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꾸마라 깟사빠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꾸마라(Kumara) 깟사빠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 시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미래의 대장로들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에게 가서 설교를 들었는데, 어떤 비구가 다양하게 설법하는 비구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부처님에 의해 선언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자신도 그런 유능한 비구가 되고자 하는 서원이 생겨서 위대한 공양을 올린 후, 미래의 부처님으로부터 다양하게 설법하는 비구들 가운데 제일이라는 비구로 칭찬받기를 서원한다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의 서원이 성취될 것을 보고 예언을 했다.
산꼭대기에서의 수행
미래의 꾸마라 깟사빠는 평생 동안 선업을 쌓다가 죽은 다음 천상 세계 또는 인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깟사빠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던 시기에, 그는 다른 여섯 명의 비구들과 함께 가파른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열심히 수행했다.(답바 존자 이야기 참고) 그는 청정하고 완벽하게 계를 지켰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그 훌륭한 사람(미래 꾸마라 깟사빠)은 두 부처님 사이의 무한한 겁[佛間 아승기] 동안 악처에서 결코 다시 태어나지 않았고, 천상과 인간계에서 태어났다. 고따마 부처님이 출현할 무렵, 그는 상인의 딸의 뱃속에 잉태되었다. 이 젊은 여성은 출가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다른 부자의 아들과) 결혼시켰다. 임신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남편에게 비구니가 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남편의 동의를 얻어 그녀는 데와닷따 비구의 비구니 정사로 갔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비구니들은 데와닷따 비구에게 보고했다. 데와닷따는 “그녀는 더 이상 비구니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공동체에서 추방했다. 젊은 비구니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있는 비구니 정사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우빨리 존자에게 조사하여 결정을 내리라고 하셨다.
우빨리 존자는 위사카를 포함한 사왓티의 저명한 부인들을 불러서, 비구니가 되기 전에 임신이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후에 이루어졌는지 조사하게 했다.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부인들은 임신이 재가 생활 중에 일어났다고 우빨리 스님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우빨리 존자는 비구니가 되기 전에 임신한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청정하다고 분명한 판결을 내렸다. 부처님은 우빨리 존자의 명쾌한 결론을 칭찬했다.
이 젊은 비구니는 황금 조각상처럼 생긴 뼈만 앙상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이 그 아이를 왕자처럼 궁전에서 키웠다. 그 소년은 깟사빠라고 명명되었고 7살 때, 그는 멋진 옷을 입고 부처님의 정사로 가서 사미가 되었다. [상세한 것은 자따까(Jātaka, Ekaka Nipāta, Nigrodhamiga Jātaka) 참조]
꾸마라 깟사빠라는 이름
어린 소년이 7살 때 사미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깟사빠’라는 이름의 사미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부처님은 그를 ‘꾸마라(소년) 깟사빠’라고 불렀다. 다른 의미에서 ‘Kumara’는 ‘왕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깟사빠는 빠세나디 왕이 키웠기 때문에, ‘꾸마라 깟사빠’는 ‘깟사빠 왕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개미집(Vammika) 경의 배경 이야기
(개미집 경은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38 참조)
꾸마라 깟사빠는 사미가 된 다음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했고 경전도 배웠다. 그런 식으로 그는 부지런히 교학과 수행 두 가지를 모두 추구했다. 부처님이 사왓티의 제따와나 정사에 거주할 때 꾸마라 깟사빠는 제따와나 정사에서 멀지 않은 장님의(안다와나) 숲에 머물렀다. 그때 전생에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같이 수행했던 도반 중의 한 명이 아나함이 되어 선현천(善賢天, Suddhāvasa)에 재탄생한 범천이 옛 친구들을 회상해 보았다. 그리하여 꾸마라 깟사빠가 깨달으려고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보고, 그는 옛 친구가 위빳사나 수행을 잘 하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간 세상을 향해 선현천을 떠나기 전에 범천은 15가지 퀴즈를 만들었다. 한밤중에 그는 장님의 숲에 있는 꾸마라 깟사빠 앞에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꾸마라 깟사빠는 범천에게 “제 앞에 나타난 그대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 “스님, 나는 전생에 (깟사빠 부처님 시절) 깨닫기 위하여 그대와 함께 수행해서 아나함이 되어 선현천에 다시 태어난 그대의 도반입니다.” “그대가 저에게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범천은 자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다.
