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답바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답바(Dabba) 대장로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성년이 되자 부처님의 정사를 방문한 그는, 부처님의 연설을 듣던 중 어떤 비구가 승가를 위한 거처를 마련하는 비구들 중 제일이라고 선언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비구를 본받아서, 부처님께 큰 공양을 올린 후,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그와 유사한 인물이 되겠다는 서원을 말씀 드렸다. 부처님은 보시자의 서원이 성취될 것을 보고 정사로 돌아가기 전에 예언을 하였다.
산꼭대기에서의 수행
부처님으로부터 예언을 들은 미래의 답바 대장로는, 선행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죽은 다음에 그는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났고, 그 후 천상계에서 또는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깟사빠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에, 그는 귀족으로 다시 태어나 비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며 진정한 비구는 은둔하며 살아야 한다는 견해를 공유하는 여섯 명의 다른 비구들을 만났다. 그래서 그들은 사다리를 이용하여 높고 가파른 산을 올라갔다. 꼭대기에 올라간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였다. “자신 있는 사람은 사다리를 치워라. 자기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사다리를 치우기 전에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라.” 일곱 비구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산꼭대기에 머무르기를 선택했고 그들은 사다리를 치웠다. “자, 친구들아, 이제 열심히 수행하자.” 그들은 산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도 지혜를 얻기 위해 분투할 장소를 선택하기 전에 서로 격려했다.
이 일곱 비구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비구는 다섯째 날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자신이 성스러운 수행을 끝냈다는 것을 안 그는, 탁발 음식을 구하러 자신의 신통력으로 웃따라꾸루(북구로주. 北拘盧洲. Uttarakuru)로 갔다. 탁발 음식을 구한 그는 돌아와서 그의 여섯 비구 동료들에게 주면서 이렇게 격려했다. “벗들이여, 이 공양을 들게. 탁발은 내가 하겠네. 그대들은 수행에만 전념하게.” 그러자 나머지 여섯 명이 대답하였다. “벗이여, 우리가 출세간법을 먼저 깨들은 사람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합의했었는가?” 아라한이 말했다. “아니, 친구들, 그런 합의를 한 적은 없었지.” 그러자 여섯 비구들이 말하였다. “스님, 스님은 과거의 덕행에 의해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면 윤회를 끝낼 것이니, 스님께서는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십시오.”
나이 많은 비구가 여섯 비구들을 설득하여 시주를 받아오게 하는데 실패하지, 그는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남은 것은 그대로 두었다. 7일째 되는 날, 두 번째로 나이 많은 비구가 아나함과에 도달했다. 그 역시 자신의 힘으로 웃따라꾸루에 가서 남은 동료들을 위한 탁발음식을 얻어왔다. 그도 친구들이 거절하자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떠났다. 그가 죽어서 몸이 해체된 후, 그는 정거천에 다시 태어났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나머지 5명의 비구들은 그 생에서 도의 지혜를 얻지 못했다. 그들은 그 생에서 세상을 떠난 후, 깟사빠 부처님과 고따마 부처님 시대 사이의 오랜 기간[佛間 아승기] 동안 천상과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다시 태어났다. (1) 한 명은 딱까실라 시의 간다라에서 왕족으로 태어났고(나중에 뿍꾸사띠(Pukkusāti) 왕이 되었다), (2) 다른 한 명은 빱바떼이야(Pabbateyya. Majjhantika라고도 함) 지역에서 여성 금욕주의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3) 세 번째는 바히야 지방의 한 가정(나중에 바히야 존자)에서, (4) 네 번째는 라자가하의 가정(나중에 Kumāra Kassapa)에서, (5) 다섯 번째는 말라 왕자의 왕족인 아누삐야(Anupiya) 시에서 태어났다(답바 존자).
미래의 답바 존자의 어머니는 아이를 출산할 때 사망했다. 그녀의 시체가 장작불에 화장될 때, 열 때문에 자궁이 터졌지만, 그의 과거의 공덕 덕분에, 그는 공중으로 튀어 올라 무사히 답바 풀 더미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그의 할머니는) 그에게 답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원주: '답바'라는 용어는 '풀의 일종'과 '다발 더미'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Apādāna (Book Two) 제143번 게송을 “patito dabbapuñjamhi taro dabboti vissuto”라고 설명하고 있다. Aṅguttara의 주석서(Sāratthadīpanī Tika)와 테라가타의 주석서에는 그가 faggots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원저자는 ‘풀’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faggots. The present author prefers the meaning ‘grass’ here.)
