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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문학 2023년 9월 22일 좋은 시 선정 / 쓸쓸한 유머 / 문정희

작성자rthkjc|작성시간23.09.22|조회수31 목록 댓글 0

쓸쓸한 유머


 문정희 

 
 
남은 술잔을 두고 일어서는데
그가 돌연히 끌어안으며
깊이 속삭인다
아이 러브 유!
가만! 이런 유머는 처음이다
순간 공항이 휘청했다
 
하교하는 아이를 픽업해야 한다며
그는 서둘러 주차장 쪽으로 가고
나는 탑승구 안으로 발길을 돌리며
순간 장미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얼얼한 고통과 아름다운 허위가
나이테처럼 새겨진 어깨를
솔개가 다시 툭 친 것 같다
아이 러브 유!
사랑의 굉음이 간지럼처럼 스쳐갔다
 
고백이 기쁜 게 아니라
이것이 얼마나 즐겁고 쓸쓸한 유머인가를
알아듣게 된 것이 기뻐서
쿡쿡 웃음을 삼키며 비행기에 올랐다
문득 별이 있는 사막에 불시착한 것은 아닐까
밤새도록 백내장 같은 허공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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