“비구여, ① 이 개미집은 ② 밤에 연기를 내뿜고, ③ 낮에는 불길에 휩싸여 솟아오른다. ④ 바라문은 ⑤ 현자에게 ⑥ 칼을 잡고 ⑦ 부지런히 파라고 말한다. 현자가 바라문이 말한 대로 열심히 땅을 파자 ⑧ 빗장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는 바라문에게 보고했다. ‘존자시여, 빗장입니다.’
그러자 바라문이 현자에게 말했다. ‘현자여, 빗장을 버리고 칼로 부지런히 땅을 파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팠더니 ⑨ 두꺼비를 보았다. ‘존자시여, 두꺼비입니다.’
바라문은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두꺼비를 버리고, 칼로 부지런히 땅을 파시오.’ 현자가 계속 땅을 파니 ⑩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존자시여,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바라문이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두 갈래 길을 버리고, 칼로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파다가 ⑪ 물 여과기를 보았다. ‘존자시여, 물 여과기가 나왔습니다.’
바라문이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물 여과기를 버리고 칼로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파니 ⑫ 거북이가 나왔다. ‘존자시여, 거북이입니다.’
바라문이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거북이를 버리고 칼로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파니 ⑬ 칼과 도마가 나왔다. ‘존자시여, 칼과 도마가 나왔습니다.’
바라문이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칼과 도마를 버리고 칼로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파니 ⑭ 고깃덩이가 나왔다. ‘존자시여, 고깃덩이가 나왔습니다.’
바라문이 이어서 말했다. ‘현자여, 고깃덩이를 버리고 칼로 계속 파십시오.’ 현자가 칼로 계속 파니 ⑮ 용이 나왔다. ‘존자시여, 용이 나왔습니다.’
바라문이 이렇게 말했다. ‘현자여, 용은 그대로 두십시오. 용에게 예경하십시오.’
비구여, 세존께 다가가서 이 문제를 여쭈어 보십시오. 그런 다음 세존께서 설명해주시는 대로 그대로 명심하십시오.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과 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 가운데서, 나는 이 질문을 설명하여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실 분은 여래나 여래의 제자나 혹은 그에게 들은 자가 아니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 범천은 이렇게 말한 다음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꾸마라 깟사빠는 부처님께 가서 절을 올리고 어제 밤 범천과 만났음을 말씀 드리고 이렇게 물었다.
① 세존이시여, '개미집'이 무슨 뜻입니까?
② '밤에 연기를 내뿜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③ '낮에 불길이 치솟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④ ‘바라문’은 무슨 뜻입니까?
⑤ '현자'는 무슨 뜻입니까?
⑥ '칼'은 무슨 뜻입니까?
⑦ ‘부지런히 파다'는 무슨 뜻입니까?
⑧ '빗장'은 무슨 뜻입니까?
⑨ 두꺼비는 무슨 뜻입니까?
⑩ 두 갈래 길은 무슨 뜻입니까?
⑪ '물 여과기'는 무슨 뜻입니까?
⑫ 거북이는 무슨 뜻입니까?
⑬ '칼'과 '도마'는 무슨 뜻입니까?
⑭ '고깃덩이'는 무슨 뜻입니까?
⑮ '용'은 무슨 뜻입니까?
꾸마라 깟사빠 스님에게 수수께끼였던 15가지 질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비구여, ① 개미집이란 바로 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을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시큼한 죽으로 적집되었고,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비구여, ② 낮에 행한 것에 대해 사유하고 고찰하는 것이 밤에 연기를 내뿜는 것이다.
비구여, ③ 밤에 사유하고 고찰한 것을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시키는 것이 낮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비구여, ④ 바라문은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여래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⑤ 현자는 유학인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⑥ 칼이란 성스러운 통찰지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⑦ 파는 것은 정진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여, ⑧ 빗장이란 무명을 두고 한 말이다. '빗장을 밀어제쳐라, 무명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⑨ 두꺼비는 분노에 따른 절망을 두고 한 말이다. '두꺼비를 버려라. 분노에 따른 절망을 버려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⑩ 두 갈래의 길은 의심을 두고 한 말이다. '두 갈래의 길을 버려라. 의심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 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⑪ 물 여과기는 다섯 가지 장애들을 두고 한 말이다. 감각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의 장애이다. '물 여과기를 버려라. 다섯 가지 장애들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 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⑫ 거북이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두고 한 말이다.