답바가 7살이었을 때, 부처님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말라 국을 여행하는 동안 아누삐야에 도착했고, 그는 아누삐야 망고 숲에 임시 거처를 잡았다. 어린 답바는 부처님을 보고 넋을 잃고 할머니에게 스님이 되겠다고 말했다. 동의한 할머니는 그를 부처님에게 데려가서 그 소년을 출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부처님은 가까이에 있는 비구에게 “이 소년이 사미가 되는 것을 지켜보라.”고 말하여 그 소년을 사미로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 그러자 선임 비구는 그에게 다섯 부분(즉,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치아, 피부)으로 대표되는 몸의 혐오스러움을 관찰하는 법을 가르쳤다. (소년을 사미로 만드는 첫걸음이 머리를 깎는 것이듯, 언제나 계사가 이 소년을 출가시킬 때 다섯 단어를 큰소리로 말하고 관찰하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어린 답바는 머리를 깎는 동안 그것들을 숙고했다.
어린 답바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그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이전에 10만 겁 전에 출중한 비구를 열망했었다. 그리하여 그의 머리 둘레를 한 바퀴 깎자마자 그는 수다원과에 도달했고, 두 번째 바퀴를 깎았을 때 그는 사다함과에 도달했고, 세 번째 바퀴를 깎았을 때, 그는 아나함과에 도달했고, 머리를 다 깎았을 때 그는 아라한과에 도달했다. 요컨대 삭발의 완성과 아라한과의 달성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윤회에서 벗어날 준비가 된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보낸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제따와나 정사로 돌아왔다. 이제 아라한이 된 답바 사미도 부처님과 동행했다. 라자가하에 정착한 답바 스님은 한적한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라한과를 위해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내가 승가를 섬기면서 그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각각의 공양 보시자들에게 승가 구성원들을 안내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께 알렸다. 부처님은 그를 칭찬했고, 그에게 두 가지 임무를 부여했다. (1) 승가가 그를 그렇게 인정하기로 한 승가 구성원들을 위한 거주지 준비(Senāsana-paññāpaka sammuti)와 (2) 승가가 그를 인정한 대로, 승가 구성원을 그들 각각의 공양 보시자들에게 배정하는 것(Bhatt'uddesaka sammuti).
부처님은 일곱 살 된 답바가 그의 가르침에서 사무애해, 여섯 가지 신통력, 3가지 지식을 가진 것을 기뻐했다. 그러므로 비록 매우 어리지만, 부처님은 사미인 아라한 답바를 정식 비구로 인정했다. (참고로, Pandita 사미, Saṃkicca 사미, Sopāka 사미, Khadiravaniya 사미(사리뿟따 존자의 막내동생)와 같은 다른 아라한인 사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아라한과를 얻었기 때문에 20세가 아직 안 됐지만 비구로 인정받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 비구들은 비구의 궁극을 이뤘으니 장로(Thera)라고 불릴 만하다.)
완전한 비구가 되었을 때부터, 답바 존자는 라자가하에 거주하는 모든 비구들의 거처와 (승가에게 보시하는 여러 기부자들의) 공양을 분배했다. 이것은 그가 연공서열에 어긋나지 않게 공양물을 공정하게 분배했다는 것이다.
말라 왕실에서 온 젊은 아라한인 비구가, 비구들을 잘 돌봐주고, 성향이 비슷한 비구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주는데 매우 배려심이 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온 비구들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거처를 잡아주고, 장애자나 병든 비구들도 자신의 신통력으로 도와준다는 명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타지에서 방문하는 비구들이 불가능한 거주지 예를 들면 지와까의 망고 숲 정사, 맛다꿋치(Maddakucchi) 정사의 성소(sanctuary) 등과 같은 먼 곳에 한 밤중에 정상적으로 얻기 곤란한 거주지를 요청하곤 했는데, 그들은 답바 스님의 신통력을 통해 그것들을 얻었다. 스님은 그의 능력으로 그의 임무가 요구하는 만큼 많은 마음먹은 복제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의 손가락이 밤의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며, 밝은 등불 역할을 하는 그, 즉 자신의 복제품으로, 그의 손님들을 그들이 선택한 장소로 인도하고, 그들의 거주지와 잠자는 장소를 보여줄 수 있었다. (원주: 이것은 간단한 설명이다. 자세한 내용은 the Vinaya Pārājikakaṇḍa(in the section on Duṭṭhadosa Sikkhāpada)를 참조하면 된다.)
