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은 살고 있었다
맹문재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 남은 철로 같았지만
싸리 빗자루로 회초리질을 하던 중학교 한문 선생님을 찾기 어려웠지만
시장에서 팔던 호떡이며 염소 울음이 강물에 실려갔지만
중국집 배달부가 어슬렁거리는 개처럼 거리를 걸어가고 있지만
깨진 간판이 달린 지하 다방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지만
보건소 뜰 앞에서 노인들이 누에처럼 꼼지락거리고 있었지만
폐광된 사택이 산비탈에서 허물어져 있었지만
수염도 못 깎은 아버지들이 소를 몰고 식전에 들어서던 우시장이 큰물에 씻겨 내려갔지만. 소읍은
낡은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보았던 밤안개처럼
밭둑길 아래 샛별로 핀 제비꽃처럼
꽃에 달라붙어 엉덩이를 들썩이며 꿀을 빠는 벌들처럼
타작마당을 그득 채운 가을 햇살처럼
풋살구 끝에 매달린 빗방울처럼
골목길을 흔들던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처럼
협곡으로 둘러싸인 나의 손금처럼, 살고 있었다
-맹문재, '책이 무거운 이유' 창비 10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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