소.”라고 말했다. 시골 사람은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이렇게 대답했다. “동전 두 개에 그것들을 줄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격은 점점 더 높아져서 천 개의 동전이 되었다. 시골 사람은 ‘내가 가격을 더 올리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지만 그의 목적을 알아보자.’고 생각한 시골 사람이 물었다. “꿀과 커드는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닌데, 선생님은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합니까?”
성읍 사람은 그에게 목적을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이 왕의 도시 반두마띠에서, 시민들이 왕보다 더 거대하게 위빳시 부처님에게 보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공양물 중에 꿀과 커드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왕과의 경쟁에서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천 개의 동전을 지불하고 그것들을 갖고 싶습니다.” 그러자 시골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그 보시는 시골 사람은 안 되고 성읍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성읍을 사람이 대답했다. “친구여, 누구든지 보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시골 사람이 계속 질문했다. “선생님, 백성들이 보시를 하고 있는데, 하루에 동전 천 냥을 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가져온 꿀과 커드는 천 냥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 시골 사람은 계속 질문을 단호하게 던졌다. “그럼요, 알고말고요.” 그러자 시골 사람이 말했다. “선생님,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시골 사람이 꿀과 우유 커드 두 가지를 바치겠지만, 돈을 받고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 공양물을 자기 손으로 바치려고 한다는 것을 전해 주십시오. 또한 그들에게 그들이 꿀과 커드를 바치지 못했다고 아쉬워해서는 안 되며, 이 두 가지에 관한 한 그들은 지금 행복해야 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당신은 이 장엄한 보시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기증한 사람이 바로 저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커드-물을 섞은 꿀 공양
이렇게 말한 시골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온 식사비로 향료 다섯 개를 사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커드에서 물을 짜냈다. 그 물에 벌집에서 짜낸 꿀을 넣은 다음, 그 꿀물에 커드에서 짜낸 물과 향료 가루를 섞어서 음료수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음료수를 연잎에 담았다. 정성스럽게 공양 음식 준비를 마친 그는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앉아서 자신이 공양 올릴 차례를 기다렸다.
시민들이 가져온 공양물들 가운데, 시골 사람은 자신이 공양 올릴 차례라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다가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이 공양은 저 같은 가난한 사람이 올리는 공양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소박한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시골 사람을 불쌍히 여긴 부처님은 사천왕이 준 대리석 그릇에 공양을 받아서, 6만 8천 비구들에게 나눠주어도 음식이 모자라지 않도록 결의하셨다.
부처님이 음식을 다 드시자 시골 사람은 그에게 공손히 절하고 적당한 곳에 서서 말하였다. “부처님, 반두마띠 성읍의 모든 백성들이 오늘 제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것을 압니다. 이러한 공덕행의 과보로, 저는 윤회하는 동안 실로 많은 수행원과 명성과 더불어, 많은 공양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서원합니다.” 부처님은 “그대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한 후 시골 사람과 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한 다음 정사로 돌아가셨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죽을 때까지 공덕행을 한 이 시골 사람은,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만 다시 태어나다가 마침내 고따마 부처님의 생전에 콜리야 사끼얀(Koliya Sakyan)의 숩빠와사(Suppavāsā) 공주의 뱃속에서 입태했다.
입태 중에 생긴 이상한 일
그가 입태된 후에, 수백 개의 선물이 그의 어머니인 숩빠와사 공주에게 밤낮으로 계속해서 도착해서, 공주는 전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Sinhalese 버전에 따르면, 낮에는 오백 개의 선물이, 밤에도 오백 개의 선물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의 과거 선업 공덕을 조사하기 위해, 공주의 왕족들은 씨앗 바구니를 그녀의 손으로 만지게 했다. 이 씨앗들이 흩어졌을 때, 씨앗 한 알에서 수천 개의 싹이 텄다. 1로얄 빠이(royal pai)의 땅에서 50~60 수레의 쌀이 수확되었다.
