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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사야도

7.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2.07.01|조회수17 목록 댓글 1

7.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

 
1. 과거생에서의 서원
 
라꾼다까 밧디야(Lakuṇḍaka Baddiya) 대장로도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기의 전생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었다. 앞의 아누룻다 이야기처럼 그도 법문을 들으러 승원에 갔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에게 대단히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비구 중에서 제일이라는 호칭을 주시고 계셨다. 그것을 보면서 그에게 그 비구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 미래의 부처님 시대에 그런 호칭을 갖고 싶다는 서원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과 승가를 초대하여 일주일 동안 거대한 보시를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이렇게 서원했다. “거룩하신 부처님, 이 보시로 저는 다른 과보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미래의 부처님 시기에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비구 중에서 제일이라는 호칭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부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있었다.
 
지주의 미래를 조사하신 부처님은 그의 서원이 이루어 질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서원은 충족될 것이다. 지금부터 10만 대겁 후에 고따마 붓다가 출현할 것인데, 그때 그대는 비구가 될 것이고, 가장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자 중에서 최고라고 선언될 것이다.” 그렇게 예언하신 부처님께서 승원으로 돌아가셨다.
 
찟따빳따 뻐꾸기로서의 삶
 
그 예언을 들은 부자의 아들은 평생 동안 선행을 한 다음에 죽어서 천상계들과 인간계들에 태어났다. 위빳시이 부처님이 출현하셨을 때 그는 케마 사슴 공원(Khema Deer Park)에 사는 “찟따빳따(Cittapatta. 마음 날개)”라는 이름의 뻐꾸기로 태어났다. 하루는 그 뻐꾸기가 히마완따(Himavanta) 산에 가서 부리에 감미로운 망고를 물고 돌아왔다.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부처님을 보면서 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부처님을 뵀을 때 공양 올릴 것이 없었지만, 오늘은 내 자식들 먹일 잘 익은 망고가 있다. 이 망고를 부처님께 공양 올려야겠다.” 그래서 그는 밑으로 내려가서 날개 짓하며 공중에 떠 있었다.(땅 바닥에 내려앉지 않은 상태임) 뻐꾸기의 마음을 아신 부처님께서 시자인 아소까 장로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의 발우를 꺼내서 부처님 손바닥 위에 놓았다. 그러자 뻐꾸기는 부리에 물고 있던 망고를 부처님 발우에 넣었다. 바로 그 자리에 앉으신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드셨다. 믿음(saddhā. 삿다아)으로 충만해진 뻐꾸기는 부처님의 공덕을 되풀이해서 회상함으로써 부처님께 예경 올리고, 자기의 둥지로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먹지 않고 희열과 행복을 만끽하면서 살았다.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는 찟따빳따 뻐꾸기로 살면서 이렇게 선행을 했다. 이 과보로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의 목소리는 아주 감미롭고 기쁨을 주게 된 것이다.
 
도목수로서의 삶
 
그러나 깟사빠 부처님 시기에 미래의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는 도목수(都木手)가 되었다. 부처님의 완전열반[般涅槃] 후에 신도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보존하기 위한 단 하나의 사리탑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 논쟁했다. 문제는 사리탑의 크기를 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7요자나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말했다. “7요자나는 너무 크니 끝이 안 난다. 6요자나로 하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6요자나도 너무 크다. 5요자나로 하자.” 이런 식으로 점점 줄어서 4요자나, 3요자나, 2요자나까지 줄어들었다. 그러자 회의의 의장인 (미래의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 도목수가 이렇게 결정했다. “자, 친구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미래에 수리하기 쉬운 탑을 지읍시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줄자를 가지고 건설 현장으로 갔다. 그는 1가아우따(gāvuta=¼요자나)의 길이를 표시하고서 말했다. “사리탑의 한 쪽 길이를 1가아우따로 하면, 사방의 길이의 합이 1요자나가 된다. 바닥이 1요자나이니 높이도 1요자나로 하자.” 그렇게 도목수는 논쟁을 끝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한 사람들은 사리탑(dhātucetiya)을 건설했는데, 바닥의 한 방향이 1가아우따이니 합이 1요자나이고 높이도 1요자나였다. 이런 식으로 도목수는 비할 수 없이 커다란 덕성을 지닌 부처님께 헌정하는 사리탑의 크기를 작게 결정하여 건설했다.
 