즉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의 [대상인] 형성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의 [대상인] 의식의 무더기[識取蘊]이다.
'거북이를 버려라.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⑬ 칼과 도마는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욕망을 두고 한 말이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다.
'칼과 도마를 버려라,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욕망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⑭ 고깃덩이는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다. '고깃덩이를 버려라, 향락과 탐욕을 제거하라. 현자여, 칼을 가지고 파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비구여, ⑮ 용은 번뇌를 다한 비구를 두고 한 말이다. '용은 그대로 두어라, 용을 해치지 마라. 용에게 예경하라.'는 것이 그 질문의 뜻이다.”
좀 더 상세한 설명:
① 개미집에서 뱀, 몽구스, 설치류, 도마뱀, 개미가 나오는 것처럼, 몸은 아홉 개의 구멍을 통해 온갖 혐오스러운 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Mahāvagga의 주석서에 이 비유를 설명하는 다른 이유도 설명되어 있음.)
② '밤으로 연기를 내뿜는다.'는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을 밤에 생각해 두는 것들을 의미한다.
③ '낮에 일어나는 불꽃'은 밤에 생각 해 둔 것을 낮에 행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의미한다.
④⑤⑥⑦ 이 비유들은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⑧ 도시의 성문에 있는 빗장이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다. 그와 같이 무명도 열반으로 이끄는 지혜가 생기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⑨ 두꺼비는 분노를 뜻한다. 두꺼비는 무언가가 부딪힐 때마다 화를 내고 스스로 숨을 헐떡인다. 분노로 부풀어 올라 등을 납작하게 하고 움직일 수 없게 되며 까마귀나 다른 적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워진다. 조심하면 현명하게 숙고하여 억제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원한이 표정에 나타나게 되고, 이를 방치하면 욕설이나 거친 말로 이어지게 된다. 만약 분노가 커지도록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은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나의 적이 될 것 같은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기 쉽다. 그러면 싸움을 걸 수도 있고, 자제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찾을 수도 있다.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공격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상대나 자신, 또는 둘 다를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두꺼비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뒤집어져서 까마귀나 다른 적들의 희생물이 되는 것처럼, 화가 많이 난 사람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고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 지혜가 부족하면, 그는 여러 종류의 마라(악)의 희생양이 될 수 있고 비열한 본능의 온순한 노예가 될 수 있다.
⑩ 많은 재물을 가진 여행자가 갈림길에 서서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는 노상강도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승으로부터 수행법을 배워서 수행을 시작한 비구가 삼보에 대해 의심하게 되면 수행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망상하면서 앉아 있기 때문에, 그는 번뇌와 마라 등의 다른 사악한 힘에 굴복하게 된다.
⑪ 물 여과기에 물을 부으면 물이 여과기 밑으로 다 빠져나간다. 솥이 100개라도 한 컵의 물도 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장애가 있는 수행자의 마음에도 어떤 선법도 남아있지 않는다.
⑫ 거북이가 다섯 개의 돌기, 즉 머리와 네 개의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지혜의 눈 아래(under the eye of knowledge)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들도 다섯 개의 집착의 무더기[오취온]의 대상이 된다.
⑬ 도마 위에 놓고 고기를 칼로 다진다. 관능적인 즐거움, 번뇌들은 감각 대상을 찾는다. 오염은 칼에 비유되고 감각 대상은 도마에 비유된다.
⑭ 고깃덩이는 높든 낮든 왕이든 평민이든 누구나 추구하며, 새와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문제는 고깃덩이를 쫓는 데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감각욕망이나 갈망은 모든 고민의 근원이다. 하지만 이 진실은 무명에 가려져 있다. 갈망이나 감각욕망은 모든 존재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탄생의 순환으로 유혹한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고깃덩이는 그것이 놓인 곳 어디에나 붙게 된다. 그래서 또한 감각욕망은 비참한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재탄생의 순환에 존재들을 묶어두는 경향이 있다.