또한, 농작물을 창고에 넣을 때, 그들은 공주가 손으로 창고의 문을 만지게 했다. 농작물을 창고에서 꺼내면 도로 꽉 찼다. 이것은 과거에 공주가 행했던 공덕행 때문이다. 게다가 밥이 가득 찬 솥에서 밥을 그릇에 담고 “이것이 공주의 행운(fortune)이다.”라고 외치며 모든 방문객에게 음식을 나눠주어도, 밥이 절대로 부족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아이는 7년이나 엄마의 뱃속에 임신 상태로 있었다.
태아가 7년 만에 태어나려고 할 때, 공주는 출산으로 격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고통을 공주는 신음하지 않고 부처님의 덕성, 담마의 덕성, 승가의 덕성을 다음과 같이 회상함으로써 참았다.
“우리의 주인인 고귀하신 분이 우리에게 그런 모든 고통을 버리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주인은 일체지를 얻으시고 알아야할 모든 것과 진리를 스스로 완벽하게 깨달으셨습니다.(Sammāsambuddho vato so Bhagavā yo imassa evarūpassa dukkhassa pahānāya dhammaṃ deseti)”
“세존의 제자인 비구 승가는 그러한 모든 고통을 버리려고 열심히 수행합니다. 이 세존의 제자들은 진실로 삼학을 아주 잘 실천합니다.(Suppaṭipanno vata tassa Bhagavato sāvakasamgho: yo imassa evarūpassa dukkhassa pahānāya patippanno)”
“그런 고통의 흔적조차 없는 담마인 열반은 정말로 매우 행복합니다!(Susukhaṃ vata taṃ nibbānaṃ, yatth'idaṃ evrūpaṃ dukkhaṃ na saṃvijjati)
세 가지의 덕성, 즉 부처님의 덕성, 승가의 덕성, 열반의 평화로운 행복의 덕성을 되새기며 공주는 고통을 참았다. (부처님, 승가, 열반의 자질에 대해 반복적으로 숙고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통제하고 출산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과 신음을 그만두었다.)
7일째 되던 날, 살아 있는 동안 공양을 베풀고 싶다고 생각한 콜리야 공주 숩빠와사는 남편 콜리야 왕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께 가서 나의 상황을 알리고 제가 초대한다고 전해주세요. 그 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저에게 전달해 주세요!” 왕자는 부처님에게 가서 숩빠와사 공주에게 일어난 일을 말했다. 부처님은 “콜리야 공주 숩빠와사가 건강하고 건강하길. 그녀 자신도 건강하고 건강한 아들을 낳기를!” 부처님이 말씀을 하시자마자 공주는 아무런 고통 없이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공주 주변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사람들은 행복한 기분이 되어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왕자에게 전해줬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왕자는 예경을 올리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신하들이 기뻐하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세존의 말씀대로 이루어졌구나.’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공주에게 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다. 공주가 말했다. “주인님, 주인께서 초대하신 탁발음식이 길한 음식이 될 것입니다. 다시 가셔서 부처님께 7일 동안 오셔서 공양 받으시라고 하세요.” 왕자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은 7일 동안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큰 공양을 올렸다.
그리하여 소년이 태어났고 모든 친척들의 걱정은 이것으로 없어졌다. 따라서 그는 ‘시왈리’라고 이름 지어졌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 일곱 해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일곱 살 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여과기로 물을 정화하고 마하보시 기간 동안 일주일 내내 비구들에게 주었다.
일곱째 날, 담마 총사령관인 사리뿟따 대장로는 소년에게 이렇게 물었다.
“시왈리야, 그런 천성적인 고난을 겪었으니 비구가 되는 것이 어울리지 않겠느냐?”
“스님, 만약 제가 부모님의 허락만 받는다면, 저는 출가하고 싶습니다.”라고 소년이 대답했다.
아들이 대장로와 대화하는 것을 본 시왈리의 어머니는 ‘아니 내 아들이 담마 총사령관인 사리뿟따 대장로와 이야기하고 있다니!’라는 생각에 기뻐하면서 대장로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었다. 대장로가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 머물면서 생기는 불행에 대해 제게 이야기했고, 양친의 허락을 받으면 출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좋습니다, 존자님. 그를 사미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자 시왈리를 정사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따까-빤짜까(taca-pañcaka. 피부를 다섯 번째. 32가지 몸의 구성요소 가운데 피부까지의 다섯 가지, 즉 머리카락, 몸의 털, 손발톱, 이빨, 피부) 수행주제를 준 다음, 그의 머리를 깎으면서 대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것은 필요 없고 7년 동안 고생한 것만 기억하라.” 시왈리가 말했다. “스님, 제 머리를 깎는 것은 스님의 의무입니다. 담마에 대한 숙고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제가 회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숙고하겠습니다.”