3. 호칭
부처님은 답바 존자의 승가에 대한 거룩한 봉사를 감안하여 비구들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비구 승가를 위해 거처를 마련해주는 비구 제자들 가운데는 말라 왕실의 답바 비구가 으뜸이다.”
(원주: 부처님이 답바 존자에게 비구의 숙소를 마련하는 의무를 부여했기 때문에, 존자는 라자가하 주변의 18개의 큰 정사의 안팎을 모두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는 비구들을 위해 앉는 곳이나 자는 곳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항상 준비해 두었다.)
중상모략의 피해자 답바
답바 존자는 진정한 덕 있는 비구였지만, 멧띠야(Mettiya) 비구와 부마자까(Bhumajaka) 비구가 이끄는 사악한 비구들이, 답바 존자를 멧띠야(Mettiya)라는 비구니와 공범이라고 고발한 중상 모략한 사건의 희생자였다.(원주: For details refer to Vinaya Pārājikakaṇḍa, in the Chapter on Samghādisesa, in the section on Duṭṭhadosa Sikkhāpada; and Cūlavagga; 4-Smathakkhandhaka, 2-Sati vinaya.) 이 불행한 사건은 답바 존자 자신의 과거생의 악행의 과보였다. 99겁 전 위빳시 부처님 시절에 그는 어떤 아라한을 그가 아라한일 줄 알면서 비방했던 것이다.
답바 대장로의 반열반
답바 존자가 돌아가시는 날, 그는 식사를 마치고 웰루와나 정사로 돌아와 부처님께 삼배를 한 후 발을 씻고 말린 후, 한적한 곳에 작은 돗자리에 앉아 일정 기간 동안 멸진정(attainment of Cessation)에 들어갔다.
미리 결심한 시간이 지나서 멸진정에서 나온 그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숙고해보니 그가 단지 몇 시간 정도만(문자대로는 two or three muhuttas(=잠시. 48분))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부처님과 공동 거주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죽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처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죽기 전에 기적을 보여야 한다고 느꼈고, 그에 대한 잘못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미래에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멧띠야 비구와 부마자까 비구의 중상모략 때문에). 그래서 그는 부처님 앞에 가서 절을 하고 적당한 곳에 앉아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죽을 때가 됐습니다.”
부처님은 답바 존자의 생명력을 검토해서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답바여, 너는 죽을 시간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답바 존자는 부처님께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그는 적절한 장소에 서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10만 겁 다양한 생에서 함께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나의 선행은 아라한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목표가 달성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세존을 마지막으로 뵙는 것입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비구들 중에서, 범부들, 수다원들이나 사다함들은 매우 슬퍼했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답바 존자의 마음을 아는 부처님은 “답바여, 우리와 승가가 볼 수 있게 기적을 보여주어라.”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비구 승가 전원이 현장에 나타났다. 그러자 답바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들과 관련된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었고, 여러 사람이 한 명이 되었으며, 지금은 눈에 보였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등이었다.” 그러고서 그는 다시 부처님께 절을 했다.
그런 다음 존자는 공중으로 솟구쳐서 공중에 마음먹은 대로 땅을 만들었고, 그는 그 위에 앉아 결가부좌하고 열 표상(tejo-kasiṇa)으로 선정에 들었다. 선정에서 나와 열이라는 요소에 집중한 후, 그는 자신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솟아오르도록 서원을 세웠다. 그러고서 그는 신통력의 기초가 되는 열의 원소(tejo-dhātu)의 선정에 들어갔다. 그 선정에서 나오자마자, 신통력과 관련된 인식 과정(thought-process)이 그에게서 일어났다. 그 인식 과정의 첫 번째 속행 순간에, 그의 몸은 세계를 파괴하는 화재에 버금가는 힘에서 전체 육체를 집어삼키는 불길이 되어 육체의 흔적, 조건화된 물리적 현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불길은 스님의 뜻대로 완전히 꺼졌다. 신통력의 인식 과정이 끝날 때, 마음은 이 순간 죽음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생명 연속체로 되돌아갔다. 이로써 답바 존자는 죽고 열반을 실현하여 괴로움(dukkha)을 소멸시켰다. (원주: 자세한 내용은 우다나 주석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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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Dabba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e future Dabba Mahāthera was born as a worthy man in the city of Haṃsāvatī, during the time of Buddha Padumuttara. On coming of age, he visited the Buddha’s monastery and while listening to a discourse by the Buddha, he witnessed a bhikkhu being declared by Him as the foremost among those bhikkhus who prepared living place for the bhikkhuSangha. He emulated that bhikkhu and after making great offerings to the Buddha, he expressed his aspiration for the similar distinguished recognition during the time of some future Buddhas. The Buddha saw that the donor’s aspiration would be fulfilled and made the prognostication before returning to the monastery.
