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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자애

[지혜의 향상]11. 형성평온의 지혜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3.10.01|조회수8 목록 댓글 1

11. 형성평온의 지혜

 

재성찰의 지혜가 성숙해지면, 아주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가, 마치 스스로 나타나는 것처럼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형성평온의 지혜라고 한다.

 

이제 사띠에 있어서, 마음을 조건 지어진 현상들에 기울이려는 노력이나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하나의 사띠하는 행위가 끝난 다음에는, 주시되어야 할 다음 대상이 스스로 나타나고, 위빳사나 지혜도 스스로 그것을 사띠하고 이해한다. 마치 수행자가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전에는 현상들의 소멸을 봄에 의하여, 차례대로, 두려움의 관점, 허물을 지각, 혐오함의 관점, 벗어나고자 함, 그리고 지금까지 성취한 지혜에 대한 불만족이 생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마음부수들이 일어나지 않지만, 현재 상태에서도 또한, 보다 빨리 해체되고 있는 현상들의 소멸함이 면밀하게 지각된다. 간혹 몸속에서 고통스런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정신적 동요(비탄)는 생기지 않으며, 그것을 참아낼 용기가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통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수행자가 두려움이나 슬픔에 대해서 생각할지라도, 두려움이나 슬픔을 그대로 내버려 둘 뿐, 그에 대한 정신적 동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의 단계에서 두려움을 버림이다.

 

보다 앞 단계인 생멸의 지혜를 얻으면, 위빳사나 지혜의 명료함에 의해 커다란 기쁨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제는, “형성평온의 지혜에 속하는 아주 평화롭고 최고로 명료한 마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종류의 기쁨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실제로 기뻐할만한 바람직하고 호감이 가는 대상을 보기는 하지만, 혹은 여러 가지 즐거운 일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강렬하게 기쁜 느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의 단계에서 즐거움을 버림이다.

 

그는 자신의 감각기관의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직하거나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건 탐내거나 증오하지 않고, 똑같이 사띠하고, 그것을 이해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해라는 순수한 행위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의 단계에서 평등하게 봄이다.

 

지금 언급한 세 가지 특성에 대해서 청정도론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과 즐거워함을 버리고, 수행자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편견이 없고 중립적이 된다.”

 

만약 수행자가 나는 이제 힘차게 다시 수행하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사띠하는 수행을 다시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사띠는 스스로 진행되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수행자가 더 이상 신중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가 신중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사띠는 오랫동안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며, 심지어는 두세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에서 수행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서 빠띠삼비다막가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오래 지속되는 지혜는 형성평온의 지혜의 마음부수에 있는 지혜이다.” 청정도론의 대주석서는 이것은 지속적인 흐름 안에서 작용하는 지혜를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제 사띠가 그 스스로 진행되는 듯이 자발적으로 작용하게 되면, 여러 가지 다양한 대상들에게로 마음을 보내려고 해도, 대개는 가지 않는다. 설사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고 통상적인 주시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로 돌아와서, 지속적인 사띠를 다시 계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움츠리고, 되돌아오고, 물러난다. 그는 다른 대상으로 가지 않는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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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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