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사가따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미래의 사가따는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대에 항사와띠 시에서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던 중, 부처님이 어떤 비구를 불의 요소(화대. tejokasiṇadhātu)를 대상으로 하는 선정에 능숙한 비구들 중 제일이라고 칭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명예를 열망한 그는 부처님에게 그 선정에서 최고의 비구가 되고자 하는 서원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의 서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
미래의 사가따는 평생 동안 공덕행에 헌신했다. 죽은 다음에는 천상계와 인간세계에서만 다시 태어났고, 고따마 부처님 시대에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다시 태어났다. 사가따라는 이름의 젊은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부처님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어 비구가 되었다. 그는 8가지 세속적인 선정을 마스터했고 5가지 세속적인 신통에 능통하게 되었다.
용 길들이기
(원주: 율장, Pācittiya Division, Surāpāna Sikkhāpada에서 발췌했음)
한때 부처님이 전국을 여행하던 중, 쩨띠야(Cetīya) 주에 있는 밧디와띠까(Bhaddivatika - 튼튼한 담장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임) 마을에 도착했다. 소치기, 염소치기, 농부, 행인들은 멀리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망고나무가 있는 나루터 길에는 빠르고 맹독을 가진 독사가 살고 있으니, 부처님이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고 황급하게 주의를 주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망고 나무 나룻배의 독뱀은, 전생에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뱃사공이었다. 그는 몇몇 여행자들과 말다툼 끝에 싸우다가 죽었다. 죽기 전에 공격자들에게 복수를 맹세한 그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곳에서 강력한 독사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으므로, 우기에는 가뭄을 일으키고, 건기에는 폭우가 내리는 식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농작물이 흉작이어서 사람들은 매년 그를 달랬다. 그들은 나루터에 그를 위한 사당을 세우기도 했다. 출처: 앙굿따라 주석서)
부처님은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려고 비구들과 함께 망고 나무 나루에서 강을 건넜다. 소치기, 염소치기, 농부, 행인들이 부처님께 세 차례나 그 길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아는 부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부처님은 계속 길을 가서 밧디와띠까 마을에 도착했다. 사가따 존자는 망고 나무 나루터에서 뱀을 위한 사당을 숙소로 삼았다. 뱀이 사는 굴 앞으로 가서 풀로 만든 매트를 바닥에 깔고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곧게 세우고 선정에 들었다.
뱀은 침입자에게 매우 화가 나서 뜨거운 연기를 내뿜었다. 사가따 존자는 더 강력한 연기로 응수했다. 그 뱀은 화가 나서 화염을 뿜었다. 그러나 불의 원소에 집중하는 선정에 들어가던 사가따 존자는 더 강한 화염을 내뿜었다.
그러자 자신보다 더 강력한 존재와 맞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뱀이 말했다. “스승님, 저는 존경스런 당신에게 귀의합니다.” 사가따 존자는 “그대는 나에게 귀의할 필요가 없으니, 부처님에게 귀의하라.” “알겠습니다, 스승님”라고 뱀이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삼보에 귀의했고, 지역 주민들과 친밀해졌다. 그리하여 제철에 비가 내리고 곡식도 많이 수확되었다. (앙굿따라 주석서) 뱀을 길들인 사가따 존자는 밧디와띠까 마을에서 부처님과 합류했다.
부처님의 꼬삼비 방문
부처님은 제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움을 준 후(After bringing Enlightenment to many deserving persons) 꼬삼비로 갔다. 꼬삼비 사람들은 치열한 싸움 끝에 뱀을 굴복시킨 사가따 존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꼬삼비에 도착한 부처님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사가따 존자를 방문하여 그에게 절하고 적절한 장소에 앉아 그에게 말했다. “스님, 스님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스님을 만족시킬까요? 당신에게 존경을 표시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가따 존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육군비구(六群比丘. Chabbaggī)가 끼어들어 이렇게 말했다. “재가자들이여, 비둘기 발 색깔의 선명하고 빨간 음료인 술이 있습니다. 술은 비구에게는 귀한 것이고,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음료를 준비하세요.”