Meditating Atop A Mountain
The future Dabba Mahāthera, having received the prognostication from the Buddha, lived a full life filled with good deeds. On his death, he was reborn in the deva realm and subsequently either in the deva realm or the human realm. During the waning years of the Teaching of Buddha Kassapa, he was reborn as a worthy man and took up bhikkhuhood. He found six other bhikkhus who shared the view that living among people was not the correct way for gaining enlightenment and that a real bhikkhu must live in seclusion. And so they went up a high steep mountain by means of a ladder. Once up at the top, they discussed among themselves: “He who has self-confidence, let him push away the ladder. He who clings to his life, let him go down by the ladder before it has been pushed away.” All the seven bhikkhus chose to remain on the mountain top until they attained enlightenment and so they pushed away the ladder. “Now, friends, be diligent in your bhikkhu practice,” they exhorted one another before choosing a place of their own on the mountain to strive, ignoring death, for the Path-Knowledge.
Of these seven bhikkhus, the eldest attained arahatship on the fifth day. He knew he had finished what was required of the Noble Practice and went to Uttarakuru, the Northern Island Continent, by means of his powers to collect alms-food. Having collected the almsfood, he came back and offered it to his six bhikkhu companions with these encouraging words: “Friends, have this meal. Let me be responsible for alms-food collection. You just devote yourselves to your meditation.” Then the remaining six replied: “Friend, have we made an agreement among us that he who first realize the Supramundane Dhamma would be responsible to feed those who still have to reach that same goal?” The arahat said: “No, friends, there was no such agreement.” Then the six bhikkhus said: “Venerable Sir, you have attained arahatta-phala according to your past merit. We too would make an end of the woeful round of saṃsāra if we could. May the Venerable go wherever he pleases.”
The eldest bhikkhu, being unable to persuade the six bhikkhus into accepting the almsfood, took the meal at a suitable place and left them. On the seventh day, the second eldest bhikkhu, attained anāgāmī-phala. He too went to the Northern Island continent by means of his powers and offered the alms-food to the remaining colleagues. Being refused by his friends, he ate his meal at some suitable place and left. After the death and dissolution of his body, he was reborn in the Pure Abode of the (anāgāmī) Brahmās.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The remaining five bhikkhus did not achieve the Path-Knowledge during that existence. After passing away from that existence, they were reborn in the deva realm and the human realm throughout the infinite world-cycle of the interval period between Buddha Kassapa and Buddha Gotama. During the time of Buddha Gotama, they were reborn in various countries: (1) one was born in Gandhāra, in the city of Takkasīlā, as a member of the royal family (and later became King Pukkusāti); (2) another in Pabbateyya (also called Majjhantika) region, as the son of a female wandering ascetic (and later became Sabhiya, the wandering ascetic); (3) the third one, in Bāhiya Country, in a household (and later became Bāhiya Thera); (4) the fourth, in Rājagaha household (and later known as Kumāra Kassapa); and (5) the last (who later became the Venerable Dabba) in Malla Country, in the city of Anupiya, in the royal family of a Malla prince.
The mother of the future Dabba Mahāthera died when she was about to deliver the child. When her dead body was being cremated on a pyre, the womb burst open due to heat but, thanks to his past merit, he was shot up into the air and fell safely on a heap of dabba grass, and was thus named (by his grandmother) Dabba.
(Note: The term ‘dabba’ has two meanings; ‘a kind of grass’ and ‘a pile of faggots.’ In the Apādāna (Book Two) in the explanation of verse no. 143 it is mentioned as: “patito dabbapuñjamhi taro dabboti vissuto”. In the Commentary on the Aṅguttara, Sāratthadīpanī Tika, and the Commentary on the Theragāthā, he is said to have fallen on the faggots. The present author prefers the meaning ‘grass’ here.)
