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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사야도

32 깔루다이 대장로

작성자오원탁|작성시간22.10.11|조회수60 목록 댓글 2

32 깔루다이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깔루다이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절 항사와띠 시에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던 중 우연히 부처님이 어떤 비구를 ‘부처님을 만나기도 전에 부처님의 친척들에게, 헌신적인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제자들 중 제일’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훌륭한 사람(미래의 깔루다이)은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그런 영광을 열망했다. 큰 제물을 바친 후 그는 부처님 앞에서 그의 열망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의 열망이 달성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미래의 깔루다이는 죽을 때까지 많은 공덕행을 했고, 죽은 다음에 선처에서만 다시 태어났다. 마침내 그는, 미래의 부처님(싯닷타 왕자)과 동시에 까삘라왓투 귀족 가문의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었다. 그리하여 두 소년은 같은 날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를 흰 천위에 올려놓고 싯닷타 왕자의 시종이 되도록 숫도다나 왕에게 선물했다.

 

깔루다이라는 이름

 

소년의 이름을 짓는 날, 그들은 그를 우다이(Udāyī)라고 이름 지었다. 왜냐하면 그가 미래의 부처님이 태어난 날 태어나서 온 도시가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 소년은 피부가 약간 검었기 때문에 우다이라는 원래 이름 앞에 ‘깔라(kāḷa)’라는 단어가 붙어서 깔루다이(Kāḷudāyī)가 그의 이름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깔루다이는 왕궁에서 살면서 까삘라왓투 왕궁에서 싯닷타 왕자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싯닷타 왕자가 세상을 버리고 깨닫기 위해서 6년 고행을 했다. 마침내 그는 깨달음을 얻고 첫 번째로 초전법륜경을 설한 다음, 라자가하에서 탁발하면서 살고 있었다. [원주: 이때는 대겁 기원 103년, 추운 풋사(Phussa. 1월. 양력 12월16~1월15일)의 어두운 2주일이었다(This happened on the dark fortnight of the cold month of Phussa, in the year 103 of the Great Era).] 아들인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웰루와나(Veḷuvana) 정사(죽림정사)에 살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들은 숫도다나 왕은, 부처님에게 까삘라왓투를 방문하도록 요청하라고 대신 한 명과 수행원 1,000명을 보냈다. 대신은 60 요자나를 여행해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정사에 도착했다.

 

그때 부처님은 사부대중에게 법문하고 있었다. 대신은 법문이 끝나면 왕의 메시지를 부처님에게 전달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청중의 가장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법문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법문을 경청하는 짧은 동안, 그는 물론 그의 수행원 천명도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러자 부처님이 손을 내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리 오너라!(에히 비구)” 그러자 그들은 모두 즉시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네 가지 필수품을 완전히 갖춘 법랍 60년(나이 80세)인 근엄한 스님으로 변했다.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한 것이 성자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천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에게 숫도다나 왕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라한과의 지복을 누리면서 살았다. 숫도다나 왕은 그의 대신으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해 짜증이 났고, 같은 임무에 천명의 수행원과 함께 또 다른 대신을 보냈다. 이 대신도 부처님에게 가서 그의 법문에 열중하여 그의 부하 천 명과 함께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런 식으로 숫도다나 왕은 각각 1천 명의 수행원을 거느린 대신을 모두 9명을 차례로 부처님에게 보냈고, 9명의 대신과 9천 명의 모든 수행원들은 왕의 초청을 전달하기 전에 아라한과를 얻었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를 등한시했다.

 

까삘라왓투에 대한 깔루다이의 임무

 

숫도다나 왕은 당시 상황을 숙고해 보았다. “9명의 대신들은 나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기에 내 아들인 부처님에게 우리의 까삘라왓투 방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난 깔루다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소꿉친구였다. 그는 나에게도 정이 많다.” 그래서 그는 지금 궁정의 관리인 깔루다이를 불러서 말했다. “아들아, 천명과 함께 부처님에게 가서, 그를 까삘라왓투로 초대하여라.”

 

깔루다이는 왕에게 “대왕이시여, 이전의 왕실 사절들처럼 저에게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부처님이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시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왕은 “아들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내 아들 부처님이 나에게 오도록 하기만 하여라.”

 

그러자 깔루다이가 말했다. “대왕님, 알겠습니다.” 그는 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서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청중의 가장자리에 앉은 그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다. 그런 다음 그와 천명의 부하들은 아라한이 되었고 부처님에 의해 비구가 되었다.

 

깔루다이 비구는 그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그는 추운 계절은 부처님이 까삘라왓투로 긴 여행을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숲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풀과 나뭇잎들이 싱그러운 봄이 왔을 때에는 부처님은 까삘라왓투로 여행을 가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팍군나(Phagguna. 2-3월)의 보름달이 될 때까지 기다렸고, 그가 계절의 쾌적함을 그림처럼 묘사하면서 부처님에게 그가 까삘라왓투에 방문해야 할 때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60구절의 게송을 읊었다.