1차 삭발이 끝나는 순간 시왈리 사미는 수다원과에, 2차 삭발이 끝나는 순간 사다함과에, 3차 삭발이 끝나는 순간 아나함과에, 삭발이 끝나자마자 아라한이 되었다. (삭발과 아라한이 되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시왈리가 사미가 된 이후, 승가의 네 가지 필수품인 가사, 음식, 거처, 의약품은 언제나 모자라지 않았다. 시왈리 사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는 꾼디까(Kundikā)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원저 주: 이상의 시왈리 존자 이야기는 우다나 경전(Udāna Text)에 있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의 뱃속에 7년 동안 있는 불행(gabbhavāsa-dukkha)을 생기게 한 악행과, 그의 어머니가 7년간 임신하고 있어야 했던 불행(gabbhamūḷha)을 생기게 한 악행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우다나 주석서를 참조하면 된다.
(원저 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와 아들은 과거 전생에서 각각 바라나시(Bārāṇasī) 왕의 첫 번째 왕비와 아들이었다. 한때 꼬살라 왕이 바라나시 왕을 공격하여 그의 첫 번째 왕비를 사로잡아서 자신의 첫 번째 왕비로 삼았다. 바라나시 왕이 패배하고 죽자, 그의 아들 바라나시 왕자는 배수구를 통해 탈출했다. 군대를 조직한 후, 그는 바라나시로 돌아가 꼬살라 왕에게 도시를 돌려주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도시 안에 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시를 포위하라고 조언했다.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왕자는 네 개의 정문을 봉쇄하여 사람들이 나가거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가 7년 동안 그렇게 했지만, 시민들은 풀과 나무 등을 수집하기 위해 작은 성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봉쇄가 무용지물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작은 성문 막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왕자가 어머니의 조언대로 하자 시민들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7일 후에 그들은 꼬살라 왕을 참수하여 왕자에게 바쳤다. 왕자는 바라나시에 입성하여 왕으로 즉위했다. 이러한 악행의 결과로 아들과 어머니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불행한 과보를 받았다.)
자신의 선행을 스스로 조사하다
후에 부처님이 사왓티에 오셨을 때, 시왈리 대장로는 부처님께 정중히 절을 하고 이렇게 청을 드렸다. “부처님, 제 자신의 선업을 조사해 보고 싶으니, 저에게 비구 오백 명을 도반으로 지정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사랑하는 아들 시왈리여, 그들을 데리고 가거라.”라고 허락하셨다.
대장로는 500명의 도반들과 함께 숲길을 따라 히마완따(Himavanta)로 향했다. 그러던 중 그는 도중에
(1) 큰 반얀 나무를 먼저 만났다. 거기서 목신이 그에게 7일 동안 공양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2) 빤다와(Pandava) 언덕 (3) 아찌아와띠(Aciravatī) 강 (4) 와라-사가라(Vara-sagara) 강 (5) 히마완따(Himavanta) (6) 찬단타(Chanddanta) 숲의 호수 (7) 간다마다나(Gandhamādana) 산 (8) 카디라와니야 레와따(Khadiravaniya Revata) 존자의 거주처에 들렸다.
이 모든 곳에서 천신들은 시왈리에게 7일 동안 엄청난 보시를 했다.
