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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사야도

31 우루웰라 깟사빠 대장로

작성자오원탁|작성시간22.10.09|조회수32 목록 댓글 1

31 우루웰라 깟사빠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우루웰라(Uruvelā) 깟사빠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 시에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어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도중에 그는, 부처님에 의해 어떤 비구가 많은 추종자들이 있는 비구 중에 제일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비구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도 미래에 그런 비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는 7일 동안 부처님과 승가에게 엄청난 공양을 올리고 나서, 부처님과 승가에게 세 벌의 가사를 바친 다음, 언젠가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비구 중에서 제일인 비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처님은 그의 열망을 숙고하여 그렇게 될 것을 보고 “그대는 고따마 부처님에 의해 그의 가르침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가진 비구 중에서 제일이라고 선언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런 다음 빠두뭇따라 부처님은 정사로 돌아갔다.
 
풋사(Phussa) 부처님의 형으로서 재탄생
 
빠두뭇따라 부처님의 예언을 들은 생에서 미래의 우루웰라 깟사빠는 죽을 때까지 선행을 많이 하고 죽은 다음에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났고, 그 후에도 인간 세계와 천상계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 후 현겁 이전의 92겁에 풋사(Phussa)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 미래의 우루웰라 깟사빠는 붓다의 이복형제로 다시 태어났다. 부처님에게는 이복형제 3명이 있었고, 미래의 우루웰라 깟사빠는 이 세 명 중 장남이었다. (14장 참조)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삼형제는 안거의 마지막에 부처님과 승가에게 값비싼 보시물을 많이 바쳤다. 그들은 또한 평생 동안 공덕행을 했고 죽은 다음에 선처에서만 다시 태어났다. 현겁에서 고따마 부처님 출현 이전에, 그들은 깟사빠라는 씨족인 바라문 가문으로 재탄생했다. 성년이 되자 그들은 세 가지 베다에 통달했으며, 큰형은 오백 명의 제자를 두었고, 둘째형은 삼백 명의 제자를 두었으며, 막내는 이백 명의 제자를 두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배운 것을 숙고해 보고, 베다가 단지 현재의 삶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미래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맏형 깟사빠는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세상을 버리고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우루웰라(Uruvelā) 숲으로 은거해서 그는 자신들의 이름을 우루웰라 깟사빠라고 불렀다. 둘째 형과 그의 제자들 300명도 마찬가지로 은둔자가 되어 강가(Gaṅgā) 강의 강가에서 살았고 나디(Nadī) 깟사빠라고 불리게 되었다. 막내 동생도 200명의 제자들과 함께 은둔자가 되었고 그들은 가야시사(Gayāsīsa)라는 곳에 살게 되어서 그는 가야(Gayā) 깟사빠로 알려지게 되었다. 깟사빠 삼형제는 그들 자신의 종파의 스승으로 유명해졌다.
 
깟사빠 삼형제가 각자의 무리를 지도하고 있을 때, 부처님(고따마)이 세상에 출현했다. 부처님은 이시빠따나(Isipatana)라고 불리는 미가다야(Migadāya) 숲에서 첫 번째 안거를 보내면서, 그곳에서 다섯 명의 비구(오비구)와 상인의 아들 야사가 이끄는 55명의 젊은이들을 깨닫게 했다. 이 60명의 제자들은 모두 세계 최초의 아라한이다. 안거가 끝나자 60명의 아라한 비구들에게 불교를 사방에 전파하도록 하고, 부처님은 홀로 우루웰라 숲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깝빠시까(Kappāsika) 숲에서 모두 형제인 30명의 왕자들을 만났는데, 그는 그들을 깨달아서 아라한이 되도록 가르쳐서 ‘오라, 비구여.’라고 불러서 비구가 되게 하였다.
 
부처님은 우루웰라 깟사빠와 그의 동생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성숙해서 모두 아라한과를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홀로 우루웰라 숲으로 갔다. 부처님이 우루웰라 깟사빠를 만났을 때, 그는 3500가지의 신통을 보였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강력한 용 길들이기였다. 마침내 우루웰라 깟사빠와 그의 500명의 제자들은 부처님에 의해 비구가 되었다. 큰형이 비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들과 그 추종자들 역시 비구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 부처님에 의해 비구라고 불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제14장 참조)
 
부처님은 새로 출가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가야시사로 갔다. 그는 그곳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그들에게 적합한 법문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는 바라문 태생의 은둔자들이 줄곧 불을 숭배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그들에게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모든 것들을 가차 없이 불태우는 불에 비유한 법문을 했다. 이 불타오름 경(Āditta-sutta. S35:28.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41)이라는 법문은 모든 비구들을 아라한이 되도록 하였다.
 
