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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사야도

24 우빠세나 왕간따뿟따 대장로

작성자Gandhaputta|작성시간22.09.29|조회수39 목록 댓글 1

24 우빠세나 왕간따뿟따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과거에 우빠세나 왕간다뿟따(Upasena Vaṅgantaputta) 존자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 시의 귀족으로 태어났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미래의 모든 위대한 존자들처럼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러 부처님의 정사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추종자들의 존경을 받은 사람들 중 제일이라고 부처님에 의해 선언된 비구를 목격했다. 그는 그 비구를 흠모하여 미래생에서 그런 명예를 갖기를 바랐다. 부처님은 그의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보고 다른 비슷한 서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언을 하였다. 그러고서 부처님은 정사로 돌아갔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선행을 많이 한 다음 그 귀족은 선처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 그는 마가다 왕국의 바라문 마을인 날라까에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바라문 부자의 아내인 루빠사리였다. 그는 소년 시절에 우빠세나라고 불렸다. 그는 자라서 세 가지 베다를 배웠지만, 부처님으로부터 법문을 들은 후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져서 제자가 되었다.

 

안거 1년이 지난 다음 우빠세나 비구는 비구 수를 늘리려고 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을 사미로 받아들인 다음 그를 수계한 비구로 만들었다. 우빠세나 비구는 비구들의 일반적인 모임에 참석한 후, 자신의 가까운 제자와 함께 부처님을 만나러 갔다. 그 제자는 안거 1년의 비구로서, 자신은 안거 2년의 계사인 비구로서 부처님이 그의 선의(신참을 비구로 만든 것)를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빠세나 비구가 부처님 앞에 적당한 자리에 앉았을 때 부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너는 비구로서 안거를 몇 번 지냈느냐?” 우빠세나는 “세존이시여, 두 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신과 동행한 저 비구는 안거를 몇 번 지냈는가?” “세존이시여, 한 번입니다.” “둘은 어떤 사이인가?” “세존이시여, 그는 저의 친한 제자입니다.” “허영심 많은 사람아, 너는 네 가지 필수품을 아주 빨리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구나.” 이어서 부처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우빠세나 비구를 비난했다. 그리고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선포했다.

 

“비구들이여, 승단에서 열 번의 안거를 끝내지 못한 비구는 신참을 비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계율을 어긴 자는 율을 경미하게 위반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열 번 이상의 안거를 끝낸 비구는 신참에게 비구계를 줄 때 계사가 되어도 좋다.”

이 두 개의 율은 우빠세나 비구와 연관되어 생긴 것이다.(Vinaya Mahāvagga 참조.)

 

우빠세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생각을 했다. 그는 “나는 보름달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세존의 바로 그 입에서 이어지는 질문을 참고하여 찬양의 말을 나오게 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같은 날, 그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열심히 수행하기 시작하여 위빠사나 지혜를 계발한 결과, 며칠 만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학생들을 훈계하다

우빠세나는 유명한 가문 태생이었다. 그가 교리를 잘 설명한다는 명성은 온 나라에 널리 퍼졌다. 그는 혈연이나 친구였던 귀족 가문의 많은 소년들의 신뢰와 선의를 얻었고, 이 어린 소년들은 그의 지도로 사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 그들과 합의했다. “얘들아, 나는 맹세코 숲의 사는 사람이다. 나처럼 숲에서 살 수 있다면 사미가 될 수 있다.”며 두타행(頭陀行)의 요소 열세 가지를 알려줬다. 엄격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소년들만이 그에 의해 사미로 인정되었지만, 그들의 어린 나이가 받을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인정되었다. 우빠세나 비구는 율장을 마스터하고, 비구로서 10번의 안거를 끝낸 후 사미들을 완전한 비구로 받아들여 그들의 계사 역할을 했다. 그를 계사로 삼은 비구는 오백 명이나 되었다.

 

그 당시 부처님은 사왓티의 제따와나 정사에 살고 있었다. 한 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나는 반달을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고 한거하고 있었다. 그러자 승가는 부처님 곁으로 혼자 간 비구들은 누구든지 그렇게 한 죄를 정식으로 고백할 책임이 있다는 상호간의 합의를 했다.