특히 그들이 간다마다나 산에 도착했을 때, 나가닷따(Nāgadatta)라는 천신은 그에게 7일 동안 우유 밥과 버터 밥을 번갈아 주었다. 그때 비구들이 자기들끼리 말했다. “도반들, 천신이 젖을 짤 암소도 안 보이고, 저어서 버터를 만들 수 있는 milk-curd(凝乳)도 안 보이질 않는가?” 그래서 그들은 천신에게 그가 무슨 선업을 쌓았기에 그렇게 많은 우유 밥과 버터 밥을 얻었는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가닷따 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깟사빠 부처님의 생전에 제비뽑기로 우유 밥을 보시를 했기 때문에, 젖소가 없어도 우유 밥과 버터 밥을 스님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호칭
훗날 부처님이 카디라와니야 레와따(Khadiravaniya Revata) 존자를 방문했을 때(위에서 설명한 내용에 포함돼 있음) 천신들이 매일 보급품을 제공했는데, 이 여행의 주 목적은 시왈리 대장로가 인적이 없고 위험한 여행을 해도 천신들이 보급품을 제공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 일화를 언급하면서, 부처님은 시왈리 대장로를 많은 공양물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대장로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필수품을 풍족하게 받는 비구 제자들 중에서 시왈리 비구가 제일이다.”
(원저 주: 시왈리 대장로 관련 경전 근거는 아빠다나(Apādāna) 경전과 번역, 법구경 주석서 등이다.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대장로들과 관련된 Dhamma-words도 같은 문헌을 참조하면 된다. 이 책(Chronicle of Buddhas)에서는 세 가지 요점 즉
1. 과거생에서의 서원(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ascetic life adopted in final existence)
3. 호칭(Etadagga title achieved)
만 주로 언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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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īvali Mahāther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1.html
Biography (18): Sīvali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is clansman, who would become Sīvali Mahāthera, also went to the monastery during the lifetime of Buddha Padumuttara like many other former would-be Mahātheras and stood at the edge of the audience, listening to the Buddha’s sermon. While he was doing so, he saw the Buddha declared a certain monk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received abundant gifts. Thinking that he too should become one like that monk, he invited the Buddha to his house and offered a grand dāna for seven days, in the same manner as that done by the future Mahātheras. Thereafter, he declared his aspiration, saying to the Buddha: “Exalted Buddha, as a result of this great act of merit, I do not want any other form of welfare but I want to be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receive many material gains, in the dispensation of a future Buddha, like the monk who was declared seven days ago.”
Foreseeing that the clansman’s wish would be fulfilled without any hitch, the Buddha predicted: “Your wish will be fulfilled later in the dispensation of Buddha Gotama.” and then He returned to the monastery.
Life as A Countryman
Having performed meritorious deeds till his death, future Sīvali took rebirth only in the realms of devas and humans (without being reborn in the four woeful states). During the lifetime of the Buddha Vipassī (who appeared ninety-one kappas ago), he became a clansman in a certain village not far away from the city of Bandhumati.
At that time, the citizens of Bandhumatī, in friendly competition with the King, discussed among themselves and gave a big dāna to the Buddha.
One day, when they gave a collective dāna, they inspected their offerings to see what was missing and discovered that there were no honey and milk curds. So they agreed to bring them from any possible place by all means and placed a man to watch the road leading to the city from the countryside.
Then came a villager, the future Sīvali, carrying a pot of milk curds from his village and thinking that he would exchange them for something he needed. But, before he entered the city, he wished to wash his face and hands and was looking for water everywhere but saw a beehive which was as big as the head of a plough but without bees. Believing that the beehive appeared because of his past act of merit, he took it and entered the city.
When the townsman, who was assigned to the road, saw the villager, he asked: “For whom, friend, are you carrying this honey and these curds?” “Sir, they are not for any particular person. In fact, I am carrying them to sell,” the villager answered. “In that case, friend, take a coin from my hand and give me that honey and those curds,” said the townsman.
Then the villager thought: “These things, which I have brought now, is not much valuable, yet this man is buying them from me at a high price, even in his first offering. I do not know why?” So he said: “I cannot sell them at this price, Sir.” When the townsman increased the price, saying: “If you cannot sell them for one coin, please take two coins and sell the honey and the curds to me.” The villager replied: “I cannot give them to you for two coins either,” in order to raise the price. In this way the price became higher and higher until it reached a thousand coins.
Realizing: “It is not fair to prolong the deal on my part. However, I shall ask him about his purpose,” the villager said: “The honey and the curds are not so valuable, yet, you unduly make such an immense payment. Why do you want to have these things by offering so much?” The townsman told him the purpose: “In this royal city of Bandhumati, friend, the citizens in competition with their King, gave a grand dāna to Buddha Vipassī. While they are doing so, they do not have honey and curds among the items of their offering. So they are trying desperately to get them by any means. If they fail to get them, they will lose in their competition with the King. Therefore, I would like to have them by giving you a thousand coins.” The villager then asked: “Sir, is such a charitable deed to be performed only by the people of the city and not by any village folk?”