⑮ 아라한은 호감(좋아함), 증오, 두려움, 어리둥절함 등 네 가지 오해의 요인에 의해 길을 잘못 들지 않기 때문에 '용(nāga)'라고 한다. (Mahāvagga 주석서) 또 다른 의미에서 아라한은 (4가지) 정화 단계로 제거된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같은 책) 그러나 다른 의미로 아라한은 어떤 악도 저지르지 못한다.(같은 책)
주석서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부처님, 아라한(용)에게 다음과 같이 예경 올리기를 추천한다.
Buddho bodhāya deseti, danto yo damathāya ca;
samathāya santo dhammaṃ, tiṇṇo'va taraṇāya ca,
nibbuto nibbānatthāya, taṃ lokasaraṇaṃ name.
부처님, 깨달은 자, 삼계의 피난처, 아라한은, 스스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아셨고,
자신처럼 깨달아야 할 다른 사람들 깨우치기를 바라셨고,
자신의 여섯 가지 기능을 길들였고, 자신처럼 길들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도 길들이기를 바라셨고,
스스로 적정을 얻었고, 자신처럼 적정을 얻을 만한 다른 사람들도 적정하기를 바라셨고,
스스로 윤회의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갔고, 자신처럼 건너갈 만한 다른 사람들도 건너가기를 바라셨고,
스스로 네 단계에서 번뇌의 불을 끄고, 자신처럼 번뇌의 불을 끌만한 다른 사람들도 번뇌의 불을 끄기를 바라셨고,
연민으로 45년 동안 천신들과 인간들에게 영광스러운 담마를 설명하셨습니다.
아라한이시며, 삼계의 피난처인 부처님에게 저는 몸과 말과 마음을 다하여 두 손을 높이 들어 합장하고 고개 숙여 예경 올립니다.
아라한과의 획득
주석서에 의하면, 개미집 경은 꾸마라 깟사빠 존자를 위한 수행 수업이다. (Iti idaṃ suttaṃ Therassa kammaṭṭhānaṃ ahosi.)
15가지 퀴즈에 대한 부처님의 답을 배운 꾸마라 깟사빠 존자는 장님의 숲에 한거하면서 열심히 수행해서 머지않아 아라한과를 얻었다.
3. 호칭
꾸마라 깟사빠 존자는 비구가 된 다음부터 4부 대중(비구, 비구니, 남성 재가신도, 여성 재가신도)에게 다양한 비유와 우화를 사용하여 법문했다.
꾸마라 깟사빠 존자가 사견을 가진 빠야시(Pāyāsi)에게 15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빠야시 경을 법문했을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다양하게 설법하는 비구 제자들 가운데 꾸마라 깟사빠 비구가 제일이다.”
빠야시 경(Pāyāsirājañña Sutta. D23) 참조.
각묵스님 옮김, 『디가 니까야 2』, 547-5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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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Kumāra Kassapa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e future Kumara Kassapa was born into a wealthy family in the city of Haṃsāvati during the time of Buddha Padumuttara. As with future Mahātheras, he went to the Buddha and listened to His sermon, in the course of which he saw a bhikkhu being declared by Him as the foremost among the bhikkhus who employ energy in expounding the Doctrine. He was fired by a desire to become such a distinguished bhikkhu, and after making a great offering, he made his aspiration known to the Buddha, and that was, he would like to be honoured by some future Buddha as the foremost bhikkhu who employed energy in expounding the Doctrine. The Buddha saw that his aspiration would be fulfilled, and made the prognostication.