 

우빠세나 비구는 제자들을 대동하고 제따와나 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경의를 표한 뒤 부처님께 절을 한 뒤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은 대화를 시작하려고 우빠세나 비구의 절친한 제자였던 젊은 비구에게 “비구여, 그대는 낡은 누더기 가사를 입는 것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었다. 젊은 비구는 “세존이시여, 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하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신의 계사에 대한 높은 존경심에서, 그는 낡은 누더기 가사를 입는 두타행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우빠세나를 칭찬했고, 또한 다양한 다른 점들에 대해 우빠세나를 칭찬하는 많은 말을 했다. (이것은 우빠세나가 부처님의 승인을 얻은 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일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Vinaya, Pārājikakaṇḍa Pāli; 2 Kosiya vagga, 5 Nisīdāna Santata Sikkhāpada 참조. 그 경전에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석 달 동안 한거하고 싶다.”는 반면, 앙굿따라 니까야의 주석서는 부처님이 “반달의 한거”를 원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경전의 “3개월” 버전을 권위 있는 것으로 추천하고 싶다.)

 

3. 호칭

 

한때 뛰어난 비구들을 선언하기 위해 비구들 앞에 앉아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추종자들의 높은 존경을 받는 내 비구 제자들 중에서 우빠세나 왕간다뿟따 비구가 제일이다.”

 

우빠세나의 비극적인 죽음

(우빠세나(Upasena) 경. S35:69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7 참조)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우빠세나 존자가 라자가하 근처의 흑단 숲에 있는 삽빤손디까(Sappasoṇḍika) 동굴(뱀의 머리를 닮은 동굴)에 살고 있었다.

 

(원주: 그때 우빠세나 존자의 몸 위로 독사가 떨어졌다. 이때 우빠세나 존자는 산들바람이 불고 있는 동굴 입구 근처에서 멋진 가운을 꿰매고 있었다. 그 순간 동굴 옥상에서 짝짓기를 하던 독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그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독성이 강한 뱀으로 독이 너무 강해서 접촉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그리하여 우빠세나 존자의 몸은 등잔 속의 심지처럼 타올라 그 열기를 온몸에 퍼뜨렸다. 그는 자신의 몸이 금방 타버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이 동굴 안에 그대로 남아서 부패를 연장시켜주었으면 하고 서원했다.)

 

그래서 우빠세나 존자는 비구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오십시오. 이 몸을 침상위로 올려주고 이 몸이 마치 왕겨처럼 흩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사리뿟따 존자가 우빠세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빠세나 존자의 몸이 바뀌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빠세나 존자는 ‘도반들이여, 오십시오. 이 몸을 침상위로 올려주고 이 몸이 마치 왕겨처럼 흩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임종할 때의 다른 보통 사람들이 변하는 것처럼 우빠세나 존자의 몸짓과 표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자 우빠세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눈이다.’라거나 ‘나의 눈이다.’라거나 … ‘나는 마노다.’라거나 ‘나의 마노이다.’라고 사견으로 보는 자에게는 몸이 바뀌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나 나에게는 ‘나는 눈이다.’라거나 ‘나의 눈이다.’라거나 …

‘나는 마노다.’라거나 ‘나의 마노이다.’라는 사견이 없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런 나에게 어찌 몸이 바뀌거나 감각기능들이 변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다.

 

“도반 우빠세나 존자여, 그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도반 우빠세나 존자가 오랜 세월을 ‘나’라는 사견과 ‘내 것’이라는 갈애와 ‘나’라는 자만을 완전히 뿌리 뽑은 채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빠세나 존자에게는 ‘나는 눈이다.’라거나 ‘내 눈이다.’라거나 … ‘나는 마노다.’라거나 ‘나의 마노이다.’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비구들은 우빠세나 존자의 몸을 침상에 올린 뒤 밖으로 내놓았다. 거기서 우빠세나 존자의 몸은 왕겨 덩어리처럼 분해되어 사라졌다.