The townsman then answered: “No man’s gift, friend, is prohibited, (everybody whether he belongs to town or village is entitled to give in charity).” The villager then asked further: “O master, now that the citizens are performing acts of giving, is there anyone who gives away a thousand coins in one day?” “No, friend, there is none.” “O master, you know that the honey and the curds that I have brought now are worth a thousand coins, do you not?” the villager put still another question firmly. “Yes, I do, friend.” “O master,” said the villager, “in that case, go and tell the townsfolk that a rustic man is offering these two things, namely, honey and milk curds but not for money, instead he would like to make the offering by his own hands. Please also tell them that they should not be restless for wanting them and that they should now be happy as far as these two things are concerned. As for you, you should bear witness in person to the fact that in this magnificent dāna, it is I who is the donor of the most expensive item.”
Offering of Honey mixed with Curd-water
Having said thus, the villager bought five perfumery ingredients with his money which were meant for his food. He made them into powder. Then he squeezed the curds to extract water from them. Into that water, he put honey by squeezing the beehive and then seasoned the mixture of honey and curd-water with the perfumery powder. Finally, he put the mixed liquid food in a lotus leaf (container). Having prepared the food properly, he brought it and sat down at a place that was not far from the Buddha, waiting for his turn to offer it.
Amidst all the offerings that were brought by the citizens, the villager, knowing that it was his turn to make his offering, approached the Buddha and requested, saying: “Glorious Buddha, this offering is a gift from a poor man like me. Venerable Sir, kindly accept this humble gift of mine.” Out of compassion for the villager, the Buddha received the offering with the marble bowl given by the four Divine Kings and resolved that the food should proved inexhaustible even after distributing it to sixty-eight hundred thousand bhikkhus.
When the Buddha had partaken His food, the villager respectfully made obeisance to Him and remaining at a suitable place, said: “Glorious Buddha, all the people of the royal city of Bandhumati saw and knew that today I brought and made the offering to you. As a result of this act of merit, may I truly become, throughout saṃsāra, a great recipient of gifts, possessing a large retinue and fame. After saying: “Evaṃ hotu kulaputta—— May you do as you wish, clansman,” the Buddha gave an appreciative talk to the villager and citizens and then He returned to the monastery.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The villager, having done meritorious deeds till his death, was reborn only in celestial and terrestrial worlds, and finally, during the lifetime of our Buddha, he took conception in the womb of a Koliya Sakyan Princess named Suppavāsā.
Strange Happenings during Conception
Since his conception, hundreds of gifts arrived continuously, day and night, to his mother, Princess Suppavāsā. The princess became wealthier than before. (According to the Sinhalese version, five hundred gifts came by day and five hundred by night.)
Then one day, in order to investigate the fortunate past deed of the Princess, her royal relatives had the baskets of seeds touched by her hand. When these seeds were scattered, thousands of sprouts appeared from each seed. A plot of land, measuring a royal pai, yielded fifty or sixty cartloads of paddy.
Also, at a time when the crop was put into the storehouse, they let the door of the storehouse touched by the hand of the princess. When removing the crop, the place from where it was taken out became full as before. This was because of the glorious act done in the past by the Princess. Besides, when ladling the cooked rice from the full pot and uttering: "This is the fortune of the Princess,” and distributing the food to all visitors, their supplies never ran short. While these strange events were happening and the child was remaining in the mother’s womb, seven years had passed.
When the foetus became mature on the completion of seven years, the Princess suffered severely from gabbhamūlha-dukkha, a fainting fit from pregnancy.
That serious agony the princess forbear with no moaning but by reflecting on the attributes of the Buddha, the attributes of the Dhamma and the attributes of the Sangha as follows:
“Sammāsambuddho vato so Bhagavā yo imassa evarūpassa dukkhassa pahānāya dhammaṃ deseti—
—He, that Master of ours, the Exalted One, taught us abandoning all kinds of such suffering; that Master of ours has been perfectly Self-Enlightened indeed by attaining Omniscience and knowing the truths and all that is to be known!”
