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맣게
이기철
잎새들에게 옷 한 벌 빌려 입고
잎새처럼 함초롬히 사는 일
박꽃이 질까 봐 흰 종이로
고깔 한 겹 씌워 주는 일
달빛 한 되 함지박에 받아 놓고
서 말 쌀 꿔 온 날처럼 넉넉해지는 일
댕기새 돌 던져 울려 놓고 장고 소리라 우기며
혼자 하루를 노닥이는 일
햇빛으로 움막 짓고 온종일 나물 냄새 새똥 냄새 맡으며
저자에도 대처에도 나가지 않는 일
구름이 보낸 편지가 있나 없나
손가락으로 우체통을 열었다 닫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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