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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사야도

40 라다 대장로(3)

작성자Gandhaputta|작성시간22.11.28|조회수21 목록 댓글 2

40 라다 대장로(3)

 

(알리나찟따 자따까는 원래 고귀한 수행을 실천하기를 망설이는 어떤 비구와 관련해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여기에서 설명된 라다 스님의 사례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리뿟따 존자가 감사를 표현하는 것과 부분적으로 -고귀한 큰 상아가 있는 코끼리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새끼인 흰 코끼리를 선물하는 부분까지 - 관련되어 있다.)

 

과거에 일어난 이야기에 대한 법문을 한 부처님은 현재와 연관 지어서 다음 두 게송을 읊었다.

 

(비구들이여,) 보살인 알리나찟따 태자에 의지하여,

바라나시의 대군은 (왕의 흰 코끼리의 힘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히려고 하던 꼬살라 왕을 생포했다.

비슷하게, 붓다와 성자를 도반으로 하는 행운을 가진 덕 있는 사람인 비구들은

선한 원리를 계발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37보리분과 모든 번뇌의 소멸로 특징 지워지는 아라한과를 얻고,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서 네 가지 속박의 끝(즉 열반)에 도달한다.)

 

최고의 목표인 죽음 없음(deathless. 열반)의 증득과 더불어 법문을 끝낸 부처님은, 사성제까지 계속 법문했고, 그 끝에 망설이던 비구는 도의 지혜를 얻었다. 자따까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끝을 맺는다. 즉 보살의 모친인 제일왕비는 현생의 마야 왕비, 바라나시 왕은 숫도다나 왕, 망설이는 비구는 꼬살라 왕, 흰 새끼 코끼리의 아버지는 사리뿟따 존자, 왕의 흰 새끼 코끼리는 마하목갈라나 존자, 알리나찟따 태자는 부처님이다. 이것이 두까 니빠따(Duka Nipāta)에 있는 알리나찟따 자따까이다.

 

사리뿟따 스님이 감사와 관련하여 전생에서 그가 어떻게 감사한 빚을 갚았는지에 대해서 부처님은 자타카 이야기를 하였다. 부처님은 라다 스님과 관련하여 상윳따 니까야의 4개의 품(vagga)에서 46개의 경을 설하였다. 상윳따 니까야의 라다 상윳따(Rādha-saṁyutta. S23:1~46) 참조.

 

또한 라다가 아라한과를 얻은 후 사리뿟따 존자가 라다 스님과 함께 부처님께 가서 절했을 때,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사리뿟따여, 그대의 가까운 제자 라다가 당신의 훈계를 잘 받아들이던가?”라고 물었다.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이시여, 라다 비구는 훈계를 아주 잘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아도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사리뿟따여, 라다 같은 고분고분한 제자를 몇 명이나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세존시시여, 제가 라다 비구처럼 고분고분한 제자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도반인 비구들이 말한 바와 같이 사리뿟따 존자가 동물이었을 때도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알려주는 사리뿟따 존자의 과거생인 알리나찟따 자따까 이야기를 한 후, 부처님은 라다 스님의 덕행을 이렇게 칭송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라다 비구처럼 훈계를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스승이 제자의 잘못을 지적하면 후자는 화내지 말고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만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부처님은 다음 게송을 읊었다.(법구경 게송 76)

 

Nidhīnaṃ va pavattāraṃ, yam passe vajjadassinaṃ.

Niggayhavādiṃ medhāviṃ, tādisaṃ paṇḍitaṃ bhaje.

Tādisaṃ bhajamānassa, seyyo hoti na pāpiyo.

 

숨겨진 보물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나의 허물을 보고 꾸짖는 현명한 이를 만나면

그런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그런 이를 가까이 하는 이에게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다.

 

법문이 끝날 무렵,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단계의 도의 지혜를 얻었다.

 

3. 호칭

 

한때 부처님이 제일가는 비구들을 지명할 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내가 설법할 영감을 일으키도록 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 라다 비구가 제일이다.”

 

(라다 스님의 통찰력과 교리에 대한 깊은 확신은 부처님의 법문을 풍성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사실은 라다 상윳따, 특히 제1왁가 S23:5~10, 4왁가 S23:23~46에서 알 수 있다. (바그가의 마지막 수타 6개와 제4바그가의 전체로부터 수집될 수 있다.(This fact may be gathered from Rādha Saṃyutta, particularly the six last suttas in the First Vagga, and the whole of the Fourth Vagga.))

 

“patibhāneyyaka”는 “부처님의 법문하는 능력이 생기도록 하는 제자들”이라고 정의된다.(The term patibhāneyyaka has been defined as: Patibhānaṃ janentīti patibhāneyyakā, - those disciples who cause to arouse the Buddha’s facility in discoursing.)

 

 

영어 원문: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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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andhaputt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1.28 이것은
    https://cafe.naver.com/satisamadhi/625
    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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