“Suppaṭipanno vata tassa Bhagavato sāvakasamgho: yo imassa evarūpassa dukkhassa pahānāya patippanno—
—The Order of Bhikkhus, who are the disciples of the Exalted One, work hard for abandoning all kinds of such suffering; these disciples of the Exalted Buddha underwent (the threefold training) very well indeed!”
“Susukhaṃ vata taṃ nibbānaṃ, yatth'idaṃ evrūpaṃ dukkhaṃ na saṃvijjati—
—The Dhamma in which the slightest tinge of such suffering is absent, that Nibbāna-Dhamma is indeed extremely happy!”
Reflecting on the attributes of the three entities, namely, the attributes of the Buddha, the attributes of the Sangha, and the attributes of the peaceful happiness of Nibbāna, the Princess bore the pains. (She controlled herself and desisted from experiencing the misery other pregnancy and making moans by repeatedly meditating on the qualities of the Buddha, the Sangha and Nibbāna.)
On the seventh day, the Koliya Princess Suppavāsā called her husband the Koliya Prince and thinking she would like to give alms while living, said: “Go my lord! Tell the Exalted One about my happenings and give my invitation to the Master. Please note carefully all that had to say and transmit it to me!” The Prince went and told the Buddha on what happened to Princess Suppavāsā. The Buddha then uttered: “May the Koliya Princess Suppavāsā be sound and healthy. Being healthy herself, may she give birth to a healthy son!” No sooner had the Buddha made the utterance, the Princess gave birth to a healthy son without any pain. Those, who were surrounding the Princess, changed their teary mood into a happy one and went to the Prince to give him the information about the baby. The Prince, having listened to what the Buddha had said, paid respect to Him and returned to the village. When he saw the way the servants approaching him jubilantly, he became certain, thinking: “The word of the Exalted One seems to have come true.” He went to the Princess and transmitted the Buddha’s speech. The Princess said: “My Lord, the life-saving alms-food to which you have invited, will be the meal of auspiciousness. Go again! Request the Buddha to come (and have a meal) for seven days.” The Prince did as he had been told. They offered a grand dāna to the Buddha and His monks for seven days.
The boy was born and the anxiety of all kinsfolk was removed thereby. Accordingly, he was given the name “Sīvali”. Since he had stayed in the mother’s womb for seven years, from the time of his birth onwards, he was able to do all that was to be done by the seven year old. For instance, he purified the water by means of a filter (dhamakarana) and gave it to the monks during the mahā-dāna all week long.
On the seventh day, Venerable Sāriputta, the Captain of the Dhamma, had a conversation with the boy. While doing so the Venerable asked: “Sīvali, is it not befitting for you to become a monk after suffering all the trouble of such nature?” “Venerable Sir, if only I get permission from my parents, I would like to become a monk,” the boy answered. Seeing her son conversing with the Venerable, Sealy’s mother thought: “How is it? My son was speaking with the Venerable who is the Dhamma Captain?” So she joyfully approached the Venerable and asked him what they were talking about. The Venerable said: “He talked to me about the misery caused by his stay in the mother’s womb and promised me that he would live an ascetic life provided he gets permission from both parents.” The Princess then gave her permission replying: “Very well, Venerable Sir, kindly make him a sāmaṇera.”
The Venerable then took the boy Sīvali to the monastery and when he was making him a sāmaṇera after giving him the meditation subject of taca-pañcaka (the five fold material aggregate with the skin as the fifth), he said: “You do not need any other exhortation to follow. Just remember your pains that you had suffered for seven years.” “Giving ordination to me is your duty, Venerable Sir. Let the reflection on the Dhamma be mine. I shall meditate on whatever I could recollect.”
The moment the shaving of hair for the first round was done, Sāmaṇera Sīvali was established in sotāpatti-phala, the moment the shaving for the second round of hair was done, he was established in sakadāgāmī-phala, the moment the shaving for the third round was done, he was established in anāgāmī-phala and as soon as the shaving was completed, he attained arahatship. (The completion of the hair-shaving and the relation of arahatship took place almost simultaneously.)