2. 마지막 생에서 고행자 생활을 하여 아라한이 되다
 
엄청난 덕성을 가진 부처님 사리탑의 크기를 작게 결정한 업의 과보로, 그는 그의 모든 다음 생들에서 남들보다 키가 작았으며, 우리의 부처님 생존 시에 그는 사왓티 시의 부유한 가문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밧디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귀한 아들 밧디야가 성년이 됐을 때, 부처님은 제따와나(기원정사)에 머무셨다. 그는 정사에 가서 법문을 들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위대했던 그는 출가하였고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받았다. 위빳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2-1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 관련 가르침
(간단히 설명하겠음)
 
2-1-1 대장로가 아라한이 되게 한 가르침
 
라꾼다까 밧디야는 출가한 다음에 부처님으로부터 수행주제를 받아서 위빳사나 수행을 열심히 해서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 당시 유학(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인 비구들은, 더 높은 단계에 이르기 위하여,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서 수행주제를 달라고 하거나, 법문을 요청하거나, 자신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그들의 요구에 의해서, 사리뿟따 대장로는 수행법을 알려주거나, 법문을 하거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비구들이 정진을 계속함에 따라서, 일부는 사다함 단계, 이부는 아나함 단계, 일부는 세 가지 지혜, 일부는 육신통(六神通), 일부는 사무애해(四無礙解)를 얻었다.
 
다른 비구들을 보면서 라꾼다까 밧디야 비구는 자기 자신의 깨달음 단계 향상을 위한 기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마음의 열망을 숙고하여 거의 번뇌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를 숙고하면서 사리뿟따 마하테라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고 법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장로는 자신의 견지에서 젊은 비구의 성향에 맞는 법문을 했다.
 
대장로의 법문에 의해서 비구는 그 가르침에 따라서 위빳사나 지혜를 계발시켰다. 두 가지 요인 즉 대장로의 가르침의 힘 그리고 비구가 과거생에 행한 선업 공덕에 의하여, 그의 위빳사나 지혜는 아라한과라는 정점에 도달했다.
 
이를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그 즉시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위로 아래로 모든 곳으로 해탈하여
‘이것이 나다.’라고 여기지 않는 자는
이렇게 해탈하여 다시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전에 건너지 못한 폭류를 건넜구나.”
 
설명 : 자신의 번뇌흐름(āsava)을 파괴한 아라한은 ‘위(색계와 무색계)로’부터 그리고 ‘아래(욕계)로’부터 해방되었고, ‘모든 곳(모든 종류의 형성들)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해탈하여’는 억압에 의한 해탈, 근절에 의한 해탈, 편안히 가라앉음에 의한 해탈이라는 세 가지로부터도 해탈했다. 자신의 번뇌흐름을 파괴한 아라한은 오온을 자만과 ‘이것이 진짜 나’라는 열 가지 사견으로 더 이상 잘못 보지 않는다. 그렇게 10가지 족쇄와 모든 불선행으로부터 해탈된 아라한은, 성스러운 도를 얻기 전에는 꿈도 꾼 적이 없는 네 가지 폭류(감각적 쾌락, 존재, 사견, 무명의 폭류) 즉 윤회의 폭류를 건넜다. 그는 완전열반[般涅槃]을 통해 피안(彼岸)으로 건너가서 다시 태어나지 않고 행복하게 머문다.
(이상은 라꾼다까 밧디야 첫 번째 경(Ud7-1)에서 발췌한 것이다.)
 