그러고서 부처님은 자신이 부처가 되기 전에 빔비사라 왕에게 부처가 되면 라자가하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 명의 아라한들과 함께 라자가하로 가서 야자수 숲에서 쉬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12만 명의 바라문들과 함께 그를 만나러 갔다. 부처님께 절을 한 후, 그는 적당한 곳에 앉았다. 그 당시 우루웰라 깟사빠는 아주 유명했기 때문에 왕의 바라문 수행원들은 우루웰라 깟사빠에게 경의를 표했다. 부처님은 청중이 자신과 우루웰라 깟사빠 중 어느 쪽이 스승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또한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담마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루웰라 깟사빠에게 말했다. “깟사빠여, 당신의 추종자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혼동하지 않게 하시오.” 그렇게 부처님은 존자에게 기적을 보여주라고 말했다.
 
우루웰라 깟사빠 존자는 정중하게 그대로 했다. 즉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다섯 번 접촉하여 절을 하고 야자수 높이 정도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공중에 떠 있으면서 그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부처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은 저의 스승입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그러고서 그는 땅으로 내려와 부처님의 발밑에서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다시 야자나무의 두 배 높이로 올라갔고, 스스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내려와 부처님의 발에 경의를 표했다. 이 기적을 일곱 번 되풀이하여 야자나무 일곱 그루 높이까지 올라갔고, 땅에 내려와 부처님께 절을 한 후 적당한 곳에 앉았다.
 
많은 청중들은 이제 부처님이 스승이라는 데에 대해 의심이 없었고, 그를 위대한 사문이라고 칭송했다. 그러고서 부처님만이 그들에게 법문을 했고, 그 끝에, 빔비사라 왕과 11만 명의 바라문들이 수다원과를 얻었고, 나머지 1만 명의 바라문들은 삼보에 귀의했다.
 
3. 호칭
 
우루웰라 깟사빠 존자를 섬겼던 1,000명의 제자들은 수행의 절정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디에 갈 필요가 없으므로 이전 지도자와 함께 남아있었다.
 
한때 제따와나 승원의 비구 모임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추종자가 많은 내 비구 제자들 중에서 우루웰라 깟사빠가 제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루웰라 깟사빠 존자는 그의 두 동생의 추종자들을 고려하여 1,000명의 비구가 지속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독특한 경우이다. 만약 1,000명의 비구들이 각각 지도자로 활동하여 한 명의 비구를 받아들인다면, 우루웰라 깟사빠의 추종자는 2,000명이 될 것이고, 원래의 1,000명이 각각 두 명의 새로운 비구들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비구들은 3,000명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추종자의 수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 참조)
...............
31 Uruvela Kassapa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e future Uruvelā Kassapa was born into a worthy family in the city of Haṃsavati during the time of Buddha Padumuttara. When he came of age, he listened to a discourse by the Buddha. While doing so, he witnessed a bhikkhu being named by the Buddha as the foremost bhikkhu in having a large following. He was inspired by that bhikkhu to become another of his kind in future. He made great offerings to the Buddha and His Sangha for seven days, at the end of which, he made offering of a set of three robes to the Buddha and each of the members of the Sangha and, thereafter, he expressed his aspiration to become a foremost bhikkhu at some future time, having a big following. The Buddha reviewed his aspiration and saw that it would be fulfilled and thus made the prediction: “You will be named by Buddha Gotama as the foremost bhikkhu in His Teaching with a big following.” After making the august pronouncement Buddha Padumuttara returned to His monastery.
 
Life as Royal Brother to Buddha Phussa
In that existence of receiving Buddha Padumuttara’s prognostication, the future Uruvelā Kassapa lived a meritorious life until he died and was reborn in the deva-world and subsequently either in the human world or the deva-world. Then ninety-two world-cycles prior to the present world-cycle, when Buddha Phussa appeared in the world, the future Uruvelā Kassapa was reborn as the half brother of the Buddha. The Buddha had three younger half-brothers and this prince (future Uruvelā Kassapa) was the eldest of the three. (The three brothers attended upon the Buddha with the four bhikkhu requisites for one vassa, the details of which will be described. Also refer to Chapter 14.)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The three royal brothers gave a great offering of valuable articles to the Buddha and His Sangha at the end of the vassa. They also spent their whole lives in doing meritorious deeds, and were reborn in the fortunate destinations only. During the present world-cycle, before the advent of Buddha Gotama, they were reborn into a brahmin family whose clan name was Kassapa. On coming of age, they become masters of the three Vedas and the eldest brother had five hundred pupils; the second brother had three hundred pupils; and the youngest brother had two hundred pupils who became their disciples.
 