 

깔루다이 존자의 마음을 알고 있는 부처님은 까삘라왓투를 방문할 때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2만 명의 아라한과 함께, 60요자나의 길을 느긋한 속도로 걸었다.

 

깔루다이 존자는 부처님이 라자가하를 떠나자 신통력으로 숫도다나 왕의 궁전에 나타났다. 왕은 그가 궁궐 위의 공중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고, 그의 왕좌에 비구를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먹을 밥과 반찬을 존자의 발우에 넣었다. 그러자 깔루다이 존자가 떠나려고 하자 왕이 말했다. “아들아, 여기서 식사해라” 존자가 대답했다. “저는 세존에게 돌아간 다음에 먹겠습니다.” 왕이 물었다.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 “부처님은 지금 2만 아라한과 함께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아, 여기서 밥을 먹어라. 그런 다음 그가 도착할 때까지 매일 궁전에서 준비한 음식을 줄 테니 부처님께 갖다 드려라.”

 

그 때부터 깔루다이 존자는 궁전에서 식사를 한 다음 부처님을 대신하여 탁발 음식을 받았다. 그러는 틈틈이 그는 왕과 왕실의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고귀한 품성에 대한 법문을 함으로써, 그들이 부처님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그들이 미리 맛보게 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부처님께 드릴 음식이 가득 담긴 발우를 공중으로 던졌다. 그도 공중으로 뛰어올라 여행 중인 부처님에게 그것을 갖다드렸다. 부처님은 그것을 받아서 그날의 식사를 했다.

 

깔루다이 존자는 60요자나나 되는 까삘라왓투로의 역사적인 전체 여정 동안 부처님을 위한 음식을 받는 임무(그리고 숫도다나 왕과 왕실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처님에 대한 부적절한 감정을 완화시키는 법문도 했음)를 맡았다. (원주: 깔루다이 존자가 부처님께 음식을 가져다드리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이 놀라운 일과는 부처님으로부터 특별한 호칭을 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3. 호칭

 

훗날 비구들의 모임에서, 부처님은 깔루다이 존자가 숫도다나 왕과 부처님의 친척들의 감정을 따뜻하게 역할을 회상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내 친척들이 나에게 헌신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중, 깔루다이 비구가 제일이다.”

...........

32 Kāḷudāyī Mahāthera

 

(a) Aspiration expressed in The Past

The future Kāḷudāyī was born into a worthy family in the city of Haṃsavati, during the time of Buddha Padumuttara. While he was listening to a discourse by the Buddha, he happened to witness the Buddha acknowledged a bhikkhu as ‘being the foremost disciple who could arouse devotion in the Buddha’s kinsmen, even before they had met the Buddha’. The worthy man (future Kāḷudāyī) aspired to such an honour during the time of some future Buddhas. After making the great offerings, he expressed his aspiration before the Buddha. Later, the Buddha uttered words predicting the fulfilment of the his aspiration.

 

(b) Ascetic Life adopted in His Final Existence

Future Kāḷudāyī devoted himself to meritorious deeds till the end of his life. He was reborn in the fortunate destinations only. Finally,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of the mother who was of a high official family in Kapilavatthu. This took place simultaneously with the conception of the Buddha-to-be (Prince Siddhattha,). And the two boys were born on the same day. His parents placed him on a white cloth and presented him to King Suddhodāna to become an attendant to Prince Siddhattha.

 

The Name Kāḷudāyī

On the day of naming the boy, they named him Udāyī because he was born on the same day the Buddha-to-be was born, and the whole city was filled with joy and excitement on that. Since the boy had a slightly dark skin, the word ‘kāḷa’ (dark), was prefixed to the original name of Udāyī and he was therefore called Kāḷudāyī. As a boy, Kāḷudāyī lived in the royal palace and he played games privately with Prince Siddhattha in the place of Kapilavatthu.

 

Later on, Prince Siddhattha renounced the world and spent six harrowing years in pursuit of the Truth. He eventually attained Enlightenment and delivered His First Sermon, the Dhammacakka. He was then residing at Rājagaha which was His place for collecting almsfood. (This happened on the dark fortnight of the cold month of Phussa, in the year 103 of the Great Era.) When King Suddhodāna heard the good news that his son, the Buddha, was residing at the Veḷuvana monastery in Rājagaha, he sent a courtier with an entourage of one thousand men, whose order was to request the Buddha to pay a visit to Kapilavatthu. The royal messenger made the sixty yojana journey to Rājagaha and entered the Veḷuvana monastery. At that time, the Buddha was teaching a discourse to the audience which consisted of four types of listeners. The royal messenger sat at the edge of the audience and paid attention to the Buddha’s discourse, thinking that the king’s message would be communicated to the Buddha after the discourse. But, even while he was listening attentively to the sermon, he, as well as his entourage of one thousand men, gained arahatship. Then the Buddha, extending His hand and said to them: “Come, bhikkhus”, and all the men instantly became ehi-bhikkhus with the grave appearance of sixty-year of bhikkhu standing (i.e. at eighty years of age) and fully equipped with requisites created magically (Iddhimayaparikkhāra).