When young Dabba was seven years of age, the Buddha, in the company of many bhikkhus, arrived in Anupiya during a tour of the Malla Country, where He took up temporary abode in the Anupiya mango grove. Young Dabba was enthralled at seeing the Buddha and asked his grandmother for permission to enter the Order. The grandmother consented and she took the boy to the Buddha and asked for the boy’s admission into the Order.
The Buddha gave a bhikkhu near Him the task of admitting the boy into the Order, saying: “See to this boy’s admission as a novice.” The bhikkhu-elder then taught him how to reflect on the loathsomeness of the body, which was represented by its five parts (i.e. hair, body hair, nails, teeth, skin). (As shaving the head in a first step in ordaining a boy into a novice, this reflection is a most appropriate thing which the preceptor invariably enjoins this boy for novitiation to say the five words aloud and reflect.) Young Dabba reflected on them while his head was being shaved.
Young Dabba had sufficing conditions for enlightenment; moreover, he had aspired to a distinguished bhikkhuhood a hundred thousand world-cycles ago before Buddha Padumuttara. Hence, as soon as the first circle of hair on his head was shaved, he attained sotāpatti-phala;by the time the second circle of hair was shaved, he attained anāgāmīphala;by the time the third circle of hair was shaved, he attained the sakadāgāmī-phala;and when the head was clean-shaven, he attained arahatship. In short, the completion of the shaving his head and the attainment of his arahatship took place simultaneously.
After spending such time as was needed for bringing enlightenment to those deserving release from saṃsāra, the Buddha returned to Rājagaha to dwell at the Veḷuvana monastery. Novice Dabba, now an arahat, also accompanied the Buddha there. Once settled in Rājagaha, the Venerable Dabba, going into seclusion, thought to himself: “I have nothing more to do for arahatship. It were well, if I served the Sangha by arranging for their living places and directing them to their respective donors of alms-food.” He disclosed his idea to the Buddha. The Buddha lauded him for it and assigned him the double task: (1) preparation of living places for the members of the Sangha, for which the Sangha was to recognize him as such (Senāsana-paññāpaka sammuti) and (2) directing members of the Sangha to their respective donors of alms-food, for which the Sangha was to recognize him as such (Bhatt'uddesaka sammuti).
The Buddha was pleased to see the seven-year-old Dabba having attained such eminence in His Teaching as being endowed with the Four Analyticals, the Six Supernormal Powers and the three Knowledges. Therefore, although very young, the Buddha raised the novice, Arahat Dabba, to bhikkhuhood. (Incidentally, there were also other novice arahats, such as Sāmaṇera Pandita, Sāmaṇera Saṃkicca, Sāmaṇera Sopāka, Sāmaṇera Khadiravaniya (the youngest brother of the Venerable Sāriputta), who were raised to full bhikkhuhood although under twenty because they had attained arahatship. Although young in age, these bhikkhus had attained the acme of bhikkhuhood, and hence deserved to be called Elders, Theras.)
From the time of becoming a full bhikkhu, the Venerable Dabba arranged living places and allocated alms-food (among the various donors to the Sangha) for all the bhikkhus residing at Rājagaha. This, he did with competence, not allowing a slip in the alms-lot distribution which had to be done by seniority.
The good name of the young arahat-bhikkhu, who came of the Malla royal family, who was very caring to bhikkhus, who was very considerate in finding places where like-minded bhikkhus could stay together, who was able to get living places at far-off locations for visiting bhikkhus according to their instructions, helping disabled or sick bhikkhus by his own supernormal power, spread to all directions.
Many visiting bhikkhus would ask for normally impossible living places at odd hours, at far-off locations, such as the mango grove monastery of Jīvaka, the sanctuary at Maddakucchi monastery, etc., and to their astonishment, they got them through the supernormal powers of the Venerable Dabba. The Venerable, by his powers, created as many mind-made replicas of himself, as his tasks demanded. Then, with his fingers emitting light in the darkness of night, serving as bright lamps, he, i.e. the replica of himself, could lead his guests to the places of their choice, show them their living place and sleeping place. (This is a brief description. For details see the Vinaya Pārājikakaṇḍa in the sections on Duṭṭhadosa Sikkhāpada.)