Since the day Sīvali was ordained a sāmaṇera, the four requisites, namely, clothing, food, dwelling and medicine became increasingly available to the Sangha whenever needed. The story of such happenings to Sāmaṇera Sīvali started in the town of Kundikā.
(Herein the present story of the Venerable Sīvali may be taken from the Udāna Text. The story, in detail, of his evil deed that caused his seven years long misery of lying in his mother’s womb (gabbhavāsa-dukkha) and that of his mother’s miserable fainting (gabbhamūḷha) may be taken from the Udāna Commentary.)
(What is to be noted in brief is: the mother and the son, in one of the past existences were the Chief Queen and the son respectively to the King of Bārāṇasī. Once, the King of Kosala attacked Bārāṇasī King and took his Chief Queen and placed her in the same position. When the Bārāṇasī King was defeated and died, his son, the prince of Bārāṇasī, escaped through a drain. After organizing an army, he went back to the city of Bārāṇasī and gave an ultimatum asking the new King to return the city to him or he would wage a war. The mother, who was inside the city, advised her son to besiege the city lest there should occur trouble to many people. In accordance with the mother’s advice, the Prince did so by blocking the four main gates so that there could be no exit or entrance. Though he did so for seven years, the citizens went out from smaller gates to collect grass, wood, etc. the blockage proved useless. Hearing that, the mother gave her son further advice to block the smaller gates as well.
(When the Prince did, following his mother’s advice, the citizens found their movement about badly limited. Seven days later they beheaded King Kosala and offered it to the Prince. The Prince entered the city and crowned himself King. (As a result of these aforesaid evil deeds, the son and the mother had to face their respective miseries.)
Self-investigation of Own Good Kamma
At a later time, when the Buddha arrived in Sāvatthi, Venerable Sīvali made obeisance respectfully to Him and sought permission, saying: “Exalted Buddha, I would like to investigate my own good kamma. Kindly give me five hundred monks as my companions.” The Buddha permitted, saying: “Take them along, dear son Sivali.”
The Venerable headed for the Himavanta by following a forest route with five hundred companions. Then he came across
(1) first, a great banyan tree on the way. The spirit of the tree gave him alms for seven days.
(2) secondly, the Pandava Hill
(3) thirdly, the river Aciravatī;
(4) fourthly, the ocean known as Vara-sāgara;
(5) fifthly, the Himavanta;
(6) sixthly, the Lake in the Chanddanta forest,
(7) seventhly, Mount Gandhamādāna,
(8) eighthly, Venerable Revata’s dwelling.
At all these place, devas gave a great dāna to Venerable Sīvali for seven days.
Particularly, when they arrived on Mount Gandhamādāna, a deva, named Nāgadatta, offered him milk-rice and butter-rice alternately for seven days. Then the monks said among themselves: “Friends, we do not see cows being milked by deva nor we see the milk-curds being stirred to make butter.” So they asked the deva for an explanation of what good deed he did to obtain so much milk-rice and butter-rice. Nāgadatta Deva answered: “Venerable Sirs, I am able to give you milk-rice and butter-rice without having milch cows because I performed meritorious dāna of the milk-rice by lot during the lifetime of Buddha Kassapa.”
(c) Etadagga Title achieved
At a later time, when the Buddha visited Venerable Khadiravaniya Revata (as has been told in the story of this Venerable), devas provided supplies, day after day, which were mainly intended for the Venerable Sīvali on the deserted and dangerous journey. With reference to that episode, the Buddha placed the Venerable the foremost among those who received plenty of gifts.
The Buddha spoke in praise of the Venerable by saying: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lābhīnaṃ yad'idaṃ Sīvali.”
“Monks, among my bhikkhu-disciple who receive the four requisites in abundance, Bhikkhu Sīvali is the foremost.”
(The doctrinal passages in connection with the Venerable Sīvali may be extracted from the Apādāna Text and translation, the Dhammapada Commentary etc. Similarly the Dhamma-words involving later Mahātheras should be noted in like manner. In this Chronicle of Buddhas, only three points will be mainly discussed, namely, each Mahāthera’s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b) ascetic life adopted in final existence, and (c) Etadagga title achieved.)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