Meditating Atop A Mountain
The future Kumara Kassapa devoted himself to deeds of merit for the whole of his life and after that existence, he was reborn either in the deva-world or the human world. At the time of the waning period of Buddha Kassapa’s Teaching, he went to the top of a steep mountain together with a group of six other bhikkhus and strove for enlightenment. (Refer to the story of the Venerable Dabba.) Due to his pure and perfect morality, he was reborn in the deva realm upon his death.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That worthy man (future Kumara Kassapa) was never reborn in the apāyas throughout the interval of an infinite world-cycle between the two Buddhas, but in the deva realm and human realm. About the time of the appearance of Buddha Gotama,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of the daughter of a merchant. This young woman had always been inclined on becoming a recluse but her parents gave her in marriage (to a son of a another wealthy man) and had to live in her husband’s house. She became pregnant but did not know it. She pleaded with her husband to allow her to become a bhikkhunī. With her husband’s consent, she went to the nunnery of bhikkhunīs who were disciples of the Venerable Devadatta.
As the pregnancy became visible, the bhikkhunīs reported the matter to the Venerable Devadatta and sought his advice. Devadatta said: “She is no more a bhikkhunī,” and expelled her from his community. The young bhikkhunī then went to stay in the nunnery of bhikkhunīs who were the disciples of the Buddha. There, the bhikkhunīs reported her case to the Buddha who authorized Venerable Upāli to investigate and give a decision
The Venerable Upāli called up a group of respectable ladies of Sāvatthi, including Visākhā, and let them investigated into the case, to find out whether the pregnancy took place before or after becoming a bhikkhunī. With sufficient evidence, the ladies reported to the Venerable Upāli that the pregnancy took place during lay life. The Venerable Upāli then gave the unequivocal ruling that since the pregnancy took place before entering the Order, she stood as a clean bhikkhunī. The Buddha praised the Venerable Upāli for his competent judgment in the controversy
This young bhikkhunī gave birth to a bonny baby boy who looked like a golden statuette. King Pasenadī of Kosala took care of the child and brought him up in his palace like a princeling. The boy was named Kassapa, and at the age of seven, he was dressed finely and sent to the Buddha’s monastery for novitiation. (For details see the Jātaka, Ekaka Nipāta, Nigrodhamiga Jātaka).
The Name Kumāra Kassapa
As the young boy entered the Order at the age of seven, he was referred to by the Buddha as Kumāra Kassapa, ‘Boy Kassapa’, in distinction to other novices by the name of Kassapa. In another sense, ‘Kumara’ also means ‘prince’. Since Kassapa was fostered by King Pasenadī, Kumāra Kassapa may also be taken to mean ‘Prince Kassapa’.
The Background Story of The Vammika Sutta
Kumāra Kassapa started Insight-meditation since he was novitiated into the Order, and also learned the Teaching of the Buddha. Thus, he diligently pursued both the learning and the practice of the Doctrine. When the Buddha was residing at the Jetavana monastery in Sāvatthi, Kumāra Kassapa was dwelling in the Andhavana forest which was not far from the Jetavana monastery. At that time, the Mahā Brahmā of Suddhāvāsa, who had been a colleague in pursuit of knowledge, who had went up a steep mountain to meditate, reviewed the lot of his erstwhile friends. And seeing Kumāra Kassapa striving for enlightenment, he decided to give some practical guidance to him in his meditation for Insight. Even before leaving his Brahmā abode for the human world, he planned a fifteenpoint puzzle. In the middle of the night, he appeared in all his splendour before Kumāra Kassapa in the Andhavana forest.
Kumāra Kassapa asked the Brahmā: “Who has appeared here before me?” “Venerable Sir, I am a colleague of yours who previously (during the time of Buddha Kassapa) went into meditation in pursuit of knowledge, and have been reborn in Suddhavasa, after having attained anāgāmī-phala.” “What is your purpose of coming to me?”
The Brahmā then made his purpose plain in the following words:
“Bhikkhu, (1) This ant-hill (2) emits smoke by night; (3) by day it rises up in flames.
“(4) The brahmin teacher says (5) to the wise pupil: (6) ‘Get hold of the sword and (7) dig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is asked by the teacher and (8) discovers a door-bolt. And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door-bolt.’