 

(원주: 이 이야기는 Saḷāyatana Saṃyutta, Upasena-asivisa Sutta 및 그 주석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

24 Upasena Vangantaputta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In the past, the Venerable Upasena Vaṅgantaputta was born into a worthy family in the city of Haṃsavati during the time of Buddha Padumuttara. When he came of age, he went to the Buddha’s monastery, like all the great future Venerables, to listen to the Buddha’s sermon. There, he witnessed a bhikkhu being declared by the Buddha as the foremost (etadagga) among those who gained the esteem of a wide following. The worthy man emulated that bhikkhu and made his aspiration to that honour in some future existence. The Buddha saw that the aspiration of the man would be fulfilled and made the prognostication as in the cases of other similar aspirants. Then He returned to the monastery.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That worthy man, after leading a life filled with good deeds, passed away into the fortunate destinations. At the time of Buddha Gotama, he was born into a brahmin family in the brahmin village of Nālaka, in the country of Magadha. His mother was Rūpanārī, the wife of a brahmin rich man. He was named Upasena in his boyhood. He grew up and learned the three Vedas, but, after hearing the Dhamma from the Buddha, he was deeply devoted to the Buddha and became His disciple.

 

Venerable Upasena, who had one vassa in bhikkhuhood, had a desire to increase the number of bhikkhus. He admitted a man into the state of a novice and then raised him to full bhikkhuhood. The Venerable Upasena, at the end of the vassa, after attending the usual congregation of bhikkhus, went to see the Buddha together with his own close disciple who was then of one vassa as a bhikkhu and, himself, as preceptor to that bhikkhu, of two vassas as a bhikkhu, thinking that the Buddha would be pleased with him for his well intended act (of admitting a new comer into the Order).

 

As the Venerable Upasena was sitting in a suitable place before the Buddha, the Buddha said to him: “Bhikkhu, how many vassas have you spent as bhikkhu?” “Two vassas, Venerable Sir,” Upasena replied. “How many vassas have that bhikkhu who accompanies you?” “One vassa, Venerable Sir." “How are you two related?” “He is my close disciple, Venerable Sir.” “You vain man, you are bent on gaining the four requisites very quickly.” The Buddha then denounced the Venerable Upasena on many grounds.

 

Then the Buddha pronounced a rule thus:

 

“Bhikkhus, let no bhikkhu, who has not completed ten vassas in the Order, admit a person into bhikkhuhood. He who infringes this role incurs a minor breach of the Discipline.

 

“Bhikkhus, I allow a bhikkhu with ten vassas or more to act as preceptor to a new bhikkhu in the admission of that person into bhikkhuhood.”

 

These two Vinaya rules came about concerning the Venerable Upasena. (Ref: Vinaya Mahāvagga)

 

Upasena, on being reprimanded by the Buddha, thought of receiving praise from the Buddha on account of following. “I will make the words of praise, with reference to this very question of following, come out of this same mouth of the Bhagava, which is splendored like the full moon,” he encouraged himself. On that same day, he went into seclusion, meditated with diligence, cultivated Insight and in a few days attained arahattaphala.

 

Pupils exhorted

Upasena was a bhikkhu with a celebrated family background. With his reputation throughout the land as an able expounder of the Doctrine; he earned the confidence and good will of many boys of worthy families who were his blood relations or friends. These young boys became novices under his guidance. But he made an understanding with them at the outset: “Boys, I am a vowed dweller of the forest. If you can live in the forest like me, you may become novices,” and he told them the elements of the thirteen kinds of austere practice. Only those boys who could take up the austere practice were admitted as novices by him, but only to such an extent as their tender ages could take. When the Venerable Upasena himself had completed ten vassas as a bhikkhu he mastered the Vinaya and admitted the novices into full bhikkhuhood, acting as their preceptor. The number of those bhikkhus under his preceptorship grew into as many as five hundred.

 

During those days, the Buddha was residing at the Jetavana monastery in Sāvatthi. At one time, the Buddha said to the bhikkhus: “Bhikkhus, I wish to remain alone for half a month,” and was staying in seclusion. Then the Sangha made a mutual agreement among themselves that any bhikkhu who went near the Buddha alone would be liable to making a formal confession of his guilt for doing so.

