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울었다
정태중
보도블록의 경계가 바둑판을 닮은 지 오래되었으나
때로는 푹 팬 땅을 덮느라 모나게 자세를 잡고
세상을 비스듬히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블록의 매끈한 판 위로 오래도록 지속된 평화는
한 토막 뉴스의 언어로 금이 가고
판판의 경계가 크레바스가 되어버린
저 땅의 아래가 궁금하다
낮술에 풀린 다리가 비스듬하다
비스듬한 블록의 경계에 발을 끼었다
휘청이는 건물들을 받치려 손을 번쩍 폈으나
복사뼈는 우두둑 고함을 칠뿐
낯 뜨거운 햇살만 붉어진 얼굴에 핀잔을 붓고
사람이 없는 무표정의 도심에서
무표정의 거리는 무표정의 건물과
무표정의 조형물들만 무표정하다
비스듬히 누운 세상
어느새 햇살도 서쪽으로 비스듬히 눕고
산 위로 걸친 노을만 붉어지는데
무감각의 조형물이 된 다리에 말을 건다
좀 쉬렴, 경계로 들어선 어둠을 알려 하지 말고.
설봉문학 / 설봉문인협회
설봉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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