“The brahmin teacher then says to the pupil: ‘Wise pupil, cast away the door-bolt.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asked by the teacher and (9) discovers a toad.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blown-up (uddhumāyika) toad.’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cast away the blown-up toad.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is asked by the teacher, and (10) discovers a forked road.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forked road.’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abandon the forked road. Take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is asked by the teacher, and (11) discovers a water-strainer for sifting off soapy sand.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water strainer for sifting off soapy sand.’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cast away the water strainer.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is asked by the teacher, and (12) discovers a tortoise. ‘Sir, this is a tortoise,’ he reports to the teacher.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cast away the tortoise.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asked by the teacher, and (13) discovers a knife and a mincing-board.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ese are a knife and a mincing-board.’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cast away the knife and the mincingboard.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asked by the teacher and (14) discovers a lump of meat.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lump of meat.’
“The brahmin teacher says again: ‘Wise pupil, cast away the lump of meat. Get hold of the sword and dig on diligently.’ The wise pupil does as asked and (15) discovers a nāga. He reports to the teacher: ‘Sir, this is a nāga.’ The brahmin teacher then says to the wise pupil: ‘Let the nāga remain. Do not intrude upon him. Worship him.’
“Bhikkhu, ask the Buddha for the answers to these questions. Note the answers as given by the Buddha. With the exception of the Buddha, His disciples, and someone who has heard the answers from me, I do not see anyone in the world of the various abodes with devas, māras and Brahmās, and the sentient world of recluses, brahmins, kings and other human beings, who can answer them satisfactorily.”
After saying so, the Brahmā vanished. Early the next morning, Kumāra Kassapa went to the Buddha, made obeisance to Him, and related the meeting with the Brahmā the previous night. Then he asked:
(1) Venerable Sir, what is meant by the ‘ant-hill’?
(2) What is meant by ‘emitting smoke by night’?
(3) What is meant by ‘rising up in flames by day’?
(4) What is meant by the ‘brahmin teacher’?
(5) What is meant by the ‘wise pupil’?
(6) What is meant by the ‘sword’?
(7) What is meant by ‘digging diligently’?
(8) What is meant by the ‘door-bolt’?
(9) What is meant by the ‘blown-up toad’?
(10) What is meant by the ‘forked road’?
(11) What is meant by the ‘water-strainer for sifting off soapy sand’?
(12) What is meant by the ‘tortoise’?
(13) What is meant by the ‘knife’ and the ‘mincing-board’?
(14) What is meant by the ‘lump of meat’?
(15) What is meant by the ‘nāga’?
To those fifteen questions that were puzzles to the Venerable Kumāra Kassapa, the Buddha gave the answers as follows:
(1) Bhikkhu, ‘ant-hill’ is the name for this body.
(2) Bhikkhu, one ruminates at night what one has done in the day; this is ‘emitting smoke by night’.
(3) Bhikkhu, one does physically, verbal, mentally, deeds by day as one has thought out at night; this is the ‘rising of flames by day’.
(4) Bhikkhu, ‘brahmin teacher’ is the name for the Tathāgata (Buddha).
(5) Bhikkhu, the ‘wise pupil’ is a bhikkhu who is still training himself for arahatship according to the threefold training.
(6) Bhikkhu, ‘sword’ is the name for knowledge, both mundane (lokiya) and supramundane (lokuttara).
(7) Bhikkhu, ‘digging diligently’ means ‘persistent effort’.
(8) Bhikkhu, ‘door-bolt’ is the name for ignorance (bewilderment). ‘Cast away the door-bolt’ means ‘get rid of ignorance’. ‘Wise pupil, take hold of the sword and dig diligently’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get rid of ignorance.’
(9) Bhikkhu, ‘blown-up’ toad is the name of wrath. ‘Cast away the blown-up toad’ means ‘Get rid of deep anger’. ‘Wise pupil, take hold of the sword and dig diligently’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overcome deep resentment.’
(10) Bhikkhu, ‘forked road’ is the name for uncertainty (vicikicchā). ‘Abandon the forked road’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overcome uncertainty’.
(11) Bhikkhu, ‘water-strainer’ for sifting off soapy sand is the name for the five hindrances (nīvaraṇa) that stand in the way of jhāna and Path-Knowledge, namely: (i) Sensual desire (kāmacchanda) (ii) ill will (vyāpāda) (iii) sloth and torpor (thinamiddha) (iv) distractedness (uddhacca-kukkucca) (v) uncertainty (vicikicchā). ‘Cast away the water-strainer’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overcome the five hindrances’.