 

The Venerable Upasena, accompanied by his disciples, went to the Jetavana monastery to pay homage to the Buddha, and after making obeisance to the Buddha, they sat in a suitable place. Then the Buddha, intending to start a conversation, asked a young bhikkhu who was a close disciple of the Venerable Upasena: “Bhikkhu, do you like wearing dirt-rag robes?” The young bhikkhu made a preliminary statement: “I do not like it, Venerable Sir,” but went on to explain that although he did not personally like it, out of his high regard for his Preceptor, he observed the austere practice of wearing dirt-rag robes.

 

The Buddha praised Upasena for that, and also said many words in praise of Upasena on various other counts. (This is only a brief account of Upasena’s earning the Buddha’s approbation. For details refer to the Vinaya, Pārājikakaṇḍa Pāli; 2 Kosiya vagga, 5 Nisīdāna Santata Sikkhāpada. It may be noted that in that text, the Buddha is recorded as to have said: “I wish to go into seclusion for three months” whereas the Commentary on the Aṅguttara Nikāya says the Buddha wished to have “half a month of seclusion.” We would recommend the “three months” version of the text as authoritative.)

 

(c) Etadagga Title achieved

In one occasion, sitting in the congregation to declared outstanding bhikkhus, the Buddha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samantapāsādikānaṃ yadidaṃ Upaseno Vaṅgantaputto.”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win the high esteem of their following, Bhikkhu Upasena Vaṅgantaputta is the foremost (etadagga).”

 

Upasena’s Tragic Demise

At one time the Venerables Sāriputta and Upasena were dwelling near Rājagaha at the Sappasoṇḍika Cave (Cave resembling a snake’s hood) in the ebony forest. At that time, a poisonous snake fell onto the body of the Venerable Upasena.

 

(Here, the Venerable Upasena was stitching a great robe near the entrance of the cave where a light breeze was blowing. At that moment, one of the two poisonoussnakes that were mating on the roof of the cave fell down onto his shoulder. It was a highly poisonous snake whose venom was so potent that mere contact with it was lethal. So the body of Venerable Upasena burnt like a wick in a lamp, spreading its heat all over the body. He knew that his body would be burnt away in no time but he made a wish that his body should remain intact inside the cave, and thereby prolonging the decay.)

 

Then the Venerable Upasena called the bhikkhus, saying: “Friends, come! Put this body of mine on the cot and carry it outside before this body disintegrates here like a ball of chaff.”

 

Thereupon Venerable Sāriputta said to Venerable Upasena: “We do not see any change in the body and any change in the faculties of the Venerable Upasena. Yet the Venerable Upasena said: “Friend, come! Put this body of mine on the cot and carry it outside before this body disintegrates like a ball of chaff.” (This was said by the Venerable Sāriputta because there was no change in the bodily gesture and the facial expression‎ of the Venerable Upasena, as is usual with ordinary people at the hour of death.)

 

Then the Venerable Upasena said:

 

“Friend Sāriputta, as a matter of fact, only in one who views through wrong view and craving, such as: ‘I am the eye, the eye is mine’;‘I am the ear, the ear is mine’; ‘I am the nose, the nose is mine’; ‘I am the tongue, the tongue is mine’; ‘I am the body the body is mine’; ‘I am the mind, the mind is mine’, changes in the body and changes in the faculties occur.

 

“Friend Sāriputta, I do not have any view either through wrong view or through craving, such as: ‘I am the eye, the eye is mine; ‘I am the mind, the mind is mine.’ Friend Sāriputta, how should there be any change in the body or any change in the faculties in me who hold no such views?” The Venerable Sāriputta said:

 

“It is indeed so, friend Upasena. Since you, friend Upasena, have long ago removed the wrong view of ‘my self’, the craving to ‘mine’, and the conceit ‘I’, it is not possible for such views to arise, either through wrong view or through craving, such as: ‘I am the eye, the eye is mine’...; ‘I am the mind, the mine is mine’.

 

Then the bhikkhus put the body of the Venerable Upasena on a cot and carried it outside. There and then Venerable Upasena’s body disintegrated like a ball of chaff and he passed away realizing the exhaustion of rebirth.

 

(This account is also on record in Saḷāyatana Saṃyutta, Upasena-asivisa Sutta and the Commentary thereon.)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7.html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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