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붉은,
박완호
가을은 붉고 둥글다
누군가 칼질 한 번으로
시간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었다
열매 속으로 스미는 햇살의
붉은 기억들,
과즙냄새 풍기는 노을로
새들이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저수지 굴곡 따라 모퉁이를 돌던
그림자 걸음이
비탈 앞에서 제자리를 맴돌 때
새들은 잠깐 중심을 놓친다
서쪽으로 간신히 기운 벼랑 따라
가파른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넘는
새들의 날갯짓,
저기 어디엔가
내가 가야 할 길이 놓여 있으리
낡은 시집 뒤표지에 적힌
깨알 글씨 이름처럼
조금은 빛이 바래서 더 반짝이는
가을의,
붉고 둥근 넋으로 물드는
서쪽 하늘 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그림자,
끝자락 숨결로 꽃피울
나의 한 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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