(12) Bhikkhu, ‘tortoise’ is the name for the five objects of clinging (upādāna), namely: (i) the aggregate of corporeality (rūpakkhanda) that is subject to change (ii) the aggregate of sensation (vedānakkhandha) that is capable of feeling, (iii) the aggregate of perception (saññākkhanda) that has the nature of perceiving, (iv) the aggregate of volitional activities (saṅkhārakkhandha) that help in the formation of all actions, (v) the aggregate of consciousness (viññāṇakkhandha) that has the nature to knowing things. ‘Cast away the tortoise’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get rid of the five aggregates which are the objects of clinging’.
(13) Bhikkhu, ‘knife’ and ‘mincing-board’ are the names for the five kinds of sensepleasure that appear desirable, agreeable, attractive and lovely and that cause the arising of sensual attachment to them, namely: (i) visual objects (rūpā-rammaṇa) cognizable by eye-consciousness (cakkhu-viññāṇa), (ii) sounds (saddā-rammaṇa) cognizable by ear consciousness (sota-viññāṇa), (iii) odours (gandhā-rammaṇa) cognizable by nose-consciousness (ghāna-viññāṇa), (iv) tastes (rasā-rammaṇa) cognizable by tongue consciousness (jivhā-viññāṇa), (v) tangible objects (phoṭṭhabbā-rammaṇa) cognizable by body-consciousness (kāya-viññāṇa). ‘Cast away the knife and the mincing-board’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get rid of the five kinds of sense-pleasure’.
(14) Bhikkhu, ‘lump of meat’ is the name for sensual attachment or craving (nandīrāgataṇhā). ‘Cast away the lump of meat’ means ‘strive well with knowledge to get rid of sensual attachment or craving.’
(15) Bhikkhu, ‘Nāga’ is the name for the arahat. You are enjoined to let alone an arahat without intruding upon him. You are also enjoined to revere the arahat
[Myanmar rhymes here are left untranslated because they are of the same substance as the foregoing Translator]
Some more elaboration:
(1) The body is likened to an ‘ant-hill’ because just as an ant-hill lets out snakes, mongoose, rodents, lizards and ants, the body discharges all kinds of loathsome matter through its nine holes. (There are also other reasons that explain the simile. Refer to the Commentary on the Mahāvagga.)
(2) ‘Emitting smoke by night’ signifies the things thought out in the night for the next day’s activities.
(3) ‘Flames rising up by day’ signifies physical, verbal, and mental actions that are performed in the day as thought out in the night.
(4), (5), (6) & (7): These similes do not need elaboration.
(8) The ‘door-bolt’ at the city gate shuts up the passage of people. So also ignorance shuts the arising of knowledge that leads to Nibbāna.
(9) The ‘blown-up toad’ exemplifies wrath: A toad gets angry and puffing itself whenever something strikes against it. It may get overblown with anger and become flat on its back, unable to move about, and falls a prey to crows or other enemies. Likewise, when anger begins to arise, one becomes muddled. If one is careful, one may curb it by wise reflection. If not checked in this way, the resentment shows in one’s expression, and if left unchecked, it leads one to evil verbalisation, i.e. cursing or using harsh speech. If anger is allowed to grow, one starts thinking of some dreadful physical action. At that, one is apt to look around to see if there is anyone to join the other side. Then one would pick up a fight, and unless one would restrain oneself, one is apt to find some weapons to strike the other party. If there is no effective checking of oneself, one is apt to commit assault. In extreme cases death may result, either of the adversary or of oneself, or both.
Just as the blown-up toad renders itself immobile, lying on its back, and becomes a ready victim of crows and other enemies, so also a person, under the influence of deep anger, cannot concentrate in meditation and knowledge is thus hampered. Lacking knowledge, he is liable to be the ready victim of all kinds of māra (evil) and become the docile slave of baser instincts.
(10) When a traveller, carrying valuable possessions, comes to a forked road and wastes much time there, being unable to choose which way he should proceed, he is inviting highway robbers who would cause him ruin. Similarly, if a bhikkhu, who has taken instruction from his teacher on the basic method of meditation and has started practicing, entertains doubts about the truth of the Triple Gem, he is incapable of meditating. As he sits alone with a mind troubled by uncertainty, he succumbs to defilements and māra and other evil forces.