육군비구(六群比丘)에 대한 주석(원주) 사왓티에는 비구로서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l&2) 빤두까(Paṇḍuka)와 로히따까(Lohitaka), (3&4) 멧띠야(Mettiya)와 부마자까(Bhūmajaka), (5&6) 앗사지(Assaji)와 뿐납바수까(Punabbasuka)였다. 그들은 큰 권력을 가진 비구 장로들, 즉 두 명의 수석 제자를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돌봐줄 수 있도록 그들의 스승으로 삼았다.(They sought bhikkhu-elders of great authority, namely, the two Chief Disciples, as their preceptors whom they could look to in case of trouble.) 5년 동안 비구로서의 기본 계율(the Mātikā)을 익힌 후, 그들은 번영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머물기 위해 세 개의 하위 그룹으로 분산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그들의 지속적인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l&2) 빤두까와 로히따까를 지도자로 하는 첫 번째 하위 그룹은 여섯 그룹의 합의에 따라 다음을 고려해서 사와티에게 배정되었다. 사왓티는 훌륭한 570만 가구들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까시(Kāsi)와 꼬살라(Kosala) 속주에는 8만 개의 마을이 있었고, 빤두까(Paṇḍuka)와 로히따까(Lohitaka)는 사왓티의 적합한 부지에 정사를 건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재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과일 나무를 재배하고, 정원을 만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재배된 과일과 꽃들은 정기적으로 재가자들에게 선물로 보내졌고, 친해진 재가자들은 그들의 아들을 정사로 보내어 사미가 된 다음에 정식 비구가 되곤 했다. 이렇게 하여 두 지도자에 의해 많은 비구 제자들이 길러졌다. (3&4) 멧띠야와 부마자까를 지도자로 하는 두 번째 하위 그룹은 다음을 고려하여 라자가하에게 할당되었다. 라자가하는 1억 3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였다. 앙가 주와 마가다 주에 대한 종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지역은 폭이 300 요자나였고, 8만 개의 마을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멧띠야와 부마자까는 라자가하의 적합한 장소에 정사를 건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재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수 재배와 정원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과일과 꽃을 선물함으로써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재가자들의 아들을 정사로 보내어 사미로 받은 다음에 정식 비구가 되게 했다. 이렇게 하여 두 지도자에 의해 많은 비구 제자들이 길러졌다. 끼따기리(Kīṭāgiri)는 주변에 넓은 지역이 있는 시장 도시였다. 추운 계절은 물론 장마철에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1년에 벼를 3번 추수했다. 거기에 (5&6) 앗사지와 뿐납바수까가 이끄는 세 번째 하위 그룹이 정착했다. 그들에게 앞에 설명한 지도자들과 같은 임무와 목표가 주어졌다. 6명의 지도자들은 위의 계획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세 개의 하위 그룹은 각각 500명(또는 그 이상)의 비구 제자를 기를 수 있어서, 총 1,500명 이상의 비구 제자가 되었는데, 이들은 ‘육군비구’의 종파로 알려졌다. 이 종파의 6명의 지도자 중 빤두까와 로히따까는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를 잘 지켰다. 그들은 부처님의 여행길에도 동행하곤 했다. 비록 그들이 새로 생긴 비구 계율을 위반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그 특정한 행동에 대해서 별도 금지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계율에 어떤 것을 분명히 금지하라고 되어 있으면, 그들은 그것을 어기지 않았다. 나머지 4명의 지도자들과 그 제자들은 계율에 개의치 않았다. 출처: 니까야 제2권에 대한 주석서 |
순진한 꼬삼비 사람들은 육군비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비둘기의 발 색깔과 같은 (그래서 까뽀띠까(Kapotika)라고 불렀다) 선명한 빨간 술을 만들었다. 사가따 존자가 그들의 집 앞에 왔을 때 집집마다 그에게 진귀한 음료를 제공했다. 그 당시 율장에 비구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었다. 사가따 존자는 그것을 마시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각 집에서 주는 술을 조금씩 마심으로써 보시자들을 기쁘게 했다. 도시 성문을 나왔을 때 그는 성문 앞에서 쓰러졌다.
부처님이 비구들과 함께 도시를 떠나려 할 때, 그는 땅바닥에 누워있는 사가따 존자를 보았다. 부처님은 그를 정사로 데려갔고, 다른 비구들은 그의 머리를 부처님 쪽으로 돌린 채 그를 눕혔다. 그러나 술에 취한 스님은 발이 부처님 쪽으로 향하도록 몸을 돌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비구들이여, 사가따는 평상시에 나를 무척 존경하고 않았던가?”
비구들: “세존이시여, 그랬습니다.”
부처님: “지금 사가따는 나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는가?”
비구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부처님: “비구들이여, 사가따가 망고 나무 나룻배에서 뱀을 물리치지 않았던가?”
비구들: “세존이시여, 그랬습니다.”
부처님: “사가따가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독사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
비구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부처님: “비구들이여, 술을 마시면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술을 마시는 게 합당하겠는가?”
비구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부처님은 계속 말했다.
“비구들이여, 술을 마시는 것은 부적절하고, 잘못이며, 부당하며, 비구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는 사가따 비구는 그것을 마셨다. 왜 그랬을까? 비구들이여, 이것은 이미 비구를 경외하고 있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경외하지 않는 행위이다.”라고 규탄한 후, 부처님은 술을 마시는 비구는 빠찟띠야(Pācittiya)를* 범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원주: 율장(Pācittiya Division, Surāpāna Sikkhāpada)에서 발췌.)
*역자 주: 빠찟띠야(Pācittiya. 단타죄. 單墮罪): 비교적 가벼운 계율을 범한 것이어서 4인 이상의 승려 앞에서 참회해야 하는 죄.
아라한과의 증득
다음날 정신을 차린 사가따 존자는 잘못을 뉘우쳤고, 수치심과 두려움이 그를 압도했다. 부처님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절을 한 후, 그는 깊은 정서적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위빳사나 지혜를 계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과를 얻었다.
3. 호칭
한때 부처님은 제따와나 정사의 비구들 모임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비구들이여, 불의 원소에 대한 선정에 능숙한 내 비구 제자들 중에서 사가따 비구가 제일이다.”
영어 원문: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