(c) Etadagga Title achieved
In consideration of the Venerable Dabba’s noble services to the Sangha with experience competence, the Buddha, on one occasion, declared to the congregation of bhikkhus: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anaṃ bhikkhunaṃ senāsanpaññāpakanaṃ yadidaṃ Dabbo Mallaputto.”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make arrangements for living places for the Bhikkhu Sangha, the Venerable Dabba of the Malla royal family is the foremost (etadagga).”
(Note: Since the Buddha assigned the Venerable Dabba the duties of seeing to the accommodation of bhikkhus, the Venerable kept all the eighteen big monastic compounds around Rājagaha clean, both inside the dwelling places and around them. He never missed cleaning a sitting place or a sleeping place or placing water for drinking and washing for the bhikkhus.)
Dabba as Victim of Slander
Even though the Venerable Dabba was a truly virtuous bhikkhu, he was a victim of slander perpetrated by a group of evil bhikkhus led by Bhikkhu Mettiya and Bhikkhu Bhumajaka who accused him of complicity with a bhikkhunī named Mettiya. (For details refer to Vinaya Pārājikakaṇḍa, in the Chapter on Samghādisesa, in the section on Duṭṭhadosa Sikkhāpada; and Cūlavagga; 4-Smathakkhandhaka, 2-Sati vinaya.) This unhappy event was the consequence of his own past misdeed. Ninety-one world-cycles previously, during the time of Buddha Vipassī, he had slandered an arahat knowing him as a pure one.
Mahāthera’s Parinibbāna
On the day the Venerable Dabba was to pass away, he returned to the Veḷuvana monastery from his alms-round, having taken his meal, and after making obeisance to the Buddha, washed his feet to cool them; then he sat on the small mat at a secluded spot, and entered into the attainment of Cessation for a specified period.
After rising from the jhāna absorption at the pre-determined time, he reviewed his lifefaculty and knew that he was going to live just for a couple of hours or so (lit., two or three muhuttas). He thought it improper for him to pass away in seclusion without saying farewell to the Buddha and the co-residents. He felt obliged to say farewell to the Buddha and to display miracles before he died, in the future interest of those who had wrong opinions of him (due to the slanderous attack of Bhikkhu Mettiya and Bhikkhu Bhūmajaka), who would thereby be enabled to see his true worth. So he went before the Buddha, made obeisance, and sitting in a suitable place, said: “O Sugata, my time to die has arrived.”
The Buddha reviewed the life-faculty of the Venerable Dabba, knew that he was just about to die and said: “Dabba, you know the time for your death.” The Venerable Dabba then made obeisance to the Buddha, walked around Him thrice, with Him on his right, and then he stood at a suitable place and said: “Venerable Sir, we had fared in the world together in various existences for a period of a hundred thousand world-cycles. My performance of good deeds had been aimed at arahatship. The goal is now achieved. This is the last time I am seeing the Bhagava." It was a touching moment. From among the bhikkhus, those who were worldlings, sotāpannas, or sakadāgāmins, felt very miserable, while some wept.
The Buddha knew what was in the mind of the Venerable Dabba and said: “Dabba, that being so, display miracles for us and the Sangha to witness.” No sooner had the Buddha said these words than all members of the community of bhikkhus were present on the scene. Then the Venerable Dabba displayed the miracles pertaining to the disciples of the Buddha, such as “from being one, he became many; from being many, he became one; now he was visible; and now he was invisible, etc.” Then he made obeisance to the Buddha again.
Then the Venerable rose to the air and created mind-made earth in mid-air, on which he sat (cross-legged) and meditated on the devise of heat (tejo-kasiṇa) as the preliminary step. After emerging from the jhāna, concentrating on the element of heat, he made his solemn wish that his body rise in flames. Then he entered into the jhāna of the element of heat (tejo-dhātu) which is the basis of attaining supernormal powers. On emerging from that jhāna, the thought-process pertaining to supernormal power arose in him. At the first impulse thought-moment of that thought process, his body became ablaze which consumed the entire corporeality, comparable in power to the world-destroying fires, so that not a trace of the body, the conditioned physical phenomenon, remained. No ash of whatever was to be seen. Then the blaze was completely extinguished as desired by the Venerable. At the end of the supernormal thought-process, the mind reverted to life-continuum, which, in this moment, was identifiable with death. Thus ended the life of the Venerable Dabba, who passed away and realized Nibbāna, making an end of dukkha. (For details of the passing away refer to the Commentary on the Udān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78.html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