When they reviewed their learning they realised that the Vedas offered just for the present life but lacked knowledge that was of benefit in the hereafter. The eldest Kassapa brother, together with his five hundred disciples, renounced the world and led the life of a recluse. They retired into the Uruvelā forest and he became known by the name of their place as Uruvelā Kassapa. The second brother and his three hundred disciples likewise became recluses and lived at the river bend of the Gaṅgā and he came to be known as Nadī Kassapa. The youngest brother also became a recluse together with his two hundred disciples and they dwelled at a place called Gayāsīsa, and hence he became known as Gayā Kassapa. The three Kassapa brothers became famous as teachers of their own religious sects. During the time when the three Kassapa brothers were giving guidance to their respective groups, the Buddha (Gotama) had appeared in the world. The Buddha passed the first vassa at the Migadāya forest, also known as Isipatana, where he caused the enlightenment of the Group of Five Ascetics and the fifty-five youths led by Yasa, son of a merchant. All these sixty disciples become the first arahats in this world. At the end of the vassa, the Buddha enjoined the sixty arahat-bhikkhus to spread the Good Doctrine while He headed toward the Uruvelā forest alone. On his way, he met the thirty princes, all brothers, at Kappāsika forest, whom he called up as bhikkhus (using the word, “Come, bhikkhu”) and caused their enlightenment as ariyas of various grades, training themselves for arahatship. The Buddha then proceed alone to the Uruvelā forest because He saw the ripeness of Uruvelā Kassapa for enlightenment and also saw that all the three Kassapa brothers and their followers would gain arahatship. When the Buddha met Uruvelā Kassapa, He had to display 3500 kinds of miracles, the most remarkable of which being the taming of the powerful nāga. Finally, Uruvelā Kassapa and his five hundred disciples were called up by the Buddha into bhikkhuhood. On learning the news of the eldest brother becoming a bhikkhu, the younger brothers and their followers likewise became bhikkhus. All of them were called up by the Buddha into bhikkhuhood. (For details refer to Chapter 14.)
 
The Buddha took the one thousand newly admitted bhikkhus to Gayāsīsa. He sat on the rock platform there and considered the appropriate discourse for them. He remembered that these recluses of brahmin origin had all along been indulging in fire-worship, and accordingly delivered them a discourse giving the simile of the fire that relentlessly burns the three forms of existence: the sensuous, the fine material and the non-material spheres. The Discourse entitled Ādittapariyāya had the desired effect of turning all the bhikkhus into arahats.
 
Then the Buddha saw that the time was opportune for Him to visit Rājagaha, where He had, before His attainment of Buddhahood, promised King Bimbisāra that He would visit his city after attaining Buddhahood. He journeyed to Rājagaha accompanied by a thousand arahats and rested in the toddy palm grove. King Bimbisāra, on being reported about the arrival of the Buddha, went to meet Him, in the company of one hundred and twenty thousand brahmin householders. After making obeisance to the Buddha, he sat in a suitable place. On that occasion, the fame of Uruvelā Kassapa had become so well established that the brahmin retinue of the King paid their homage to Uruvelā Kassapa. The Buddha knew that the audience were unable to decide which of the two, Himself or Uruvelā Kassapa, was superior. He was also aware that the people, having doubt, could not pay attention to the Dhamma. So He said to Uruvelā Kassapa: “Kassapa, your followers are in a quandary. Clear up their mental confusion.” Thus, the Buddha indicated to the Venerable to display miracles.
 
The Venerable Uruvelā Kassapa respectfully responded: rising from his seat, he made obeisance to the Buddha in fivefold contact, and rose up to the sky about a palm-tree’s height. There, remaining in mid-air, he took on various forms as he wished and said to the Buddha: “Venerable Bhagavā, the Bhagavā is my Teacher; I am your pupil, your disciple. Venerable Bhagavā, the Bhagavā is my Teacher; I am your pupil, your disciple.” Then he descended to the ground and paid homage to the Buddha at His feet. Then he rose up again to twice the height of a palm tree, created a variety of forms himself, came down and paid homage at the Buddha’s feet. On the seventh time of repeating this miraculous feat, he rose to a height of seven palm-trees, and after descending to the ground, and making obeisance to the Buddha, he sat in a suitable place.
 
The big audience were now in no doubt about the supremacy of the Buddha and acclaimed Him as the great Samana. Then only the Buddha gave a discourse to them, at the end of which, King Bimbisāra and eleven hundred thousand brahmin householders attained sotāpatti-phala and the remaining ten thousand brahmins took the Triple Gem as their refuge;the fact they acknowledged to the Buddha.
 
(c) Etadagga Title achieved
The one thousand pupils who had served the Venerable Uruvelā Kassapa, after attaining arahatship, thought that since they had reached the acme of bhikkhu practice, they did not need to go anywhere for their religious advancement and so remained in the company of their erstwhile leader.
 
On one occasion, the Buddha, in a bhikkhu congregation at the Jetavana monastery,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m bhikkhūnam mahā-parisānaṃ yadidam Uruvela Kassapo.”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have a big following, Uruvelā Kassapa is the foremost (etadagga).”
 
(In this matter, the Venerable Uruvelā Kassapa had the unique position of having a constant following of one thousand bhikkhus, taking into account the followers of his two younger brothers. If each of the one thousand bhikkhus were to act as preceptor and admit one bhikkhu, Uruvelā Kassapa’s following would become two thousand, and if the original one thousand were to admit two new bhikkhus each into the Order, the his following could become three thousand. Hence he was in an unrivalled position in the number of following.
 
——Commentary on the Aṅguttar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85.html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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