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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문학 / 설봉문인협회 2023년 11월 27일 좋은 시 선정 / 가난한 애인 / 최문자

작성자rthkjc|작성시간23.11.27|조회수153 목록 댓글 0

가난한 애인



최문자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다
신랑은 가난했다
자꾸 손을 자주 씻었다
잠깐, 잠깐만이라도
하면서 빨랫비누로 가난한 지문을 지웠다

신랑은 혼자 쓰러지지 않았다
가난을 데리고
나를 데리고
하루 종일 통이 넓은 가난을 끌고 다녔다

보리빵 조각을 나눠 먹고
훌쭉한 뼈가 자라면
가난은 얼굴이 되었다

40년 훌쩍 지나
가난은 이제 배가 부르고
죽어 가는 아무것도 구원하지 않았다

뼈를 뿌렸던 백령도로 가는 파도 위에
시집 한 권
밍밍한 보리빵 세 개
겉봉도 쓰지 않고 던졌다

남자는 이제 손을 씻지 않는다
너무 많이 만져 본 둥그런 빵 조각도 놓친다
툭툭 다 떨어뜨렸다

진눈깨비가 함부로 올려고 했다

안녕,
아무 데나 뿌리내리고 우거졌던
가난한 나의 빵 조각들
쏴쏴, 바닷속 시집 페이지가 넘어갔다

설봉 한명화 시인


설봉예술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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