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86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에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까?
마하시 사야도 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이솔, 『위빳사나 백문백답』, pp.200~201
깨진 항아리를 대상으로 해서 ‘무상하구나, 항상하지 않구나’라고 아는 것은 개념적인 무상인 가짜 무상을 아는 것입니다. 가시에 찔려서 아픈 것을 대상으로 해서 ‘괴로움이구나, 고통이구나’라고 아는 것은 가짜 괴로움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짜 무상, 가짜 괴로움을 아는 것만으로는 무아의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생겨나서는 사라지는 성품을 경험하여 ‘항상하지 않다’라고 아는 것이 빠라맛타 실재 무상, 진짜 무상입니다. 그 빠라맛타 실재 무상을 알면 ‘생멸하는 것이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라고 하는 빠라맛타로서 실재하는 괴로움인 진짜 괴로움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성품에 따라 생멸하고 있는 성품법일 뿐이다. 주재할 수 있는 자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진짜 무아도 알게 됩니다. (팔정도에 대한 법문)
일부 사람들은 숙고하는 지혜로 물질들을 가루처럼 잘게 나누어 보는 것만으로, 또는 몸 덩어리가 사라진 것만으로 무아가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몸 형체가 사라지는 것만으로 진짜 무아의 지혜가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하나의 수행주제에 마음을 기울이다가 몸 형체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진짜 무아의 지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게 몸 형체가 사라졌을 때 그것을 생각하여 아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각하여 아는 그 마음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색계천에 있는 범부 범천들의 경우 몸의 형체들은 드러나지 않지만 아는 마음을 ‘나’라고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체 개념이 사라지는 것 정도만으로 무아의 지혜가 생겨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겨나는 모든 물질과 정신들을 관찰해서 ‘자기 성품대로 생멸하고 있다’라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라고 하는 무아의 특성을 알고 보아야만 진짜 무아의 지혜가 생겨납니다. (「계구족 경」에 대한 법문)
[출처] [위빳사나 백문백답] 질문 86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에 진짜와 가짜가 있습니까?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