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 수행법의 개요
수행에는 사마타(선정. 삼매)를 개발하는 방법과 위빳사나 지혜를 개발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이들 두 가지 가운데 사마타를 먼저 개발하여 근접삼매*1 혹은 본삼매를 먼저 개발한 다음에,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五取蘊. 色受想行識]를 관찰하는 사람을 사마타 행자라고*2 한다.
*주1: 근접삼매(upacāra-samādhi)는 정신적 집중의 정도가 초선정(初禪定)의 본삼매(appanā-samādhi)에 접근하기는 했지만, 아직 본삼매를 획득하지 않은 상태이다. 근접삼매는 아직 의식이 욕계에 속하지만, 선정은 색계에 속한다.
*주2: 사마타 행자(samatha-yānika): 삼매를 먼저 닦은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수행자.
맛지마 니까야의 “법의 상속자경(M3)”에 대한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papañcasudānī)는 사마타 행자의 수행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우선 근접삼매 혹은 본삼매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사마타이다. 그런 다음 그는 그 삼매 및 그것과 함께 생기는 마음부수들에 위빳사나 지혜를 기울여서, 그것들을 무상(無常)한 것이고, 고통받게 되어 있고[苦], 자아가 없는 것[無我]으로 보는데, 이것이 위빳사나이다.” 『청정도론』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마타 행자는 우선 비상비비상처를 제외한 색계 선정이나 무색계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사유(위딱까), 고찰(위짜라), 희열, 행복, 집중이라는 선정의 구성요소들과 그것들과 함께 생기는 마음부수들을, 특징, 역할, 나타남 혹은 가까운 원인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근접삼매 혹은 본삼매를 개발하지 않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위빳사나 지혜를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에 기울이는 사람을 “순수 위빳사나 행자(suddha-vipassanā-yānika)”라고 한다. 위빳사나 지혜를 얻는 이 방법에 대해서 빠빤짜수다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사마타를 개발하지 않고, 위빳사나 지혜를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에 기울이고, 그것을 무상, 고, 무아로 본다.” 『청정도론』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순수한 위빳사나 지혜를 도구로 해서 … 사대(지수화풍)를 관찰한다.”
상윳따 니까야의 수시마 경(S12:70. Susīma Sutta)에서도*1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먼저 위빳사나 지혜가*2 생긴 다음에 열반(Nibbāna)을 보는 지혜가 생긴다.”
*주1: https://cafe.daum.net/satisamadhi/8fL2/688 참조
*주2: “위빳사나 지혜”의 원문은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dhammaṭṭhiti-ñāṇa)”이지만, 『상윳따 니까야2』, 347쪽에 “법들의 조건에 대한 지혜는 위빳사나 지혜를 말한다.”고 나와 있는 것을 참조하여 번역했다.
계가 청정해진 다음에, 순수 위빳사나를 선택한 수행자는 몸과 마음을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를 그 특성에 따라서 관찰해야 한다. 즉 자신의 생명의 연속체(life-continuity) 안(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해야 한다.*
*주: 이 수행 방법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사띠를 향하게 함에 의해 얻어지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지혜(paccakkha-ñāṇa)”를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신의 생명의 연속체”라는 표현을 쓴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로부터 확고한 직접적인 경험을 축적한 다음, 수행자는 추론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연속체에까지 관찰을 확대할 것이다. 염처경에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밖으로 몸(느낌, 마음, 현상)을 관찰하면서”라는 구절 참조.
위빳사나 지혜란 사실상,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그것들의 고유한 특성과 보편적 특성들을 관찰함에 의해 개발되는 것이다.
*주1: 브라마잘라 경(Brahmajāla Sutta)의 복주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물들에 실재하는 성품(paramatthadhamma)에는 고유한 특성들과 보편적 특성들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고유한 특성들의 이해는 경험에 의한 지혜(paccakkha-ñāṇa)인 반면, 보편적 특성들의 이해는 추론에 의한 지혜(anumāna-ñāṇa)이다. 예를 들어 풍대(vāyo-dhātu)라는 고유한 특성은 지탱하는 것이며, 기능은 움직이는 것이고, 보편적 특성들은 무상, 고, 무아이다.