(11) When a washer-man pours water into a water-strainer to sift soapy sand, the water flows down the strainer freely. Not a cupful of water that is poured into it, be it a hundred potfulls, remains in it; likewise, in the mind of a meditator which has the five hindrances, no merit can remain.
(12) Just as a tortoise has five protrusions, i.e. the head and four limbs, so also all the conditioned phenomena, under the eye of knowledge, resolves into five aggregates which are objects of clinging.
(13) Meat is minced with a knife on a mincing-board. Sensual enjoyment, the defilements, seek the sense objects. The defilements are likened to the 'knife' and sense objects to the 'mincing-board'.
(14) A lump of meat is sought after by everyone, high or low, kings or commoners, liking it also are birds and beasts. All sorts of trouble originate from pursuit of a lump of meat. Similarly, sensual attachment or craving is the source of all woes. But this truth is shrouded by ignorance. Craving or sensual attachment lures all beings into the cycle of rebirth which turns on relentlessly. Taken in another sense, a lump of meat becomes attached to anywhere it is placed. So also sensual attachment tends to bind beings to the cycle of rebirth which is cherished by them, not realizing its woeful nature.
(15) An arahat is called ‘nāga’ because an arahat is not led astray by four misleading factors, namely, fondness or liking, hatred, fear and bewilderment. (Chandādīhi na gacchantīti nāga.——Mahāvagga Commentary.) In another sense, an arahat never reverts to those defilements that have been got rid of at the (four) levels of purification. (Tena tena maggena pahīne kilese na āgacchantī ti nāga.——Ibid) Yet in another sense, an arahat is incapable of committing any kind of evil (Nānappakārakaṃ āguṃ na karontī nāga.——Ibid.)
In paying homage to the Buddha, the nāga, the arahat, who is free from the moral intoxicants, the Commentary recommends this mode of veneration:
Buddho bodhāya deseti, danto yo damathāya ca;
samathāya santo dhammaṃ, tiṇṇo'va taraṇāya ca,
nibbuto nibbānatthāya, taṃ lokasaraṇaṃ name.
The Buddha, the Enlightened One, the refuge of the three worlds, the arahat (Nāga), having known the Four Ariya Truths by Himself and wishing to enlighten others that deserve to be enlightened like Himself; having tamed Himself in respect of the six faculties and wishing to tame others that are fit to be tamed like Himself; having attained peace Himself and wishing others that are worthy to attain peace like Himself; having crossed over the other side of the ocean of saṃsāra and wishing others that are worthy to cross over to the other shore like Himself;having extinguished the fires of defilement at the four stages and wishing others that are worthy to extinguish the fires of defilement like Himself; out of compassion, expounded the glorious Dhamma to devas and humans for forty-five years. To Him, the Buddha, the Nāga, the Refuge of the three worlds, I pay homage physically, verbally and mentally in all humility with joined palms raised.
Attainment of Arahatship
The Ant-hill Discourse or Vammika Sutta, the Commentary notes, is the meditation lesson for the Venerable Kumāra Kassapa. (Iti idaṃ suttaṃ Therassa kammaṭṭhānaṃ ahosi.)
The Venerable Kumāra Kassapa learnt the Buddha’s answer to the fifteen point puzzle, retired into seclusion in the Andhavana (forest), meditated with diligence and not long after he attained arahatship.
(c) Etadagga Title achieved
From the time of his becoming a bhikkhu, the Venerable Kumāra Kassapa in his discourses to the four classes of disciples, viz., bhikkhus, bhikkhunīs, male lay devotees and female lay devotees, used a variety of similes and allegories.
When the Venerable Kumāra Kassapa discoursed to pāyāsi (holder of wrong views) by employing fifteen similes, the Buddha, referring to that discourse known as Pāyāsirājañña Sutta,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cittakathikānaṃ yadidaṃ Kumāra Kassapo.”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employ imagery in their discourses, Bhikkhu Kumāra Kassapa is the foremost (etadagga).” (Read this Sutta in the Dīgha Nikāya Mahā Vagga, the tenth Sutta therein.)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81.html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