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고 있음을
정태중
숨죽인 듯 하늘 향한 것들이 차분해지는
검은 페이지를 하나둘 걷어내는 아침에 들면
한낮 열기에 몸을 놓아버린 이파리 몇 개의
장엄한 흔적 아래 풀숲은 고요하다
몇 방울의 빗물이 내리면
가볍게 흔들리는 이파리들
억센 생각들이 조금은 물기를 잃었는지
중력의 무게를 힘없이 받아내고 있다
사랑도 그러하리라
풋사과의 여름이 가고
붉어지는 가을 앞에서
더 단단해지며 맛이 배는 것
누구에게나 가을이 오고 있음이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푸르다가
형형의 색으로 제각각 물들어 오는 일
여린 코스모스를 생각하면
하늘하늘 걸어올 것 같은 한 사람
아침이 향기롭다는 것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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