*주2: 이 법문에서는 “관찰(sallakkhaṇā: 주시, 통찰, 알아차림, 분별, noticing, discernment)”이 핵심 용어이다. 이에 해당하는 빠알리어 동사는 "sallakkheti(sam + lakh)"인데 문자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to mark clearly(분명하게 표시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주목하다)”로 번역된다. "to mark"를 영어에서 "to observe(관찰하다)" 혹은 "to notice(관찰, 알아차림, 주시, 주목)"의 의미로 사용하면 아주 적절하지만, 그 파생어들은 약간 생소하고 비실제적이다. 그래서 “noticing(관찰)”이 선택되었다. “noticing”은 냐나포니카 테라가 저술한 “불교 선수행의 핵심”에 사용된 “bare attention(사물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용어이다.
그러나 수행 초기에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 모두를 따라가서 관찰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초보 수행자는 몸의 문을 통해서 아주 분명하게 느껴지는 접촉을 우선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청정도론』에서 위빳사나 수행은 분명한 것을 수행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앉아 있을 때, 앉아 있는 자세와 몸이 닿는 감각에서 닿음이라는 몸의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접촉되는 감각의 현상을, 생기는 순서대로, “앉아 있음, 닿아 있음”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나아가서, 앉아 있는 수행자의 배에서 호흡을 조건으로 하는, 감촉할 수 있는 배가 부풀고(확장) 꺼지는(수축) 몸의 현상(풍대)이 지속해서 감지된다. 그것도 “부풂, 꺼짐” 등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자가 이렇게 배에 있는 몸 감각의 문에 와서 지속해서 감촉되는 풍대를 관찰하고 있으면, 그것이 딱딱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딱딱하다는 것은 풍대의 지탱하는 특징이고, 떨린다는 것은 풍대의 움직이게 하는 기능이며, 밀고 당기는 것은 풍대의 나아감의 나타남(현시, manifestation)이다.
*주: 특징, 기능, 나아감은 빠알리어 주석서와 『청정도론』에서 사용되는 표준 용어이다. 정신적 현상일 때는 네 번째 범주인 "가까운 조건(padatthāna)"이 추가된다. 예를 들어서, 풍대의 정의가 『청정도론』 제11장 93절(대림 스님, 『청정도론 2』, 265쪽)에 나와 있으며, 이 법문에서 직접적인 경험으로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감촉할 수 있는 배가 부풀고 꺼지는 몸의 현상을 관찰하는 수행자는, 풍대의 고유한 특성, 기능, 나타남을 알게 됨에 의해, 몸에 대한 관찰을 완성한다. 나중에 마음도 관찰해서 몸과 마음 두 가지 모두를 능숙하게 관찰하게 되면, 그는 그 현상들이 무상하고, 괴롭기 마련이고, 그 안에 자아가 없다는 보편적 특성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의 부풂 꺼짐과 다른 감촉할 수 있는 현상들만 관찰하고 있는 동안, 탐욕 등에 관한 생각들, 즐겁고 괴로운 느낌들, 혹은 몸의 여러 부분에서 자세를 바꾸려는 움직임 등이 나타날 것이다. 그럴 때는 이러한 마음과 몸의 변화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들을 관찰한 다음에, 이 수행에 있어서 주된 관찰의 대상인 감촉할 수 있는 배가 부풀고 꺼지는 과정의 지속적인 관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상이 위빳사나 수행법을 간단히 설명한 것이다. (“마하시 위빳사나 수행법”은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위빳사나 백문백답』, 이솔, 2014, 55~99쪽 참조)
출처 : 오원탁 번역, 영역, 『마하시 스님의 칠청정을 통한 지혜의 향상』, 경서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