 

As it is in the nature of ariyas to become indifferent to worldly matters, the thousand bhikkhus did not impart King Suddhodāna’s message to the Buddha. They dwelt in the bliss of the attainment of arahatta-phala.

 

King Suddhodāna felt annoyed to hear nothing from his messenger and sent another courtier with a thousand men on the same mission.

 

This messenger also went before the Buddha, became absorbed in the His discourse, and attained arahatship together with his one thousand men. In this way, King Suddhodāna sent a total of nine missions, one after another, each headed by a courtier with an entourage of one thousand men to the Buddha and all the nine messengers and their nine thousand men neglected their mission because they attained arahatship before they could extend the King’s invitation to the Buddha.

 

Kāḷudāyī’s Mission to Kapilavatthu

King Suddhodāna then reflected on the situation: “The nine courtiers had entirely no affection for me and so they said nothing to my son, the Buddha, about His visit to this city of Kapilavatthu of ours. Others would also fail to do so. But Kāḷudāyī, born on the same day as the Buddha, was His playmate in their childhood. This young man is also affectionate to me.” And so he summoned and said to Kaludayi, now an official at his court: “Son, go to the Buddha with a thousand men, and invite Him to Kapilavatthu.”

 

Courtier Kāḷudāyī said to the King: “Great King, if you would give me permission to become a bhikkhu, like the previous royal messengers, I will see to the Buddha’s visit to Kapilavatthu.” To which the King readily responded: “Son, do as you wish. Only see that my son, the Buddha, visits me.”

 

“Very well, Great King,” said Kāḷudāyī, “I shall do so,” when the King gave his permission. He left the city accompanied by a thousand men and eventually reached Rājagaha. Sitting at the edge of the audience, he listened to the Buddha who was teaching a discourse. After hearing it, he and his thousand men became arahats and were called up by the Buddha into bhikkhuhood.

 

Bhikkhu Kāḷudāyī did not forget his mission. He thought that the cold season was not suitable for the Buddha to make the long journey to Kapilavatthu. But, when spring had appeared, with the forest flowers blooming forth and the grass and foliage putting on fresh greenness, then only should the Buddha travel to Kapilavatthu. So he waited till the full moon of Phagguna (February-March) when he sang sixty stanzas giving a picturesque portrayal of the pleasantness of the season, indicating to the Buddha that the time was right for Him to visit Kapilavatthu.

 

The Buddha knew the Venerable Kāḷudāyī’s mind and decided that it was time that He visited Kapilavatthu. Then, accompanied by twenty thousand arahats, He took the journey (of sixty yojanas) at a leisurely pace (aturita-desacārika).

 

The Venerable Kāḷudāyī, noting the Buddha’s departure from Rājagaha, appeared at King Suddhodāna’s palace. The King was delighted on seeing him standing mid-air above the palace, and offered his throne for the bhikkhu's seat. Then he filled the alms-bowl of the Venerable with cooked rice and dishes prepared for himself. Venerable Kāḷudāyī then moved as if to depart. The King said to him: “Son, take the meal here.” To which the Venerable said: “I shall take it when I get back to the Bhagavā.” “Where is the Buddha now?” asked the King. “The Buddha is now on His way, with twenty thousand arahats, to visit you.” “Then, son, take your meal here. Then carry the food prepared in my palace to the Buddha daily, till He arrives.”

 

Henceforth, the Venerable Kāḷudāyī took his meal at the palace and then received the alms-food on behalf of the Buddha. In doing so, he gave a discourse to the King and the royal household on the noble qualities of the Buddha, thereby giving them a foretaste of the unparalleled pleasure they were to experience on meeting with the Buddha. Then, just as the people were watching him, he threw up into the air his alms-bowl filled with the food for the Buddha. He also rose into the air, took the alms-bowl and offered it to the Buddha en route. The Buddha received it in His hands and took His meal for the day.

 

The Venerable Kāḷudāyī took upon himself the task of receiving alms-food for the Buddha (and making the appropriate discourse to warm up the feelings of King Suddhodāna and the royal household towards the Buddha) for the entire journey of His memorable journey to Kapilavabthu which was sixty yojanas long, taken leisurely at the rate of one yojana a day. (This remarkable routine that the Venerable Kāḷudāyī set for himself, to bring food to the Buddha, was the basis of his receiving the special mention from the Buddha.)

 

(c) Etadagga Title achieved

On a later occasion, in a congregation of bhikkhus, the Buddha reflected on the role that the Venerable Kāludāyī had played in warming up the feelings of King Suddhodāna and the kinsmen of the Buddha, declared: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m kulappasādakānaṃ yadidaṃ Kāḷudāyī.”

 

“Bhikkhus, among My bhikkhu-disciples who are able to kindle devotion to Me in the hearts of My kinsmen, Bhikkhu Kāḷudāyī is the foremost (etadagga).”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86.html

 

Last Updated: 15 Sept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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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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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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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혜 수 | 작성시간 22.10.12 고맙습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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