2-1-2 사리뿟따 대장로의 추가 법문
 
첫 번째 경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리뿟따 대장로의 법문을 듣는 동안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러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사리뿟따 대장로는, 그가 아직 유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훗날 사리뿟따 대장로는 아라한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라꾼다까 밧디야는 짧은 대답을 원했는데 그 이상으로 자상하게 법문의 길이를 두 배로 늘여서 그에게 설법했다. 그러나 라꾼다까 밧디야는 “비구로서 할 일을 다 마친 나에게 이런 법문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법을 존중(Dhamma-gārava)하는 마음으로 전과 같이 법문을 경청했다.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머무시면서 이 정황을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가 번뇌를 모두 파괴했음을 사리뿟따 대장로가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윤회를 끊었고 원함 없음을 얻었으니
말라버린 강물은 흐르지 않도다.
윤회를 자르면 회전하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설명 : 번뇌흐름(āsava)을 파괴한 아라한은 번뇌 회전이 파괴되었다. (번뇌 회전이 파괴되면 업 회전도 파괴된다.) 번뇌흐름을 파괴한 아라한은 갈애가 없는 놀라운 열반의 행복에 도달한다. 번뇌흐름을 파괴한 아라한의 내부에서 계속 다섯 갈래로 흐르던 번뇌의 강물이 아라한도라는 네 번째 태양에 의해서 완전히 말라버렸다. 왜냐하면 네 번째 태양의 솟아오르면 세상은 소멸하기 때문이다. [갈애(taṇhā)는 괴로움의 원인인 집성제이므로 갈애가 사라진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번뇌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갈애가 강조된다.] 강물과 같은 갈애는 결코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업의 회전은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다시 존재를 되풀이해서 만들어내지 못한다. [업의 회전이 단절되면, 미래에 생길 과보의 회전(vipāka vaṭṭa)도 단절된다.] 번뇌의 회전과 업의 회전이 단절됨에 의해 과보의 회전이 소멸되면 괴로움의 종식이다.
(이상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라꾼다까 밧디야 두 번째 경(Ud7-2)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 많은 비구들이 부처님을 뵈러 가곤 했다. 그때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는, 다른 많은 비구들과 마을에서 탁발을 한 다음에,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씻은 다음에 건조시켜서 자루(bag)에 넣어 멜빵(sling)에 넣어 어깨에 멨으며, 대의(大衣. 승가리. 僧伽梨)를 접어서 왼쪽 어깨에 걸쳤으며, 발을 앞으로 내딛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앞을 똑바로 보거나, 옆을 보거나, 구부리거나, 뻗거나, 눈으로 아래를 볼 때,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사띠와 분명한 앎으로 잘 집중하고서, 뒷발은 고정하고 앞발을 앞으로 내딛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그렇게 다가갈 때 그는 다른 비구들과 섞이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 이유: 그는 혼자 살고(eka-cārī) 있었다. 다른 설명: 못생기고 난쟁이인 그의 모습을 육군비구 같은 범부인 비구들이 조롱하고 멸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는 사려 깊은 장로는 “일부 범부인 비구들이 나로 인해서 불선업을 짓지 않기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거리를 두고 뒤따라갔던 것이다. 이렇게 그 비구들과 장로는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도착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비구들의 뒤를 따라 오면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장로를 보면서 부처님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비구들은 내 아들의 위력이 위대함을 모른다. 그러므로 이 범부인 비구들 중 일부는 내 아들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그런 행위는 그들에게 해롭고 오랫동안 괴로움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그들에게 내 아들의 덕성을 알려주어서 내 아들을 그들의 경멸에서 벗어나게 할 때이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못생기고 난쟁이인 외모를 보고 범부인 일부 비구들이 경멸하는, 그대들의 뒤를 따라오는 저 장로가 그대들에게 보이는가?” 그러자 비구들은 “네, 보입니다, 부처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장로는 위대한 신통력이 있는데 그가 얻지 못한 선정(Jhāna)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그가 모든 선정들 예를 들어서 색계 선정, 무색계 선정, 청정범행(bramavihāra) 선정(samāpatti), 멸진정(滅盡定), 과(phala) 선정을 경험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해서 장로가 신통력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장로는 바로 이번 생에서 최상의 지혜로 경험해서,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아라한이 되었다. (이것은 그가 계속해서 아라한의 과정(果定)에 입정하는 장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해서 장로가 위력의 소유자임이 드러났다.) 거룩한 장로가 즐기는 아라한의 과정은 그의 위대함(ānubhāva)을 보여준다.)”
 
그렇게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러나온 말씀을 읊으셨다.
 
“흠집 없는 바퀴와 흰 차일을 가졌으며
하나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가 구르나니
근심 없고 흐름을 끊었으며
속박 없이 오는 그를 보라”
 
설명 : 내 아들 라꾼다까 밧디야의 마차 바퀴 같은 몸을 주의 깊게 보아라. 마차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바퀴는 아라한의 청정한 계와 같다. 마차의 희고 청정한 차일은 아라한의 해탈과 같다. 마차의 바퀴살은 비할 데 없는 아라한의 사띠와 같다. 마차와 같은 내 사랑하는 아들 밧디야의 몸은 윤활유 없이도 잘 움직인다. 많은 비구들의 뒤를 따라오지만 그는 번뇌로부터 받는 괴로움이 없다. 그를 끈질기게 뒤따라오던 갈애라는 기름이 제거되었기에, 그에게는 10가지 족쇄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다른 비구들이 장로의 몸을 보고 그의 덕성을 알도록 법문하신 것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아주 흡족해 하셨다.
(이상은 라꾼다까 밧디야 세 번째 경(Ud7-3)에서 발췌한 것이다.)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와 관련된 이야기와 법문은 법구경과 주석서, 장로게와 주석서 등을 보면 된다.
(역자 주: 법구경 게송 81, 260-261, 294-295 참조)
 
3. 호칭
 
그 후에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시면서 제일이라는 칭호를 주실 때, 부처님께서 라꾼다까 밧디야 장로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비구들이여,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내 제자들 중에서 라꾼다까 밧디야가 제일이다.”
 
이것이 라꾼다까 밧디야 대장로 이야기이다.
 
참고 : 각묵 스님, 『우다나』, 초기불전연구원, 2021, 「라꾼다까 밧디야 경1~3(Ud7-1, 2, 3)」, 387-391, 393, 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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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2.07.01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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